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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남난희의 느린 산 형제봉] 사방이 뻥 뚫린 지리산 조망 명당

by 白馬 2024. 9. 12.

하동군 악양면·화개면 경계 능선 형제봉(1,116m)

남난희는 1984년 여성 최초로 태백산맥을 겨울에 단독 일시종주했으며, 1986년 여성 세계 최초로 네팔 강가푸르나(7,455m)를 등정했다. 1989년 여성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74일간의 태백산맥 단독 일시 종주기를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1990년)>을 펴내 등산인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4년부터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2022년 백두대간을 선구적으로 알린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알베르 마운틴 상을 수상했다.


활공장에서 본 형제봉 일대.
 

이웃 동네 악양과 우리 동네 화개의 경계로 길게 뻗은 능선이 있다. 지리산 주능선 영신봉에서 시작한 산줄기는 지리산 남부능선을 타고 오면서 삼신봉에서 갈래를 나누고, 섬진강을 향해 또 두 갈래로 나뉘는 능선 중 하나다. 나의 또 다른 옆 산으로 전망이 빼어난 형제봉으로 향한다.

그 길에는 여러 봉우리들이 있지만 보통 악양 형제봉(1,116m)으로 통한다. 그 능선은 황장산 능선과 달리 산줄기 어디서나 동서남북의 여러 산과 강과 마을이 조망되는 곳이 많다. 게다가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되지 않아서 입산통제기간에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교적 찾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산행은 형제봉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서 섬진강에 발을 담그는 지점부터 시작하려는데, 여러 공사와 사람 왕래가 없어서인지 예전에 있던 길이 없어지고 숲만 우거져 있다. 산길이 없어서 남의 산소 가는 길을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겨우 한산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차도가 있는 한산사로 올라왔으면 편했을 것을, 괜히 고생하며 땀만 쏟은 꼴이 되었다.

한산사는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인데, 몇 해 전 수해로 피해가 많았다고 한다. 복원하는 과정에서 축대를 엄청 높게 쌓아 예전의 멋이 다소 줄어든 느낌이다.  

 

형제봉 산행 들머리인 한산사.

 

지리산국립공원 아닌 고소성군립공원

한산사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호젓하지만 시작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곧 고소성에 도착한다. 악양 고소성은 화개와는 달리 무너진 성을 다시 쌓고 증축해서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은 평화롭다.

예전에는 쳐들어오는 왜구를 감시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성을 쌓았겠으나 지금은 편안한 또는 멋진 한 풍경으로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 초입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소나무 한 그루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자라 있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지리산학교 숲길 걷기 반 수업을 하며 한 해에 몇 번은 만나고는 했다. 

그곳에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로 유명한 TV세트장에서 관광지로 바뀐 최참판댁 동네와 사계절 색깔이 변하는 평사리 들판을 내려다보며, 바다로 향하는 섬진강을 보며, 그 너머 광양 백운산 억불봉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 만큼 자란 것이다.

 

반듯하게 정비된 고소성.

 
 

지나다닐 때마다 그 소나무 그늘에서 한동안 쉬고는 했는데 이제 소나무는 품이 넓어져서 더 많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나무는 저 홀로 독야청정이다. 이번에도 소나무 아래 배낭을 내리고 멋진 풍광에 감동하며 한동안 쉬었다. 언제 봐도, 눈을 어디로 줘도 수려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고소성의 잘 정돈된 돌들과 소나무 낙엽은 잘 어울리는데 그 위를 걷는 것도 기분이 좋다. 성터를 지나 주로 오르막길인 등산로는 푹신한 흙산에 길이 좋고 전망이 좋아서 걷는 재미가 있다. 자주 만나는 바위도 위협적이지 않고 순하며 주변 나무나 풍광에 어울리고 또 전망대 역할도 해서 쉬어 가야 할 곳이 많다.

바위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 집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가 살았던 별당의 연못, 용이네 집, 엄이네 집, 김훈장 댁, 각자 아는 대로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땀이 식어가는 것이었다.

 

고소성 소나무. 늘 여기서 경치를 둘러보고 간다.

 

새삼 글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소설을 읽은 사람이나 드라마를 본 사람이나 시작은 선생의 글에서 시작했고, 그 주인공들을 실제 존재했던 인물로 인식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 길은 스토리가 있는 산길로 각자 마음속에 간직한 토지의 주인공들을 다시 소환해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조금 오르면 아주 오래된 철재 사다리를 지나고 곧 통천문이라는 바위틈으로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재미있다. 바위틈이 좁아서 조금 몸집이 있는 사람은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바위 위에서 어떻게 살아낼까 싶은 소나무들과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뿌리를 내린 생명을 보면 살아간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신선봉을 지나고 예전에 봉수대였다는 곳도 지나, 조금 험한 오르막 끝에서 신선대를 만난다. 신선대의 명물 구름다리가 반긴다.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구름다리가 암봉을 가로 지르고 있다. 능선 전망이 좋고, 하동군에서 ‘고소성군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아래쪽에서 바라본 정상부. 신선대 구름다리가 보인다.

 

하동군은 예전의 출렁다리를 철거하고 좀 더 길고 튼튼하게 구름다리를 설치했다. 명소인 구름다리 홍보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해발 900m에 길이 137m의 구름다리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볼 만한 풍경이고, 건너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거기에 전망까지 좋다면야.

시원한 바람의 선물까지 있다면 아주 멋진 기분이 될 것이다. 이 구름다리를 건너겠다고 일부러 산을 올라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도 여럿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형제봉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이곳은 5월에 철쭉으로 유명하다.

산 아래서부터 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해서 차츰 위로 올라가는데 직접 가지 않고 아래서 올려다봐도 장관이다. 5월에 철쭉제를 지내기도 한다. 물론 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가을 단풍도 볼 만하다.

 

형제봉 신선대의 명물 구름다리.

 

멧돼지 가족과의 조우

이곳 형제봉은 다른 형제봉과 차별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곳 방언인지 모르겠는데 ‘성제봉’으로 정상석을 만들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두 봉우리가 300여 m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어서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날씨만 좋다면 전망은 그만이다. 하지만 비 온 후라 생각만큼의 전망은 없고 구름이 몰려다닌다. 이 풍경도 나쁘지 않다. 형제봉 이후부터는 편안한 흙길로 활공장까지 이어진다.

어느 순간 여러 마리의 아기 멧돼지가 바로 앞에서 종종 걸음으로 뛰어간다. 순간 토끼인가 했지만 세로줄 무늬가 그 존재를 알려 준다. 순간 몸이 굳는다. 분명 어미가 주변에 있을 것이고,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는 몹시 예민해서 조심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별로 크지 않은 어미가 숲에서 뛰어나와 나를 돌아보더니 그대로 새끼들을 몰고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늦게 나는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치며 걸음을 빨리 했다. 아기 멧돼지를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다. 아홉 마리나 되었다. 그 와중에 저 많은 아기를 어떻게 먹여 키우나 하는 걱정을 홀로 하며 지나친다.

 

화사한 색깔의 산수국.

 

형제봉 활공장은 패러글라이딩과 행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조성된 장소로 이곳까지 차량이 올라올 수 있다. 그래서 하늘은 나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나 산행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다. 일단 차로 1000고지 이상을 올라 올 수 있고, 전망 또한 빼어나서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 전망은 사방이 완전히 뚫려 있다. 북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이 확 다가온다. 남쪽으로는 악양의 모든 동네와 또 초록이거나 황금색의 평사리 들판, 그리고 섬진강과 백운산, 그 너머 남해의 산들과 바다에 여수까지 볼 수 있다.

동쪽으로는 진주 주변과 사천, 삼천포 와룡산이 누워 있는 것을 뚜렷이 만날 수 있다. 서쪽은 또 어떤가? 구례의 마을과 들판, 승주의 조계산, 굽이굽이 산을 넘어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이 우뚝하다.

지리산 주능선을 지나 유장하게 뻗어 올라간 백두대간을 비롯해 영신봉에서 시작해서 동남쪽으로 남하하는 낙남정맥, 무등산을 비롯해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이렇게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호남정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한숨 돌리는 나.

 

눈을 주는 모든 곳은 오로지 산만 존재하는 것 같은 세상이다. 어찌 이렇게 순하고 부드러운 산들로 이어져 있는지, 각자의 높이를 색깔로 구분하는 능력은 어디서 부여 받은 것인지? 신비하고도 놀라운 자연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형제봉과 그 주변에는 해발이 높은 곳에서 피는 야생화들이 있다. 주능선만큼은 아니지만 이때쯤 꽃 중의 여왕이라고 하는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 있어 일부러 가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 하늘말나리, 일월비비추, 노루오줌, 미나리아재비, 물레나물, 지리털이풀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고로 여름인 것이다. 이 정도 높이에서 더위가 별것 아니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시원한 것도 있지만 야생화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