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숲, 물의 산’ 월악산국립공원 | 황장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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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만에 문 열린 금단의 ‘황장목 산’
안생달~작은차갓재~전망데크~묏등바위~정상~안생달 원점회귀 산행
황장목(黃腸木)은 없었다. 궁궐을 짓고 임금의 관을 만드는 등 국가 대사에만 쓰이는 황장목이 많은 산이었으나, 지금은 없다. 곧게 자라는 소나무를 금강소나무라 부르는데 추위에 강하고 성장 속도가 느려 재질이 단단하다. 예로부터 금강소나무 중에서도 수령이 오래 돼 속이 누런색이고 목재로서 최고급인 것을 황장목이라 불렀다. 조선 숙종 때 황장목을 함부로 베거나 개간을 금지함을 알리는 봉산(封山) 표석을 세운 산이 황장산(黃腸山)이다.
황장산 황장목의 마지막 기록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자재로 썼다는 것과 일제 강점기에 수탈용으로 잘려 나갔다는 것이다. 조선 왕족의 산이라 불러도 좋을 황장산은 조선의 명운과 함께 몰락한 셈이다. 이름만 남은 백두대간 명문가도의 산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5월부터 월악산국립공원 지정 이후 31년 만에 개방된 것이다. 잊혀진 황장목의 산을 찾았다.
“내비에 안생달 찍고 오세요.”
‘안생달’이란 특이한 동네 이름의 유래는 월악산국립공원 문경분소 방일용(58) 분소장을 만나고서 알 수 있었다. 황장산 입구인 이곳은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인데 생달계곡 바깥을 ‘외생달’이라 하고 상류를 ‘안생달’이라 한다. 골이 깊은 생달계곡에 걸쳐진 높은 다리가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떨어진 사람이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았다 하여 생달리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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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생달 와인동굴 앞 주차장이 산행 들머리다. 7명, 취재산행치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방일용 분소장과 이무용 반장, 공은표·이소언 커플, 서현우 월간山 인턴기자 등이다. 와인동굴은 폐광산 굴을 와인저장 카페로 탈바꿈한 것이다. 원래 황장산 생달리 일대는 탄광촌이었으나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오미자 농사를 짓고 있다. 한때 탄광으로 번성했던 이곳이 고요한 시골이 되었다가,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연일 들어오는 산악회 버스에 또 다른 변화를 맞고 있다.
방 분소장은 “강풍경보가 내렸는데 산행이 괜찮겠느냐”며 걱정하지만, 바람은 사진에 나오지 않으므로 곧장 입산한다. 매끈하게 뻗은 일본잎갈나무 숲이 중후한 분위기로 통통 튀는 걸음의 등산인들 마음을 진정시킨다. 일본잎갈나무는 황장목이 잘려나가고, 1970~1980년대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심은 나무들이었으나 산림 효율성이 떨어지는 나무라며 방 분소장이 혀를 찬다. 허나 나무는 죄가 없다. 아무리 쓸모없는 나무라 해도 산소를 뿜어내고 있으니, 이산화탄소만 뿜어내고 에너지만 고갈시키는 비뚤어진 성품의 사람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작은차갓재로 이어진 생달계곡 상류는 우만골이다. 평범한 계곡이라 수려함은 없지만, 완만하고 편안하게 산길을 이끈다. 이렇게 쉽게 백두대간에 설 줄이야. 700m를 오르자 대간줄기인 작은차갓재다. 31년 만에 처음 개방된 산길이지만 등산로가 뚜렷한 건 여길 경계로 구간종주했던 대간꾼들 덕분이다. 합법적인 방식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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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지 얼마 안 된 나무벤치에서 작은차갓재의 여유로움을 즐긴다. 너른 터와 그늘이 있어 쉼터로 제격이다. 헬기장을 지나자 잣나무숲이다. 황장목 같은 큰 잣나무는 없다. 젊은 잣나무들이 경쟁적으로 광합성을 위한 제공권 장악에 열심이다.
데크 계단을 올라서자 처음으로 경치가 트인다. 파란 하늘은 평온하기만 한데 바람은 태풍급이다. 성인 남성이 가만히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휘몰아친다. 모자를 꼭 붙잡고 처음 드러난 경치를 급하게 눈으로 삼킨다. 생달리를 둘러싼 신록의 산마루가 훤히 드러난다. 반짝이는 산의 살결이 너무 싱그러워 도시인의 마음이 초록색 에너지로 충전되는 것 같다.
‘작 장군’이 쌓은 성이 있던 작성산
정상이 가까워갈수록 험상궂은 바위가 늘어난다 싶더니, 데크계단이 바위 위로 놓여 있다. 계단을 올라서자 황장산의 백미인 묏등바위다. 데크가 놓여 있어 스릴은 없으나 데크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바위에 서면 서늘한 고도감을 맛볼 수 있다. 황장산 개방은 문경시에서 힘을 많이 썼다. 5억여 원의 예산을 지원해 등산로를 정비하는 데 힘을 보탰다. 과거에는 고정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넘던 묏등바위였다. 지금은 편안하게 걸으며 사방 경치를 맛볼 수 있다. 동쪽으로 도락산과 황정산처럼 걸출한 바위산들이 표범 문양처럼 섬세한 암릉미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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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이 반기는 정상은 숲에 싸여 경치는 없다. 모처럼 무자비한 돌개바람에게서 풀려난 덕분에 오히려 바람 없는 정상이 고맙다. 산경표에는 황장산을 작성산(鵲城山)이라 했다.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보이는 작성산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361년 고려에 홍건적이 침입하자 공민왕은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했다. 공민왕은 문경 어류성에서 한동안 머물렀는데 이때 작(鵲) 장군에게 명하여 황장산에 성을 쌓게 해 노국공주와 비빈과 궁녀들을 대피시켜 머물게 했다고 한다. 허나 작씨 성을 가진 장군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정상을 두고 잠시 내려서자 능선을 가로막는 철망이다. 대간길을 버리고 안생달로 꺾어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대간 불법 종주를 막기 위해 능선에 철망을 쳐 놓았다. 능선을 따라 가다 지능선인 남릉으로 빠지면 현란한 바위 산줄기가 나타난다.
황장산 수리봉 리지다. 국립공원에서 출입을 통제해 놓았지만, 바위꾼들에게 유명한 명품 암릉 줄기다. 경치가 탁월하고 등반이 쉬워 초보자와 중급 클라이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수리봉 리지가 보이지 않는다.
주능선을 내려서자 산길은 빠르게 고도를 내린다. 나무를 발판 삼은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많은 원시계곡은 어리시골이다. 어리시골과 우만골이란 이름은 이곳 토박이인 생달리 이장이 알려 주었다. 우만골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 청정계곡이라 원시숲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31년 만에 사람의 발길이 닿은 투명한 물줄기에 손을 담그자 묵은 체증까지 씻어내리는 듯 시원하다.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임도가 나타나며 시야가 확 트인다. 오미자밭 너머로 키 큰 소나무숲이 있다. 황장목 아니냐고 묻자, “못나서 살아남은 소나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곧게 뻗지 않고 휘어져 있다. 살아남으려면 휘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고 황장목이 사라진 황장산이 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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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interview
“문경시의 적극적인 노력 있어 개방이 가능했다”
방일용 월악산국립공원 문경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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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걸음과 하체 근육을 보면 대충의 산행 경력을 알 수 있다. 방일용(58) 분소장은 골수산꾼 스타일의 국립공원 직원이다. 1985년부터 국립공원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래서인지 산에서 해야 되는 것, 안 되는 것만 고지식하게 따지기보다 이 산이 얼마나 좋은지, 이 산 너머 저 능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경남 합천 가야산 기슭이 고향인 그는 국립공원에서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가야산에서 근무한 것은 물론이며, 덕유산, 지리산, 월악산국립공원 등을 거쳤다.
그는 “국립공원 직원의 보람은 어려움에 처한 등산객을 구조할 때”라며 “특히 지리산에 근무할 때 구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산으로 서슴없이 덕유산을 꼽는다. “한 번 더 근무하고 싶을 정도로 산세가 넉넉하고 지역 주민들도 덕이 많다”고 한다. 그는 “황장산은 문경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이 있어 개방이 가능했다”며 “산행이 쉬워 대중적인 코스로 인기를 끌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산행을 즐기는 방일용 분소장은 2년 후 정년 뒤에는 계약직으로 산에 남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천상 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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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길잡이
비등산로로 지정되어 출입이 금지되었던 월악산국립공원 황장산이 5월 1일부터 개방되었다. 개방 등산로는 외길이며 원점회귀 코스이다. 또한 5.5km로 산행거리도 짧고 산길도 비교적 완만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들머리인 안생달마을에서 작은차갓재로 올라야 산행이 수월하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와인동굴에서 능선까지 비교적 완만한 길로 700m만 오르면 닿는다. 반면 어리시골은 가파르고 희미한 계곡 산길을 따라 2.1km를 헐떡이며 올라야 해 어디를 상행길로 택하느냐에 따라 산행 난이도가 확연히 갈린다.
전체적으로 길찾기는 쉽고 위험한 구간은 없으나, 어리시골로 하산할 때 계곡을 따르는 산길이 약간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계곡만 따라 내려가면 안생달에 닿는다. 경치는 데크 전망대와 묏등바위가 가장 좋고 이후로는 경치가 드러나는 곳이 없다.
교통
동로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안생달행 버스가 하루 5회(06:40, 10:40, 13:20, 14:25, 18:45) 운행한다. 20분 정도면 회차 지점인 안생달에 닿고, 다시 동로면으로 나간다.
문경 점촌에서 안생달행 버스가 하루 2회(06:10, 14:00) 운행한다. 점촌에서 동로행 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문의 점촌택시(054-556-8585, 555-9988). 안생달 공용화장실에서 와인동굴주차장까지는 비포장 구간이 500m 정도 있으나 승용차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길 상태가 열악하지는 않다. 버스는 안생달 화장실까지만 운행 가능하다.
숙식(지역번호 054)
황장산 입구에 식당이나 숙소는 없다. 등산로 입구의 와인동굴 카페는 와인과 커피 등의 음료를 판매한다. 동로면에는 식당이 드물다. 문경온천과 문경새재도립공원이 있는 문경읍으로 나가야 한다. 문경새재 입구에 문경산악연맹 이상만 회장이 운영하는 새재산장설악가든(572-1919)이 있다. 십전대보오리백숙(5만 원)과 조령산에서 캔 자연산 능이버섯전골이 별미다. 십전대보탕으로 우려내 국물이 담백하고 시원하며 산행 후 원기를 채워 준다. 관광객보다 문경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맛집이다. 민박을 겸하고 있다. 황장산 입구의 숙소로 산모롱이황토민박(553-9267), 문경새재황토펜션(553-5790), 한옥기와집민박(010-3775-61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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