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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화도 특집] ‘삼산’으로 다시 태어난 석모도 삼형제 봉우리

by 白馬 2009. 5. 8.

  

 

강화 사람들은 석모도를 가리켜 흔히 ‘삼산’이라고 부른다. 석모도의 행정구역 명칭이 삼산면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육지 사람들에게 ‘삼산’이라고 하면, 그게 별개의 섬이 아니고 저녁 때 걸어서 마실이라도 다녀올 정도로 가까운 이웃 마을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실제로 망월리 들판 한가운데쯤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석모도 북쪽 끝자락에 솟은 상주산(264m) 같은 경우 강화도와 이어져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면적 42.8㎢인 석모도는 통계자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섬 가운데서 열아홉 번째 크기이며, 석모도 북쪽의 교동도는 46.3㎢로 17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산(三山)은 석모도를 대표하는 세 개의 봉우리인 해명산(327m), 상봉산(316m), 상주산(264m)을 일컫는다. 원래 고려시대 말엽까지 세 개의 섬이었던 곳이다. 지금의 석모도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송가도, 남쪽에는 어류정도가 있었으며, 섬 사이로는 바닷물이 드나들어 화물을 싣고 예성강과 한강을 오가는 배들이 다녔다. 현재 하나의 석모도로 이어진 것은 강화도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간척사업의 결과다.

▲ 해명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석모도 간척지.


보문사 범종과 고 육영수 여사의 보살행

석모도 보문사는 남해 금산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보문사가 유명해진 것은 1970년대 이 절을 방문한 당시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 덕이 컸다. 육 여사의 도움으로 당시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의 범종이 만들어졌는데 안타깝게도 1974년 8월 15일 불의의 흉탄에 서거한 후인 1975년에야 완성됐다.

대부분의 탐방객은 석굴암이나 수령 600년인 향나무를 둘러보고 말지만 대웅전 앞마당 범종루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푸른 녹이 잔뜩 슨 범종의 옆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및 가족과 당시의 각료 등 지나간 세월과 권력, 영화를 누렸던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 근교에도 절이 많은데 영부인이 배까지 타고 와야 하는 이런 궁벽한 섬의 작은 절을 왜 그리 여러 번 방문했던 것일까? 그리고 육 여사와 불교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보문사와 더불어 육 여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절, 삼각산 도선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1960년대 초반 무렵 청담선사가 주석하고 있을 당시 육 여사는 이 절에 일주일간 머물며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과 보살계를 받은 적이 있다. 청담선사는 육 여사로부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이라는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육 여사가 서거한 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국민의 기억 속에 언제나 기품 있으면서도 따스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도 모두 그러한 ‘보살행’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보이지 않게 음지에서 공덕을 쌓았던 육 여사 서거 후, 박 전 대통령 역시 부하가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와 동시에 18년 유신정권도 몰락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롭게 보아 넘기기 힘든 현대사의 한 장면인지라 보문사 범종은 이 절에 들를 때마다 눈에 밟히곤 한다.

 

원래는 아홉 개의 섬이었다

석모도를 다녀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섬이 원래는 석모도라는 가운데 큰 섬 외에 상주산이 있는 송가도, 어류정도 등 여덟 개의 작은 섬으로 서로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밴댕이 회무침과 꽃게찜을 맛있게 먹고 가기에도 바쁜데 한가롭게 섬의 내력을 들춰가면서 이것저것 참견할 만한 여유도 없거니와 차분하게 앉아서 그런 사연을 이야기해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홉 개의 작은 섬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아홉 개의 작은 산인 셈이고, 사람들은 산자락 바닷가에 기대 살면서 배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거나 손바닥만한 논밭이라도 일궈서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갯골을 막아서 간척지를 만들고, 작은 섬들이 서로 손잡고 삼산면 석모도라는 큰 땅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게 이 지방 사람들 손이 갈퀴가 되고, 등뼈가 휘도록 일해서 얻어낸 소중한 땅이라는 사실을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거니와 이해해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갯벌이 소중한 것이고, 간척사업은 그 소중한 갯벌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날선 비판이 앞서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갯골 패인 섬과 섬 사이로 한강이며 예성강을 드나들던 돛배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그 시절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물때 기다리며 짐을 부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외지 소식도 전해주던 그 풍선(風船)들이 사라진 지 벌써 70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바다 역시 남북으로 나뉘어 왕래가 끊어진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으니, 이곳 섬지방의 산을 찾는 발길은 그래서 늘 무겁기만 하다.

그리운 고향처럼 다가오는 포구 마을의 밤



선착장에서 보문사 쪽으로 길을 달리다 왼쪽으로 광활한 염전지대가 나오고 그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있다. 소금 창고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 맞춰 서 있는 그 길을 가다보면 흡사 사막 한가운데라도 지나는 것처럼 아주 낯선 나라, 가상현실 속을 지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산마루를 지나며 석모도 등줄기를 골고루 섭렵했다면 이번에는 바닷가 마을을 돌아볼 차례다. 그 중에도 낙조가 아름다운 장구너미포구와 민머루해수욕장 일대의 해변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바다로 떨어지는 시뻘건 해도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거니와 밤새 잠 못 이루고 술병과 씨름하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면, 측은한 듯이 내려다보는 세숫대야만한 달에 술이 확 깨는 그런 특별한 바닷가이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이 바닷가 선창 마을은 폭풍우 몰아치는 겨울밤에 더욱 처절하고 참혹하며, 세상의 끝인 양 철저하게 외로워진다. 원래 아홉 개의 작은 섬으로 서로 떨어져 있었다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폭풍우설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고립된 밤. 덜거덕거리는 유리창을 금방 잡아 뜯기라도 할 듯 바람이 할퀴고 가면 겨우 밝혀둔 촛불마저 꺼질세라 전전긍긍하는 방안 하나 가득 밀려드는 냉기.

그리고 잠깐 졸았다 싶은데 거짓말처럼 폭풍이 그치고, 황홀하리만치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로 가득한 하늘 아래서 느낀 알 수 없는 슬픔 등이 완벽하게 결합되어 장구너미포구는 언제나 그리운 고향처럼 다가온다.

▲ 석모도 일몰.

 


산행길잡이


해명산은 석모도 최고봉으로 남쪽 끝자락에 솟아 있어 북쪽의 상봉산과 이어서 종주산행을 하기에 알맞다. 어느 쪽으로 산행을 시작하든 해명산~상봉산 종주는 휴식 시간을 포함해 다섯 시간 남짓 걸린다. 때문에 가급적 아침 일찍 석모도에 들어와서 산행을 시작해야 현지 교통편과 강화로 나오는 배 시간 등을 잘 맞출 수 있다. 너무 늦게 산행을 시작하면 섬에서 발이 묶여 하루 자고 가야 하는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비록 산 높이는 낮을지라도 길게 이어지는 능선 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즐거움이 각별해서 섬 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산행 내내 시야에 들어오는 바다 건너 강화 쪽 마니산이며 진강산, 혈구산, 고려산, 별립산이 훌륭한 길동무가 된다. 해명산에서 상봉산까지는 능선상에 샘이 없기 때문에 여름철의 경우 사전에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전득이고개에는 승용차 여러 대를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다. 해명산까지 올라서는 도중 가파른 바위 지대가 있기는 하나 나머지는 걷기 편한 능선 길이다.

※상봉산까지 가지 않고 절고개에서 보문사나 삼산면 소재지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상봉산에 먼저 오르고 능선을 따라서 해명산까지 갈 경우, 하산은 전득이고개가 아니라 석포리 큰말 쪽으로 한다. 큰말에서 선착장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전득이고개~해명산 정상(45분)
전망 좋은 작은 봉우리 몇 개를 지난다. 그 중 하나인 230봉까지는 10여 분 걸린다. 바다 건너 마니산이 바로 보이고 멀리 진강산이며 혈구산, 고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해명산 정상 직전의 봉우리는 가파른 화강암 슬랩지대로 쇠말뚝에 로프를 매어놓았다.

▲ 해명산 능선.

 

해명산~310봉(30분)
오르내림이 좀 덜한 능선길 앞으로 상봉산이 다가오고, 오른쪽으로 비껴선 곳에 낙가산(267m)이 시야에 들어온다. 10분쯤 능선 길을 따르면 억새 무성한 290봉에 올라선다. 세 개의 바위가 포개져 석문을 이룬 사이로 길이 나있는 곳을 지나면 너럭바위가 펼쳐진 310봉에 이른다.

310봉~방개고개(15분)
방개고개는 사거리 갈림길로 왼쪽은 윗말부락, 오른쪽은 방개부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방개고개~마애불 갈림길(1시간)
방개고개에서 10여 분 오르면 270봉에 닿는다. 270봉에서 새가리고개까지 내려서는 데 5분 걸린다. 고개로 내려서기 직전, 오른쪽 능선 갈림길은 낙가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등산로도 분명하지 않고 잡목이 많다. 새가리고개에서 3~4분 더 가면 바위 봉우리인 250봉이 나온다. 25분쯤 더 가면 230봉을 지나 보문사 마애불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마애불까지는 10분 거리다.

마애불 갈림길~상봉산(316m) 정상(25분)
갈림길에서 눈썹바위 위쪽에 해당하는 너럭바위를 10분쯤 가면 절고개로 내려선다. 절고개에서도 보문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마애불을 거치지 않는다. 상봉산은 곧장 능선 길을 따라 오른다.

상봉산 정상~삼산면 소재지(35분)

내려오는 길에 공동묘지를 지나며 승영중학교와 삼산초교를 거쳐 삼산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 내려선다.

>>교통

강화에서 석모도행 페리는 두 곳에서 탄다. 선수리보다는 외포리 선착장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강화도와 석모도 간에는 카페리 2개 노선(외포↔석포 : 30분 간격, 10분 소요, 마지막 배 18:30 / 선수↔보문 : 1시간 간격, 20분 소요, 마지막 배 17:30)이 있다. 주말에는 운항시간 등을 조정하고 있어서 석모도 출발 마지막 배 시간은 사전 확인 필수.(삼보해운 032-932-6007/932-6618)

외포리까지는 서울 신촌(강화운수 터미널 02-324-0611)에서 직행버스(평일 1시간, 주말 30분 간격)를 탄다. 서울 신촌, 영등포 및 인천 등지에서 강화읍까지 가서 외포리행 군내버스를 갈아타도 된다.(강화 시외버스 터미널 032-933-2533) 석모도 내 석포리 선착장에서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보문사행 버스(첫차 08:10)를 타고 전득이고개 등 산행 들머리에서 내린다.(석포 선착장 032-932-3324)

>>자가운전

김포에서 강화 방면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대교를 건넌다. 강화 읍내에서 마니산, 보문사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 후 안양대학교를 지난다. 2.6km 가면 갈림길과 보문사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을 택해 직진하면 외포리 선착장이다. 선수리 선착장은 양촌·대곶 방면 352번 지방도를 타고 제2강화대교(초지대교)를 건너는 게 빠르다. 대교 건넌 후 초지진 쪽으로 우회전한 후 길상면과 화도면 소재지를 거쳐 16km 가면 선수리 선착장에 이른다.

석모도에서는 선착장에서 보문사를 잇는 해안일주도로를 따라서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 외포리에서 10분 남짓, 석모도행 배를 따라 바다를 건너는 ‘새우깡’ 갈매기들.

 

 

>>숙박

석모도에는 펜션과 민박, 모텔 등 숙박시설이 많다. 강화군 홈페이지(www.ganghwa.incheon.kr /살기 좋은 강화/강화지리정보/지역정보서비스/여행 레저 숙박) 등 인터넷을 통해서 예약하거나 현지에서 먼저 둘러보고 숙소를 정하는 게 좋다. 민머루 해수욕장 부근에 푸른숲민박(032-933-2811), 나무와 숲(032-933-9290), 유천산장(032-932-9410) 등이 있다. 보문사 부근은 언덕위의 하얀집(032-933-3884), 성산황토민박(032-933-1134), 노을 내리는 산장(032-933-9677).

>>맛집

석모도에서는 강화와 마찬가지로 꽃게와 밴댕이 회무침이 대표적인 메뉴다. 석포리 선착장 앞 돌캐식당(032-932-3229), 보문사 입구 낙가산식당(032-932-6363).


해명산 주변 명소

 

보문사

선덕여왕 4년(635년)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창건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 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건져 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했다고 전한다. 그때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찾고 있다.

절 뒤편에는 돋을새김의 마애석불좌상이 있으며 그 앞에서 보는 서해 풍광 또한 일품이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했다는 큰 맷돌이 있으며, 600년생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보문사 뒤편 낙가산 중턱 벼랑에 있으며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29호로 지정됐다.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조성한 마애석불이다. 크기는 높이 9.6m, 너비 3.3m인데 관세음보살의 32응신과 11면 화신의 상징으로 보인다. 불상 위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그늘을 드리워 차양 구실을 하며, 불상 앞에는 석등 2기가 놓여 있다. 전체적인 불상의 균형은 조화롭지 못한 편이다. 각이 진 어깨에 통견으로 된 가사를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卍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불상 왼쪽 암벽에는 명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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