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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대학산악부 하계훈련] 무서워 덜덜 떨던 23세 여대생, 산악인으로 거듭나다

by 白馬 2024. 10. 9.

 

동아대산악부 5박 6일 하계 훈련기

 

벽은 하나. 매달린 사람은 여럿. 등반 공장 가동.
 

“맴! 매앰! 매앰!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우렁찬 매미 소리가 쉴 새 없이 귓전을 맴돈다. 또 하나는 배낭에서 끝없이 울리는 폭염 경보문자, 나머지 하나는 우리 주변을 짜증나게 맴돌며 윙윙거리는 모기소리이다. 셋 다 무더운 날씨를 대변하는 일기예보다. 더불어 물과 풀이 끈적하게 섞인 축축한 산 내음이 코밑을 스치며 본격적인 한여름을 알린다. 

첫날 대둔산 ‘새천년 리지’ 가는 길, 더위와 합세한 여러 가지 공세에 투지가 조금 꺾였다. 숙소인 대둔산장에서 나오자마자 부원들마다 “덥다!”하는 소리가 제일 먼저 나왔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앞으로의 5박 6일이 걱정된다.

 

대학 산악부의 꽃이라는 장기 하계 등반을 위해 6명의 부원들이 전북 완주 대둔산과 천등산을 찾았다. 1학기 동안 갈고 닦은 등반 실력을 여물게 할 최적의 장소다. 우리는 첫 등반지로 비교적 쉬운 난이도인 대둔산 ’새천년 리지’를 낙점했다. 인터넷상의 난이도만 철석같이 믿고,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 채 말이다. 

 

리지Ridge란 능선을 잇는 암릉을 이르는 말로, 암릉의 형태상 암벽등반뿐만 아니라 하강과 워킹을 반복하는 등반이다. 한 피치로 끝나는 보통의 하드프리 등반과 비교하면 변수가 많고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부원들 간의 의사소통과 정확한 등반 시스템을 통한 안전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주관적으로 평가한 나의 실력은 리지 새내기이지만, 오늘은 가장 먼저 바위를 오르는 선등자로 뽑혔다. 전날 밤부터 ‘혹시 추락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오기 전 부산의 무명 리지에서 여러 번 연습했지만, 아직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더구나 첫 번째 시작 바위인 1피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위가 대단히 크고 위압감이 들었다. 커다란 광장 한가운데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다. 한 피치당 길이가 40m에 육박했다. 언제 끝까지 올라가나 한탄하며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상단에서 후등자 확보를 하는 재학생 여정윤 회장(왼쪽), 서우람 부원. “재영아! 올라오려면 멀었니”라고 외치며 등반을 독려하고 있다.

 

클라이밍은 전신운동이다. 팔로 당기고 다리로 일어서고 배로 중심을 잡는 역동적인 동작이 대부분이라 안 쓰이는 근육이 없다. 하물며 발가락 근육, 손가락 마디 끝의 근육까지 모조리 쓰인다. 그러나 가장 많이 쓰이는 근육은 심장인 것 같다. “쿵쾅! 쿵쾅!”하며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내가 살아 있음을, 심장이 존재함을 온몸에 알린다. 

 

턱을 밟고 일어서서 1피치가 끝난 줄 알았건만, 작은 창고만 한 오버행 바위가 막고 있다. 산꼭대기 평평한 면에 흔들바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만 같다. 막막했다. 저 아래 나의 안전을 책임지는 확보자도 바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캠(바위에 설치하는 확보물)만 박고 올라가려니 미칠 지경이다. 선등자는 무조건 올라가야 하므로 내려갈 수도 없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그래도 앞 조 선등자인 정호가 먼저 올라갔으니, 나를 믿는 것이 아닌, 동기 정호가 갔다는 사실을 믿고 올라갔다. 심장은 더욱 요동치며 곧 튀어나올 기세로 머리끝까지 두드렸다. 2m 상간에 캠을 두 개 더 설치하며 올라갔다. 

새내기 선등자로, 아직 캠을 다루는 법이 숙달되지 않았기에 바위틈 크기에 맞는 캠을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팔 근육이 점차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바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억겁의 시간을 보낸 듯하다. 긴장해서 온몸이 차갑게 식느라 더위도 가실쯤, “수지야! 오른쪽으로 와!”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등으로 리지를 오르는 졸업생 정광호 선배.

 

위에서 나를 부르는 정호의 목소리에 아득히 떠나갈 뻔했던 정신줄을 겨우 챙겨 바위를 움켜쥔 손끝으로 되돌려 놓았다. 오늘 정호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다음 동작부터는 나를 믿고 정호의 지시대로 발과 손을 옮기며 간신히 안착했다. 후들거렸던 팔다리와 심장박동이 조금씩 점잖아진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에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를 놓지 않으려 애쓴 바람에 손바닥이 화끈거리다 못해 까슬까슬하다.

 

개념도에서 보았던 난이도와는 무관하게, 아직 나의 간이 난이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간덩이가 아주 소심하다는 이야기다. 발목에 두려움의 추가 매달려 있는 것만 같다. 원래 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제껏 20m 언저리의 비교적 작은 바위에만 올라왔기 때문이다. 

 

2피치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나름 대비한다고 하계 훈련 전, 이곳저곳의 바위를 올랐지만 실전에서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하물며 우리 중 귀여운 막내인 재영이가 전신에 매달린 두려움에 잠식되어 등반 내내 본연의 발랄함을 잃었다. 바위에 꼼짝없이 갇힌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해줄 수 있는 것이 응원밖에 없어 미안했다. 

 

2피치 종료 지점 언덕에 모두 모였다. 어찌어찌 올라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으니 기색이 말이 아니다. 시간도 예상시간을 웃돈 지 한참이다. 우리는 고작 2피치에서 하강을 결정했다. 퇴각이다. 

다들 애써 웃지만, 자조적인 웃음임을 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리지였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생각의 여지를 남겨준 리지가 되었다. ‘무엇이든 상대적인 거니까…’ 하며 자기 위로를 하고 있는데, 먼저 하강하고도 남았을 동기 둘이 소란이다. 

 

폭염의 날씨에 여러 피치를 등반하느라 지친 동아대산악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강 시스템 설치에 동기인 정윤이와 정호가 옥신각신한다. 나머지 부원들과 그들을 바라보며 “푸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안전을 한 번 더 확인하고선 덤덤하게 하강을 마쳤다. 옥신각신한 끝에 결론은 산악부 회장이자 동기인 정윤이가 맞았다. 나와 정호, 정윤이는 동기이지만 정윤이가 시스템에 가장 해박하니 당연한 결과이다.

하강을 완료하니 이미 해는 집으로 가버린 지 오래다. 랜턴을 찾으려 가방을 뒤적이는 와중 저 멀리서 “다~ 우악~~~~!”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이 내린 깜깜한 산 속, 동아대 산악부의 콜 사인이 나무를 타고 메아리쳐 울린다. 다들 하산길을 걱정하는데 콜 사인 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안심한다. 

소리의 주인은 산악부 OB 선배이자 우리 산악부의 자상한 대장님 같은 존재인 조벽래 선배다. 어찌나 반갑던지, 산에서의 마중은 인천공항 출국장에 마중 나온 오랜 연인을 마주하는 것만큼 반갑고 기쁘다. 선배님은 저 멀리 도로가에서 하강하는 우리를 보고 걱정스러웠는지 산길을 1시간 동안 올라왔다. 만나자마자 배낭에서 우르르 쏟아낸 물과 간식! 선배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더욱 감사했다. 한결 마음의 시름을 덜어내고 서로 의지하며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암봉 위에서 천등산 풍경을 내려다보는 졸업생 정광호 선배.

 

둘째 날부터 조벽래 선배를 포함한 여러 졸업생 선배님(광호, 태웅, 행순 선배)들이 합류해 함께 등반했다. 어찌 보면 학과 교수님들보다 더 자주 뵙고 함께 밥 먹고 등반했기에 늘 반갑고 감사하다.

전날 ‘새천년 리지’에서 씁쓸한 패배감을 맛본 우리는 조금 더 쉬운 리지를 선택했다. 천등산 ‘처음처럼’ 리지를 찾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선등을 서게 되었다. 선배님들이 뒤에서 봐주는 것만으로도 첫날만큼 무섭지 않았다. 

선배님들 덕분에 확실히 등반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었다. 엉망으로 똘똘 뭉쳤던 어제의 우리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미숙하지만, 조금 더 유연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사람까지 등반을 마친 후 언덕에 모인 부원들을 보니, 어제의 침울했던 하강 직전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웃고 있었다. 

‘처음처럼’은 마지막 피치가 가장 높은 난이도다. 수직으로 치솟은 바위의 높은 고도감이 무서웠지만, 동시에 몸을 활용한 다양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사실 무서우니 재미가 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오토바이 탄 듯 다리가 덜덜 떨리는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성취감을 맛본 이상, 이미 등반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을 넘어서기로 하고, 등반과 호흡에 집중한다. 매 순간 모든 부원들에게 내 실력을 평가받는다. 손끝에서 ‘불확실’이 ‘확신’이 되는 순간 환희에 차게 된다. 바로 등반의 묘미이다. 

이날은 하강이 말썽이었다. 서너 번의 하강 탓에 졸업생과 재학생 너나 할 것 없이 지쳤다. 농축된 포도당 알약을 으적으적 씹으며 더위를 버텼다. 등반하는 내내 더웠던 것은 당연지사. 끝없는 갈증에 물을 하도 꿀떡인 나머지 물방울만 남은 물통이 금세 영업종료를 알렸다. 

 

첫째 날 굴욕을 맛봤던 ‘새천년 리지’를 마지막 날 다시 도전해 완등했다. 마지막 피치 완등 후 하강 직전에서 졸업생 이보라 선배와 함께 선 필자.

 

명품백이 아닌 명품벽이 좋다!

팔꿈치, 가슴, 등, 목 등 온몸의 골짜기를 따라 뜨거운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평소에 땀이 없는 편이었지만 더위에 항복한 땀구멍이 활짝 열렸는지 평생 흘릴 땀을 하계 훈련 동안 다 흘렸다. 티셔츠를 비틀면 물이 콸콸 흘러내릴 것만 같다. 아아! 불쾌한 이 느낌. 그래도 전진해야 하므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숙소까지 한참 이른 시간에 귀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OB(졸업생) 선배님 효과이다.

등반 코스가 많은 산에도 대표하는 코스가 있다. 천등산에도 훌륭한 리지가 많아 사람이 늘 바글거리지만, 셋째 날 우리가 간 코스는 이름부터 멋있는 ‘어느 등반가의 꿈’이다. 천등산을 대표하는 명품 코스이다. 

명품‘백’이 아닌 명품‘벽’을 탄다는 경험을 사고자 무더위에 땀을 뚝뚝 흘리며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두 명이 한 조, 여섯 명이 총 세 개 조로 나뉘어 등반을 시작했다. 나는 OB 선배님 중 행순 선배님과 자일파트너이다. 자일파트너는 등반자와 확보자가 하나의 자일(로프)에 묶여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안전을 책임진다. 

선배님은 별생각 없으셨겠지만, 30여 년의 기수 차이로 인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행순 선배님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자일파트너가 되다니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내심 뿌듯했다. 

 

세 개 조가 꼬리 물기하며 올라가니 한 벽에 대략 세 명이 붙어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쉼 없이 확보 보고 물 한 모금, 등반하고 물 한 모금, 자일 사리고 물 한 모금을 반복하니 등반 공장과 다름없다. 고도만 달라질 뿐 제 맡은 임무를 정해진 순서대로 척척 해나간다. 

 

이제껏 해왔던 리지 등반이 얼마나 한량처럼 했었는지 알 수 있게 된 등반이다. 첫날 발랄함을 잃었던 재영이도 이제는 제법 몸짓에 폼이 나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보인다. 다른 후배인 진욱과 우람도 마찬가지이다. 반복학습이 최고인지, 전례 없던 속도다.

 

나는 힘이 들면 오히려 의도와는 달리 입가에서 웃음이 실실 흘러나온다. 만두 찌는 듯한 이 날씨에 등반하러 온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 괜한 날씨 탓을 하며 삐뚜름한 실소를 내뱉는다. 오늘 나는 후등자로 딸려 올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어느 등반가의 꿈’은 비교적 높은 난이도의 루트이다. 

5.11b 난이도의 6피치까지 묵묵히 올라가는 행순 선배님을 보고 있자니 날씨 투정을 부렸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내가 선등자였다면 진즉 정신을 놓았을 텐데, 부족한 후배 한 명 데리고 덥다 힘들다 굳은 말 한 번 없이 등반에 임하는 선배님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나도 얼른 커서 선배님들과 같은 선배이자 어른이 되고 싶다고 되뇐다.

 

선두의 두 조는 마지막 피치에서 의도치 않게 다른 벽에 붙어 ‘어느 등반가의 꿈’을 완등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행순 선배는 마지막 피치 바위에 흰 글자로 ‘꿈’이라 적힌 정통 루트를 바르게 올랐다. 이곳이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다.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로 인한 고도감에 심장이 오싹 저려온다. 

 

‘어느 등반가의 꿈’ 하이라이트 피치(5.11b)를 오르는 이행순 선배. 오른쪽은 낭떠러지라 고도감이 상당하다.

 

“간덩이가 탈출하다”

오른쪽 날개를 이용해서 가려니 오른쪽 발밑은 낭떠러지이고, 직선 방향으로 오르자니 발톱만 한 작은 홀드를 잡고 버틸 자신이 없다. 진퇴양난 속에서 엉덩이에 힘을  주고 용 쓰며 올라갔다. 무섭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동작과 크랙이 많아서 다음에 후배들과 오면 꼭 선등을 서고 싶다. ‘어느 등반가의 꿈’을 오른 YB(재학생)는 나 하나뿐이라니 자신감이 솟았다.

 

하계 훈련 동안 여러 리지를 숨 고를 틈 없이 올랐다. 피치마다 세세한 기억은 모호하지만 천등산의 ‘어느 등반가의 꿈’은 명품 리지로 기억에 남았다. 천등산의 간판 리지였다. 부산의 작은 ’무명 리지‘에서만 놀던 개구리가 대둔산과 천등산에 오니 세계적인 무대가 따로 없다. 경험 부족을 여실히 느꼈다.

 

중간중간 나타난 바위 언덕인 테라스에 부원들 몇몇이 모인다. 평상만 한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잠시 숨을 돌린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산세와 웅장한 잿빛 바위들이 우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간간이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더위를 식혀 준다. 명당자리에 설치된 값비싼 정자 부럽지 않다. 

 

행색은 꼬질꼬질하고 올라갈 길이 9만 리이지만, 이 짧은 순간만큼은 선비처럼 멋진 풍경을 감상한다. 등반 내내 시선 저 아래 기웃거리던 계곡에 첨벙 빠졌을 때는 세상 가장 행복했다. 이날의 온도, 습도, 공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이날 헬멧을 땀으로 적시며 등반한 사람만이 아는 진정한 추억이다.

마지막 날, 우리는 선배님과 함께 대둔산 ’새천년 리지를‘ 다시 찾았다. 짧은 며칠 동안 우리는 조금 성장했고, 또 든든한 뒷배인 OB선배님이 계신다. 부끄러웠던 지난날을 뒤집을 복수의 시간이다. 오늘은 마지막 피치인 5피치 끝까지 가는 것이 목표다. 

 

당연히 목표는 달성했다. 선배님들의 덕도 있지만,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두려움에서 확신으로 가득 찬 마음가짐. 매일같이 무더웠고, 더위에 지쳐 끝없는 오름 짓이 힘에 부쳤지만, 목표를 달성했다. 이날 일반 신발을 신고 걸은 걸음 수보다 점점 발이 아파오는 암벽화를 딛고 오른 걸음 수가 더 많았다. 

 

이번 하계 훈련 최고 성과는 나의 간덩이가 가출한 것이다. 높은 바위를 보아도 예전만큼 지레 겁먹지 않는다. 높이에 대한 두려움, 즉 ‘고도감’에 대한 내성이 생길까 싶었는데 익숙해지긴 했다. 점점 큰 바위에 대한 욕심이 샘솟는다. 이제 다음 목표는 설악산이다.

 

‘처음처럼’ 등반 끝난 직후 종료지점에서 단체사진.

 

“미쳤다”는 말을 들었다. 무더운 이 여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등반 열정을 불태우는 우리를 보며 누구는 미쳤다고 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특히 나는 졸업을 목전에 둔 대학교 4학년이다. 취업이라는 단어를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 왔다. 

사회로 진출하기 전 해야 하는 것과 걱정거리들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산악부 하계등반에 참여한 부원은 대부분 고학년이다. 이 중 누구는 영어 공부를 하고, 누구는 고시 공부를 하고, 또 누구는 모 회사에 인턴을 나간다고 한다. 다들 ‘대학생’을 마무리 짓고 ‘사회인’으로 변모하기 전 과정을 밟고 있는 와중, 산악부가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책보다 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더 매력적이니 말이다. 여름방학 때에 찬바람 씽씽 불어오는 에어컨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무릇 대학생의 정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인 대학생이 아니다. 다른 취업 준비생들과 비교하면 ‘이단아’이다. 아무도 이해 못 하는 짓을 하러 폭염 경보가 한창일 때 산으로 떠났다.

정량적인 결과로 평가받는 이력서에 도움 한 줄 되지 않는 산악부 활동이지만, 나는 이러한 정성적인 활동을 조금 더 이어 나가려 한다. 꼭 대단한 강연자에게 거창한 일장연설을 듣는 것만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물세 살 짧은 일생 무수한 환경과 사람에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진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은 대부분 산악부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 나는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고,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었다. 함께 추억을 나눌 부원들이 있다는 것은 값진 덤이다. 산악부 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산에 왜 가?”이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그냥”이다. 맛난 음식이 맛있는 데 이유 없고, 예쁜 옷을 사고 싶은 데 거창한 이유 없듯이, 나는 그저 산에 가는 지금이 좋다. 씨익 웃으며 “그냥 좋아”라는 백치 같은 대답을 뱉는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함.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사했던 시간들. 어떤 이들은 취업 준비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산악부에서 가슴 벅찬 순간을 매일 마주했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