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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천내강 위를 날다, 갈기산&월영산 종주

by 白馬 2024. 9. 6.

월영산 출렁다리의 모습.

 

금강은 일찍이 공주, 부여 등 백제 도읍지의 배경이었다. 또한, 호남평야의 쌀 집산지로서 항구도시 군산을 발전시켰으며, 대전분지와 청주분지 옆으로 흐르며 중부 대도시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한 금강의 상류는 ‘천내강’이라고 불린다.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일대에 위치한 천내강은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 사이로 유유히 흐르며 낙안 들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천내강 유역은 고려 공민왕의 여러 일화와 사적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천내강으로 왔을 때, 자신의 능묘 자리를 이곳에 잡았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석물로 쓰기 위해 만든 용석과 호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700년의 세월을 견뎌낸 호석은 황해도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공민왕묘의 호석과 동일한 모양이라 역사적 가치 또한 높다.

이 아름답고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천내강을 조망할 수 있는 산이 있다. 바로 갈기산과 월영산이다.

충북 영동군의 양산팔경에 속한 갈기산에는 이름 그대로 ‘말갈기’를 닮은 근사한 능선이 있다. 이곳에선 천내강의 물줄기와 주변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수변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기암과 암벽이 많아 산세가 수려하다. 금강 쪽으로 깎아지른 절벽 역시 일품이다. 갈기산이 품은 소골, 월영산과 성인봉 사이의 금성골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다. 그래서 여름철 물놀이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다.

월영산은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정월 대보름에 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해 풍년을 비는 달맞이행사를 했었는데, 주민들은 ‘월영산 달그림자가 강에 맑게 비치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고 한다. 금강 방향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산 곳곳에 수려한 기암고봉이 널려 있다. 특히 2022년 준공된 출렁다리는 이곳의 관광명소다. 길이 275m, 높이 45m의 출렁다리는 월영산과 부엉산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벼랑’을 뜻하는 덜게기

7월 14일 오전 10시, 우리는 갈기산-월영산 종주에 나섰다. 금강변의 바깥모리 주차장에서 시작해, 갈기산 정상을 찍고, 말갈기 능선을 지나 월영산까지 이르는 코스였다. 거리는 8km 정도였지만, 총 9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했기에 실제 거리는 10km가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산행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됐다. 거친 돌산의 면모가 곧바로 드러났다. 그러나 길은 금세 운치 있는 소나무 숲길로 변했다. 암릉과 어우러진 소나무는 정겨운 한국산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곧 너른 헬기장이 나타났다. 여기서 200m 정도 오르자 ‘양산 덜게기’가 나왔다. ‘덜게기’란 ‘바위 절벽’ 또는 ‘벼랑’을 뜻하는 충북 영동지방의 사투리로, ‘양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금강 쪽 절벽이 영동군 ‘양산면’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구비진 금강의 모습이 코앞에서 보였다. 또한 금강을 든든히 받치고 선 천태산의 모습도 조망됐다.

사실 양산 덜게기는 한 곳이 아니었다. 헬기장 바로 위쪽에 1조망점이 있었고, 우리가 선 곳은 2조망점이었다. 요즘 SNS를 뜨겁게 달구는 전망바위는 3조망점으로, 조금만 가면 도착할 예정이었다. 대단한 풍경이 펼쳐질 거란 생각에 기대감이 잔뜩 부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쉼터 정자가 나타났다. 여기선 안자봉, 성인봉, 자사봉의 능선과 함께 울창한 수림의 아늑한 계곡도 감상할 수 있었다. 잠시 휴식 후 출발했다. 너덜지대 같은 거친 길을 오르자, 드디어 3조망점인 전망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망바위는 금강 방향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사람이 올라설 수 있도록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아찔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바위 옆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독야청청 서 있었다. 아래로 흐르는 금강과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3조망점에선 좀더 다양한 각도로 금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보이는 호탄리의 풍경도 일품이었다. 3조망점에서부터 정상까지 천태산, 장령산, 서대산, 만인산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장관을 이루었다.

약간의 로프 구간을 지나 정상부 암릉에 섰다. 360도로 막힘 없는 장쾌한 전망이 펼쳐졌다. 북쪽 절벽 아래로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우리가 걸어야 할 말갈기 능선의 암릉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풍경을 벗 삼아 잠깐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해결했다.

본격적인 종주의 출발이었다. 로프를 이용해 수직 암벽을 몇 번 내려선 뒤 월유봉을 지나자 ‘말갈기능선’이 시작됐다. 이곳에선 따로 조망처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망대 역할을 했다. 암릉이 칼날처럼 곧게 선 구간에서 드론을 띄웠다. 색다른 각도에서 절벽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보니 뾰족한 능선을 걷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했다.

차갑고개로 내려서는 길, 우리가 가야 할 성인봉과 월영산까지 이어지는 구비진 능선이 보였다. 아직 하산까지 먼 길이 남아 있었다. 긴 여정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시원한 조망이 압권인 월영산 서봉. 로프로 암벽을 오를 수 있다.

 

월영산 서봉의 동화 같은 길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할 수 있는 차갑고개를 지나 마침내 성인봉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월영산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경계를 이루는 기준이었다. 능선길은 부드러운 활엽수림 지대로 변했고, 능선을 넘나드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덕분에 그동안의 땀이 모두 식는 듯했다. 바람은 에어컨보다 훨씬 더 시원했다. 우리 모두 경치 좋은 곳에서 한동안 풍경을 감상했다. 바람 한 줄기가 이렇게 큰 행복감을 선사할 줄이야!

서울은 지금 30℃가 넘는다는데, 여긴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새삼 도시 개발로 숱한 자연이 사라졌어도, 남은 자연은 자신의 역할을 200%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월영산 안자봉에 도착했다. 지금껏 지나온 갈기산, 말갈기능선, 성인봉과 같은 능선이 모두 조망됐다. 갈기산-월영산 종주산행 코스는 타원형을 이루고 있어, 지나온 길을 두루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

바로 옆 삼각점이 있는 월영산 상봉엔 정상석이나 표지판이 없었다. 삼각점 위에 누군가 ‘월영봉’이라고 정성껏 써 놓은 글자만이 이곳이 월영산임을 알게 했다. 다시 월영산 서봉을 향해 출발했다. 사실 월영산의 주봉은 ‘상봉’이 맞지만, 정상석은 ‘서봉’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월영산 정상을 서봉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마지막 봉우리여서일까? 서봉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고난의 길 같았다. 내려서는 것도 험했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오르다 보니 거대한 암벽이 우뚝 서 있었다. “와! 드디어 왔어!”라고 환호하고픈 기대를 단숨에 앗아갈 만한 엄청난 크기였다. 암벽엔 긴 로프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다른 우회길은 없었다. 우리는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속 주인공처럼 이 동아줄을 잡고 올라야만 했다.

안전하게 서봉에 올라서니 선물 같은 풍경이 주어졌다. 지나온 능선뿐만 아니라, 무주, 김천, 상주, 보은, 옥천, 금산의 첩첩산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벼랑 위 바위에 앉아 광대한 전망을 한 컷씩 사진으로 담았다.

월영산 정상석에는 한자가 맞이할 영迎이 아닌, 그림자 영影으로 쓰여 있었다. 달그림자의 위치에 따라 풍년을 점쳤다는 신앙심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의문이 들었다.

 

시원한 맥주와 독특한 지역 음식

남은 건 하산뿐이었다. 금강으로 내려서는 1km 남짓 짧은 길 곳곳에 산수화 같은 절경이 숨어 있었다. 어느새 서녘으로 해가 기울어 강과 암릉을 붉게 물들이며 장관을 만들고 있었다. 아! 이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월영산 출렁다리 직전에 전망대가 나타났다. 일반적인 데크 전망대가 아닌, 자연석을 촘촘히 깔아 운치를 더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망대였다. 자연친화적인 감성과 배려가 돋보였다. 월영산 출렁다리의 데크길과 전망대는 상당히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주차장 또한 넓었다. 꽤 많은 사람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길고 힘든 여정이 모두 끝났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심신을 정화했던 하루도 저물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한 뒤 가장 뿌듯한 순간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산행을 마친 이후에는 근처 원골유원지에서 굶주린 배를 채웠다. 이때 맛본 시원한 맥주와 어죽탕, 도리뱅뱅이, 민물새우튀김, 인삼튀김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