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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섬 산행 | 전남 여수 거문도

by 白馬 2017. 10. 26.

“거문도 좋은 거 알아 몰라? 아~ 몰랑, 기와집 몰랑!”


덕촌리~불탄봉~보로봉~거문도 등대 약 8km
다도해 전망대 불탄봉 조망 으뜸… 거문도등대에선 백도 배경 일몰 일품

한여름의 섬은 뜨거웠지만, 8월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의 섬은 한결 성질을 누그러뜨린 상태였다. 피서철이 막 끝난 터라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 안은 한가로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낮잠 자기 딱 좋은 햇살에 곯아떨어진 지 2시간 40분, 배는 일행을 거문도에 내려다 놓았다. 선착장에 미리 마중 나온 ‘거문도·백도유람선’ 송하영 대표는 “날씨 딱 좋을 때 왔다”며 불탄봉(195m) 산행 전 백도 구경부터 하자고 했다.

울릉도&독도, 제주도&마라도처럼 거문도와 백도는 마치 형제처럼 한데 묶여 불린다. 두 섬의 거리는 28km.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야 하는 거리지만 거문도에 오면 당연히 백도를 가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백도에도 전설이 있다. 아버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 남해 바다로 귀향 온 아들은 용왕의 딸과 눈이 맞아 바다에서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옥황상제는 후에 아들을 데려오라고 100명의 신하를 내려 보냈으나 신하들마저 하늘로 돌아가지 않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아들과 신하들을 모두 돌로 변하게 했고, 그 돌들이 모여 백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 수석 전시장 백도

‘korkim’ 김규대 대장과 대구드림산악회 김상균 대장, 그리고 기자 두 명이 유람선 한 대를 전세 낼 뻔한 상황이었지만 마침 단체 여행객 한 팀이 합류해 적적하지 않게 배에 올랐다. 

“자, 이제부터 정면을 기준으로 시계를 상상허시고, 지가 3시 방향을 보라고 허면 오른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리고 설명을 들으시면 됩니다. 그것도 몰라서 딴 데를 보시면 방법이 없당게요. 그냥 자리에 앉아 주무셔요.”

백도의 여러 기암괴석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서방바위. 일명 ‘남근바위’라고도 부른다.
백도의 여러 기암괴석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서방바위. 일명 ‘남근바위’라고도 부른다.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베테랑 선장님은 배가 위치한 곳에서 정확하게 이름난 기암괴석을 콕콕 찝어 설명해 주었다. 상백도와 하백도에 걸쳐 높고 얕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의 모습들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어머, 매가 어디 있어요? 나는 안 보이는데요?”

“아니, 그거는 10시 30분 방향이고 11시 방향을 보랑게요. 하이고야~ 벌써 지나가 부렀다. 환장해 불긋네.”

선장님의 무성영화 변사처럼 맛깔난 설명 덕에 20여 분 동안 매바위, 서방바위 각시바위, 거시기바위, 형제바위 등 백도의 명물바위들을 빠뜨리지 않고 잘 구경하고 다시 거문도로 되돌아왔다.

불탄봉 산행 전에 고도항 주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올해는 갈치가 풍년이라 갈치조림이 좋단다. 거기에 고등어 회까지 맛보니 역시 섬 식도락만 한 것이 없다.

거문도는 고도古島, 동도東島, 서도西島 3개 섬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큰 섬인 서도의 남쪽에는 불탄봉(195m)에서 보로봉까지 이르는 능선이 트레킹 대상지로 인기가 좋다. 서도 북쪽의 음달산(233.4m) 코스는 그다지 조망이 좋지 않고, 동도에는 아직 산행 코스가 개발 중이라 등산객이 거의 찾지 않는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불탄봉 능선은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거문도에 오면 불탄봉 산행은 필수’라는 말이 그냥 나왔겠는가. 저래 뵈도 거문도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니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했다.

오늘은 불탄봉~보로봉~전수월산~거문도 등대 능선 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들머리는 고도와 서도를 잇는 삼호교를 건너 오른쪽에 위치한 덕촌리 마을회관 옆 등산로 입구다. 이곳부터 불탄봉 정상까지는 1k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해발 0m에 가까운 곳에서 195m까지를 올라가야 한다.

덕촌리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만 오르면 고도와 동도 등의 조망이 확 트인다.
덕촌리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만 오르면 고도와 동도 등의 조망이 확 트인다.
불탄봉 정상의 표지목. 대구드림산악회 김문암 대장이 만들어 걸은 것이다.
불탄봉 정상의 표지목. 대구드림산악회 김문암 대장이 만들어 걸은 것이다.
불과 5분 정도 올랐을 뿐인데 조망이 트인다. 뒤돌아보니 선착장이 있는 고도와 그 옆의 동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가야 할 수월산 능선도 아주 가깝게 보인다.
“아따~, 와 이리 땀이 나고 물이 멕히노? 식당 주인 아지메가 부산 출신이라카드마는 갈치조림도 갱상도식으로 엄청 짭게 만들었는가베요.”

평소에도 땀을 많이 흘린다는 김상균 대장이 연신 물을 들이킨다. 더위보다는 짠 음식을 먹은 탓이다.

경사진 바위지대를 지나 중계탑 아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하늘을 가린 동백 숲이 나타난다. 수백 년은 족히 묵었음직한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다. 거문도는 동백의 섬이다. 늦가을부터 4월 말까지 거문도는 피처럼 붉은 동백으로 뒤덮인다. 이 동백을 즐기려는 등산객들이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산에 들면 등산로는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들의 향연이다.  

동백 숲을 빠져나와 능선에 오른다. 돌담을 두른 무덤과 동백 숲을 다시 지나 불탄봉 정상 바로 아래의 초원지대에 닿는다.

“이 T자형 벙커, 일본군이 만든 겁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곳을 지나가는 배들을 관측하려고 만든 거래요.”

거문도는 구한 말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일본군뿐만 아니라 영국군도 1885년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해 3척의 군함을 이끌고 거문도에 상륙해 2년 가까이 머물렀다. 그들은 고도에 관측소를 설치하고 보로봉에 진지를 구축했다.

이런 이유로 거문도는 진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영국군에 의해 고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과 당구장이 설치되었으며, 거문도에서 중국 상해까지 통신을 위한 해저케이블이 깔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전신 선로였다. 전기가 들어온 것도 거문도가 최초였다. 지금 거문초등학교가 있는 곳이 최초의 테니스장인 ‘해밀턴테니스장’ 자리다.

1887년 영국군이 철수할 당시 사망한 수병들의 무덤 12기가 남아 있었지만 현재는 2기와 1903년 거문도 인근을 지나던 알비온호에서 사망한 수병의 나무십자가 1기만이 남아 있다.

거문도는 동백의 섬이다. 겨울부터 4월까지 붉디붉은 동백이 섬을 수놓는다.
거문도는 동백의 섬이다. 겨울부터 4월까지 붉디붉은 동백이 섬을 수놓는다.
동백과 억새의 섬 거문도

산행 시작 30여 분만에 불탄봉 정상에 올랐다. ‘불이 자주 나는 산’이라는 뜻의 불탄봉 정상에는 대구드림산악회 김문암 대장이 새로 만든 정상목이 걸려 있고, 나무데크 전망대도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망대 같은 산답게 동쪽으로는 고도와 동도가 가까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초도와 손죽도, 멀리 고흥반도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날씨 좋은 날에는 남서쪽의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불탄봉에서 억새밭을 지난다. 가을이 오기 전의 억새밭은 온통 초록 초원이다. 과거 큰 불이 난 후 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억새만 새로 자랐다고 한다. 여름 한철 부쩍 자란 억새는 사람 키를 넘을 만큼 무성하다.

억새밭이 끝나면 다시 동백숲이 나타나고 그곳을 빠져나오니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해안절벽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안길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은 2m 높이의 촛대바위다. 뾰족한 초를 닮은 이 바위는 자연바위가 아니라 주민이 세운 것이라 한다. 바위 가까이 서니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나무가 없어 뜨거운 햇볕이 그대로 쏟아지는 탓에 갈증이 절정에 이른다. 출발할 때는 꽁꽁 얼었던 물은 이미 다 녹아버렸다. 김상균 대장은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갈증을 버텨낸다.

촛대바위에서 8분 정도 걸어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에는 유림해수욕장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맛난 곶감만 쏙 빼먹듯이 이 해안길만 보고 내려가는 이들은 이 길로 바로 올라온다.

삼거리에서 5분 정도 걸어 주민들이 쌓은 소망탑에 이른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돌탑은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안녕을 기원하던 섬 아낙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거문도의 명물 신선바위. 봉우리가 평평하게 생겨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봉우리 왼쪽에 선 김규대 대장과 비교하면 그 크기가 짐작된다.
거문도의 명물 신선바위. 봉우리가 평평하게 생겨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봉우리 왼쪽에 선 김규대 대장과 비교하면 그 크기가 짐작된다.
거문도 등대 옆 정자 전망대인 관백정.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거문도 등대 옆 정자 전망대인 관백정.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주민들은 이 부근의 절벽을 ‘기와집 몰랑’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까지 “아, 몰랑”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여기의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다. 즉, 기와집 몰랑은 ‘기와집 형상의 산마루’란 뜻이다.

“섬에 있을 때는 잘 몰라요. 그런데 바다에 나가서 이쪽을 보면 풍채 좋은 기와집처럼 보인다고 하네요.”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 바다에서 기와집몰랑을 바라보면 기와지붕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거문도 8경’ 중 하나인 ‘석름귀운石凜歸雲’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기와집 몰랑을 지나 ‘거문도 최고 전망대’로 불리는 신선바위에 닿는다. 절벽과 이어져 툭 튀어나온 115m의 암봉은 걸어서 오를 수 있다. ‘모험꾼’ 김규대 대장이 신선바위 위에 섰다. 사람과 비교하니 신선바위의 거대한 크기가 더욱 잘 느껴진다. 소리를 크게 질러야 겨우 들릴 만큼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면서 풍류를 즐겼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네요. 아주 평평해. 일몰하고 일출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요.”

신선바위를 지나 보로봉 정상에 선다. 마을 주민들이 운동 삼아 오르는 듯 운동 기구와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엔 영국군이 만든 포대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고 하지만 처음 가보는 이들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서도 ‘기와집몰랑’에서 바라본 해안졀벽의 비경. 불탄봉 산행 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서도 ‘기와집몰랑’에서 바라본 해안졀벽의 비경. 불탄봉 산행 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어디서든 일몰이 멋진 섬

보로봉에서 일명 ‘365계단’을 내려와 목넘어에 선다. 덕촌리와 거문도 등대 사이의 폭이 좁은 구간을 목이라고 하고, 그 목의 뒤쪽에 있다고 해서 목넘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태풍이 불 때 바닷물이 넘어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도 있다.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수월산水越山’이라는 이름도 목넘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목넘어에서 거문도 등대까지는 잘 정비된 동백 숲 산책길을 따라간다. 1km 정도의 이 길은 거제 지심도의 동백숲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울창하고 아름다운 동백꽃길로 꼽혀 초봄에는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드디어 거문도등대에 당도했다. 1905년 4월 12일 남해안에서 최초, 우리나라 전체에서는 인천 팔미도등대에 이어 두 번째로 불을 밝혔다는 거문도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원조’ 등대는 이제 사용하지 않고 2006년에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등대를 사용하고 있다.

등대 옆 전망대 정자인 관백정觀白亭에 선다. 이곳은 백도와 어우러진 일몰을 보기에 딱 좋다.

“아직 낮이 많이 기네요. 여기서 기다리기 뭐하니까 차를 타고 이동해서 서도 북쪽 녹산등대로 가는 게 어때요? 거기서 보는 일몰도 기가 막혀요. 인어공원도 있고요.”
이렇게 불탄봉 코스 산행은 끝났다. 이제까지 차고 넘치게 아름다운 풍광을 봤는데, 또 더 볼거리가 남았다니 여러모로 거문도는 볼 것 많고 시간이 빨리 가는 섬이다.

거문도 등산지도
산행길잡이

삼호교 건너 서도로 건너온 후 우측으로 700m가량 가면 동백연립주택 지나 바로 왼쪽에 불탄봉 산행 이정표가 보인다. 불탄봉까지는 1.1km다. 중계탑 아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동백 숲을 지나 능선에 오르고 이어 불탄봉 정상 아래 완경사 초원지대에 닿는다. T벙커 왼쪽 봉우리가 불탄봉 정상이다.

불탄봉 정상을 내려선 이후 능선을 따르다 촛대바위에 다다르면 해안절벽길이 시작된다. 신선바위에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이후 보로봉을 올랐다 내려와 목넘어로 내려선다. 목넘어에서 거문도 등대까지는 왕복 2km 정도다. 전체 코스는 7km 정도로 넉넉하게 4시간가량 걸린다.

서도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에서 출발해 약 1km 거리다. 고도에도 걸어볼 만한 길이 있다. 거문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영국군묘지를 지나 회양봉까지 오르는 이 길은 1.4km 정도 거리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대구드림산악회(053-768-8188~9, www.gogotour.co.kr) 등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면 편하다. 거문도주민여행사(010-4626-8020)에선 배편, 숙식, 유람선 등을 안내하고 예약해 준다.

교통(지역번호 061)

여수와 고흥(녹동)에서 거문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여수에서는 조국호와 줄리아아쿠아호가 07:40, 13:40에 출발하고, 고흥(녹동)에서는 평화훼리5호가 07:00에 운항한다. 여수발 배는 나로도~손죽도~초도~서도를 경유하고, 고흥에서 출발한 배는 초도만 경유한다. 여수→거문도 요금 3만6,100원. 2시간~2시간 20분 소요. 녹동→거문도 요금 2만6,500원. 2시간 50분 소요. 거문도에서 백도 유람선은 비정기 운항하므로 미리 문의하도록. 요금 2만9,000원. 문의 061-665-0102. 섬 내에 버스는 다니지 않고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문의 010-3607-1681, 010-4608-1681.

숙박(지역번호 061)

고도항 주변에 머물 곳과 식당이 몰려 있다. 백도민박(010-2443-6318), 시랜드모텔(665-1126), 이오민박(010-8623-8025), 낙원민박(666-8055), 고도민박(665-7288) 등. 1박에 4만 원 선. 식당에선 자연산 회나 매운탕, 백반 등을 낸다. 올해는 갈치가 잘 잡혀 갈치조림과 회가 좋다. 백도민박횟집(666-8017). 섬마을횟집(666-8111), 일이삼횟집(665-8285) 등. 은갈치회가 별미. 섬마을식당(민박도 겸함, 666-8111), 충청도횟집(665-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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