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아이스클라이밍 여름엔 드라이툴링…

사계절 날씨 상관없이 등반 즐길 수 있어…
클라이밍 아카데미, 월드컵 센터 등 갖춰
청송은 산림이 전체 면적의 80%가 넘는 산간 오지 중의 오지다. 그러나 청송은 퇴계 이황 선생이 ‘청송앓이’를 했을 만큼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빼어나 선비들이 ‘동쪽에 있는 신선세계’로 여기며 흠모했던 고장이었다.
하지만 이리 봐도 산, 저리 봐도 산인 산간오지에서 신선이 아닌 인간이 살기가 어디 녹록했겠는가. 찾아갈 땐 너무 힘들어서 울고 떠나올 땐 너무 정이 들어 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고장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신선이나 살 만한 산간오지가 클라이머들의 세상이 되었다. 명실상부 ‘클라이밍의 고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아이스클라이밍, 드라이툴링의 성지
겨울에 열리는 UIAA(국제산악연맹)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수준 높은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그 주무대인 얼음골은 겨울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드라이툴링대회 등 다양한 대회와 이벤트로 전국의 클라이머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청송군은 이 ‘클라이밍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클라이밍 아카데미,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센터 등 전국적으로도 독보적인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청송이 ‘클라이밍의 고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보자.
청송의 클라이밍 메카는 부동면 얼음골이다. 기온이 32℃ 아래로 내려가면 얼음이 녹고, 반대로 기온이 더 올라가면 얼음이 더욱 두껍게 어는 얼음골은 청송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이름을 떨쳐 왔다. 이런 관광명소였던 얼음골을 ‘클라이밍 성지’로 만든 것은 얼음골 약수터 옆 계곡에 조성된 높이 62m의 인공폭포다.
이 폭포는 1999년 청송군에서 1억여 원을 들여 만들었다. 청송군은 겨울이 되면 이 인공폭포에 며칠 동안 물을 뿌려가며 거대한 빙벽을 만든다. 이렇게 절벽에 단단하게 언 빙벽은 산악인들에겐 최고의 빙벽 경기장이 된다.
올해 새로 문을 연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센터. 야외 관람석 외에 건물 내에는 1, 2층에 실내외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다.
얼음골은 그늘이 짙게 드리운 음지여서 한번 빙벽을 만들면 2월 말까지도 빙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 때문에 청송군은 2004~2008년까지 ‘청송 주왕산 빙벽대회’를 개최했고, 2009년부터는 청송 월드컵을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와 통합해 전국 최대 규모의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로 열고 있다.
이처럼 얼음골 빙벽이 우리나라 산악인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2011년부터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를 개최해 올해 2월 9~11일,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8회째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청송 월드컵은 2015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유치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청송군과 대한산악연맹 등의 노력으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대회를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한동수 청송군수와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전 회장은 월드컵 재유치를 위해 홍보단을 꾸려 2014년 2월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현장을 직접 찾아 UIAA 관계자들을 만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년의 역사를 이어온 청송 월드컵은 이제 세계 아이스클라이머들에게 최고의 대회로 손꼽히고 있다. 겨울이 길고 추운 천혜의 자연 환경에 매년 발전을 거듭하는 대회장과 경기 운영, 그리고 한동수 청송군수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는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UIAA 관계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들이 청송대회의 조직과 운영을 본받아야 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청송군은 올해 얼음골 대회장에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센터’를 새로 열어 또 한 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상 3층으로 건립된 클라이밍 월드컵 센터는 프레스센터를 비롯해 운영본부 사무실, 라커룸, 샤워장, 화장실, 농산물 홍보 및 판매장, 특산물 전시장, 4D게임 체험관, 관광안내, 실내외 관람석 등을 갖추고 올해 청송 월드컵 대회 기간 동안 첫 운영에 들어가 UIAA 관계자들과 선수, 관람객 모두에게 호평 받았다.
특히 기존에는 실외 관람석밖에 없어서 추위에 약한 노약자들이 불편을 호소했으나 이제는 실내에서 통유리창을 통해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한층 더 많은 연령대의 관람객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청송 클라이밍 아카데미의 볼더링 인공벽.
얼음골이 비단 아이스클라이밍에 특화된 것은 아니다. 얼음골은 여름에도 클라이머로 북적인다. 이때는 드라이툴링대회가 열린다. 드라이툴링은 아이스클라이밍과 동일하게 아이스바일과 아이젠을 착용하고 자연암벽과 인공 구조물을 오르는 혼합 등반 경기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고난도 빙벽 등반기술을 사용하는 드라이툴링 대회를 열 만한 곳은 청송 얼음골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이 유일하다.
드라이툴링은 기존의 아이스 클라이밍 경기장을 활용한다.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거친 인공폭포 물줄기를 그대로 맞으며 절벽을 거슬러 오르는 이벤트 경기. 안전벨트, 헬멧, 암벽화, 물안경을 착용하고 절벽을 오른 후 청송사과를 한입 크게 베어 물거나 한껏 배낭에 넣어 내려오는 재밌는 장면을 연출해 겨울 아이스클라이밍 대회와는 또 다른 축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렇게 매년 여름과 겨울, 드라이툴링과 아이스클라이밍 대회가 청송에서 열림으로써 우리나라 클라이머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이스클라이밍 선수들에게 청송 월드컵 유치는 국내 아이스클라이밍 붐 조성과 더불어 선수들에게 세계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의식을 심어 주었다.
한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선수는 “전에는 설악산 토왕폭 같은 빙벽이나 영동빙벽장 등에서 개인적으로 등반하거나 몇몇 국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청송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린 후부터는 국가대표라는 동기가 확실해져 더욱 열심히 훈련하고 있고 목표도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청송 월드컵이 열린 이후 우리나라 아이스클라이밍 선수들의 성적은 줄곧 세계 최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박희용·송한나래가 나란히 시즌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올해 또한 신운선이 종합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청송 클라이밍 아카데미는 일반인들도 숙박을 하며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다.
전국에서 일부러 찾는 클라이밍 명소로
최첨단 시대에 걸맞게 디지털과 클라이밍의 접목도 시도하고 있다. 2016년 12월 청송 실내체육관에서는 새로운 클라이밍 대회가 열렸다. 클라이밍에 증강현실(AR)을 접목한 4D Ice climbing ‘청송 알피GO 게임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증강현실’이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 주는 기술을 일컫는 것으로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알피GO 게임 대회에는 국내의 성인·청소년 클라이머들이 참가해 새로운 클라이밍을 경험했다. 단순히 홀드를 잡고 루트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루트를 발견해 연결하고 점수를 획득하는 등의 게임적 요소를 더해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클라이밍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알피GO’는 청송군과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함께 개발한 프로그램이며 이번 2018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장에서도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청송군은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역의 6차 산업과 연계한 콘텐츠를 확장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캐릭터 개발이다.
청송군은 2016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된 신성리 공룡을 모델로 해 아이스클라이밍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알피Alpi’와 ‘머머리Mummeri’를 개발했다. ‘알피’는 모험적인 고산등반을 뜻하는 단어인 알피니즘Alpinism에서 착안한 이름이고, ‘머머리’는 등정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목적을 둔 등반 정신인 머머리즘Mummerism에서 따온 이름이다. 청송군은 알피와 머머리를 각종 클라이밍 대회장에서 선보이며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알리고 있다.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알피’(왼쪽)와 ‘머머리’.
청송에는 얼음골 외에도 클라이밍을 위한 시설이 또 한 곳 있다. 바로 ‘청송 클라이밍 아카데미(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112-1)’이다. 얼음골 빙벽밸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1월 완공한 청송 클라이밍 아카데미에는 장애인용 숙소 외에 히말라야 8,000m 14좌의 이름을 붙인 14개의 방이 있어 한꺼번에 80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다.
월드컵 대회 기간에는 선수들의 숙소로 사용되며 평상시에는 일반인들도 머물 수 있다. 공동취사장을 비롯해 56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회의실도 3실이나 설치되어 있어 기업체 연수나 청소년 수련대회 등을 치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누구보다 클라이밍 아카데미를 반기는 것은 산악인들이다. 지난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에서 사용하던 인공경기장을 아카데미 운동장 한편에 옮겨 놓았고, 다른 쪽에는 국제규격의 볼더링 인공벽, 리드등반벽 1세트씩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전문 선수들뿐만 아니라 일반 클라이밍 동호인들도 간단하게 신청만 하면 이용할 수 있어 클라이밍 연습을 하거나 크고 작은 이벤트 대회를 열 수 있다.
청송군은 앞으로는 클라이밍 지도자와 등산 지도사 등의 전문 인력을 채용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클라이밍 교실과 등산교실을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에서 2~3일 단위로 아카데미를 방문해 전문적인 클라이밍 수업과 등산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아이스클라이밍이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경우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합숙훈련 장소로도 이용할 수 있다.
휴양림, 대명리조트 등 숙소문제 해결
청송에서 국제대회가 열리면서 가장 큰 문제는 숙소였다. 큰 대회를 열 때 외지인들이 청송에서 숙박을 하고 식당을 이용해야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법인데, 초반에는 안동이나 영덕 같은 인근 지자체에서 손님들이 머무는 탓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클라이밍 아카데미를 비롯해 자연휴양림, 한옥고택, 최신식 리조트, 관광호텔, 모텔, 민박, 캠핑장 등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2015년 말 주왕산 입구에는 객실 80개 규모의 산림조합중앙회 임업인종합연수원이 생겼고, 지난해 말에는 1,500명의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대명리조트 청송’이 들어섰다. 이제 어떠한 국제대회를 치르더라도 방이 없어서 손님을 빼앗기는 일은 없게 된 것이다.
2016년 12월, 상주영덕고속도로가 놓여 청송을 지나가면서 그동안 걸림돌이 되었던 접근성 문제도 해결되었다. 기존에는 서울에서 안동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이후로는 국도를 타야 해 이동거리는 물론, 시간도 4시간 이상 걸렸었다.
이제 동서울버스터미널, 동·서대구터미널을 출발해 청송까지 각각 3시간에서 2시간 반, 2시간에서 1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로써 청송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일반 산악동호인들에게 청송이 좀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고, 청송이 명실상부 ‘대한민국 클라이밍 메카’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는 호재가 되고 있다.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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