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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by 白馬 2017. 10. 24.

 

흰구름과 함께 넘는 1봉, 2산, 3재 능선길

 

 

 

은빛 물결 ‘가을 백미’ 배내고개~간월산~신불산~신불재 산행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지요. 맞습니다. 이순을 넘긴 제게도 이 말은 적용됩니다. 이번에 그 친구는 전주 건강셀프산우회. 작년까지만 해도 호남지리탐사회라 부르던 비영리 산악회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바로 가면 하루 만에 타고 올 영남알프스를 전날 저녁 전주로 가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 이들과 함께 출발합니다. 전주에서 울산까지 아침 해를 안고 달려가 배내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탈 영남알프스 구간은 동남쪽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배내골 약 13km입니다. 보통 산악회들은 신불재에서 하산하지 않고 영축산까지 더 가서 양산 통도사 쪽으로 하산하거나, 종주를 하는 경우는 영축산에서 함박등까지 가서 청수좌골 계곡으로, 좀더 산을 타고 싶으면 시살등을 찍고 청수우골 계곡을 타고 우리가 내려갈 배내골로 하산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거리는 3~5km 늘어납니다.

영남알프스는 부산에 살던 젊은 시절 자주 올랐는데, 들머리는 주로 양산 영축산 남쪽 자락이거나 언양 신불산 동쪽 계곡이었지요. 이번엔 전주 쪽에서 오다 보니 밀양 쪽 배내고개 오두메기로 오릅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장구만디’라고도 하는 곳인데 옛날 장꾼들이 험한 영남알프스산군을 넘나들던 요지로 ‘영남알프스의 우마고도’로 부른다고도 안내 팻말에 써놓았습니다. 또 보니 배내고개~간월재는 ‘달오름길’, 그 다음부터 영축산까지는 ‘하늘억새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답니다.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신불산 북면 고스락 전망대에서 바라본 간월산과 간월재입니다. 뒤로 배내봉과 아스라히 가지산·운문산까지 조망됩니다.

 

근데 여기가 해발 706m나 되니까 이번 산행은 절반을 접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스 중에 봉긋하게 솟은 산들 사이사이 내려섰다 올라서는 고개들이 얼마나 많을지 긴장되기도 합니다. 산비탈에 침목을 계단처럼 깔아 만든 등산로를 따라 오릅니다. 도중 자연 상태로 이어지는 길 가운데는 하얀 쓴풀 꽃이 피어 있습니다. 흔치 않은 꽃이라 급히 카메라에 담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9월 하순 쑥부쟁이, 기름새, 억새도 한창입니다.

처음 오른 곳은 작은 봉우리라기보다는 언덕처럼 생긴 헬기장입니다. 아직은 남쪽으로 동그스름하게 생긴 배내봉이 보일 뿐 1,000m가 넘는 간월산, 신불산 봉우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전국 각지에서 온 단체 등산객들로 우리 대원 40여 명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 불가능입니다. 산악회 김경복 총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을 하면서 때론 사진 모델이 돼주기도 합니다. 1.6km 지점의 배내봉에는 커다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단에 966m라 적힌 하얀 화강암이 눈부시게 빛납니다.

가을 상징하는 모든 이미지들 대합주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간월산에서 간월재로 내려서기 전 울산 쪽으로 융기한 작은 봉우리입니다. 이 봉우리 바로 남쪽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습니다.

 

평평한 고원을 이룬 고스락이 전혀 산봉우리 같지 않은데 걸어온 방향 뒤 북쪽으로 해발 825m 오두산, 북서쪽으로 해발 981.3m 능동산 줄기가 장쾌하고, 남쪽 진행방향으로 드디어 해발 1,069m의 육중한 간월산과 그 너머로 연한 색 해발 1,159m 신불산 줄기가 역광으로 조망되는 게 신기합니다. 산 자체로 볼 때는 이만큼 큰 표지석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사방 조망으로 볼 때는 눈감아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흰구름 동동 떠가는 하늘과 먼 산줄기를 배경으로 너도 나도 사진 찍기에 바쁩니다.

막 머리를 풀기 시작한 억새꽃이 은빛을 발하는, 해를 가슴으로 안고 걷는 능선 길입니다. 왼쪽 울산 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을 이룬 사면 상단이라 간혹 조망이 트이면 아찔함을 맛보기도 하고 오른쪽 주암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을 즐기기도 하면서요. 능선 상에 돌출한 큰 바위 위에서 간식을 드는 사람들이 흡사 신선 같은데, 그 아래 하얀 구절초와 보랏빛 쑥부쟁이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돌밭은 인간 세상 것이 맞습니다. 머리 위로는 파란 하늘 흰구름까지. 오늘은 가을을 상징하는 모든 이미지들이 대합주를 하는 것 같습니다. 참 아름다운 가을 우리 산. 그중의 으뜸이 영남알프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서봉에서 가까이 다가가며 담아본 신불산 정상 모습입니다.

 

간월산으로 붙기 전 올라야 하는 912m봉 기슭에서 김 총무가 잠깐 쉬어가자며 냉장해 온 막걸리를 꺼냅니다. 다 좋은데 뭔가 허전하다 싶었던 게 바로 이것이었군요. 내심 반갑고 고맙습니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간월산자연휴양림을 내려다보며 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은 정말 순간 그 최고의 쾌감이고 행복입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선짐재는 제가 20~30대에 탄 이 산의 기억에는 없는 구간같이 생소합니다. 가파른 암릉을 오르니 벌써 시든 건지 살짝 단풍이 든 건지 후줄근한 잎을 단 나무들 사이로 하얀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울퉁불퉁한 바위들 위에 세워진 이 표지석이 바로 간월산 정상석입니다. 올라서보니까 크고 작은 바위들이 짓이겨져 봉우리를 이룬 간월산 정상임을 알겠습니다. 여기서 서쪽 해발 943m, 816m봉을 따라 이천리로 흘러가는 능선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야 합니다.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간월산에서 간월재로 내려서는 대원들입니다. 왼쪽 상단에 패러글라이딩, 중앙 왼쪽에 간월대피소가 보입니다.

 

간월재로 가는 길은 작은 암봉 둘을 더 에두릅니다. 그래야 비로소 간월재가 내려다보이죠. 밧줄 울타리를 따라 산굽이를 돌아드는데 산 뒤에서 빨간 물체 하나가 하늘로 두둥실 떠오릅니다. 패러글라이딩입니다. 간월재로 내려서는 급경사 고스락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고 거기서 연신 패러글라이더들이 뜨고 있나 봅니다. 파란 하늘 흰구름에 색색의 패러슈트들까지 그림 참 좋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직 약과인 걸요. 그게 뭔지는 나중에 밝히고요. 우린 일단 간월재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에서 점심을 들기로 합니다.

능선 꼭대기엔 소나무 몇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그 그늘 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듭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흰구름, 솟아올랐다 춤 추듯 날아다니는 패러글라이더들과 발아래로는 은빛 물결을 이룬 억새 숲 아래 큰 돌탑이 행성의 요새 같은 간월재대피소와 그 뒤로 눈높이를 능가하는 검푸르게 그늘진 거대한 신불산의 북쪽 사면을 바라보면서요. 그 맛 어땠을 거 같습니까! 환상적이란 말도 부족한 표현입니다.

점심을 들어선지 간월재로 내려오면서 감상하는 억새군이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은빛 물결들에 특히 여성들의 반응이 더 좋습니다. 억새 밭 속으로 뛰어들며 온갖 포즈를 취하는 걸 보면요. 일행은 아니지만 곁에서 어린 여학생 3명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어서 내 큰 카메라로 찍어 주겠다고 하니 고맙다며 포즈를 취해 주는데 역시 젊음이 좋습니다. 싱그러움이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거 있지요.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해질 무렵 신불재의 억새군락입니다. 직진하면 영축산,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배내골, 왼쪽으로 내려서면 울산 삼남면이지요.

 

해발 900m 간월재로 내려서니 간월산 고스락에 우뚝우뚝 솟은 작은 암봉들과 그 뒤로 피어오르는 흰구름, 그 속을 새처럼 자유롭게 헤집고 날아다니는 패러글라이더들이 풍경 다큐멘터리 동영상의 한 장면 같습니다. 여기서 신불산 북면으로 오르는 길은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나 봄직한 목장 길처럼 양켠으로 나무 울타리를 쳐 놓고 바닥에 침목이나 나무 데크를 깔아 보기는 물론, 걷기에도 참 좋습니다. 근데 신불산이 좀 큰 산입니까! 그 큰 등허리를 타고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힘듭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거대한 파노라마로 장쾌하게 펼쳐지는 간월산과 간월재 경치가 너무나 훌륭해 힘들다는 말 대신 “햐아! 햐아!” 탄성만을 내지르고 맙니다. 이렇게 큰 경치가 이상하게도 단아하고 깜찍하기까지 여겨지는 건 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산세와 억새군락, 골짜기 형상이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영남알프스가 그냥 영남알프스가 아님을 재확인합니다. 그러라고 또 곳곳에 전망 데크들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또 그래선지 간월산에서 신불산까지 2.4km 거리는 금방입니다.

신불산은 엄밀히 말해 봉우리가 두 개입니다. 간월산에서 오다 보면 먼저 오르게 되는 게 서봉으로 해발 1,100m(어떤 지도엔 동봉 정상과 같은 1,159m)이고, 여기서 동쪽 능선길로 500m 거리에 정상석과 함께 서 있는 해발 1,159m의 동봉입니다. 신불산 북쪽 사면 전망대에서 서봉을 향해 오르는 길에 부서진 바위더미를 두 개 포개 놓은 것이 꼭 우리나라 한반도 지형을 닮아서 눈길을 빼앗깁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세 개입니다 아주 작은 하나는 백두산 위치에 봉긋하게 솟아 보이게 얹어 놓아 몰라볼 뻔했군요.


해질녘 억새 풍광에 고복수 ‘짝사랑’ 떠올라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윗쪽 사진) 간월재 억새밭에서 은빛 억새에 매혹 당해 포즈를 취해준 여성 등산객들입니다. (아랫쪽 사진) 신불산 정상(1,159m)입니다. 영남알프스에서 가지산(1,241m)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동남부에서는 최고봉입니다.

 

서봉에서 동봉으로 가는 능선 길은 천상의 길 같습니다. 남쪽으로 바라다보이는 해발 1,081m 영축산 산등성이는 아주 웅장하고 신비롭습니다. 서쪽으로 많이 기운 태양의 역광으로 그 오른쪽 해발 1,052m 함박등에서 뻗어나가는 청수중앙릉의 끝자락이 보이지 않아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길섶엔 산오이풀, 용담 등 고산지대에서 피는 귀한 가을 들꽃들이 많이 관찰돼 동화 속 들꽃을 꺾어 노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까지 생각납니다.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 영남알프스]
(윗쪽 사진) 신불산 북쪽 사면 고스락에 설치된 전망 데크에서 풍경을 즐기는 탐방객들입니다. (아랫쪽 사진) 신불산 서봉으로 오르기 직전 부서진 바위를 포개어 만든 한반도 형상인입니다.

 

신불산 정상은 더 큰 돌탑과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더 넓은 전망대 데크에 더 많은 등산객들로 붐빕니다. 과연 영남알프스 동남부 최고봉 신불산답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정상부가 점점 황폐해지고 있어 보여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용이냐, 보존이냐?’ 어느 것이 더 사람을 위한 선택일지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해봐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불산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내려서면 홍류폭포와 간월산장, 간월사지로 이어지고 그 끝 등억온천랜드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쪽을 바라보다 남쪽에 힘차게 뻗어나간 신불공룡릉에 시선이 고정됩니다. 마치 공룡의 등지느러미처럼 쭈뼛쭈뼛 날카롭게 솟은 작은 암봉들이 호기심을 확 당깁니다. 하지만 해가 서산 위로 많이 기울고, 이제부터는 내림길이지만 5km 길을 더 가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신불재로 내려서는 길은 상단은 나무 울타리 암릉 길, 중단에서 하단까지는 널찍한 나무 데크 길로 아주 깔끔합니다. 옛날 신불재 억새군락은 아무 데나 불쑥 들어가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심지어는 용변까지도 봤지만 이젠 등산로를 이탈하기만 해도 눈에 쉽게 띄고 또 등산객들의 의식 수준도 많이 향상돼 그러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게 사진으로 아주 멋진 풍경이 돼 카메라를 든 제가 많이 즐겁습니다.

신불산은 신불재에서 올려다봐도 그 육중함은 감동적입니다. 사실 억새군락은 이 신불재와 영축산을 잇는 2.9km 구간에 펼쳐진 평원 것이 으뜸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신불산에서 신불재까지의 것만 즐깁니다. 아니 더 대낮에 간월재 억새도 즐겼지요.

근데 왠지 해가 기울 때 보는 억새가 한 운치 더 있는 거 같습니다. 가을엔 어스름녘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겠지요. 옛날 같으면 억새의 명곡 故 고복수 님의 ‘짝사랑’을 한 곡 멋들어지게 불렀을 텐데 정작 나이가 드니 오히려 그 노래가 잘 안 불러집니다.

그래도 오늘은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아~ 아~ 으악새 슬피 우우니~ 가으을이이인 가아아요오”



서늘해진 저녁 기운, 산벗 우정 덕분에 따뜻해져

하산은 서쪽으로 백련골 휴양림을 거쳐 배내골로 합니다. 전에도 몇 번 내려섰던 길지만 하도 오래 전이라 낯설기는 마찬가지인데 급격히 내리꽂는 구간은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산을 많이 안 타서 하산길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산을 꽤 많이 타도 힘든 건 아마도 나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래도 안전하게 탔고 마지막까지 안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습니다. 아마 또 꼴찌가 아닐까 걱정하며 계곡 끝까지 내려섰는데 차는 또 1km를 더 내려간 곳에 있답니다.

산행 마지막. 저는 이런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어떤 산에서는 마지막 하산 길로 땡볕에 아스팔트도로를 몇 km 걷기도 하는데, 산 잘 타고 이게 무슨 꼴이람 싶은 거 말입니다. 걸음을 빨리 했더니 그래도 후미그룹으로 순번이 빨라져 다행. 이미 뒤풀이를 즐기고 있는, 먼저 내려온 대원들과 합류합니다. 어느새 산골짜기는 어둑해지고 기름진 음식과 막걸리에 활력을 되찾고 소진했던 기운을 회복합니다. 서늘해지는 저녁 기운. 산벗들의 따끈한 우정 덕분에 오히려   느낍니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