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으로 물드는 호젓한 능선길이 반갑다!

주능선 철쭉 화원과 봄빛 가득한 계곡의 조화
울주군과 양산시 경계에 솟은 대운산大雲山(742.1m)은 계곡이 좋기로 유명한 산이다. 이곳의 ‘내원암 계곡’은 간절곶 일출과 대왕암, 신불산 억새 등과 함께 울산 12경에 드는 명소다.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대운산의 계곡은 울산지역 주민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대운산은 해발 700m 높이의 산치고는 주변으로 뻗은 산자락이 상당히 넓다. 북쪽 대운산 1봉에서 정상을 거쳐 남쪽 시명산(673m), 석은덤산(543m)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길이만 10km가 훌쩍 넘는다. 동서로 이어진 지능선의 규모도 상당하다.
계곡이 좋을 수밖에 없는 천혜의 지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숲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현재 내원암 계곡에 울산수목원이 조성되고 있다.
대운산은 봄꽃으로 유명한 산이다. 정상에서 대운산 2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주변에 철쭉과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늘 봄이면 화사한 꽃길을 연출하는 곳이다.
철쭉이 만개할 즈음 지역 주민들 주관으로 철쭉제도 열린다. 올해는 4월 28일 내원암 계곡 중간의 수목원에서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4월 초, 아직 철쭉 꽃밭을 보기에는 이른 시기다. ‘꿩 대신 닭’이라고 능선에 핀 연분홍 진달래꽃을 고대하며 대운산으로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대운산 2봉에서 해맞이까지 하려고 야영장비도 챙겼다. 대신 최소한의 음식과 장비로 짐을 줄여보려 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욕심을 내다 보니 배낭은 점점 묵직해졌다. 이번 산행도 무게와의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꽃샘추위에 말라붙은 진달래
대운산 제3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니 길은 두 가닥으로 갈라졌다. 오른쪽이 내원암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일명 ‘내운암 계곡’이라 불리는 대운천을 끼고 이어지는 도로다. 그런데 계곡길 입구에 ‘울산수목원’ 공사를 위해 커다란 철문을 세워두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산길 입구에 세워둔 안내판을 보니 일부 등산로까지 폐쇄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다니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향후 수목원 공사가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통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만난 이곳 주민들은 등산객은 괜찮다면서 되레 우리를 안심시켰다.
“경사가 급하지만 내원암을 거쳐서 제2봉으로 오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주민의 추천대로 내원암으로 이어진 찻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연둣빛 신록이 가득한 산자락 풍경을 눈에 담으며 느긋하게 발을 옮겼다. 음지는 서늘하고 양지는 더운 전형적인 봄 날씨였다. 강원도 산골짜기 같은 험한 비탈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렸다.
골짜기를 따라가는 포장도로가 끝날 즈음 평지가 나오며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령이 450~500년, 둘레 6.5m, 높이 18m에 달하는 거목이었다.
내원암은 신라 중기 고봉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전해오는 자료가 거의 없어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다. 고봉 선사는 창건 당시 내원암이 들어선 자리를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실제로 내원암은 대운산의 꽃봉오리 모양을 이룬 다섯 봉우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명당에 위치한 사찰답게 내원암은 분위기가 차분하고 편안했다.
내원암 앞에서 산길은 왼쪽 계곡을 건너 산사면을 거슬러 오른다. 비탈길을 통과해 능선으로 올라선 산길을 대운산 제2봉을 향해 곧바로 뻗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탈길의 경사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 지그재그로 산길이 나 있지만 코가 땅에 닿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내원암과 대운산 제2봉(670m)의 고도차가 400m가 넘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온몸의 힘을 쏟아내며 산정으로 올랐다.
정상에 먼저 도착한 양수열 사진기자의 환호성이 들렸다. 답답한 비탈길을 벗어난 기쁨의 표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운산 제2봉은 진짜 전망대였다. 발아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아침이 찾아온다는 간절곶도 보였다. 이 산에서 맞는 일출이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해돋이임은 분명한데 제2봉은 좋은 야영지는 아니었다. 나무데크가 있지만 너무 좁고 바람이 심했다. 정상석 주변도 비탈진 돌밭이었다. 안락한 하룻밤을 위해 이동이 불가피했다.
사실 출발 전 염두에 둔 야영지가 있었다. 철쭉제 행사장인 상대봉 바로 밑의 넓은 데크가 바로 그곳. 주말이면 사람이 많아 복잡하겠지만, 평일이라 조용히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해질녘 도착한 나무데크 위에는 이미 울산에서 온 60대 중반의 여성 산객 세 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웃이 생긴 것이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쉘터를 설치했다.
해지기 직전 도착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쉘터를 세우고 개인 짐 정리를 마칠 즈음 이웃집에서 음식 그릇을 들고 찾아왔다. 산행하느라 힘들었으니 먼저 허기를 달래라는 배려였다. 산중에서 만난 귀인들이었다.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팀은 울산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산꾼들이었다.
이미 오래 전 백두대간과 9정맥을 완주했고, 지금도 일주일에 2~3번 비박과 산행을 즐기는 베테랑들이었다. 요즘은 영남알프스 곳곳을 누비며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산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해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감상했다. 울산 앞바다에 정박 중인 많은 대형 선박들 뒤로 유유히 태양이 떠올랐다. 구름을 뚫고 솟아 오른 붉은빛 덩어리가 점점 밝아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눈 뜨자마다 옷을 챙겨 입고 산을 오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해돋이 촬영을 마무리하고 야영지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들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산행 준비를 했다. 오늘의 첫 목표는 대운산 정상이었다. 그곳에서 주변을 조망한 뒤 경치가 좋은 도통골로 하산할 계획이었다. 이동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 여유를 가지고 산행해도 좋은 날이었다.
대운산 제2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 주변에 철쭉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데크길 옆으로 하늘을 가리는 키 큰 철쭉이 가득했다.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어 붉은 기운이 돌았다. 하지만 며칠 전 꽃샘추위가 닥치며 말라붙어 봄꽃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꽃구경은 포기해야 했다. 산 아래 펼쳐진 신록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정상석이 서 있는 대운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렸다. 동해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멋진 전망을 지닌 봉우리였다. 하지만 미세먼지 탓에 시야가 좋지 않았다.
뿌옇게 변한 바다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은 맑은 날에도 산에서 좋은 조망을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체감한 날이었다.
동쪽 사면의 데크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니 도통골을 향해 뻗은 긴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데군데 사다리를 놓은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경사진 구간이 끝나니 도통골 조망이 멋진 큰바위전망대가 나타났다. 쉼터에 앉아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진 신록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전망대를 지난 산길은 비탈을 길게 가로질러 완만한 능선 위로 붙었다. 내려가는 도중 간간이 계단이 나타났지만 정상부 바로 밑의 상단에 비하면 완만한 편이었다. 30분쯤 능선을 타고 내려서니 제2봉으로 가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났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도통골을 따라 걸었다.
도통골은 부드럽고 편안했다. 산길 역시 넓고 평탄해 큰 어려움 없이 산행이 가능했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가득했고, 간간이 나타나는 폭포와 넓은 소는 최고의 휴식처 역할을 했다. 무릉도원 같은 도통골을 보니 울산 사람들이 대운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운산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동시에 품은 극단적인 산행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나게 가파른 산을 탈 수도 있고, 잔잔한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유유자적하기도 좋은 곳이다. 한 장소에서 극과 극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멋진 산이다. 거기에 봄꽃 개화시기까지 잘 맞춘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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