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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이 땅의 휴머니즘 발상지 [경상도의 숨은 명산 경주 구미산]

by 白馬 2024. 12. 21.

들녘에서 바라본 구미산.

 

입동이 훌쩍 지났지만 산은 아직도 형형색색 붉게 물드는 가을이다. 두 개의 계절만큼 겨울과 가을 사이에서 방황하듯 날마다 겹쳐 있다. 기온은 20℃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두텁고 얇은 옷을 번갈아 입는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겨울에 단풍 드는 산, 늦게까지 유난히 더운 계절 탓에 생태계의 시계도 그만큼 늦춰졌다. 잃어버린 계절 되찾을 수 있을까?

노란 은행나무 잎이 깔린 아침 9시, 용담정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구미산 일대는 만산홍엽滿山紅葉. 포덕문 안쪽으로 안개가 서려 신비감을 준다. 일찌감치 차를 댄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하며 산을 오른다. 여기서 구미산 정상까지 2.7km 거리다. 

등산로 입구, 용담정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 산길에 둥굴레·사초·구절초. 노랗게 물든 생강나무, 신갈나무와 숨 막히도록 빨간 붉나무가 확실히 돋보인다. 싸리·청미래덩굴·진달래·철쭉·작살·비목·노간주·소나무.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뭇잎, 바삭바삭 낙엽을 밟으며 덧없는 삶을 느껴본다. 

구미산은 해발 594m, 경주국립공원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건천읍·서면에 걸쳐 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용담정은 동학의 발상지, 크고 높은 산은 아니지만 민족종교의 정기 어린 위대한 산이다. 신라 때는 이산伊山, 개비산皆比山이라 했으며, 삼국유사에 손씨 시조 구례마俱禮馬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곳이라 한다.

 산꼭대기 바위가 거북처럼 보여서 구무산, 옛날 홍수가 났을 때 거북이 꼬리만큼 남은 산이라 구미산龜尾山으로 불렸다.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 동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경주 금오산을 남산, 구미산은 서산이라 했다. 주차장에서 올라 시계방향으로 능선 갈림길, 정상을 지나 박달재 갈림길 거쳐 되돌아오는 데 대략 5km, 3시간 정도, 동학 성지 용담정까지 둘러보면 7km, 4시간 이상 걸린다.

 

 

겨울 산의 단풍과 회잎나무, 쥐똥나무

노란 물감을 홀로 뒤집어쓴 생강나무, 북유럽 차가운 무늬처럼 연록·파랑·자줏빛 세련된 작살나무, 연노랑 비목나무, 당단풍·붉나무는 짙붉게 물들었다. 검은 씨앗을 매단 쥐똥나무는 물들기 싫은지 한결같고, 코르크 날개 없는 회잎나무, 각자의 단풍은 모양과 빛깔이 서로 다르다. 회잎나무는 화살나무에 비해 가지에 코르크질 날개가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구별한다. 화살나무의 성가신 코르크 날개는 동물들이 새순을 좋아하므로 방어하려는 것이다. 뜯어 먹히지 않을 만큼 4~5년 지나 잎이 억세지면 코르크가 없어지기 때문에 회잎나무와 헷갈릴 수 있다. 어린잎은 차, 나물로 먹고 코르크는 약재다. 

 

구미산 자락 용담정.

 

9시 30분, 이마에 땀방울 송골송골 맺혀 귀밑으로 흐른다. 산은 고요하지만 자동차 질주 소리, 낙엽 쌓인 숲에는 나방 같은 나비들이 무리 지어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8부 능선 지그재그 오르막 산길마다 신갈나무 나뭇잎은 길을 덮었다. 능선 쉼터에서 숨을 고르는데 9시 45분(구미산 정상 1.9·용담정 주차장 0.8km), 지금부터 길고 완만한 능선길이다. 

산꼭대기 나무들, 저마다의 색깔로 단풍이 들었는데 싸리나무 이파리는 바람에 시달렸는지 물들지 못하고 안타깝게 모두 오그라들었다. 호젓한 소나무 무덤과 바윗길, 낙엽 덮인 산에 먹이를 찾는 다람쥐는 두리번거리다 쏜살같이 달아난다. 금방 산토끼, 멧돼지들이 불쑥 나올 것 같은 덤불이 군데군데 보인다. 흐린 하늘 아래 새소리 대신 저 멀리 자동차 질주 소리, 일행의 가쁜 숨소리, 어느덧 오른쪽 산등성이 가깝다. 

단풍·바위·산길·낙엽·나무·하늘, 울긋불긋 온갖 색깔로 칠해진 이 산의 능선은 쥐똥나무 군락지다. 대궁이 굵고 키가 3m 넘는 것이 많다. 가을에 열리는 검은색 열매가 꼭 쥐똥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 가지가 Y자로 생겨 어린 시절에 새총을 만들었다. 가지를 꺾어 양쪽으로 휘어 묶은 뒤 따뜻한 재에 덮어두었다 어느 정도 지나 휜 가지가 단단해지면 고무줄을 묶어 썼다. 새총나무라 불렀다. 낙엽이 수북 쌓인 능선길 사각사각 밟히는 소리, 낙엽은 돌과 바위와 오솔길 덮고 있다. 

“낙엽은 여인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는데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밑으로 구절초, 개족도리풀은 아직도 파릇파릇 생기를 잃지 않았고 작살나무 보랏빛 열매도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이 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10시 반경 바위 지대는 우슬·개족도리풀, 신갈·비목·쥐똥·생강·싸리·소나무. 빨갛게 물든 회잎나무는 대궁이 굵고 키도 3~4m 된다. 10시 45분, 바위와 돌탑이 지키는 해발 594m 구미산 정상(주차장 2.1km·박달재 0.5km·주차장 2.7km). 어느 해 여름에 왔을 때는 사방이 막혀 답답했는데 오늘은 시원하게 보인다. 멀리 어림산(510m)·금곡산(521m)·금욕산(477m)·황수등산(305m)·안태봉(337m)·운제산(480m), 그 아래 남사저수지, 수운 최제우 생가 터, 용담정이다. 

 

 

최제우와 동학 천도교

최제우崔濟愚(1824~1864) 선생은 경주 현곡 가정리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호는 수운水雲,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전국을 유랑하며 유불선·서학·무속·비기도참 등 다양한 사상을 접했다. 서세동점, 삼정문란에서 고통 받는 참담한 민중 생활을 체험했다. 이 무렵 열강의 침투로 민족의식이 고취되자 36세 때 고향 용담으로 돌아와 도를 깨치고 ‘용담유사’를 썼다. 1860년 천주교 서학西學에 맞서 유·불·선을 아우르는 민족종교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근본은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인간 평등 주장으로 핍박당하던 백성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나 효수형을 당한다.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었지만 동학 농민 전쟁 중 한양으로 압송되어 교수형으로 죽었다. 손병희가 3대 교주가 되어 천도교로 바꾼다. 민족대표 33인의 리더로 3·1운동을 주도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소하자마자 곧바로 사망했다. 

 

수운 최제우 동상.

 

정상 표석 앞에 앉아 멀리 바라보며 목을 축인다. 물·음료수·초콜릿·과일·과자·사탕 등 많이도 가져왔다. 오늘 산행에 일행이 된 ‘전 선생님’이 준비해 온 것이다. 철두철미한 성품을 알았는지 하늘의 구름도 이젠 말끔해졌다. 15분쯤 쉬었다 일어선다. 불과 10분 거리, 박달재 갈림길(용담정 주차장 1.6·구미산 정상 0.5km)에 닿는다. 11시 10분, 박달재에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한 신갈나무 군락지 내리막인데 낙엽까지 덮여 있어 위험한 구간이다. 

 

구미산 정상, 멀리 동해의 운제산까지 보인다.

 

당단풍나무는 빨갛게 물들어 걸음을 더 느리게 하고 단풍에 젖은 듯 붉은 점퍼마저 물이 뚝뚝 듣는다. 온갖 색깔로 칠해진 가을 같은 겨울 산, 비바람이 몰아치면 순식간에 모두 떨어질 것이다. 올해 마지막 단풍 구경이라 생각하니 낙엽에 미끄러워도 즐겁다. 11시 20분, 새로 만든 나무 난간대를 붙잡고 내려가니 한결 수월하다. 일행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몇 번씩 미끄러진다. 10분쯤 더 내려가서 홀로 선 물박달나무를 만나고 이제 거의 내려온 듯하다. 이 산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많다. 물푸레·노린재·쪽동백·때죽·노간주·굴피·상수리·잣·물오리·신갈·소나무. 낙엽 쌓인 산길, 지루하다고 느끼는데 몇 개의 묘지를 지나 소나무 군락지에 이르러 편한 길, 어느덧 개울을 건너고 정오 무렵 용담정에 되돌아왔다. 4.8km, 3시간 정도 걸렸다.

낙엽 쌓인 숲길.

 

숲길 따라 걷는 용담정, 물 위의 단풍

일행들은 곧바로 용담정으로 간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며 어지러운 19세기 세도정치로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핍박받던 민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최제우 선생 동상에서 긴 숲길을 따라 간다. 호젓한 개울에서 흐르는 물소리, 떨어진 갈잎의 바삭거림을 느끼며 걷는다. 용담정과 용추각 앞으로 떨어지는 물길에 단풍이 절정이다. 세 분의 교주 모두 순교하고 폐허가 된 이곳은 ‘대한민국은 천도교에 큰 빚을 졌다’던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1975년 10월 현재의 용담정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편액 글을 직접 썼다고 한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을 표방한 동학 천도교는 링컨에 앞서 노예 해방을 실천했고 갑오농민전쟁의 동학농민운동(1894년), 3.1독립운동(1919년), 남북통일운동(1948년) 등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섰다. 천도교 교인들은 맞절하며 서로를 동덕同德이라 부른다. 동덕여대가 미션스쿨Mission School로 설립되고 1920년대 신도가 300만 명이었으나 현재는 10만 명 정도다. 아침 일찍 차를 댄 사람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기서 풀을 깎으며 나무를 만지고 있다. 

 

용담정 숲길.

 

바위에 앉아 잠시 눈 감고 귀 기울여 본다. 물소리, 바람 소리, 하늘의 소리는 들을 수 없으니 정성이 부족한 탓이리라. 오전 내내 흐리던 용담정 숲에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들고 오색단풍은 색종이처럼 물 위에 풀풀 내려앉는다. 

 

산행길잡이

용담정 주차장(등산 기점) ~ 능선 쉼터 ~ 바위 지대 ~ 구미산 정상 ~ 박달재 갈림길 ~ 신갈나무 급경사지 ~ 소나무지대 묘지 ~ 용담정 주차장(원점회귀) 

※ 대략 5km, 3시간 소요, 용담정까지 둘러보면 7km, 4시간쯤 걸린다. 주차장에 화장실 있음.

 

교통

고속도로 
서울에서 → 경부고속도로(건천 IC), 부산에서 → 경부고속도로(경주 IC), 
포항에서 → 대구포항고속도로(서포항 IC), 대구포항고속도로(포항 IC)
※ 내비게이션 → 경북 경주시 현곡면 용담정길 135(용담정 주차장).

 

숙식

경주 시내 다양한 식당과 호텔, 여관 등이 많음.

 

주변 볼거리 

경주박물관, 황리단길, 첨성대, 경주세계엑스포, 보문관광단지,  불국사, 동리목월문학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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