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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by 白馬 2016. 8. 24.

운악산 만경을 품으니 하늘 열리고 별이 돋네


거울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종종 거울을 본다. 형상을 보여 준다는 측면에서 거울은 정직하다. 그러나 거울은 본래의 모습을 가리고 사람을 길들이며 형상에 묶는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거울은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것은 거의 강요에 가깝다. 꾸미고 덧칠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 길들여져 왔고, 스스로도 미에 대한 정의를 그렇게 내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덧칠된 나만 본다. 도금된 외면에 집중한다. 또한 그것을 자기의 표지이자 간판이라 여기기도 한다. 현대 문명과 도시의 삶이 낳은 결과다.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때다. 쉬러 가자. 휴休는 우리 인간이 자연인이었던 그 원형성을 회복시켜 준다. 고무줄처럼 늘어난 삶의 탄력성을 복구해 본디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현등사계곡 백년폭포와 무우폭포가 전하는 목소리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절벽 앞에서도 폭포는 흐트러짐이 없어 소리가 맑다. 행적이 분명하다.
모처럼의 휴가다. 일상의 탈출, 그것은 일과 인간 상호 간의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이다. 타인의 말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것들로부터 잠시 놓여나 보자.

저만치 운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 속이다. 경기의 금강이라 부르는 운악산은 구름이 있어야 그런 찬사가 더 잘 어울린다. 삼충단을 지나면 운악산현등사’를 알리는 일주문이다. 뒤쪽에는 ‘한북제일지장극락도량漢北第一地藏極樂道場’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장맛비가 내린 계곡의 물소리가 구성지다. 이름 없는 삼단 폭포 옆에 명상을 하거나 소리를 하기에 맞춤한 바위에 앉는다. 폭포가 풀어 놓는 물소리가 명창이요, 명창은 이따금씩 바람을 몰아오고 빗방울을 부른다. 이어 백년폭포에 이른다.

‘쉼에는 덧붙일 것이 없다. 일체의 것들은 군더더기다. 이성도 논리도 필요 없다. 생각을 뚝 분질러버리고 오고감을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휴休다. 나무가 만든 숲으로 가서 탁족을 하는 나무들처럼 한 그루 나무로 쉬는 것이다.’

탕탕히 흐르는 백년폭포가 전해주는 목소리다. 쪽동백과 돌배나무와 산딸나무가 열매를 만들어가는 길을 따라 오른다. 천천히 걷다 보면 이내 깊고 부드러운 사람의 음성을 닮은 물소리가 들린다. 무우(舞雩)폭포다.

백년폭포

물은 바다가 집이어서 산을 내려가고
마음은 사랑이 집이어서 그대 향해 흐르네

산을 내려간 물은 이 골물 저 골물 만나
이정표 없이도 유장한 강물 되어 바다로 가고
사랑 또한 그와 같아서 이 맘 저 맘
다 모은 한맘으로만 그대에게 가 닿으리

물은 모든 웅덩이를 채운 후에야 흐름을
산에 와서야 아네, 폭포에 와서야 듣네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뜻이 통하여 만남이 이루어진다. 운악산이 구름을 만나 금강을 빚는 중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 주어 써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대 아래서 바람을 쐬며 시를 읊고 돌아오겠습니다.’

‘나도 너와 함께 하고 싶구나’.”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인 증점이 나누는 이야기다. 이 폭포의 물소리가 다름 아닌 증점의 목소리다. 영달에 초탈한 흐트러짐이 없는 군자의 옥음이 청량하다.

석등처럼 몸 세워 등불 얻는 천년의 빛과 향기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공양미를 먹는 다람쥐가 밥값이 신경 쓰여 슬쩍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닐까.
민영환 암각서를 지난다. 넓은 바위 상단에 글씨가 선명하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슬프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흘렸을 그의 눈물이 보인다. 눈물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부지기수다. 눈물은 냉장고 속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돌아올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이물감은 사라질 것이다. 눈물은 마지막까지 우리의 가슴을 지킨다.

불이문을 지난다. 천천히 백팔계단을 오른다. 하나씩 오를 때마다 가지런해지는 마음과 생각들, 이런 시간들이 길이 되어 고요한 빛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경기도문화재자료인 ‘현등사삼층지진탑’을 지난다. 안내문에 의하면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현등사를 재창하고 경내의 지기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세웠던 칠층석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상층부 삼단만 남아 원래의 모습을 추측해 볼 뿐이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대장경을 모시고 인도에서 온 승려 마라하미를 위해 지은 절이라고 한다.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함허당득통탑은 만월을 품은 빛이요 석등은 심지 없이도 오르는 등불이다.
절 마당에 오른다. 수백 년 된 향나무의 단청 빛 향기가 경내에 가득하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3호인 ‘현등사삼층석탑’은 여느 석탑과는 사뭇 다른 형태다. 그 비중이 자못 더 커 보인다. 극락전과 지장전으로 간다. 깊고 맑고 고요한 도량의 청정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후면의 붉은 소나무들이 늘어서 절을 호위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경내를 빠져나오는데, 담장 바깥쪽의 오래된 향나무가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복숭아를 좇지 않는 자두, 화려함을 버린 까치수염, 기름진 땅을 탐하지 않는 돌단풍 등의 침묵이 맑다. 본성을 지키며 자기 분수대로 살아 왜곡되지 않는 삶을 실현하고 있는 것인가.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한북제일지장극락도량 천년고찰 현등사의 고요가 천년의 빛이요 향기다.
함허당득통탑과 석등을 지난다. 이 운악산과 조화를 이룬 뛰어난 품격으로 예술적 조형미가 아름답다. 절고개에 올라 서기 직전 코끼리 바위가 나온다. 긴 코를 늘어뜨리고 나뭇잎을 뜯어먹는 듯 영락없는 코끼리 모양이다.

능선에 오른다. 여름의 등허리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옷자락을 들추고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 나리꽃과 돌양지꽃들이 모두 성하의 여름 잔치를 벌이고 있다.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전생이 발레리나였을까, 털중나리가 스커트에 토슈즈 신고 춤추고 있다.
억지로 이름을 붙인 듯한 남근바위를 지나 돈대처럼 솟은 봉우리에 오른다. 아기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가려하다. 그 뒤로 서리산 축령산이 옅은 구름옷을 입었다. 서봉 쪽 망경대 아래로 펼쳐진 바위 군상들은 만물상이다. 절벽의 소나무가 아니면 기절한 풍광은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우르르 꽝꽝 내리치는 벼락과 천둥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무량수들이다.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길은 없어서가 아니라 가지 않을 때 사라진다는 걸 벼랑의 소나무가 아네.
정상에 닿는다. 가평군과 포천시에서 제각각 명칭도 모양도 다르게 세운 정상석이 있다. 산 높이도 대부분의 지형도에 표시된 해발고도(935.5m)와 다른 937.5m로 새겨져 있다.

서봉 쪽 망경대로 간다. 하늘말나리 중나리 핀 꽃길이다. 정상인 동봉에서는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바람을 쐬며 조망하기에는 서봉 쪽의 망경대가 좋다. 그러나 여기를 ‘망경대’라 부르기에는 그 수식에 걸맞지 않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곳은 기실 이곳 말고 따로 있다.

바람이 온다. 사람의 가슴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고 골짝을 올라오는 바람이다. 동봉에서 뻗어간 산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벌써 이삼십 리 밖을 내달리고 있다.

금강을 찬미하는 망경대 절창의 노래와 병풍바위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봉우리에 서면 봉우리 봉우리 산봉우리 줄기줄기 산줄기가 보인다.
망경대에 선다. 병립한 바위봉우리들은 앞으로 나오는 듯 다시 뒤로 숨으며 협곡을 박차고 하늘에 우뚝우뚝 솟았다. 천길 벼랑의 소나무는 기암절벽마다 여여하고, 구름이 오고 갈 때마다 바다를 열고 닫는다. 삶과 죽음, 이것과 저것의 경계 없는 만경의 세계가 한 영역이다. 어디를 보아도 진경산수다. 운악산이 펼친 금강산이다.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시간을 잊으면 56억 7,000만 년도 한순간일까, 미륵바위는 이미 용화세계다.
절벽에 가파르게 놓인 철제 계단을 내려간다. 전망이 수승한 바위 벼랑에 고승의 주장자를 닮은 소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다. 국망봉, 귀목봉, 명지산, 연인산, 칼봉, 매봉 서로 어깨를 겯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산들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눈을 발아래 두면 미륵바위가 바로 앞이다.

[산사와 명풍경 | 운악산 현등사]
필시 겸재가 와서 그린 진경산수화요 눈썹 흰 시선이 지은 절창의 시다.
험한 바윗길을 다 내려오면 수색(秀色)의 봉우리가 앞에 놓여 있다. 내려오면서 위에서 보았던 작은 만물상 같은 봉우리다. 올라가서 봐야 안다. 운악산이 왜 금강인지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웅장하게 펼쳐진 풍경은 순식간에 세상을 압도한다. 필시 겸재가 그려야 할 금강산의 모습이다. 저 아래 사람들이 눈썹바위 쪽에서 올라와 쉬며 조망하고 있는 모습도 손바닥 보듯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금강산으로 치면 단발령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금 서 있는 이 봉우리야말로 능히 만경을 바라보는 망경대라 부를 만한 곳이다. 초광각의 카메라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장엄한 풍경은 운악의 절창이요 금강의 노래다.

어느 사이였을까. 돌아가는 길 하늘이 저 깊은 곳까지 열리고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는 황홀한 노을, 숨 막히게 아름다워라. 모다기비 발비 작달비 며칠 동안 빗줄기로 닦아 내고 바람으로 쓸어 낸 저기는 어느 하늘인가. 보라, 하늘은 거울이다. 하늘에 비춰보면 존재의 얼굴이 보인다. 저 하늘 총총한 별들을 예감하는 저녁이다. 오늘밤 나는 바람이다. 오직 바람이다. 마음이라는 깜깜한 우주의 신비 속에 새로 돋아날 푸른 별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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