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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by 白馬 2016. 9. 9.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에는 '사연을 품은 달'이 뜬다

 

강화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16km
화개산 정상 백패킹 명소…주변 불빛 적어 보름달 맞이하기 좋아

빛 공해가 심한 도심에서 달과 별을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달구경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빛이 덜한 곳을 찾아야 한다. 서해 최북단 섬 중 한 곳인 교동도는 그런 점에서 달맞이 백패킹 대상지로 안성맞춤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한 교동도는 강화도 창후리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가던 섬이었으나 2014년 7월 교동대교가 놓이면서 차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강화만을 사이에 두고 북한이 불과 몇 십 km에 불과한 이 섬에는 강화나들길 9구간 ‘다을새길’이 만들어져 있다.

‘다을새’란 길 이름은 교동도의 옛 이름인 ‘달을신(達乙新)’의 소리음인 ‘다을새’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길은 교동도 최고봉인 화개산(260m) 산행이 포함되어 있어 정상에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지붕 삼아 보름달을 올려다보기에 좋다.

 


연륙교로 연결돼 한층 가까워진 교동도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강화나들길의 출발점인 월선포선착장.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여객선이 들어오던 곳이었다. 왼쪽에 멀리 보이는 다리가 교동대교다.

 

강화도를 지나 교동대교로 향한다. 배 위에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던 낭만이 사라져 조금은 아쉽지만 무더위에는 역시 편한 것이 좋다. 교동대교를 건너기 전, 검문초소에서 해병대원이 차를 세운다. 다리가 놓여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교동도는 여전히 민간인통제구역이다. 그만큼 북한이 지척이라는 뜻이다.

이름과 연락처, 목적지를 적어 내니 통행증을 준다. 하지만 이 표가 ‘자유이용권’은 아니다. 외지인은 일몰 후 30분부터 일몰 전 30분까지는 교동대교를 건널 수 없다.

교동도로 들어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월선포선착장으로 간다. 이곳이 강화나들길 9코스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이다. 배가 들어오지 않는 선착장엔 할머니 한 분이 나무그늘 밑에 앉아 말린 나물이며 고추를 팔고 있었다. 휴가철이라 간혹 선착장 구경 오는 외지인들이 있고 워낙 집이 더워서 이렇게 나무그늘에 앉아 있는 게 훨씬 시원하단다.

교동도 구경을 온 젊은이들은 강화나들길 안내 이정표를 들여다보며 “이 더운 날에 이 길을 걸으면 진짜 쪄 죽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금세 에어컨 빵빵한 자가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준호(36)씨와 한민혜(27)씨는 ‘나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백패킹을 즐기는 이들은 이틀 동안 강화나들길 9구간인 ‘다을새길’을 걸을 참이다.

“정말 걸을 수 있는 거예요? 이러다 일사병 걸려서 길바닥에 쓰러지는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의 걱정이 엄살이 아닐 만큼 이날은 사상 최고의 폭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착장에서 화개산 정상까지는 5.8km 거리고, 이 중 대부분 구간이 그늘 좋은 숲길이라는 것이었다.

선착장에서 도로로 빠져나와 ‘강화나들길 9코스 9-01’라고 적힌 이정표와 장승을 보고 삼룡리마을로 들어선다. 한가로운 시골마을의 풍경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899년 세워져 117년 역사를 지닌 옛 교동교회는 파란 지붕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교회 앞에는 고풍스런 나무 종탑이 시간을 붙잡아 두고 있다.

마을을 지나 논두렁길을 걷는다. 이 길은 여름보단 벼가 무르익는 가을에 더 아름답겠다. 임도를 건너 다시 숲길을 조금 걸어 교동향교(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8호)에 닿는다.

교동향교는 고려 인종(仁宗) 5년(1127)에 창건해 우리나라 최초로 공자(孔子)의 상(像)을 모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향교이자 유교의 성지다. 처음에는 화개산 북쪽에 지었다가 조선 영조 17년(1741)에 화개산 남쪽인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화개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거리는 짧지만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라 만만히 봐선 안된다.

 

향교를 둘러보고 숲길을 지나 화개사까지 간다. 그늘이 시원해 더위를 잊을 만하다.

화개사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1.5km의 짧은 거리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백패커가 지은 죄의 크기는 배낭 속 짐의 무게와 같다’고 했거늘, 다들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는지 그 짧은 산행에도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30여 분을 꼬박 올라 드디어 정상에 닿는다.

화개산 정상은 해발이 260m에 불과하지만 교동도에서는 가장 높아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 있다. 동쪽의 교동대교부터 오른쪽으로 석모도, 상주산, 남산포, 기장섬, 주문도, 미법도, 서경도가 차례로 보인다. 북쪽도 마찬가지다. 강화만 건너 황해도 연안군(옛 연백군)의 모습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와, 저기가 진짜 북한이에요? 진짜 가깝네요.”

정상에 설치된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준호씨가 소리쳤다. 남한과는 달리 건물 한 채 찾기 힘든 북녘 땅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화개산 정상에서 환상적인 달맞이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화개산 정상은 정자 쉼터와 나무데크가 있어 텐트를 치는 데 불편함은 없다. 다만 북한에서 들려오는 대남방송이 시끄러울 뿐.

 

예정보다 일찍 정상에 도착한 덕에 여유롭게 텐트를 치고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시원하게 얼려온 맥주 한 캔이 하루의 더위를 잊게 한다. 저녁 6시가 되자 북측에서 대남방송이 시작되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북한방송 특유의 절제되고 공격적인 말투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저녁노을이 지고 이내 어둠이 찾아왔다. 남동쪽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낸 달은 어느 곳에서 보는 것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 달 왼쪽으로는 화성과 토성이 반짝이고 있다. 도심과 달리 북두칠성이며 갖가지 별자리들이 까만 도화지에 점을 찍어놓은 것처럼 선명하다.

“내일(8월 12일) 페르세우스자리에서 유성우 150개가 떨어진대요! 하루만 늦게 왔으면 완전 대박이었네요. 완전 명당자린데.”

민혜씨가 농담 삼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까지 있어볼까?”라고 말했다. 준호씨도 이 명당자리가 아깝지만 이곳에서 내일 낮의 폭염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달 사진을 찍고 나니 어느새 밤 9시 30분이다. 풀벌레 소리가 커진 만큼 밤이 깊었다. 시끄럽던 대남방송도 끝났다. 이제는 자야 할 시간, 텐트 문으로 달이 바라보이게 방향을 잡고 몸을 뉘였다. 참으로 오랜만의 ‘달이 빛나고 별이 빛나는 밤’이다.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다음날 아침, 6시 10분에 절로 눈이 뜨였다. 바닷가의 습한 기운에다 북한의 대남방송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태양이 기다렸다는 ‘오늘도 기대해.

살려는 드릴게’라며 살벌한 웃음을 짓고 있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사이트를 정리하고 하산하기로 한다.

정상에서 200m쯤 내려오면 화개약수터가 있고 이곳을 지나 계속 내려오니 왼쪽에 웬 건물이 하나 있다. ‘연산군유배지’다. 강화도와 마찬가지로 교동도도 조선시대 대표적 유배지였다. 세종의 셋째 아들이자 수양대군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선조의 첫째 아들이자 광해군의 형님인 임해군, 인조의 동생인 능창대군과 다섯째 아들인 숭선군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흔히 유배지라하면 거제도나 제주도 등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 등을 생각하지만 폐위된 왕들과 왕자들은 도성에서 가까운 강화도나 교동도로 유배를 보냈다. 이들은 다시 역모를 꾀할 수도 있는 요주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특별 관리대상’이었던 것이다.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자, 진짜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보시라. 대룡시장에 관광객이 모이면서 재미있는 벽화 등을 그려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했다.

 

유배지에서 조금 걸어 교동면사무소에 닿는다. 이 부근엔 대룡시장이 있다. 이 작은 시장은 교동대교가 생기기 전부터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다가 2010년 KBS 예능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완전히 떴다.

대룡시장은 1960~1980년대의 빛바랜 사진 같은 모습이 곳곳에 간직되어 있다. 교동이발관, 거북당, 동산약방, 교동정미소, 제일다방, 강화상회 등 가게 이름이 딱 옛날 스타일이다. 지금은 벽화도 그려지고 건물도 조금씩 손을 봐 예전 같은 ‘순도 100%’의 옛 풍광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골목에 들어서면 고향에 온 것처럼 푸근해진다.

“마이깡 있는겨?”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대룡시장 명물 찹쌀꽈배기를 들고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계가게 앞에 선 준호씨와 민혜씨. 실향민들이 피란 와 만든 대룡시장에서 50년 전통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시장 골목 한켠 구멍가게 ‘만물상’에 손님이 들자 주인할머니는 갖가지 물건이 쌓인 곳에 손을 푹 집어넣더니 후크(걸단추)가 담긴 작은 비닐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마이깡’이란 단어도 예스럽고 물건을 찾아 주는 주인할머니의 모습도 드라마 속 광경처럼 느껴진다.

교동도엔 실향민이 많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을 전후해 연백군민 3만 명이 교동도로 피란 왔다. 이때까지 연백군은 38선 이남의 경기도 땅이었다. 하지만 6·25전쟁이 정전되고 연백군과 교동도 사이가 휴전선으로 가로막히면서 연백군은 황해도 땅이 되었고 피란민들은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다. 대룡시장은 이 실향민들이 생계를 위해 모여 만든 곳이다.

“교동도 토박이들은 거의 땅을 팔고 도시로 떠났지. 교동도 안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연백 사람들이야. 가진 것 없이 피란 와서 겨우 자리 잡고 고향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

대룡시장에서 ‘만물상’이라고 불리는 구멍가게를 열고 있는 안순모(85) 할머니는 “연백에서 남편과 함께 교동도로 넘어와 시장에서 장사하며 보낸 세월이 60여 년”이라며 “졸지에 이북사람이 되어 차별받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세월은 말로 다 못 한다”고 했다.

“60년 넘는 세월을 기다려도 가지 못한 고향땅을 죽기 전에 밟을 수 있을지….”



남북이 다 같이 보는 추석 보름달

젊은 시절 교동도로 넘어왔던 사람들은 이제 백발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대룡시장에서 만난 실향민들은 고향에서 추석을 보내지 못한 세월이 반평생을 훌쩍 넘었다. 그래도 추석이 되면 교동도 북쪽 끝의 ‘망향대’에 가서 고향땅을 바라보며 두고 온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생각한단다. 교동도는 시간이 멈춘 모습으로 외지인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실향민들의 시간은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곧 추석이 되면 교동도 사람들도, 강화만 건너 연백 사람들도 같은 보름달을 보게 될 것이다. 이념도 사상도 없는 그 보름달은 얼마나 빛이 나고 아름다울까 상상해 본다.

대룡시장에서 나와 남산포로 향한다. 이제부터 월선선착장까지는 약 7.8km에 그늘도 없는 땡볕길이라 차의 힘을 조금 빌리기로 했다. 이날 최고 기온은 36℃까지 올랐다.



걷기길 가이드

교동도에는 강화나들길 9코스와 10코스가 있다. 9코스 ‘다을새길’은 월선선착장 (교동도선착장)에서 시작해 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 정상~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 동진포~월선포선착장으로 원점회귀한다. 길 곳곳에 이 갈색 기둥 이정표와 화살표 모양 이정표, 나들길 산행리본이 설치되어 있어 한눈만 팔지 않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월선포선착장부터 화개산 정상~대룡시장까지는 그늘 좋은 숲길이 대부분이고 대룡시장~남산포선착장까지는 논 사이의 포장도로가 대부분이다. 교동읍성을 지나 낮은 언덕을 지나면 월선포선착장까지는 해안가 길을 걷는다.

화개산 정상에서 야영하며 달맞이를 할 요량이면 풀코스를 도는 게 낫고 당일치기로 걷기만 한다면 화개사에서 화개산을 오르지 않고 약 4km의 둘레길을 이용해 대룡시장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월선포선착장과 대룡시장 내 초원슈퍼에 강화나들길 도보여권 완주 도장 찍는 곳이 있다. 교동시장 내에 나들길 안내소가 있다. 주말에만 10~17:00까지 운영한다.

교통

2014년 교동대교가 놓이면서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다. 일단 강화대교나 강화초지대교를 이용해 강화도로 들어와 48번국도를 타고 강화도 북서쪽 인화리로 간다. 48번국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교동대교가 보인다. 교동대교 앞 검문소에서 간단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출입증은 나갈 때 반납한다. 단, 외지인은 일몰 후 30분부터 일몰 전 30분까지는 통행이 금지된다.

대중교통은 일단 강화도 버스터미널까지 온 후 교동70번(강화버스터미널↔월선포) 버스를 타면 교동도선착장으로 갈 수 있다. 하루 11회(06:10, 07:30, 09:00, 10:30, 11:40, 13:10, 14:30, 16:00, 17:20, 19:00, 20:30) 운행한다. 월선포에서는 첫차 06:55, 막차 21:15분. 문의 선진버스 032-934-9105. 대룡시장에서 교동동북부(대룡리~ 삼선리~인사리~ 무학리) 마을버스(문의 010-2757-4694)와 교동서부(대룡리~ 양갑리~난정리~ 서한리~동산리) 마을버스(문의 010-5771-0522)를 환승할 수 있다.

숙식(지역번호 032)

교동도 내에는 숙박시설이 몇 곳 없어 강화도에서 묵는 편이 낫다. 교동읍성이 있는 읍내리의 엔젤농원펜션(010-7764-9995)은 객실이 두 개밖에 없지만 고구마캐기, 밤 줍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26.4㎡(8평형), 33㎡(10평)형 비수기 주말 기준 10만 원. 이밖에 낙원여인숙(932-4071), 수정민박(934-8929) 등이 있다.

대룡시장 근처에 식당이 몰려 있다. 대풍식당(932-4030)은 평양냉면과 순대국밥이 맛있다. 각 6,000원. 대룡식당 맞은편의 해성식당(932-4111)에서는 국내산 한우고기로 만든 소머리국밥(7,000원)과 육개장(7,000원)을 낸다. 두 식당 모두 교동도 쌀을 사용한다. 이밖에 수진네식당(934-5262), 초원식당(934-5102) 등이 있다.



볼거리



1 교동읍성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교동도 읍내리에 있는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축조된 돌성으로 둘레 430m, 높이 6m 규모의 읍성이었다고 전해진다. 동·남·북쪽에 3개 성문이 있었으나 남문인 홍예문만 남아 있다. 인천기념물 제23호.



2 교동이발관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명물 많은 대룡시장에서도 가장 유명한 가게. ‘1박2일’ 프로그램에서 은지원과 MC몽이 삭발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며 교동도에서 가장 유명한 이발관이 되었다. 연백군에서 내려온 실향민 지광식(78) 할아버지가 5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쁘시지만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하면 흔쾌히 시간을 내주신다.



3 망향대

[한가위 보름달맞이 백패킹 | 인천시 강화 교동도 르포]
 

서한리의 망향대 (望鄕臺)는 황해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북한 연안군(옛 연백군)을 바로 앞에 두고 있다. 지도에서 위치가 표시되지 않아 일단 내비게이션에 ‘교동북1길 194-9’를 입력해 찾아간다. 가는 길에 망향대 이정표가 보인다. ‘망향대 200m’ 이정표를 찾아 따라가면 가정집 입구가 나오고 ‘찻길 끝’이라고 적힌 돌을 세워두었다. 이 돌을 지나면 ‘망향대 100m’ 이정표가 보이고 3분 정도만 오르면 비석과 의자가 놓인 망향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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