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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산사와 명풍경 | 가야산 해인사

by 白馬 2016. 6. 25.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온 산빛으로 나투고 천지를 재운 고요한 마음에 만물이 비추네



부분은 전체를, 전체는 부분을 완성한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물이 있으면 불이 있다. 별이 있어 하늘은 깊어지고, 하늘이 있어 별이 빛난다. 빛과 어둠, 음과 양도 같은 관계다. 바위가 흙으로 돌아가고, 흙이 바위가 되는 것도 모두 그와 같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삼라만상 모든 것은 조화의 관계다. 관계는 함께하는 대상 사이에서 형성된다.

산에 들어와서 보면 자연에는 잉여가 없다. 나머지도 없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부지불식간에 서로를 더하여 합을 이룬다. 당당한 몫이 된다. 조화가 만들어내는 세계에 예외와 소외는 없다.

늦게 온 정상의 봄이 산록을 타고 여름으로 미끄러지며 산이 파도치고 있다.
늦게 온 정상의 봄이 산록을 타고 여름으로 미끄러지며 산이 파도치고 있다.

여름을 부르는 숲속 새들의 유리알 노래 소리

가야산은 일찍부터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해인사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과 국보 제32호이자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재조대장경판을 보유한 법보사찰이다. 가야산은 예로부터 ‘해동십승지’, ‘조선팔경’, ‘고운 최치원’ 등으로 그 이미지가 각인된 명산으로 회자되어 왔다. 정상은 칠불봉으로 높이는 1,433m이다.

백운동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만물상 코스다. 정상까지는 4.2km, 해인사까지는 8.4km이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신록이 골짝을 메우고, 백운교 아래로 계곡물이 솰솰 거린다. 소리도 빛도 맑다. 맑아서 안팎이 따로 없다. 신록이 무성한 숲속 어디선가 “카~카~카~코, 카~카~카~코” 하며 네 박자로 새가 운다.

숲의 여름은 바로 저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으로 온다. 검은등뻐꾸기는 왜, 둥지를 짓지 않는 걸까. 어떤 운명이어서 탁란(托卵)하고 속죄하듯 저렇게 벌거벗은 심정으로 숨어서 우는 걸까. 개개비와 휘파람새 등과 같은 숙주 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씨~씨” 하고 우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투정 같은 지절거림도 그런 연유인가. 새소리는 검은등뻐꾸기뿐만 아니라 유리알처럼 맑은 휘파람새 소리도 들린다. 목탁새도 “똑 또르르” 하며 운다. 성급한 여름의 비탈로 새 울음소리가 흥건히 쏟아져 내리고 있다.

시야가 트이는 산자락에 올라선다. 높이는 시야를 확보할 때 전망이 된다. 수많은 파랑을 만들며 멀리 굽이치는 산들, 아침 안개가 골을 빠져나가며 다도해를 만들었다. ‘그리움릿지’를 잘 조망할 수 있는 바위에 닿는다. 저렇게 그리움의 발밑은 언제나 깎아지른 벼랑이다. 사람도 검은등뻐꾸기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움을 탁란하는 것은 아닐는지.

만물상 코스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입석 바위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
만물상 코스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입석 바위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
바람 자고 파도 그친 신록의 바다에 비추는 만물상

기암 연봉들을 바라보며 해발고도를 높여 간다. 오를수록 점입가경이다. 다양한 바위와 능선의 풍경은 지금까지의 익숙한 기억들을 전복시키며 감동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길 중간 중간에 과거 서성재 성곽들로 보이는 흔적들이 관찰된다.

통천문을 지나 커다란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바위에 이른다. 오, 풍경이란 이런 것이구나. 활연 개오 하듯 한꺼번에 터진다. 왼쪽부터 봉천대~상왕봉~칠불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득히 높고, 상왕봉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평전 같은 구릉이 구만리 장천을 나는 붕새의 날개를 닮았다.

길은 바위 사이로 난 긴 계단을 따라 만물상 봉우리로 이어진다. 얼마 가지 않아 이내 고대 이집트 왕조의 오벨리스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입석의 바위가 나온다. 만물상 코스의 랜드마크로 마치 신전의 입구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여기서부터 산을 오를 때는 자주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봐야 한다. 만물상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봉우리들이 연주에 앞서 리허설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모습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예기치 못한 파노라마의 연속이다.

초록 숲을 배경으로 햇살 받아 환하게 빛나는 철쭉꽃이 새댁의 얼굴이다.
초록 숲을 배경으로 햇살 받아 환하게 빛나는 철쭉꽃이 새댁의 얼굴이다.
만물상에 도착한다. 만물상은 말한다.

‘고요하면 보인다. 마음은 있고도 없다.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으며 아무 것도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의 형상으로 고착될 때 마음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마음이 곧 일만 바위다. 일만 바위가 한마음이다. 여름 산 신록의 바다에 나타난 만상이 곧 네 마음이며 법이다. 해인(海印)이다.’

상아덤에 오른다. 가야의 건국신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상아(嫦娥)는 달에 사는 선녀 항아(姮娥)다.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와 하늘 신 이비가지(夷毗訶之) 사이에서 대가야, 금관가야의 첫 임금이 된 이진아시왕과 수로왕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희맑은 큰구슬붕이는 순수미인 해맑은 영혼이 뿜어내는 빛이 눈을 찌른다.
희맑은 큰구슬붕이는 순수미인 해맑은 영혼이 뿜어내는 빛이 눈을 찌른다.
서성재 나무그늘 아래 앉아 웃는 그대 미소가 철쭉꽃보다 곱다. 그대가 있어 나도 웃는다. 산은 이렇게 어떻게 해서라도 모든 대상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평지와 절벽, 봉우리와 계곡 등 그 대상에 맞는 존재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 하나가 빠진 전체는 전체가 아니다. 전체는 그 어떤 대상도 절삭하지 않는다. 모두 수렴해 조화를 이루고 발전적 관계를 심도 있게 형성해 간다. 그런 조화를 이루기 위해 산은 끊임없이 탐색하며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이끌어간다. 내가 그대를 만나게 하고 그대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설앵초는 고산 바위틈에 비바람 다 맞고 살아도 티가 없다 탓이 없다.
설앵초는 고산 바위틈에 비바람 다 맞고 살아도 티가 없다 탓이 없다.
세상의 길을 열고 명상에 잠긴 칠불봉과 상왕봉

칠불봉까지는 1.2km의 거리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바위와 소나무의 세계다. 가장 극적인 조화를 이끌어낸 반전의 합이다. 극과 극이 만나 온전한 합일을 이룬다. 그런 면에서 극과 극이 가장 가깝다. 물과 불은 상극이기보다는 이상적인 조화의 관계다.

정상에 선다. 칠불봉은 드높아 하늘의 영역에 있고, 하늘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의 길이 되어 끝없이 흐르고 있다. 봉우리 이름은 ‘가야국 김수로왕과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표석은 밝히고 있다. 맞은편 상왕봉으로 건너간다. 합천군에서 세운 ‘우두봉(牛頭峰)’이라는 표석이 있다.

저기에 무엇이 보인단 말인가. 나는 아무리 봐도 그대밖에 보이지 않네.
저기에 무엇이 보인단 말인가. 나는 아무리 봐도 그대밖에 보이지 않네.
팔만대장경의 말씀을 이운하는 홍류동계곡의 물소리

바람을 타는 새들의 기분이 이럴까. 정상에서 새들은 무엇을 보는가. 몸과 마음이 날아갈듯 가볍다. 산 정상에 남았던 봄은 산록을 타고 여름으로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기우제를 지내던 봉천대를 지난다. 하늘을 받든다는 것, 그것은 곧 비를 받드는 일이다. 올해는 다행히 지난해와 달리 비가 무성한 편이다.

내려가는 길 여기저기 귀한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큰구슬붕이와 해후한다. 고요한 색조의 순수미인이다. 산모퉁이를 돌아난다. 소량의 물줄기가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끼 낀 실폭이 나온다. 바위틈에 엷은 자주색 꽃이 무더기무더기 피었다. 설앵초다. 호듯한 자태에 살짝 부끄럼이 묻은 새색시 얼굴이다.

보물 제264호인 ‘해인사석조여래입상’을 마주한다. 소박하고 소탈하다. 목 부분의 상흔이 뚜렷하다. 미소는 짓는 듯 그치는 듯 설핏하게 감돈다. 산 정상 바로 아래서 보았던 냉해를 입은 앵초의 그런 미소다.

길은 나무와 바위 사이로 나고 사람은 양지와 음지를 넘나들며 길이 된다.
길은 나무와 바위 사이로 나고 사람은 양지와 음지를 넘나들며 길이 된다.
스님, 어둠이 별을 감싸는 건 그 빛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함인가요?
스님, 어둠이 별을 감싸는 건 그 빛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함인가요?
벼랑을 박차고 오르는 새 한 마리 날개는 퇴화를 모르고 진화를 거듭한다.
벼랑을 박차고 오르는 새 한 마리 날개는 퇴화를 모르고 진화를 거듭한다.
토신골의 물을 따라 선유교를 건너 해인사에 닿는다. 기골이 장대한 소나무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웅장하고 장엄한 사찰에 마음을 들이는 지중한 인연이라니. 장경판전의 대장경은 소리 없는 말씀이요, 말씀 없는 소리로 온 산 온 하늘의 빛으로 나투고 있다. 고운 최치원이 거꾸로 꽂아놓았던 전나무 지팡이가 살아 저리 웅대한 나무로 자란 학사대에서 무릇 세상을 잊고, 나를 버리며, 시간을 던진다.

굽이굽이 휘고 꺾이고 부딪치며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홍류동계곡의 청류를 따라간다. 아무런 의심도 없는 물빛으로 세상 향해 흘러가는 여여함이여. 옥빛 물들이, 청정 법신의 소나무들이 세상으로 전하는 팔만대장경 그 푸른 말씀을 지금 누가 듣고 있는가. 물이여, 솔이여.

법고 소리는 산사의 장엄함을 더하고 그 울림에 만물은 제 존재를 본다.
법고 소리는 산사의 장엄함을 더하고 그 울림에 만물은 제 존재를 본다.
휘파람새

산이 듣는 울음소리다
하늘이 듣는 울음소리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향기 자옥한 숲속에서
고요의 비탈을 구르는 영롱한
유리알 울음소리 돌아가던
새벽별들이 주춤거린다

먼 하늘까지 귀가 트인
고불총림의 나무들이 저 울음소리
듣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더는 오고 감이 없다

제 소리를 지운 청정법수의
푸른 물만이 휘파람새의 울음을 싣고
산문 나서며 세상에
길 하나 내놓고 있다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