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설의 겨울 산 하얀 침묵은 빛나고 나무들은 혹한 속에 더 단단해지네

겨울은 깊을수록 좋다. 맹렬해진다. 엄동설한이 되어야 더 맑고 간명해진다. 천지 만물이 생생하게 제 존재를 실감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자, 고개를 들어 흰 눈 덮인 적설의 겨울 산 결빙된 고요가 빛나는 저 은산철벽을 보라. 얼마나 삼엄하고 단단한 것이냐. 산의 가솔들인 나무들도 산을 닮아 그럴진대 우리 또한 살을 에는 칼바람에도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옷깃을 여미고 이 계절을 잘 건너고 있는가.

나무들에게 겨울은 사유의 계절이다. 사유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꺼내들면 무엇이 보일까? 나는 제일 먼저 나태가 보일 것만 같다. 나태는 하나의 죄다. 겨울나무들이 최소한의 끼니만으로 혹한의 계절을 사는 이유일 것이다. 성장은 밖으로 몸피만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나무들로 겨울 산이 저렇게 빛나고 있다.
강촌! 이 말 속에는 분리할 수 없는 몇 가지 풍경들이 있다. 기차를 타고 MT를 온 학생들, 연인들, 자전거 행렬, 강물, 모닥불, 구곡폭포 등이다. 강촌은 시간이 푸른 곳이다. 우리를 하구까지 데려다 주는 청춘의 추억과 낭만이 있다.
산행 들머리인 ‘강선사길’로 들어선다. 이내 그 기상이 범상치 않은 바위와 노송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선봉 중턱의 강선대유선대다. 그 아래 강선사降仙寺가 있다. 산사는 단출하고 적막하다. 눈을 밟는 내 발자국소리가 훼방을 놓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리는 이내 적막 속에 빨려든다. 이 미묘한 움직임, 이 기묘한 부동의 적막은 무엇일까? 제법 실상을 깨달아야만 알 수 있다는 일승묘법의 세계를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 다만 투명한 적막, 이 맑음이 곧 ‘경’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주문 안쪽에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글자를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말로도 글로도 드러내거나 헤아릴 수 없는 이 법을 알기 위해 세상의 질문은 시작된 것인가.
잠시 주지 스님을 뵌다. ‘금선金仙이 내려오는 이곳 강선대가 건너편 삼악산 등선대와 순환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북한강이 염원하듯 평화통일 기도 도량’이라며 차를 권하신다. 샘물처럼 괴는 후덕한 미소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중도일 것이다.
법당 문을 연다. 예를 올리고 일어서는데 특이한 사진이 섬광처럼 눈에 들어온다. 무엇일까? 가슴이 뛴다. 한순간에 내 안 저 깊은 쪽을 울리는 망망한 종소리, 환한 빛으로 퍼진다. 지금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신비로운 백안! 천지가 깨끗해 한 점 티가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순순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 16세 때 초상화(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라는 글씨는 한참 후에야 들어온다. 열어 놓았던 법당 문을 향한다. 또 한 번 눈이 열린다. 저 눈부신 삼악산의 설경, 맑고 후련하여라. 강물소리 더 깊고 푸르러라.
이제 더는 안거에 든 산사의 나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한 생각들이 고드름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되어 돌에 구멍을 내듯 화두를 타파해야 하는 시기다.
그것은 내가 지각하는 이 우주의 전 중량을 한 데 실어 적확히 중심을 꿰뚫는 일이다. 빗나갈 경우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경내를 나선다. 절 마당 아래서 먼 곳을 보는, 더욱 더 높은 곳을 보는 추상같은 푸른 잣나무가 배웅을 해준다.
강촌! 이 말 속에는 분리할 수 없는 몇 가지 풍경들이 있다. 기차를 타고 MT를 온 학생들, 연인들, 자전거 행렬, 강물, 모닥불, 구곡폭포 등이다. 강촌은 시간이 푸른 곳이다. 우리를 하구까지 데려다 주는 청춘의 추억과 낭만이 있다.
산행 들머리인 ‘강선사길’로 들어선다. 이내 그 기상이 범상치 않은 바위와 노송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선봉 중턱의 강선대유선대다. 그 아래 강선사降仙寺가 있다. 산사는 단출하고 적막하다. 눈을 밟는 내 발자국소리가 훼방을 놓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리는 이내 적막 속에 빨려든다. 이 미묘한 움직임, 이 기묘한 부동의 적막은 무엇일까? 제법 실상을 깨달아야만 알 수 있다는 일승묘법의 세계를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 다만 투명한 적막, 이 맑음이 곧 ‘경’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주문 안쪽에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글자를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말로도 글로도 드러내거나 헤아릴 수 없는 이 법을 알기 위해 세상의 질문은 시작된 것인가.
잠시 주지 스님을 뵌다. ‘금선金仙이 내려오는 이곳 강선대가 건너편 삼악산 등선대와 순환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북한강이 염원하듯 평화통일 기도 도량’이라며 차를 권하신다. 샘물처럼 괴는 후덕한 미소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중도일 것이다.
법당 문을 연다. 예를 올리고 일어서는데 특이한 사진이 섬광처럼 눈에 들어온다. 무엇일까? 가슴이 뛴다. 한순간에 내 안 저 깊은 쪽을 울리는 망망한 종소리, 환한 빛으로 퍼진다. 지금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신비로운 백안! 천지가 깨끗해 한 점 티가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순순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 16세 때 초상화(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라는 글씨는 한참 후에야 들어온다. 열어 놓았던 법당 문을 향한다. 또 한 번 눈이 열린다. 저 눈부신 삼악산의 설경, 맑고 후련하여라. 강물소리 더 깊고 푸르러라.
이제 더는 안거에 든 산사의 나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한 생각들이 고드름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되어 돌에 구멍을 내듯 화두를 타파해야 하는 시기다.
그것은 내가 지각하는 이 우주의 전 중량을 한 데 실어 적확히 중심을 꿰뚫는 일이다. 빗나갈 경우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경내를 나선다. 절 마당 아래서 먼 곳을 보는, 더욱 더 높은 곳을 보는 추상같은 푸른 잣나무가 배웅을 해준다.

강선봉이 펼친 점입가경의 명풍경과 통천의 소나무들
징연정澄然亭을 지나 비탈길을 오른다. ‘무거운 마음은 버리고 가소’ 챙겨주는 팻말이 고맙다. 돌탑에 ‘북한강 비경’ 화살표를 따라 산언덕에 선다. ‘비경’, 과장이 아니다. 등선봉 아래로 굽이쳐오는 강물이 발아래다. 비경이란 먼저 무거움을 버리는 데 있었다. 눈꽃 서리꽃 함께 핀 설경 속에 된비알을 오른다.
전망대에 선다. 신묘한 소나무들, 통천무通天舞를 추는 이런 설송을 보기 위해 여러 날을 기다렸다. 소나무와 절벽 그리고 강물,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조화로운 풍경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 신발 끈을 다시 묶는다. 겨울해가 짧다는 것을 상기한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숲에 눈이 깊다. 쉼터에 도착한다. 소나무들이 의좋은 형제들처럼 나란히 서서 강촌역과 산들을 바라보고 있다. 홍천 금병산과 대룡산 방향으로 파도치는 산군이 파노라마다.
징연정澄然亭을 지나 비탈길을 오른다. ‘무거운 마음은 버리고 가소’ 챙겨주는 팻말이 고맙다. 돌탑에 ‘북한강 비경’ 화살표를 따라 산언덕에 선다. ‘비경’, 과장이 아니다. 등선봉 아래로 굽이쳐오는 강물이 발아래다. 비경이란 먼저 무거움을 버리는 데 있었다. 눈꽃 서리꽃 함께 핀 설경 속에 된비알을 오른다.
전망대에 선다. 신묘한 소나무들, 통천무通天舞를 추는 이런 설송을 보기 위해 여러 날을 기다렸다. 소나무와 절벽 그리고 강물,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조화로운 풍경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 신발 끈을 다시 묶는다. 겨울해가 짧다는 것을 상기한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숲에 눈이 깊다. 쉼터에 도착한다. 소나무들이 의좋은 형제들처럼 나란히 서서 강촌역과 산들을 바라보고 있다. 홍천 금병산과 대룡산 방향으로 파도치는 산군이 파노라마다.

강선봉 조금 못미처 명품송이 자리한 바위지대에 이른다. 누구라도 감탄할 만하다.
산 아래로 펼쳐진 북한강 물줄기와 삼악산 너머로 이어진 아스라한 산줄기는 압권이요, 강촌의 제일경이다. 이렇게 한 번만 보아도 이내 갈애도 벗고 염오도 사라진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무염하지 않은 ‘나’라고 했던 아상이 지워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명풍경이 주는 힘이다. 특히 이곳의 소나무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소나무들은 허공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공을 키우며 늘려간다. 길을 따라가지 않고 길을 만들며 간다. 바람이며 물이다. 통천이다. 제 뼈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곳 노송들만의 경지다.
강선봉에 올라선다. 전망은 이미 조금 전에 충분히 보았으므로 아쉬움이 없다. ‘검봉산 문배마을’ 하산길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비탈길을 내려선다.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된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오른쪽으로 아찔한 낭떠러지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철주에 쇠줄을 설치해 놓았다. 장송 사이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모습을 숨겼던 북한강이 드러나고 유유한 강물을 중심으로 음지와 양지의 산들이 펼친 가경이 시선을 수 백리 밖으로 한순간에 열어젖힌다. 가평 화악산 줄기 넘실거리는 산 너울의 연속이다. 산들이 산을 품어 수많은 산들이 산을 밀어가며 산을 세우길 거듭하고 있다. 수백 개의 산들이 수백 채의 빽빽한 기와집 같은 그 밀밀한 기왓골 형태다.
검봉산으로 가는 능선길이다. 한동안 굴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때골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잣나무숲에 도착한다. 나무들의 숲은 이렇게 깊고 평온한데, 세상 사람들의 숲은 왜 그렇게 번다하고 시끄러운가. 이 숲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검봉산(해발 530.2m) 정상이다. 3㎞ 남짓 걸었다. 작고 소박한 표석이 정상이라는 야단법석을 떨지 않아서 좋다.
산 아래로 펼쳐진 북한강 물줄기와 삼악산 너머로 이어진 아스라한 산줄기는 압권이요, 강촌의 제일경이다. 이렇게 한 번만 보아도 이내 갈애도 벗고 염오도 사라진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무염하지 않은 ‘나’라고 했던 아상이 지워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명풍경이 주는 힘이다. 특히 이곳의 소나무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소나무들은 허공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공을 키우며 늘려간다. 길을 따라가지 않고 길을 만들며 간다. 바람이며 물이다. 통천이다. 제 뼈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곳 노송들만의 경지다.
강선봉에 올라선다. 전망은 이미 조금 전에 충분히 보았으므로 아쉬움이 없다. ‘검봉산 문배마을’ 하산길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비탈길을 내려선다. 등산로 안내도가 설치된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오른쪽으로 아찔한 낭떠러지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철주에 쇠줄을 설치해 놓았다. 장송 사이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모습을 숨겼던 북한강이 드러나고 유유한 강물을 중심으로 음지와 양지의 산들이 펼친 가경이 시선을 수 백리 밖으로 한순간에 열어젖힌다. 가평 화악산 줄기 넘실거리는 산 너울의 연속이다. 산들이 산을 품어 수많은 산들이 산을 밀어가며 산을 세우길 거듭하고 있다. 수백 개의 산들이 수백 채의 빽빽한 기와집 같은 그 밀밀한 기왓골 형태다.
검봉산으로 가는 능선길이다. 한동안 굴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때골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잣나무숲에 도착한다. 나무들의 숲은 이렇게 깊고 평온한데, 세상 사람들의 숲은 왜 그렇게 번다하고 시끄러운가. 이 숲을 지나 오르막을 오른다. 검봉산(해발 530.2m) 정상이다. 3㎞ 남짓 걸었다. 작고 소박한 표석이 정상이라는 야단법석을 떨지 않아서 좋다.

문명의 종속몰이를 모르는 문배마을과 달빛 산길
문배마을로 향한다. ‘국민의숲 조망 데크’가 나온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무리의 새들이 바람을 타며 겨울 하늘을 활공하고 있다. 높이 날아보지 않고 얻을 수 없는 눈과 멀리 날아보지 않고 가질 수 없는 날개를 가진 새들이다.
얼어붙은 나무 계단을 내려간다. 어느 걸음이 문제였을까? 순식간에 꽈당 넘어지고 만다. 얼얼한 걸 보니 호되게 당했다. 고통을 겨우 수습하고 아이젠을 착용한다. 내가 급해져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 넘어지지 않는 그런 곳은 없다. 그것이 길 위의 삶이다. 평상심을 벗어나는 순간 벌써 무너진 것이다. 이것이 ‘나’ 스스로에게 발부하는 오늘의 처방전이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이다. 숲은 달궈진 용광로의 쇳물 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곧 해가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걸어온 숲을 잠깐 뒤돌아본다. 석양에 물든 순금빛 겨울나무들이 숨 막히게 아름답다. 어둑해지는 숲길을 걸어 눈 가득한 문배마을에 도착한다.
문배마을로 향한다. ‘국민의숲 조망 데크’가 나온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무리의 새들이 바람을 타며 겨울 하늘을 활공하고 있다. 높이 날아보지 않고 얻을 수 없는 눈과 멀리 날아보지 않고 가질 수 없는 날개를 가진 새들이다.
얼어붙은 나무 계단을 내려간다. 어느 걸음이 문제였을까? 순식간에 꽈당 넘어지고 만다. 얼얼한 걸 보니 호되게 당했다. 고통을 겨우 수습하고 아이젠을 착용한다. 내가 급해져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 넘어지지 않는 그런 곳은 없다. 그것이 길 위의 삶이다. 평상심을 벗어나는 순간 벌써 무너진 것이다. 이것이 ‘나’ 스스로에게 발부하는 오늘의 처방전이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이다. 숲은 달궈진 용광로의 쇳물 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곧 해가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걸어온 숲을 잠깐 뒤돌아본다. 석양에 물든 순금빛 겨울나무들이 숨 막히게 아름답다. 어둑해지는 숲길을 걸어 눈 가득한 문배마을에 도착한다.

문배마을은 분지 형태의 산촌이다. 약 200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화전민들이 살았던 마을로 장미과의 교목 문배의 자생지였고, 마을이 짐을 실은 배의 모양이라고 한다.
이미 어둠이 내렸다. 예상했고, 한편으로 작정했던 일이다. 꾸르륵거리는 뱃속도 달래주고, 천천히 산을 내려간다. 어느새 달이 떴다. 서두를 것도 조급할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통증도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나는 지금 어둠 속에 홀로 던져진 것이 아니다. 이 산속의 고적한 밤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허공을 저 혼자 독차지 하고 기쁨과 슬픔, 관조와 사유의 경계를 넘나들며 처연토록 아름다운 선율 드뷔시의 ‘달빛’을 뿌리는 저 하프 모양의 달과 같이. 신비롭고, 은은하고, 뜨겁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깊고, 황홀하게 지금 내 안에서 새로 솟는 눈물과도 같이.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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