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경 속 바위꾼들의 춤사위

구름안개 가르며 이어지는 일곱 개 암봉길
안개 속 산행-. 기대했던 오색빛깔 단풍이 칙칙한 안개에 가려 답답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짜증도 났다. 하지만 한순간 내리쬐는 햇살에 골짜기가 오색빛깔 풍광을 드러내고 거친 암봉과 암릉이 솟구칠 때면 가슴 벅찼다. 그래서 더욱 멋지고 신비감 넘치는 가을, 가을 설악이었다.
들머리인 흘림골은 거칠고 험했다. 낙석사고로 이태 동안 폐쇄된 골짜기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이 길 맞아요? 더 올라가 볼게요.”
시작부터 헤맨다. 김성기(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연수부장)씨는 거친 사면 대신 흘림골을 거슬러 오르며 칠형제봉 암릉 접근로를 찾아보지만 결국 포기하고 일행들을 뒤따른다. 어제 종일 내린 비를 흠뻑 먹은 산사면의 바윗덩이와 가로로 누운 나무들은 손과 발을 얹을 때마다 꿈틀거리며 놀라게 한다. 그래도 10분도 채 안 돼 칠형제봉 능선에 올라서자 반듯한 산길과 한계령도로에선 볼 수 없었던 빨간 단풍잎이 반겨 준다.
“기다려 볼까요? 해가 나면 정말 멋질 텐데요.”
제1봉 등반기점에 도착하자 일행 7명 모두 하늘을 바라본다. 설악의 화려한 단풍이 짙은 안개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어이 김한진, 5.13클라이머가 5.7에서 왜 그렇게 헤매! 그래도 비주얼에 신경 써, 사진 잘 나오게….”
선등을 맡은 김한진(대산련 등산교육원 강사)씨가 1봉 2피치를 침니 등반으로 끝낸 다음 멈칫거린다. 그러자 밑에서 지켜보던 김성기씨는 속 긁는 소리를 해댄다. 그러나 김한진씨가 3피치를 마무리한 다음 서대원(한크랙산악회 등반대장), 이상호(한크랙산악회)씨에 이어 김성기씨가 그 지점에 올라서자 “여기를 어떻게 올라갔냐? 깡다구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평범한 슬랩이지만 빗물에 흠뻑 젖어 있고 움푹 들어간 바위를 따라 물이 흘러내리는 데다 아래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보니 자신 있게 올려치기가 쉽지 않다.
“안개가 끼어 있으니까 더욱 신비스럽네요, 저런 풍경을 몽환적이라 표현하나요?”
3피치 등반을 마치고 숲길 따라 제1봉 정상에 올라서자 박미숙(코오롱등산학교 강사)씨는 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스런 표정을 짓는다. 제2, 3, 4봉은 짙은 안개를 뚫고 정수리를 도도하게 내밀고 있다. 그 뒤로 백두대간도 슬쩍 등줄기를 드러낸다. 구불구불 한계령도로는 또다른 세계를 잇는 길인양 신비감 넘친다. ‘몽유도원경夢遊桃源景’이란 이런 풍광을 일컫는 게 아닐까 싶다.

“와~, 정말 멋있네요. 안개 덕분에 더욱 멋져요.”
망대 같은 제3봉 꼭대기에 올라섰건만 짙은 안개는 맥 빠지게 한다. ‘일단 철수했다가 다음 주말 다시 와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한데 거짓말처럼 안개가 멀찌감치 물러나면서 오색 단풍에 물든 골짜기가 내려다보이고,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기암 바위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20m 길이의 로프 하강을 두 차례 하자 숲 우거진 안부. 자칭 ‘우회로탐사대’라는 김성기·박미숙·황지원(한크랙산악회)씨는 벌써 밥상을 펼쳐놓고 있다. 주메뉴는 박미숙씨가 만든 주먹밥에 간식, 과일. 사방팔방 촉촉하게 젖어 있지만 식욕과는 전혀 상관없다.
“3봉 크랙 막판 구간이 5.10이고, 여긴 5.9예요. 나머진 5.7 수준이고요.”
“에이, 아까 한진이 올라가는 걸 보니까 5.7도 만만찮던데…, 확보물 잘 치고 등반혀.”
김한진씨는 평범한 바위골로 이어지는 4봉 첫 피치를 올라선 일행에게 “2피치만 등반하면 이후론 걸어가도 된다”고 하는데 김성기씨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김성기씨 표정이 맞아떨어졌다. 김한진씨는 크랙에 프렌드를 박고 중단부로 접어드는 순간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습기 먹은 페이스로 나가 등반하는 게 부담스러워 크랙에 한쪽 다리와 어깨를 집어넣고 방귀까지 뀌어가며 추진력을 구해 보지만 다리가 부르르 떨린다. 게다가 크랙 구간을 지나자 “여기를 어떻게들 올라간 거지…”라며 고민에 빠져든다.
“우리는 우회로탐사대! 샛길로 갑니다.”
“저도 따라 갈래요!”
김성기씨와 박미숙씨는 김한진씨의 등반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심한 듯 우회로를 택하고, 곧이어 황지원씨도 우회로탐사대에 합류한다.
김한진씨는 크랙 위쪽 페이스 구간도 볼트에 매단 슬링을 밟고도 만만찮은지 애를 먹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피치를 마무리한다. 이어 두 번째 주자로 나선 서대원씨 역시 김한진씨가 머뭇거린 지점에서 “완전 화석 됐네”라며 당황해한다.

“너무 했어요. 어제 등반한 ‘별따(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는 해볼 만했고, 그보다 쉽다더니 그게 아니잖아요! 이젠 정말 믿어도 되는 거죠?”
하지만 황지원씨는 김한진씨의 등반을 지켜보다가 또다시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가자!” 외치며 우회로로 접어든 김성기씨를 뒤따른다. 이 모든 게 어제 내린 비 탓. 평소에 비해 루트 난이도를 두세 등급 더 높여 놓은 것이다.
아쉽다. 몽환적 분위기보다 화려한 단풍 풍경을 기대하며 설악에 들어섰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한숨을 쉬어가며 제5봉 꼭대기에 올라서자 6봉이 발아래다. 절벽 아래서 2진이 노닥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리무중이 아니라 ‘50m무중’이다.
“몽유도원경 아세요? ”
자일하강(약 30m)에 이어 짤막한 슬랩을 거쳐 숲 길을 빠져나가자 6봉 정상. 또다시 자일하강(약 35m)이다. 이어 6봉과 붙어 있다 싶을 정도로 가까운 칠형제봉리지 마지막 암봉(제7봉)에 올라선 다음 또다시 자일 하강한다. 그 순간,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오색 단풍에 물든 숲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숲 속에서 손을 흔들어대는 우회로탐사대원들도 단풍잎이었다.
“여기를 보면서 손 흔들어보세요~.”
양수열 기자는 기다렸던 단풍 풍광이 절벽 아래 펼쳐지자 하강 중인 이상호씨를 불러대고, 숲 속에 있는 일행도 카메라가 잘 보이는 지점으로 나오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몇 컷 찍는 사이 다시 몰려온 안개는 순식간에 오색 풍광을 집어삼켰다. 그래도 모두 즐거워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설악의 단풍은 눈 속 깊이 박혔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하산길. 7봉에서 하강한 일행은 우회로탐사대와 합류해 흘림골 하산로 대신 사태골을 따라 흘림4교 한계령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변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기념 촬영하던 탐승객들은 안개 속에서 산을 내려서는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거긴 여기보다 더 멋있냐?”고 묻는다.
“글쎄요? 몽유도원경이라고 아세요? 저희는 거기 있다 내려서는 거예요.”
단풍 탐승객들은 김성기씨의 익살스런 표정과 말투에 뭔가 알 듯한 표정을 지으며 빙긋 웃었다.

Climbing info
남설악 칠형제봉 리지
개요 및 등반요령
칠형제봉 리지는 한계령에서 44번국도를 따라 오색 방향으로 내려서는 사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오는 암릉이다(한계령에서 약 3.5km). 낙석 사고 이후 2년째 폐쇄되고 있는 흘림골 북쪽(진행방향 오른쪽)에 형성된 바위능선 중 등반성 있는 제1~7봉을 연결한 암릉 길이 칠형제봉 리지다. 3인 1조 기준 4시간 정도 걸린다.
제1봉
1피치(7m) 짤막한 슬랩. 약 5m 등반 후 페이스 구간을 곧장 치려면 추락의 부담이 크므로 오른쪽 칸테로 접근하는 게 수월하다.
2피치(12m) 크랙 및 슬랩으로 출발 후 왼쪽으로 클라이밍 다운해 침니로 접근한다. 침니는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기보다는 앞뒤로 벌리며 올라가는 것이 수월하다.
3피치(15m) 확보포인트에서 밴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위쪽 대각선 방향으로 등반 가능한 슬랩이 보인다. 홀드를 잡아당기면서 슬랩으로 올라타면 좋은 홀드가 보인다. 홀드가 조금 흘러 슬랩 등반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바위 마찰이 좋아 과감하게 체중을 이동해 넘어간다. 이어서 볼트에 클립 후 닥터링해 놓은 발홀드를 보고 이동하면 된다.
4피치(50m) 걷기 구간
제2봉
5m, 3m, 12m 길이 크랙 루트가 있는 암봉 3개로 이어진다. 높이 면에서 등반성이 대단치 않아 대개 우회한다.
제3봉
1피치(15m) 크랙 및 침니. 침니는 등반거리가 2m 정도라 지나칠 수 있다.
2피치(20m, 5.10a) 넓은 크랙 구간. 4호 캠 필수. 하단 크랙은 크랙 안 오른쪽 벽상의 턱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은 왼쪽 날개를 잡아당기면서 위로 올라선다. 상단부 크랙은 오른손은 크랙을 재밍한 채로 크랙 왼쪽 벽상의 턱을 왼발로 딛으면서 일어서야 한다.
정상에서 하강 20m 2회.
제4봉
1피치(25m) 숲지대
2피치(18m)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서 등반하는 것이 좋으나 초반부에 확보용 볼트가 없어 선등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침니로 올라가다가 볼트에 클립 후 왼쪽으로 방향을 틀다가 완만한 슬랩으로 진입한다. 체중이동이 힘들면 인공으로 올라가면 된다. 하강 25m.
제5봉
1피치(15m) 침니 내 슬랩.
2피치(10m) 크랙 홀드와 확보물 설치 좋음.
3피치(25m) 숲지대 슬랩에 이어 숲 길 따라 이동.
4피치(10m) 좌측 슬랩으로 이동 후 직상해 다음 슬랩으로 진입한다. 바위 돌기가 좋아 마찰력으로 등반이 가능하다.
5피치(15m) 숲지대 슬랩. 숲길 따라 정상으로 이동. 하강 28m.
제6봉
1피치(15m) 슬랩. 걷는 수준의 구간.
2피치(10m) 숲지대 걷기 후 하강 35m. 빠듯한 30m지만 35m로 하강하는 것이 안전!
제7봉
숲지대 걷기(80m) 후 하강 30m.
장비(3인 1조 기준) 로프 2동(길이 40m 이상), 퀵드로 6개, 캠 1조(중대형 각 2개).
접근 방법
흘림골 입구 간이화장실 뒤편 사태 흔적이 있는 급사면을 10분쯤 오르면 뚜렷한 능선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면 제1봉 등반기점에 닿는다
흘림골 입구는 한계령에서 약 3.5km, 오색에서 약 4.5km 거리다. 따라서 대중교통 편의 경우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도보로 접근해야 한다. 승용차로 접근할 경우 흘림골 입구에서 한계령 방향 약 50m 거리에 위치한 공터에 차를 세워 놓는다. 약 20대 주차 가능.
등반허가
남설악 칠형제봉 리지는 1일 20명에 한해 설악산국립공원에서 등반을 허용한다. 설악산국립공원 홈페이지(seorak.knps.or.kr) ‘알림판’→‘2017년 설악산 암장허가신청’ 클릭, 서식에 맞게 기재 후 등반 15일 전부터 3일 전까지 팩스(033-635-1275)나 이메일(seoraksan1708@hanmail.net)로 보내면, 등반 하루 전까지 등반여부를 유선으로 알려 준다. 문의 033-635-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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