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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악어 등껍질 같은 빙벽…아무도 정상 못밟은 산 [네팔 캄봉피크]

by 白馬 2025. 3. 22.

 

부산 등반가들의 네팔 6,570m봉 세계 초등 실패기

 

해발 4,900m 지점, 빙하로 덮인 벽으로 진입하는 이형윤 대장.

 

처음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사진이나, 생각에서 이어졌다. 첫 번째 고산 등반인 로체(8,516m) 남벽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원정이었다. 스케일이 다른 새로운 산에 대한 궁금증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는 기억 속 사진 한 장을 형들에게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파키스탄 십튼 스파이어(5,950m) 동벽을 올랐고, 기억에 남는 ‘인생 등반’이 되었다. 다음은 마칼루(8,463m) 등반이었다. 스스로 어떤 등반이 될지 무척 궁금했으나, 역시 기진맥진해 기어서 올랐다.

 

D-100 캄봉피크(6,570m) 등반 

나의 과거 등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번 산을 소개하겠다. 이번 캄봉피크Kambong Peak(6,570m)는 구르자히말 등반으로 시작된 곳이다. 김창호 대장과 서성호·임일진 대원의 마지막 산이기도 하다. 정찰로 생각했던 것이 다시 등반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이 변해 여기까지 왔다. 

더 멀리 기억을 돌려보면 자진해서 들어간 등산부와 고등학교 기숙사, 아침 훈련이라고 뛰었던 게 정말 힘들고 싫었다. 그래서 고참이 되었을 땐 당연히 러닝은 없었다. 그 후 10년 뒤 흰 산을 가기 위해 뛰기 시작했고, 지금도 뛰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낙석과 흙으로 뒤섞인 빙하지대(5,100m)를 올라오는 이형윤 대장. 아스라히 펼쳐진 산그리메가 그림처럼 펼쳐지지만 고산증세와 낙석, 촉박한 시간으로 마음이 초조하다.

 

D-3 늦고 어두운 밤 

두렵다. 이 모든 걸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또 다시 생각이 되돌아간다. 나는 왜 가기로 한 건지, 무엇을 자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다. 처음 등반을 결심했을 때의 나도 나였고, 두려움에 떠는 지금의 나도 나다. 맡기자. 스스로에게.

 

등반 1일차 환승이 이렇게 힘들었나

부산에서 버스 타고 출발한 지 24시간이다. 힘들다. 식은땀이 난다. 아… 초절전 모드로 들어가야겠다. 그렇게 도착한 2년 만의 네팔 카트만두는 심야의 어둠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항상 많은 차, 사람, 경적 소리. 기억은 빠른 익숙함을 불러온다. 이렇게 첫 날 밤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동안 진행된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다. 

빙하와 크레바스가 도처에 깔린 캠프1(5,200m)에서 아침을 맞는다.

 

네팔 에이전시로 ‘8K’가 있다. 에이전시란 현지 대행사로, 공항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여정을 도와준다. 또한 네팔 관광청과 관련된 등반 허가를 받는 일도 한다. 

다른 한 팀은 쿡Cook(요리사)으로 구성된 멤버이다. 그리고 클라이밍팀. 이 세 팀이 부드럽게 일정에 맞도록 하는 것이 오늘 해야 할 일이다. 8K는 나름 잘한다는 회사이고, 쿡팀은 말이 잘 안 통한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네팔인을 쓰면 어떻겠냐고 하지만, 비록 말은 안 통해도 이들과 그동안 쌓아왔던 관계가 좋았다. 자고 나면 바뀔지라도.

해발 4,800m에 자리잡은 ABC2(두 번째 전진캠프)에서의 석양.

 

등반 2일차 혼돈스럽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길이 고속도로 공사 중이다. 한 차선을 막으며 공사하니 그야말로 카오스다. 그 사이를 오토바이가 악어새인양 지저귀며 빠져나가고, 지프도 큰 악어새마냥 놀랍게도 사이로 달려간다. 대혼돈의 도로도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그 와중에 우리는 8시간을 목이 꺾일 듯 헤드뱅잉을 하며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등반 3일차 벽을 마주보다

전체적으로 아주 마른 벽이다. 2007년 꽝데 북벽 등반에서처럼, 손도 대지 못할 만큼 시커먼 바위 속살을 보여 준다. 다행히 우리의 벽은 동벽이다.

전체적으로 넓은 쿨와르(벽의 계곡 역할을 하는 패인 곳)는 최근 4~5년 동안 적설량이 극히 적었음을 보여 준다. 오랫동안 얼어붙은 상태로 균열이 많다. 벽에 가깝게 다가가다 보면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변화가 있길 바란다. 

고된 ABC1(전진캠프)까지 등반 후 식사를 하는 네팔 쿡팀.

 

새벽 5시, 포카라에서 다라방까지 달려 저녁 8시 30분에 도착했다. 포카라에서 지프로 갈아타고 왔다. 벽을 깎아내어 벼랑에 길을 만드느라 바닥의 돌은 날카로웠다. 타이어를 찢을 듯했고, 패여 나간 길은 차를 좌우로 넘길 듯이 흔들어댔다.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길의 끝은 무디이다. 지금까지와 달리 이곳은 집들이 가지런했다. 배구하는 청년들도 인상적이다. 내일부터 캐러밴(BC까지 걸어가는 것) 할 짐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쿡팀과 그동안의 경비 계산을 했다. 계산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불편한 내 마음을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캐러밴을 상의했다. 앞으로 4일의 등반 시간이 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녁 9시, 눈이 감긴다. 

악어의 이빨, 또는 악어의 등껍질 같은 빙하지대를 빠져나오는 이형윤 대장.

 

등반 5일차 모든 것이 현실로

새로운 곳을 가는 것이 이런 것인가? 사실 지금까지의 등반은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강가푸르나 등반을 제외하고 말이다. 가까워 보이는 벽은 항상 깊은 계곡 너머에 있다. 넘고 넘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어제 하루를 마무리 할 시간에 맞닥뜨린 600m의 풀만 무성한 벽 같은 산은, 사천왕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그래서 마지막 마을에서 2명의 포터를 추가로 고용했다. 그래도 다음날 그들이 오지 않을까 속으로 노심초사했다. 

우선 대원들과 2명의 스태프가 같이 출발했다. 100m를 오른 후 한 스태프가 저 멀리 포터들이 마을에서 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어제 짐이 무거워 꽤 고생했는데 오늘은 가능한 벽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그들의 도움이 정말 절실했다. 

고도 1,800m에서 2,400m로 올라섰을 때, 캄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살짝 보였다. 만약 중간에 큰 계곡으로 길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이번 등반은 이걸로 마무리해야 할 판이었다. 3,000m대의 정글을 거쳐 해발 3,400m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저녁식사로 먹은 건조식품은 마치 돌을 씹는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인가. 지금까지 너무 잘 풀렸고 앞으로의 벽도, 그곳까지의 어프로치도 좋다. 식사 양을 절반으로 조정해야겠다. 아~ 나른한 저녁 9시30분을 지나는 중이다. 

 

등반 7일차 2단 로켓 추진체 분리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베이스캠프(3,400m)까지 오는 과정은 로켓을 발사대에 세우는 과정이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여기서는 포터 충원을 뜻한다). 그래서 발사대까지 무사히 세웠다면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로켓 1단에는 이형윤·나, 2단에는 현지 주민 프레임, 10여 년간 함께한 짜우다리, 그리고 사촌인 두르바. 

벽 가까이로 다가가기 위해 출발했다. 대기의 성층권을 통과하듯 길은 양과 염소가 다니는 희미한 흔적만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짧게 숨만 고르고선, 끊임없이 올랐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캄봉피크가 보이는 ABC1에 도착했다. 포터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식사와 차로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날 오전 8시 2차 추진체는 분리되었다. 이젠 우리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올랐다. 3시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던 지점은 의외로 빠르게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 구간이 있었다. 마치 끝없이 이어진 ‘천국의 계단’ 같았다. 오전 10시를 지나고, 정오를 지나도 벽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3일 만에 고도를 3,000m 가까이 올리다 보니 몸은 무겁고 발걸음은 더뎠다. 

오후 2시, 목표했던 빙하 위에 도착하진 못했지만 지금 우리 컨디션으로는 재정비가 필요했다. 텐트 사이트를 구축하고 빙하물을 받고 장비를 정리했다. 오후 5시, 이제 못 다한 기록을 한다. 4,800m의 ABC2는 바람이 차갑다. 텐트로 들어가야겠다. 좌우에서 낙석이 떨어진다. 제발 낙석이 우리를 피해 가기를, 옴마니반메홈. 

천길 낭떠러지를 따라 이어진 히든밸리의 접근로.

 

등반 9일차 가스로 뒤덮인 악어의 등껍질 빙벽

저녁 8시, 오늘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 오후 2시 넘은 시각, 직벽의 빙하를 넘어가던 중 고도를 더 높이면 불확실한 직벽에 캠프를 설치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지금 이 부근이 안정적이라 캠프를 설치하자’는 의견에 다시 클라이밍다운(등반으로 벽을 내려가는 것)해서 해발 5,240m 지점에서 등반을 마무리했다. 

점심 이후, 가스가 차올라 앞으로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게 곧 우리 모습이었다. 이런 빙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다. 뭐랄까 5년 굶은 악어의 등껍질이랄까? 빙하는 썩은 얼음이었고, 청빙이었다. 그 위에 바위와 흙이 섞여 있었다. 악어의 등껍질보다 더 삐죽 삐죽 솟아오른 얼음은 창날같이 벽을 두르고 있었다. 형윤 형은 빙벽용 아이젠, 나는 설벽용 아이젠을 가지고 갔다. 처음 아이스링크를 가면 미끄러질까봐 엄청 조심하는데, 딱 오늘 내 모습이었다. 빙하를 올라서기 위해 얼음 밑으로 올라 피톤과 너트로 확보했다. 이제 빙하의 콧등을 오를 차례다. 

“형, 가실래요?”하고 물었다. 나는 형이 진짜 갈 줄 몰랐다. 그렇게 오른 형의 확보물을 보니 처음 것은 버드빅,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스크루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목이 따갑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남아 있는 침을 삼키고 이어가 본다. 

나머지는 큰 이슈가 없다. 한걸음 한걸음 적절한 동작으로 우주의 기운을 모아, 옮길 뿐이다. 그러다 오후 1시쯤 갑자기 냉기가 들어 다운재킷을 꺼내 입었다. 그러다 오후 2시 넘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텐트 설치 후 빙하의 얼음을 녹여 식수를 만드니 저녁 7시다. 베이스캠프에 무전을 해서 “내일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에게도 직장과 가족이 있다. 쪼개어 온 일정상 귀국까지 하루의 등반일이 남았다. 낙석과 낙빙, 뼈까지 시린 바람, 장님으로 만드는 가스, 빠른 등반. 이 모든 것들로 지쳐 있었다. 몇 백m를 더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형윤 형과 나는 안전한 하산을 선택했다. 그렇게 등반이 끝났다. 

 

원정대 정보

원정대명 2025 in memory of jihoon& hyunok expedition

대상지 kambong peak(6,570m)

대장 이형윤(대륙산악회)

대원 박정용(부산빌라알파인클럽,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김인영(부산클라이밍센터)

결과 해발 5,240m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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