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대흥사 천년숲길 6km를 걸었다
봄을 찾아 갔다. 급한 성미 이기지 못하고, 더디 오는 봄을 마중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바람의 날이 뭉툭해졌다. 땅끝 해남에 이르고서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 꼬리처럼, 바람이 순해졌다. 봄이 오는 길목에 쪼그리고 앉아, 피어나는 꽃잎을 눈으로 와락 껴안았다. 봄은 땅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특집 ‘봄은 땅끝에서 온다’는 해남의 걷기길과 축제, 먹거리를 맛깔나게 엮었다.

걸을수록 잠 들었다. 소란했던 마음이 쌔근쌔근 가라앉고 있었다. 무던한 동백나무의 짙은 초록, 코가 뻥 뚫리는 것 같은 개운한 공기, 재잘거리는 물소리, 푹신한 야자매트가 있는 숲은 걸을수록 긴장이 풀렸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하염없이 등을 어루만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대흥사 천년숲길, 이름처럼 연륜 있는 나무가 우아한 자태로 전설 몇 개씩 비틀어 가지를 뻗었다. 계곡 따라 이어진 숲이라 습도와 산소가 충분히 몸에 흡수되어서일까. 도란도란 쏟아지는 햇살과 고즈넉함이 도시의 피로를 증발시키는 걸까. 걸을수록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는 숲, 봄이 불어오는 길목에 섰다.

코코넛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 친환경 양탄자가 깔린 길을 걸으면, 동백나무 빽빽히 우거진 편안한 정원에 닿는다.
“순진했던 시절은 끝났다”며, 바닥에 떨어진 빨간 동백꽃. 실연과 치욕이 찰나의 쓰나미처럼 지나고, 추락한 첫사랑 순정. “툭, 툭” 떨어지는 동백꽃의 붉은 비명을 성장통이라며 묵묵히 바라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바닥에 떨어진 빨간 동백을 보석인양 귀하게 줍는 이는 젊은 아웃도어 마니아 윤도란(@y__doran), 조미옥(miok_jo_)씨. 꽃과 함께 굳었던 얼굴이 환해진다. 아는지 모르는지 봄까치꽃이 파란 망울을 천연덕스럽게 터뜨리고, 아무렇지 않게 넓고 깊은 숲은 봄이 산란하는 곳으로 걸음을 이끈다.

운동화를 신어도, 등산화를 신어도 어색하지 않은 가벼운 산길이 편안하게 이어진다.

초록으로 가득한 땅끝의 숲길. 데크와 흙길이 번갈아 나오며, 각진 도시인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두륜산 대흥사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아웃도어 마니아 윤도란(왼쪽), 조미옥씨가 물 소리를 들으며 봄날의 여유를 즐긴다.
두륜산의 맥박이 고스란히 숲길에 깃든 걸까. 걸을수록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숲길의 신비로움. 숲이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두륜의 무해한 상상력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허공을 채운다. 서산대사와 초의선사가 사랑했던 숲답다. 서산대사는 숨을 거두기 전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옷과 공양 그릇을 해남으로 보내라. 그곳에는 두륜산 대흥사가 있는데 남쪽에는 달마산이, 북쪽에는 월출산이 보이고, 동쪽에는 천관산, 서쪽에는 선은산이 있어 참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서산대사와 초의선사가 사랑한 대흥사는 두륜산 능선이 에워싼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명당으로 손꼽힌다.

대흥사 앞마당에서 본 두륜산. 부처가 합장한 채로 누워 있는 형상이라 전한다. 오른쪽 바위봉우리인 두륜봉이 부처의 누운 옆 얼굴이다.
삼나무, 편백나무 있는 숲은 ‘단순명료’하다. 직선으로 뜻을 펼치며,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곧은 자세와 정갈한 공기가 숲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어 놓았다. 초의선사의 제자들인 양 참선하듯 고요 속으로 침전하는 숲은, 걸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물소리, 새소리가 봄의 희망을 연주한다. 걸음 멈추고 가만히 있으면, “뽕” 꽃잎 틔우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숲길을 지나 대흥사 쪽으로 간다. 누워 있는 부처의 모습이라는 두륜산 곁으로 다가간다. 세상을 잠깐 물려 놓고, 수묵화 속으로 간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봄이 와서 휘감긴다. 해남 사람들 모르게, 봄을 한 움큼씩 주머니에 눌러 담는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매표소~주차장~대흥사~주차장~매표소
산행 거리 6km 산행 시간 1시간 40분
산행난이도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쉬움)

숲길 가이드

대흥사는 서산대사가 ‘1만 년은 허물어지지 않을 곳’이라고 평한 명찰이다. 우리나라 다도문화를 중흥시킨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만날 수 있으며, 두 나무의 뿌리가 이어져 ‘사랑나무’란 별명이 있는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연리근도 볼 수 있다. 대흥사 입구의 식당가 주차장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다. 차단기가 있어 주차료를 낸 차량만 진입할 수 있다. 매표소 옆으로 천년숲길이 시작된다.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발 디딤이 푹신하고 완만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지로 제격이다. 산길은 간혹 갈라지는데 가다보면 결국 만나게 된다.
오를 때는 왼쪽의 계곡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미를 즐기고, 돌아갈 때는 산비탈 길을 따르면 빠르게 내려설 수 있다. 야자매트와 흙길, 데크길이 이어지며, 동백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삼나무, 편백나무가 풍성해 삼림욕을 겸한 산책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숲길 1.5km를 지나면 상단 주차장이 있고, 여기서 대흥사로 이어진 길도 운치 있다. 도로 곁의 동백나무 짙은 숲길과 계곡 물소리길이 있어 몸과 마음의 피로를 차분히 풀어 준다. 대흥사 마당에 들어서면 두륜산 능선이 보이는데, 노승봉~가련봉~두륜봉으로 이어진 모습이 참선하는 부처상이 누워 있는 모습이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 형상이다.
대흥사 입구와 경내의 연리근 옆에 카페가 있어 커피나 차를 마시며, 초의선사가 전한 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편도 3km, 왕복 6km의 완만하고 쉬운 산책길이지만, 완성도는 높다. 고승들이 사랑한 숲길답게 아늑하고, 아름다워 심신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대흥사는 역사 기행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찾아가는 길
해남 읍내에서 대흥사행 버스가 1시간 또는 30분 간격으로 운행(06:30~19:40)한다. 30분 걸린다. 대흥사 매표소 입구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하고 걷는다. 대흥사 상단 주차장은 하루 주차료 3,000원을 받는다. 매표소 입구에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 늘어서 있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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