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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따라 맛따라] 의령

by 白馬 2008. 4. 12.

        [산따라 맛따라] 의령

        의령4미의 진수를 맛본다
        칡한우·망개떡·소바(메밀국수)·쇠고기국밥의 명가들

자굴산(堀山)은 자굴산이다. 결코 도굴산이나 사굴산이 아니다. 자굴산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겠다. 산 정수리에 한글로 ‘자굴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는데도 못난(?) 등산객들이 이 표지석 앞에서 ‘도굴산 등산기념’이라는 큰 현수막을 펴놓고 기념사진들을 찍는 무례함을 범하고 있다니 말이다.

자굴산은 의령을 상징하는 지붕이자 진산이다. 의령사람들이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맑은 정기가 배어 있는 위엄있는 산이다. 역사상 숱한 어려움과 전란에서도 의령을 지켰으며, 민족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많은 인물을 배출한 산이기도 하다.

자굴산은 백두산에서 줄기차게 뻗어내려온 큰 산줄기 백두대간 남덕유에서 진양기맥으로 갈려 나와 금원산, 기백산, 황매산을 거쳐 경남땅 한복판에 성문 위의 망루처럼 우뚝 솟아 있다. 자굴산의 자() 자가 성문망대(망루)의 뜻인데도 황당스럽게도 ‘도’와 ‘사’의 다른 음으로도 읽히는 데서 비롯되어 도굴산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자굴산 자락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 그 누구도 자굴산을 도굴산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외지에서 자굴산을 찾아오는 산행버스 허리에 ‘도굴산 산행’을 알리는 현수막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의령의 식자들은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한다.

자굴산은 해발 897m로 비교적 높은 산이지만 산행나들목으로 접근이 쉽다. 의령9경(景)의 제2경으로도 선정되어 있는 자굴산의 봄은 철쭉으로 화려하다. 정상에 오르면 의령군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천황봉과 웅석봉이 손에 잡힐 듯한데, 사방으로 막힘없이 산청과 합천의 황매산과 가야산, 마산의 무학산, 창원의 정병산, 달성의 비슬산, 창녕의 화왕산과 우포늪까지 360도로 조망된다.

지금은 자굴산 북쪽 지척의 거리, 쇠목재에서 동서방향, 백련암쪽과 자굴티재를 잇는 관광순환도로마저 잘 포장된 길로 개통된 터라 등정 후 쇠목재로 하산코스를 잡게 되면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고 시간절약도 되겠다. 설령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이 S자형 순환도로는 멋진 드라이브코스로도 각광 받게 될 것이다.

원래 큰 명산자락에는 큰 인물이 나온다는 바, 자굴산의 의령도 그 예외는 아닌가 보다. 역사적으로는 임진년 왜침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수천의 민중이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곳이 의령이다. 현대사의 큰 인물로는 세계적인 큰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의령 쇠고기국밥의 대명사

종로식당


“야, 이 빌어먹을 놈들아! 느그놈들한테 내 국밥 안팔끼다. 얼른 썩 물러 나거라.”
할머니는 면전의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단정한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들은 대통령을 수행해 온 검식관(檢食官)들과 경호원들이었다. 1978년 12월22일 고 박정희 대통령은 의령읍내 중동리에서 거행된 곽재우장군 유적정화 기념비제막식에 참석했다.


이 날 한 끼 식사를 읍내 시장 안에 있는 종로식당에서 하게 되었고, 며칠 전부터 청와대 관계자들이 이 식당을 찾아왔다. 이것 저것 온갖 귀찮은 주문을 하고 주변을 감시했다. 막상 식사를 장만하는 싯점에서는 할머니의 고유영역인 음식장만에까지 간섭했다. 이에 평소 욕쟁이로 소문이 자자했던 할머니가 화가 나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호통에 수행원들이 숨을 죽였다. 10여 년 전 대통령각하께서 전북도정 시찰을 갔다가 이른 아침 어느 콩나물해장국집 할머니로부터 봉변(?)을 당했던 일을 수행원들은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터다. 박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식탁에 앉아 전주콩나물국밥과 모주 한 잔을 받았는데 할머니는 “워매! 이놈 봐라. 네놈은 어쩜 영락없이 박정희를 닮았네. 그런 의미에서 이 달걀이나 하나 더 쳐 먹어라!”

그러고도 할머니는 아무런 탈 없이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계속했고, 오히려 여러 연관행정관서로부터 더 많은 지원과 보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 멋진 실화다. 젊은 수행원들은 할머니의 비위를 더 이상 거스르면 큰일이라도 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숨을 죽이고 고분고분해졌을 것이다.

종로식당 창업주 이봉순(1915년생·작고) 할머니는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부터 쇠고기국밥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은 5일마다 서는 장날에 시장에다 전(廛)을 펴고 쇠고기국에다 밥을 말아 팔았는데, 소문이 꼬리를 물어 의령 5일장(3일, 8일)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 국밥을 먹기 위해 마산 진주를 위시해 인근 군에서도 찾아왔을 정도라니 그 명성은 알만 하겠다.

지금은 며느리 송영희(47)씨가 맡아 시어머님의 맛을 그대로 내고 있다는 것이 나이 드신 오랜 단골들의 평판이다. 며느리를 식당일에 동참시킨 시어머님은 처음 몇 달을 설거지만 시키더란다. 그 후 밥 짓고 밥 퍼주는 일만 시키기에 야속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설거지와 밥 짓고 밥 퍼주는 일에 익숙해지고서도 지루할 정도의 기간이 흐른 다음에야 국을 끓이는 일을 맡기더라는 것이 며느리는 회상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은 욕이 아니라 손님들은 덕담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는데, 손님들에게는 1인당 소주 한 병 이상은 팔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주문했다가는 “빌어먹을 놈! 술은 술집에 가서 쳐먹어라”는 욕바가지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종로식당(055-573-2785)은 식탁이 펼쳐져 있는 열린 공간에 큰 가마솥을 걸어 놓았다. 손님 누구라도 국 끓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최상급 고기로 먼저 수육을 삶아낸다. 그 육수로 쇠고기국을 끓여내니 탁한 맛이 없다고 한다.

군청 앞, 읍내 중심가에 위치. 본체 70명, 별체(단체손님) 9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규모다. 쇠고기국밥 6,000원. 수육 35,000원.

 


“맛은 보고 가셔야지요”

망개떡
 
의령군에서는 향토음식으로 칡한우, 망개떡, 소바(메밀국수), 쇠고기국밥 네 가지를 대표음식으로 자랑한다. 이들 음식 중 망개떡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먹을 수 없는 의령만의 음식이다.

망개떡은 팥을 충분히 끓여서 진하게 달인 팥소를 자굴산 골짝에서 생산된 멥쌀로 빚은 떡에 넣어서 만든 것으로, 갈매나무과의 낙엽교목인 망개나무 잎으로 감싸서 내놓는다. 망개떡 특유의 쫄깃쫄깃한 맛과 상큼한 망개 잎 향기는 남녀노소 모두의 구미를 돋구는데, 의령의 나이 드신 분들의 추억 속에는 아직도 한겨울밤의 "찹쌀~떡! 망개~떡!"하고 외치며 집앞을 지나가던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망개떡이 지금은 의령의 명품이 되어 의령땅을 밟는 외지사람들이 즐겨찾는 떡이 되었고, 의령군에서는 망개떡이 가장 한국적인 식품으로 그 명성에 걸맞는 의령의 특화식품으로 육성해 나가겠는 방침을 세워 놓았다.

읍내 재래시장 안에 있는 ‘남산떡방앗간(055-573-2422)’이 원조제조원인데, 인근에 있는 ‘낙원떡집(055-574-7979)’ 등 군내에서는 지금 4개 업소가 망개떡을 만들고 있다.

의령군에서는 앞으로 업소수도 10개소 정도로 늘리고 지역특산물 가공사업장 시범생산단지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편,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오색떡과 냉동 망개떡도 새롭게 개발하고, 짧은 유통기한 개선을 위한 기술개발은 물론 특허기술 공유를 위한 생산업체 협의체도 구성하겠다고 했다.


의령칡한우 전문식당

경복궁


의령사람들의 칡한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사육부터 다르다는 의령 칡한우는 우량소만을 골라 자굴산 주위에 흔하게 자생하는 칡과 산야초를 섞어 만든 특수 사료를 먹여 키운다. 소가 자라면서 여느 소들과는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만큼 세계농업기술상을 받은 경력을 가졌고, 전국 우수축산물 브랜드전에 참가하고, 경남 한우 고급육 경진대회에서 최우수 한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군내 30여 농가에서 약 2,000두를 사육하고 있는 칡한우는 숫송아지를 생후 5~6개월에 거세하여 단계별 사양관리기준을 지켜 생산한 1등급 쇠고기로 특허청에 상표등록(제0483461호)을 한 크게 믿음이 가는 고급육이다.

의령 칡한우 전문 식육식당 ‘경복궁(055-573-8000)’은 의령군이 유일하게 지정한 전문업소로 언론매체를 통해 세상에 크게 알려져 있는데, 경복궁에서는 축협에 의뢰, 1등급 이상의 고급육만 공급받는다고 한다.

육질이 단단하고 단백하며 고소한 맛을 내는 생등심과 갈비살(각 150g 14,000원), 그리고 육회(20,000원)는 이 업소에서만 제대로 먹을 수 있기에 업소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충익사(忠翼祠)를 참배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충익사에는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위훈을 기리고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1972년에 건립된 의병탑과 곽재우장군 유적정화기념비, 충의각, 사당, 기념관이 있다.
의령소바(메밀국수)의 대표주자

풀내음
 

의령사람들이 의령의 향토음식으로 내세우는 의령소바의 소바는 메밀의 일본말이다. 그런데도 의령사람들에게는 메밀보다도 소바가 더 익숙하다고 한다. 오래 전 잘 나갔던 한 메밀국수집 간판에 적혔던 소바에서 ‘의령소바’가 연유되었다는 것이다.

의령의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의령소바의 묘미는 얼큰한 국물맛에 있다. 쫄깃쫄깃한 커피색 면발에 쇠고기 장조림을 얹은 특유의 맛이 다른 지역의 메밀국수 맛과는 차별화가 되어 있고, 얼큰한 국물은 애주가들의 속풀이 음식으로도 크게 알려져 있었다.

자굴산 산행나들목이 있는 의령군 가례면 봉두리 복산사 바로 앞쪽에는 의령소바를 대표할 만한 ‘풀내음(055-572-3267)’이 성업 중이다. 점심시간, 읍내에서 이곳까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먹겠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여자손님들이 남자손님들 보다 더 많다니 음식맛은 이 지역에서 인정을 받은 셈이라며 집주인 박성일(54)씨는 즐거워했다. 읍내에서 영업한 지 45년의 전통을 이어온다는 ‘풀내음’은 4년 전 지금의 장소로 버섯지붕으로 멋을 부린 집을 짓고 옮겨 왔다고 한다.

멸치다시(국물)에 소고기장조림을 얹는 것이 기본으로 차려내는 소바는 5,000원. 메밀해물파전과 메밀빈대떡(각 10,000원)도 인기품목으로 매년 4월이면 열리는 전국산악자전거대회 참가자들을 유혹하는 음식이라는 설명이다. 방 7개와 홀에서 손님을 모시는데, 15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주차공간도 넉넉하다.

올해 산악자전거대회는 4월19, 20일 이틀동안 한우산(764m) 일원에서 열린다.
읍내에서는 ‘다시식당(055-573-2514)’과 ‘제일식당(055-573-3267)’에서도 의령소바를 먹을 수 있다.


목도수목원과 일준부채박물관

참으로 이채로운 체험이었다. 자굴산 취재길에 목도수목원과 일준부채박물관을 둘러봤다. 의령군 가례면 괴진리 자굴산 자락 언덕배기에 조성된 수목원과 박물관은 한 원예학도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크나 큰 산물이었다. 가파른 언덕길로 차를 몰고 올랐더니 찻길이 끝나는 지점에 작업복 차림의 한 농부(?)가 혼자서 삽질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농부가 바로 이 위대한 산물을 조성한 장본인, 일준 이일원(一駿 李日元·63) 이사장이었다.

동래가 고향인 그는 그곳 원예고등학교를 나와 건국대로 진학, 원예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의 안내를 받아 수목원과 부채박물관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엄청난 작업을 하셨는데 재정적인 뒷받침은?” 하고 물었더니 되돌아 온 답이 “전기값도 나오지 않습니다. 남들이 다들 미친 짓이라고들 합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는 “아! 이렇게 사는 인생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졌다.

이 수목원과 박물관을 열기 위한 자금은 다른 사업에서 번 것이라는 바 그 다른 사업은 청부(淸富)였고, 산속의 이 일은 낙도(樂道)라는 것이었다. 청부락도. 이 얼마나 값진 인생살이인가!

1만8천 평, 1천2백여 종의 수목이 식재된 수목원 3km의 탐방로와 산책로를 둘러보며 아로마 테라피(향기요법)를 체험하고 부채박물관에서 부채 속에 담긴 인간의 삶과 예술에 취했던 감동은 오랜 시간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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