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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눈꽃산행] 명지산 르포

by 白馬 2019. 12. 23.

힘들게 오른 자, 눈꽃의 축복 받으리"
익근리~명지폭포~정상~삼거리~익근리 12km 원점회귀 산행

눈 없는 겨울은 사막보다 잔인하다. 여유도 포근함도 없는 살벌한 차가움. 그 팽팽한 긴장에 바람까지 더해지면 눈코 뜰 수 없는 고통이 가슴을 찢는다. 눈은 이런 혹한의 살풍경을 감싸안는 유일한 존재다. 세상의 추함을 깨끗이 덮는 것은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풍선처럼 부풀린다. 그래서 눈은 겨울이 주는 축복이다.


▲ 눈꽃의 진수가 펼쳐진 명지산 정상부. 모든 나무가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장관이다.
새해를 눈 쌓인 산에서 맞는 일은 의미가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산행을 통해 마음을 다잡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원을 빌기도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자기최면을 거는 일종의 의식으로 여길 수도 있다. 신년 산행은 이렇듯 개인마다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별한 의미의 산행이라 해도 볼거리는 필수다. 겨울이니 소복하게 핀 눈꽃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눈 내린 직후 아무도 밟지 않은 산길을 걷는 일은 경험자가 아니면 절대 모를 묘한 재미가 있다.

▲ 눈꽃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취재팀.
하지만 겨울철 눈이 귀해진 요사이, 눈꽃은 높은 산에서나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산도깨비 같은 존재가 됐다. 이제 부지런하고 운도 따라주는 이들만이 눈꽃의 아름다움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다는 소식에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눈꽃 산행이라는 주제에 맞아떨어지는 지면을 꾸미기 위해서는 ‘눈 사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1,000m급 산인 명지산(明智山·1,267m)으로 잡았다. 고도가 높아 산정에 눈이 쌓일 확률이 높은데다 서울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다.

가평천 들어서자 눈발 날려

서울 시내를 벗어나니 가평까지 가는 길이 시원스럽게 뚫렸다. 평일이라 행락객의 차량이 거의 없는 탓이다. 매일 이렇게 편안하게 야외로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경춘가도는 주말이면 영락없는 정체로 몸살을 앓는 곳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명소와 볼거리가 이 도로를 축으로 많이 모여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명지산도 그런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 승천사 일주문.
가평에서 잠시 이 지역의 산꾼 이광우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주중이라 산행에 함께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나눈 뒤 다음 산행을 기약했다. 그 역시 명지산은 높이가 있어 눈을 기대해도 좋을 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가평을 지나 목동까지 가는 길은 순탄했다. 겨울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도로변에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목동리를 지나 가평천을 따라 들어가며 상황은 돌변했다. 길바닥에 하얀 눈가루가 날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역시 명지산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경춘가도에서는 볼 수 없던 눈의 흔적이 산 위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폭설이라도 쏟아 부을 듯한 흐린 날씨가 더욱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명지산 입구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기존 코스를 따르더라도 6시간이 넘게 걸리는 산이라 접근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게다가 폭설이라도 쏟아지면 노면 사정이 나빠질 수도 있다.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날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것도 발목까지 차는 깊은 눈이 내린 것이다.

▲ 명지산 정상. 구름 속에 잠긴 숲 전체가 하얗게 변했다.
오전 8시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익근리 명지계곡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니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은 없다. 순도 100%의 신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는 것은 솔직히 흥분되는 일이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평탄한 비포장도로가 완만한 경사로 승천사까지 이어졌다. 길옆으로는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명지계곡이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하얀 삿갓을 쓴 바위들은 계곡 속에서 운동회라도 하듯 옹기종이 모여 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진 잣나무들은 그 자체로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멋졌다. 눈 내린 직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이 산길 주변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승천사 경내에 우뚝하게 서 있는 커다란 미륵불 뒤로 명지산 줄기가 힘차게 뻗었다. 저기 멀리 눈길이 닿는 하늘금에 명지2봉의 장엄한 산봉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과연 경기의 명산다운 모습이다. 아침 햇살을 받은 명지2봉은 밤새 내린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하얗게 빛났다. 눈꽃산행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다.

밤새 내린 눈 밟고 계곡 깊은 곳으로

▲ 매표소 바로 위쪽의 명지계곡도 눈에 덮여 신비로운 분위기다.
승천사를 지나 좁아지는 산길을 타고 전진했다. 제법 숲이 깊어질 즈음, 자그마한 표석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곳부터 생태계보존지역임을 알리는 경계석이다. 가평군 북면과 하면을 경계로 솟아있는 명지산은 경기도 내에서 화악산 다음으로 높다. 경관이 수려한 것은 물론, 식생이 다양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해 1991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산길은 천천히 경사를 더해가며 깊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풍부한 수량의 계곡을 보니 이곳이 얼마나 깊은 산속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곳곳에 나타나는 암반과 크고 작은 폭포는 명지폭포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계곡 방향으로 60m 가량 내려서면 명지폭포가 나온다. 수량이 많을 때는 폭포수가 장관이지만 겨울이라 볼품이 없어 아쉬웠다.

명지폭포를 지나쳐 조금 더 오르면 나무다리가 나온다. 이곳이 산길이 갈리는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난 길은 화채바위 부근의 주능선으로 올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 직진해 다리를 건너면 정상 남쪽의 갈림길로 곧바로 오를 수 있다. 좀 가파르긴 해도 계곡을 타고 직상하는 코스를 택해 전진했다. 산길은 계속해 계곡과 평행선을 긋고 있다. 주변의 지계곡에서 흘러드는 물을 여러 차례 건너며 고도를 높였다.

산에 들수록 숲의 밀도가 점점 짙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전히 산길의 경사는 비교적 완만했다. 2시간 가까이 산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GPS 고도계는 700m 남짓한 수치를 가리키고 있다. 아직 정상까지 500m가 넘는 고도를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명지산 정상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1km. 우리 앞에 어마어마한 된비알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냇물처럼 가냘픈 계곡이 땅 속으로 숨어들 즈음 나무계단이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깨끗한 목조 계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곳을 벗어나면 맘 편하게 쉴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이 주변을 감싼다. 겨울 산에서 무풍의 순간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영하의 기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람이기 때문이다.

▲ 1. 취재팀이 쌓인 눈에 가지가 축 늘어진 잣나무 옆을 지나가고 있다. / 2. 백은식씨가 계곡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있다. / 3.급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의 통나무계단.
예상대로 계단은 가팔랐다. 그래도 불안한 너덜지대보다 눈 쌓인 계단이 차라리 편했다. 한 발 한 발 힘을 줘가며 고도를 높인다. 주변의 나무들이 점차 덩치를 키워갔다. 고산 분위기가 한껏 고조될 즈음 나뭇가지에 하얗게 달라붙은 눈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높이는 속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해발 1,000m를 경계로 주변은 눈꽃 천지다. 나뭇가지에도 바위에도 우윳빛 수정 같은 눈발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점차 시계는 나빠졌다. 높은 산에 걸린 구름이 넘어가며 온 세상을 뿌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숲이 울창한 탓도 있지만 구름이 짙어 주변 조망은 포기해야 했다. 그 대신 우리는 눈구름이 선사한 화려한 눈꽃을 만끽했다. 고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보다 한층 고귀한 풍광이었다.

구름에 잠긴 산정은 눈꽃의 바다

▲ 1. 구름에 잠겨 뿌옇게 시야가 흐려진 명지산 정상부 분위기. / 2. 계단을 따라 명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취재팀. / 3.취재팀이 소나무에 두텁게 쌓인 눈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은 사면이라 나뭇가지의 눈꽃은 고르고 탐스러웠다. 살찐 사슴의 뿔처럼 풍부한 볼륨의 눈꽃은 과연 환상적이었다. 말라붙은 낙엽에도 눈의 씨앗이 달라붙어 새 생명을 찾은 듯 두툼하게 자라고 있었다. 겨울의 마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빠져 시간을 보냈다.

사방이 하얗게 구름 속에 잠겨 있다보니 산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계단이 사라진 급경사지대에서 길을 짚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족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희미하게 드러난 지형과 표지리본을 보고 방향을 짐작했다. 진행 속도가 평소의 반 이하로 떨어졌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거의 2시간만에 명지산 정상 바로 남쪽의 주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에 닿으니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손발이 시려온다. 바람을 맞은 눈꽃들이 가늘게 부서지며 떨어져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잠깐 사이 눈 부스러기가 배낭 위에 하얗게 쌓였다. 눈도 깊어져 정강이까지 빠져들었다. 역시 고산에 올라야 진짜 겨울다운 산행이 가능한 모양이다.

▲ <좌> 명지산 정상. 왼쪽 봉이 제2봉. 오른쪽 봉이 제3봉이다. / <우> 아침에 산을 오르며 본 승천사와 명지산 줄기.

구름속의 산책을 끝내고 정상에 섰다. 이정표가 서 있는 정상 바로 옆의 고갯마루를 지나쳐 곧바로 내려갔다. 바로 옆의 커다란 바위가 진짜 정상이지만 시계가 제로라 생략했다. 가파르고 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바람이 잠잠해지는 곳에서 잠시 요기를 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명지산 정상부의 구름은 요지부동이다.

화채바위로 이어지는 산길은 거의가 내리막이다. 통나무 계단을 통과해 속도를 높였다. 오후로 접어들며 기온이 올라갔는지 등산화가 축축하게 젖어오기 시작한다. 산길도 훨씬 미끄러워진 느낌이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균형 유지가 만만치 않다. 들뜬 돌이 깔려 있는 구간이 특히 어려웠다. 한껏 힘을 쓰고 나니 다리가 뻐근해질 정도다.

화채바위에 다다르기 직전 능선에서 남쪽 사면으로 방향을 튼다. 계속해 화채바위와 사향봉(1,013m)으로 이어진 능선은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지루하게 계속되는 급경사를 통과해 계곡을 따라 내려서서 명지계곡 상단 삼거리에 도착했다. 명지산 정상에서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삼거리 이후 하산길은 오전에 통과했던 곳을 복습했다. 길도 넓어지고 족적도 뚜렷하지만 어째 신이 나지 않는다. 긴장이 풀어지자 일시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같은 곳이지만 아침에 느꼈던 풍광의 신선함도 사라졌다. 해는 산 너머로 가라앉았고 발도 무겁다. 하루 종일 쥐고 흔들던 스틱도 유난히 짐스러웠다. 몸도 지쳤지만 산을 떠나야하는 아쉬움이 더욱 마음을 옥죈다. 그렇게 명지산과 아프게 이별했다.


눈꽃산행 체크리스트

쉬운 코스 택하고 방수채비 철저히 해야


눈꽃산행 대상지를 고를 때는 우선 적설량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아무래도 고도가 높은 고위도의 산들이 적설량이 많기 마련이다. 눈꽃은 추운 날씨에 내리는 건조한 눈 보다는 습설(濕雪)일 때 형성되기 쉽다. 바람이 강할 때보다 조용한 날이 나뭇가지에 눈이 잘 달라붙는다. 특히 굵은 함박눈이 대규모로 내리면 눈꽃이 잘 만들어진다. 폭설 직후에는 어디라도 눈꽃 산행에 좋다.

눈이 깊게 쌓이면 잘 아는 산길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초행길이나 산길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 가이드북이나 지도 등을 준비해 계획한 코스를 철저히 숙지한다. 그 지역의 전문가들에게 정보를 구하는 것도 좋다. 눈꽃산행은 가능하면 길이 잘 나 있는 기존 코스를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겨울산행 채비를 철저히 한다. 방수방풍의류, 장갑, 스패츠, 아이젠 등 겨울 장비를 빠트리지 않고 챙긴다. 눈꽃이 좋은 곳은 눈의 성질이 축축해 쉽게 옷이나 신발을 적시는 경우가 많다. 등산화는 반드시 방수가 잘 되는 것을 신는다. 산행에 나서기 전에 방수처리제를 넉넉히 발라둔다. 장갑도 젖을 것에 대비해 여분을 준비하도록 한다.

겨울에는 해가 짧으므로 가능하면 코스는 조금 짧게 잡도록 한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반드시 헤드램프와 여분의 배터리를 챙긴다. 휴대전화도 예비 배터리를 가지고 가도록 한다. 깊은 산중에서는 휴대전화 통화가 불가능한 지역도 많다. 이런 산에서는 배터리 방전이 심하므로, 아예 산행 중에는 휴대전화를 꺼 배터리 방전을 막도록 한다.


산행길잡이

기존의 원점회귀코스 돌아도 최소 6시간 걸려

교통

서울→가평 동서울터미널(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1일 75회(06:00~21:20) 운행하는 춘천행 직행·직통버스 이용 / 상봉터미널에서 1일 52회(05:40~21:30) 운행하는 춘천 또는 화천행 직행버스 이용 / 청량리역 앞에서 청평 경유 가평행 1330번 좌석버스(진흥여객)가 1일 22회(06:40~22:00) 운행(13회는 목동행). 전화 031-585-7242.

열차편 청량리역에서 1일 19회(06:15~22:30) 운행하는 경춘선 무궁화호 이용. 1시간20분 소요. 요금 3,800원. 전화 1544-7788.

가평→익근리 버스터미널(031-582-2308)에서 1일 5회(09:00, 11:00, 15:00, 16:40, 19:10) 운행하는 목동 경유 적목리 용수목행 완행버스 이용.

숙박(지역번호 031)

명지산 익근리 계곡 입구에는 식당과 매점을 겸한 민박집이 대부분이다. 명지산아래촌민박(582-0506), 금자네집(582-5574), 명지산펜션(582-7819), 안성집(582-9612). 방 1개 기준 30,000~40,000원 선.

모닥불도 피우면서 즐길 수 있는 마당이 넓은 숙박시설은 백둔리 부근의 한터마을과 구나무골에 많다. 빈하우스(582-7074), 숲속의다락방(582-8589), 달빛고을(582-3184), 곰사냥을떠나자(582-4902) 등. 4인 기준 작은 방은 50,000원부터 10인 이상 대형 펜션은 15만원 선. 펜션으로 운영되는 곳은 요금이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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