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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by 白馬 2017. 7. 14.

국보 제14호
공식명칭 :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한자명칭 : 永川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
지정일 : 1962.12.20
테마 : 유적건조물, 종교 신앙, 불교, 불전
시대 : 조선시대
주소 : 경북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은해사 거조암 (신원리)

문화재청 설명

은해사는 통일 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하며 여러 차례 있었던 화재로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거조사는 은해사보다 먼저 지었지만,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앞면 7칸, 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영산전은 고려 말, 조선 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은해사(銀海寺)와 거조암(居祖庵)

경상북도 달구벌 북방의 거산(巨山) 팔공산(八公山) 대구, 칠곡, 군위, 영천, 경산 등을 아우르는 큰 산이지만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그 산이 품고 있는 신성(神聖) 숭배가 지대함은 물론 줄기줄기 굽이굽이 마루마다 부처님을 모신 영산(靈山)인데, 그중 동쪽 방향 영천 쪽에 있는 은해사는 일제강점기 조선팔도 31본산 중 하나이자 경상북도 5대 본산이었으며, 지금은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산하에 말사 39개소와 부속암자 8개소가 있는데 국보 14호 '영산전'이 있는 거조암도 은해사의 산내암자이다.

▲거조암 입구, 최근에 세운 듯 보이는 일주문에는 '팔공산거조사' 현판이 걸려 있고, 단청불사를 기원중이다.
▲거조암 입구, 최근에 세운 듯 보이는 일주문에는 '팔공산거조사' 현판이 걸려 있고, 단청불사를 기원중이다.
▲거조암은 평지 사찰이지만 축대를 높다랗게 쌓아올리고 담을 둘러친 형태라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는 잘 안 보인다.
▲거조암은 평지 사찰이지만 축대를 높다랗게 쌓아올리고 담을 둘러친 형태라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는 잘 안 보인다.
▲사천왕이나 다른 문 없이 대문 역할을 하는 영산루(靈山樓)로 바로 들어서게 되어 있는데 이마저도 최근 지은듯하다.
▲사천왕이나 다른 문 없이 대문 역할을 하는 영산루(靈山樓)로 바로 들어서게 되어 있는데 이마저도 최근 지은듯하다.

 

▲여느 절처럼 누각 아래를 통해 계단을 올라서면 절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영산전 지붕이 보인다.
▲여느 절처럼 누각 아래를 통해 계단을 올라서면 절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영산전 지붕이 보인다.

 

▲영산루는 1층은 공양구 등을 파는 곳이며, 올라서서 보면 단층처럼 보이는 2층은 종, 북, 운판, 목어의 사물(四物)이 걸린 종루이다.
▲영산루는 1층은 공양구 등을 파는 곳이며, 올라서서 보면 단층처럼 보이는 2층은 종, 북, 운판, 목어의 사물(四物)이 걸린 종루이다.

거조암은 은해사와는 약 10Km 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본래 거조사로 불리던 큰 사찰이었으며,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이곳에 머물면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맺은 역사 깊은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도 거조사로 실려 있는데 아마도 은해사가 사세를 크게 키우고 주변 암자들을 산하 암자로 품게 되자 거조사도 은해사의 산내암자가 된 듯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거조암은 오백나한상을 모신 영험함을 앞세워 나름대로 사세(寺勢)를 확장하는 듯 보이며, 절 앞에는 거조암이 아니라 거조사(居祖寺)라는 현판을 걸어놓고 있다.


영산전(靈山殿)

영산루 아래 계단을 통해 거조암 마당에 올라서니 국보 14호 영산전이 정면에 길게 보이고 좌, 우로는 종무소와 요사채 건물 2동이 있을 뿐, 단출한 구조였다. 그러나 수십 수백의 당우(堂宇)가 있으면 무얼하랴? 영산전 한 채면 족한 것을….

국보 제14호 거조암 영산전을 처음 본 순간, 전혀 낯설지 않다. 익숙하다. 사진을 익히 보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해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등이 줄줄이 떠오른다.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긴 건물인데 흙벽 그대로인 채 단청을 하지 않고 있어 검소하고 소박한 느낌이며, 영산전 아래를 받치는 높지 않게 쌓은 기단은 적당한 크기의 자연석을 오밀조밀하게 모아 붙여 직선으로 쌓은 인조석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영산전 모습. 방풍을 위해 살창에 비닐을 막아 아쉽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의젓하다.
▲영산전 모습. 방풍을 위해 살창에 비닐을 막아 아쉽지만 전체적인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의젓하다.
▲측면과 후면 모습. 이것 저것 쌓아놓거나 방치하지 않아 깔끔하다. 인위적인 가꿈보다 훨씬 편안하다.
▲측면과 후면 모습. 이것 저것 쌓아놓거나 방치하지 않아 깔끔하다. 인위적인 가꿈보다 훨씬 편안하다.
▲측면은 앞서 살펴본 무위전 극락보전에서처럼 기둥과 들보 등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면분할 모양이 나타나니 역시 간결하다.
▲측면은 앞서 살펴본 무위전 극락보전에서처럼 기둥과 들보 등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면분할 모양이 나타나니 역시 간결하다.
▲영산전 앞마당에는 삼층석탑 하나가 주목받지 못한 채 서 있으며, 현판 글씨는 설현신(薛玄愼)이 썼다고 한다.
▲영산전 앞마당에는 삼층석탑 하나가 주목받지 못한 채 서 있으며, 현판 글씨는 설현신(薛玄愼)이 썼다고 한다.

단정한 맞배지붕이 좌우로 건물보다 충분히 나와 있어 넉넉하고 안정되어 보이며 정면중앙에만 출입문을 냈을뿐, 정면 4칸과 측면 중앙에 아래위로 2개씩의 살창이 지극히 단순하게 자리 잡아 더욱 편해 보이는 건물이다.

해체 수리 때 나온 묵서(墨書)에 의해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립된 고려 말기 건물임이 확인되었고 국보로서 인정받은 셈이다.

▲영산전 앞뒤 처마 아래를 보면 기둥 위에만 포를 얹은 주심포 건물이며 출목도리가 기둥 위 주심도리와 함께 길게 이어진다.
▲영산전 앞뒤 처마 아래를 보면 기둥 위에만 포를 얹은 주심포 건물이며 출목도리가 기둥 위 주심도리와 함께 길게 이어진다.
▲내부 역시 천장 없이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구조이며 건물을 지탱하는 주기둥(고주)을 가로지르는 대들보가 보인다.
▲내부 역시 천장 없이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구조이며 건물을 지탱하는 주기둥(고주)을 가로지르는 대들보가 보인다.
건물의 구조나 명칭, 특히 절집 한옥 건물의 경우 용어나 역할 등이 어려워 다 알 수는 없지만 영산전은 기둥을 따라 건물을 가로지르는 도리가 7개인데, 보통은 9~11개임에 비추어 간단하게, 그만큼 대담하게 지은 건물이다. 앞뒤 처마 밑을 보면 밖으로 나온 출목도리(외목도리)가 다른 건물보다 확연하게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존 석가삼존불과 후불탱화

▲석가삼존불과 후불탱화 영산탱(靈山幀), 실내조명의 반사를 막을 길이 없어 사진에 반사광이 생겼다.
▲석가삼존불과 후불탱화 영산탱(靈山幀), 실내조명의 반사를 막을 길이 없어 사진에 반사광이 생겼다.

출입문 정면에는 주존의 자리에 석가삼존불을 모셨고 그 뒤에는 붉은빛 위주로 채색된 후불탱화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후불탱화인 영산탱(靈山幀)인데 유난히 붉은 채색 위주인 점이 그렇다. 석가여래 주위로 모두 좌우 5명씩 10명이 보이는데 이들은 사대제자와 사대보살, 그리고 양천왕(天王)이며, 화기(畵記)에 건륭 50년, 즉 정조9년이라고 씌어 있는 홍탱화(紅幀畵)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그림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며 특히나 붉은 색조위주로 그린 비범한 기품이 깃든 것이라면서 문화재에 등재되어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한다.


오백나한상

거조암은 영산전이 국보라 유명한 것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나 신도들에게는 오백나한상으로 더 유명한 절이다. 모두 526개라는 나한들은 돌을 깎아서 만든 후 색을 칠하고 옷이나 표정 등을 입혔는데 하나같이 다른 표정과 다른 자세, 다른 의복 등을 표현하여 둘러보는 동안 웃음이 절로 나며 친숙하게 느껴진다.

영산전 넓은 내부를 좌우로 나누어 ㄷ자 형태의 단을 겹으로 둘러놓은 후에 5백 개가 넘은 나한들을 작은 보료위에 정성껏 모신 후에 각 나한마다 그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놓았다. 바닥에 화살표를 그려놓아 그 방향으로 따라가면 중복 없이 모두를 배알할 수 있다. 도대체 이 오백나한은 누가 구상하여 누가 만들고 누가 칠했으며 누가 이렇게 조밀조밀 배열하였는지?

한단 낮은 곳에는 나한마다 접시 하나씩을 놓아 돈과 사탕이나 음식 등을 공양하며 기도하도록 하였는데 100원 동전 하나씩만 놓아도 5만 원이 넘고, 사탕 하나씩만 놓아도 큰 봉지 몇 개를 뜯어야 한다. 거조암은 이 오백나한상에게 기도를 올리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소문, 즉 기도발이 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영산전 실내에 겹으로 둘러놓은 오백나한... 저마다 이름이 붙어있는데 흥미롭다.
▲영산전 실내에 겹으로 둘러놓은 오백나한. 저마다 이름이 붙어있는데 흥미롭다.
거조암의 본절인 은해사는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과 주련이 많아 유명하며, 절집보다 추사글씨를 보러오는 사람이 많은 곳인데 마침 서울 조계사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에서 12월 14일까지 전시중이라니 한번쯤 가볼 만하다.

또한 은해사의 또 다른 산내 암자인 백흥암도 거조암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유명세를 타는 곳이며, 특히나 백흥암의 극락전 불단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절집 중 가장 아름다운 불단으로 극락전이 보물 제790호인데 비하여 내부 불단은 별도로 보물 제486호라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흥암은 아무 때나 가볼 수가 없다. 일 년에 단 한번 초파일에만 개방한다니 내년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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