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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저녁, 문득 산책을 하고 싶다면, 산책길에 불어오는 바람이 향기롭다면, 아주 익숙한 그 향기가 ‘나 왔어’ 하고 말을 걸고, ‘벌써 아카시나무꽃이 피었네’ 하고 대답을 하게 된다면, 여름이 온 것이다.
여름은 아카시나무꽃으로 온다. 이 꽃은 연둣빛 신록이 짙은 초록으로 바뀐 산허리에 구름처럼 피어난다. 무심한 눈길에는 지나가는 구름 같지만, 유심히 보면 눈길 닿는 곳 어디든 피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명산순례기 | 남산제일봉]](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6/06/02/2016060200985_1.jpg)
하지만 오해였다. 이 나무는 햇빛을 지극히 사랑해서, 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은 침범할 의지 자체가 없다. 잘 자란 나무는 습기에 강하고 단단해서 건축재나 온천의 천장 마감재로도 훌륭하다. 뿌리가 땅속으로 얕게 들어가므로 묘의 관을 뚫고 들어가지 않는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겨났을까.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야산 어디고 잘 자랄 뿐 아니라 땔감으로 베어내고 또 베어내도 끈질기게 솟아올랐으니 그런 오해가 생길 만도 했다.
사실 아카시나무는 헐벗은 산을 푸르게 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온갖 구박에도 잘 자라는 미덕이 오히려 천대의 이유가 된 것이다. 지금은 그런 오해가 풀렸지만 그렇다고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아니다. 덕분에 ‘꿀’은 잘도 먹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꿀의 70% 정도가 아카시나무꽃에서 나온 것이다.
남산제일봉, 천불산, 매화산, 월류봉 등 산이름 여럿
![[명산순례기 | 남산제일봉]](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6/06/02/2016060200985_2.jpg)
산으로 가는 길 내내 아카시나무꽃을 보면서 힘없고,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하나 없지만 세상을 지켜온 필부필부, 갑남을녀들을 생각했다. 그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화장지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아카시나무’가 한 일이었다.
아카시나무꽃이 지고 나면 녹음이 짙어진다. 산색은 초록 일색으로 바뀌어 간다. 그것은 개체성을 소거하는 인간사의 전제적 일체화와 다르다. 한여름의 뙤약볕을 당당히 받아내기 위한 숲의 연대다.
![[명산순례기 | 남산제일봉]](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6/06/02/2016060200985_3.jpg)
여름의 산색은 짙은 초록으로 밋밋하다. 바위산은 이 계절에 돋보인다. 합천의 남산제일봉도 그렇다. 가을의 바위산이 단풍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면, 여름의 바위산은 바위의 돌올로 아름답다.
바위산의 아름다움을 말하자면 설악산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곳을 감당하기에 하루로는 벅차다. 남산제일봉은 한나절로도 충분히 아기자기하면서도 우렁찬 바위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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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일봉(1,010m)은 가야산국립공원에 속하지만 가야산의 봉우리는 아니다. 가야산의 남쪽에 있다 하여 ‘가야남산’ 또는 ‘남산제일봉’으로 불리지만 가야산과는 별개의 산이다. 가야산 남쪽의 홍류동계곡이 두 산의 독립성을 떠받친다.
남산제일봉은 요즘 매화산(954m)의 제1봉으로 불린다. 남산제일봉에서 남남동쪽으로 1km 남짓 떨어진 곳에 매화산이 있는데 하나의 능선으로 묶여 있으니 이렇게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합천군청 홈페이지에는 아예 하나의 산으로 설명한다. 둘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남산제일봉이든 매화산이든 이 산에 관한 글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이 산을 즐겨 찾는 사람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남산제일봉(매화산)이 조선 후기까지 불리던 이름이다.
![[명산순례기 | 남산제일봉]](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6/06/02/2016060200985_5.jpg)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가야산은 일명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하며, 서쪽으로 뻗어서 월류봉(月留峯)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증보문헌비고> ‘여지고’에도 ‘가야산은 일명 우두산이라고도 한다. 서쪽으로 뻗어서 월류봉이 되었고, 해인사가 있다’고 전한다. 그런데 가야산에서 (약간 서쪽으로 기운) 남쪽에 있는 남산제일봉(매화산)을, 가야산의 ‘서쪽’에 있다는 ‘월류봉’과 같은 산이라고 보는 데는 약간 주저되는 점이 있다.
하지만 <대동지지>가 그것을 해결해 준다. <대동지지>의 합천군조에 ‘가야산은 야로(冶爐)에서 북쪽 30리 거리에 있다. … 월류봉은 산의 서쪽에 있고 그 아래에 청량사가 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의심할 여지없이 남산제일봉(매화산)이 월류봉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는 청량사는 남산제일봉(매화산) 동쪽 기슭에 지금도 건재하다. 다만 가야산 서쪽이라고 방위를 혼동한 것은, 북동에서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홍류동계곡을 기준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옛 문헌자료는 한국콘덴츠진흥원 문화콘덴츠닷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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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남산제일봉으로 굳어진 이름을 ‘월류봉’이라고 되돌리자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경상남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남산제일봉의 지명 유래를 ‘영남 지방의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불려짐’이라고 밝혀 놓은 것을 보면 황당하다.
매화산(梅花山)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전한다.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 유래에는 ‘산 주위에 매화꽃이 많아 매화산이라 했다’고 한다. 합천군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기암괴석들이 마치 매화꽃이 만개한 것 같다 하여 매화산이라 한다’고 전한다. 이 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한 청량사는 이 산을 ‘천불산(千佛山)’이라 부른다. 이 산의 바위를 부처로 본 것이다.
한편 해인사에서는 이 산을 매화산(埋火山)이라 칭한다. ‘불을 묻은 산’이라는 얘기다. 연유인즉, 해인사 남쪽에 솟구친 남산제일봉의 광채가 해인사의 금당인 대적광전과 맞부딪쳐 화재가 난다고 여기고, 해마다 단오에 해인사 스님들이 봉우리에 올라 다섯 개의 소금 단지를 오방에 묻는다. 소금(바닷물)의 기운으로 화기를 누른다는 것이다.
<해인사 사적기>에 따르면, 1695년부터 1871년까지 176년 동안 7차례 화재가 발생했는데, 순조 17년(1817) 화재 때 팔만대장경과 그것을 보관하는 장경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불에 탔다고 한다. 이듬해 가람을 다시 세우기 시작할 때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김노경(추사 김정희 부친)에 의해 오늘과 같은 가람 배치가 되었다.
심신을 달래고 싶을 때, 홍류동이나 청량사를 찾아라
![[명산순례기 | 남산제일봉]](http://san.chosun.com/site/data/img_dir/2016/06/02/2016060200985_7.jpg)
남산제일봉을 오르는 길은 간단하다. 현재 매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통제 구역이므로 홍류동계곡 북쪽 끝자락이나 동쪽 기슭의 청량사를 들머리로 삼는다. 홍류동계곡(해인사관광호텔 쪽)에서 오르면 숲길도 편안하고 암릉도 짧다. 종주든 원점회귀든 암릉과 조망을 길게 즐기고 싶다면 청량사를 기점 삼는 것이 좋다. 청량사 쪽에서는 시작부터 상당히 가파르지만 30분쯤 오르면 능선에 서게 되고 이곳부터는 가야산을 가슴에 안고 암릉을 오르내리므로 지루할 겨를이 없다.
아카시나무가 헐벗은 산허리를 껴안고 우리 산을 푸르게 가꾸었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암릉을 오르다 보면 만물이 부처의 현현임을 알게 하는 바위 봉우리에 서게 된다. 남산제일봉, 매화산, 천불산 혹은 월류봉이다. 그중 어느 것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혼곤한 심신을 달래려 바위산을 오르고 싶을 때, 홍류동이나 청량사를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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