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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남 보성 '보성양탕'

by 白馬 2008. 8. 27.

50년째 우려낸'보성의 맛' 아따, 겁나게 시원해부러!

전남 보성 '보성양탕'
노린내 없는 비결? 40근 이상 3~4년생 암컷 염소만 선택
반나절 푹 삶고 15시간 건조…고소한 진국에 전국구 인기
7년째 한그릇 7000원 "남는 것 없어도 먹어주니 고마워"

 

 

예로부터 관가 부근에는 맛있는 집이 몰려 있기 마련이다. 지역의 군청(시청) 인근도 마찬가지로 군청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단골 밥집이 골목마다 알토란처럼 박혀 있다.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오는 '추억의 밥상'이 있는가 하면 손맛을 새로 다듬고 개발한 신흥 맛집도 있다. 비록 매스컴에는 자주 오르내리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식당이지만 지역 최고의 입맛꾼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점심 메뉴가 고민될 때, 간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선뜻 찾을 수 있는 만만한 식당, 이런 집을 바로 지역 최고의 맛집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스포츠조선은 '미식기행'이 여행의 주류를 이루는 세태에 맞춰 지자체 공무원들이 강추 하는 숨겨진 밥집, 스토리가 있는 맛집을 '군청앞 맛집'이라는 이름으로 적극 발굴 소개한다.

    • ▲ 45년 동안 양탕을 끓여 온 '보성양탕' 주인 장금덕씨는 단골들 사이 '양탕 조리의 달인'으로 통한다.

      전남 보성은 순천과 더불어 남도 최고의 미식기행지로 꼽히는 곳이다. 겨울 꼬막에 여름 바지락과 짱뚱어, 녹차를 먹인 녹돈 등 사철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워낙 유명한 여행지이다 보니 이들 미식거리 또한 덩달아 잘 알려져 있다.

      보성 토박이들이 꼬막 이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양탕'이다. 흑염소를 푹 고아 칼칼한 육개장처럼 차려 먹는 음식이다.

      보성군청 직원들에게 '군청 앞 맛집' 추천을 부탁하자 입을 모아 추천한 메뉴가 바로 양탕이었다. '양탕 맛을 못 본 이는 진짜 보성 사람이 아니다'라는 우스갯말이 있을 만큼 이 지역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것.

    • ▲ 녹차와 꼬막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의 또 다른 미식거리는 '양탕(염소탕)'이다. 50년 전통의 '보성양탕'은 보성 군청사람들이 즐겨 찾는 단골 맛집이다.

      보성에는 양탕집이 여럿 있다. 그중 50년 전통의 '보성양탕'이 맛집으로 통한다. 음식 맛도 좋지만 군청에서 가까운(도보로 5분) 탓에 군청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보성양탕은 보성읍 농협 옆 골목안에 자리한 수수한 2층 집으로 주방에서 손맛을 내는 장금덕씨(64)와 홀 서빙을 책임지는 송기환씨(71)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수한 양탕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장금덕 할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와 지금껏 45년째 양탕을 끓여 왔다. 이를테면 양탕 조리의 달인. 그 전부터 시어머니(작고)가 보성 시장골목에서 양탕을 팔고 있던 터라 요리비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았다.

      맛있는 양탕의 비결은 노린내를 잡는 게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염소부터 잘 골라야 한다. 이 집은 염소를 육질과 노린내를 고려해 40근 이상 나가는 놈(3~4년생 암컷)만을 쓴다. 수컷은 고기가 질긴데다 노린내가 심하고, 1~2년생은 너무 어려 푹 고았을때 살이 금세 익는 탓에 깊은 맛이 덜하다. 대신 성숙한 놈들은 상대적으로 지방층이 두꺼워 고기를 삶으며 기름을 걷어내고 고기를 찢을 때 지방층도 함께 벗겨 내야 한다.

    • ▲ 살코기에 양념과 진국이 골고루 밴 양탕엔 푸짐함이 느껴진다.

      양탕 한 그릇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우선 염소 1마리를 4등분해 마늘, 생강 등을 넣고 큰 솥에 6~7시간을 푹 삶는다. 삶은 고기는 건져 내 15시간 정도 물기를 뺀 후 일일이 손으로 찢어 탕과 수육감으로 구분해 둔다.

      고기를 삶아낸 진한 국물은 흑염소의 진액이 다 우러난 것이다. 여기에 토란대, 머위대, 양파, 대파 등을 넣고 연탄불에 두어 시간 정도 은근하게 끓인다. 간은 소금간(천일염)만 하고, 얼큰 매콤하게 고춧가루를 넣는다.

      투가리에 찢어둔 고기를 한 움큼 담아 국물로 대여섯 차례 가셔낸 뒤 탕으로 낸다. 그래야 식어서 굳은 살코기에 양념과 진국이 골고루 밴다. 걸쭉한 국물 맛은 이 집 양탕의 특징이다. 국이 팔팔 끓을 때 쌀가루를 약간 넣는, 이른바 '집'을 하는 것이 맛의 비결이다. 특히 들깨가루를 쓰지 않는데, 경험상 염소고기와 궁합이 잘맞지 않더라는 것.

    • ▲ 구수하면서도 육개장처럼 칼칼하고 개운한 보성양탕의 단출한 상차림.

      상차림은 의외로 단출하다. 곰삭은 묵은 배추김치와 갓김치, 깍두기, 그리고 양파와 춘장을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시간이 되면 오이겉절이 같은 것도 상에 올린다. 폴폴 김이 나는 양탕을 맛보기에 앞서 빙그레 입가에 웃음을 번지게 하는 것이 있다.

      큼직한 스테인레스 밥그릇이다.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크기다. 장금덕 할머니는 "밥 쪼께 담는 것 맹키로 야박시런 것이 없잖애요?"라며 반문한다. 잘게 썬 대파를 넣기 전에 국물 맛을 보았다. 담박에 진하고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우려했던 노린내 대신 육개장처럼 칼칼한 게 뒤끝도 개운하다.

      장금덕 할머니는 나름의 조리원칙을 세워 두고 있다. 이제는 워낙 힘이 들어 하루 한 두마리 분량의 탕만 끓여 내고 있다. 때문에 이 집에서는 수육을 맘껏 맛볼 수 없다. 염소 한 마리(40근)에서 대략 수육(목살과 가슴살 부위)이 두 접시 분량만 나오기 때문이다. 수육과 국거리를 철저히 구분해 파는 것 또한 변치 않는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50년 한결 같은 맛은 장씨 할머니의 성격에서도 기인한다. 흔히 맛집을 찾아 식재료 구입처를 물으면 대개가 '고향마을 어머니', '직영농장', '손수 새벽시장에서' 등을 운운한다. 하지만 장씨 할머니는 말을 꾸밀 줄 몰랐다. '남의 손을 빌려서 식재료를 구한다'고 주저 없이 답했다. 염소는 40년 단골 업자가 보성, 순천 들녘에서 자란 것들을 거둬다 대 주고 있고, 야채도 보성 미력면에 사는 한 할머니가 수십년째 마련해 준다고 했다.

      결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이 집의 마케팅은 '전국구' 수준이다. "맛있다"는 입소문 덕분에 양탕을 전국적으로 판매한다. 우선 연로하신 부모님께 드린다며 냄비째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보성읍내 단골이 적지 않다. 특히 외지에 사는 보성 출신 새댁들도 만만찮은 고객이다. 임신만 하면 친정어머니들이 다투어 양탕을 주문해 올려 보내기 때문이다. 출향 인사들도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 명절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린다. 때문에 설, 추석 명절에도 문을 열고 있다. 또 가끔은 인근 지역 기관, 기업들의 회식용으로 출장서비스콜까지 받는다.

      이 쯤 하면 보성양탕 집은 재벌이 돼 있어야 맞다. 하지만 여태 벌어 지금 영업 중인 2층 집 한 채 지은 게 고작이란다. 수지가 잘 안 맞는 장사를 오래 하다보니 뒤로 밑졌기 때문이다. 장씨 할머니에 따르면 요즘 흑염소 한 마리(40근 기준)가 40만원, 탕값은 7년째 7000원. 죽기 살기로 팔아서 염소값 주고 나면 볼 장 다 본다는 푸념이다. 지금 물가 수준이면 탕 한 그릇에 1만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는다고 했다.

      장씨 할머니는 "이 짓이 돈은 못 벌고 골병만 들어 자식들에게는 권하지 않고 있다"며 정색을 한다. 우습게 보여도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 특히 양탕은 고기가 일단 국에 들어가면 다시 쓸 수 없어 백반집 처럼 음식순환이 되지 않는게 흠이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밥값 1000원 올리기가 그리 간단치도 않다.

      남들은 "돈 다 벌어 어디다 뒀소, 광주에 빌딩 샀소, 서울에다 샀소?" 속 모르는 질문에 이젠 이골이 났다. 때문에 대꾸도 간단해졌다. 쓴 웃음과 함께 "긍께 말이요. 내가 바본갑소" 라는 말이 대답의 전부다.

      장금덕 할머니가 모처럼 죽는 소리를 늘어 놨지만 45년 밥집으로 얻은 값진 게 있다. 촌에서 자식 5남매를 대학까지 다 가르쳐 제 밥 먹고 살게 해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먹어 주니 고맙고, 덕분에 자식들이 잘 커 줘서 바랄게 없네요.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식당 문 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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