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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낯선 지리산 남부능선] 지리산에 이런 곳이? 너무도 호젓한 코스

by 白馬 2024. 8. 2.

의신~세석~삼신봉~쌍계사 25km 1박2일

 

 

딱, 지난 5월까지 한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산은 설악산이었다. 지난 6월 중순 지리산 남부능선에 올랐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지리산이 1위를 탈환했다. 수려한 계곡, 둥글둥글한 능선에 반했다. 지금껏 지리산을 찾은 횟수가

 

세석대피소에서 남부능선으로 가는 도중 나타난 조망터. 중간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삼신봉이다. 그 앞으로 남부능선이 이어져 있다. 능선상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카메라는 엄효용 사진작가가 가져온 중형 필름카메라. 핫셀블라드 503cx다.

 
 

꽤 되지만 이번엔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나는 왜 변심했을까?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탐구해 보려고 지리산 마니아인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 

“지리산이 왜 좋은가요? 많은 사람이 지리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승태 작가(월간<산> 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연재 중)가 답했다. 

“지리산 좋지. 골골마다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수많은 골짜기마다 이야기가 있고, 산 아래 마을마다 문화가 다 다르고. 봄 내내 종류가 다른 꽃들이 피고! 벚꽃, 진달래, 매화, 철쭉 등등.”

 

서울에서 살다가 지리산이 좋아 구례에 내려와 정착한 지 20년이 넘은 전재완(전 사람과 산 기자)씨는 답했다. 

“설악산에 비해 지리산은 걷기 편한 구간이 많아요.” 

인터넷 카페 ‘지리산공동사랑구역’의 주인 ‘검은별’ 황소영 작가가 말했다. 

“진부한 표현인데,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포근하고 편안하다는 뜻이죠. 지리산에 독특한 지명 이름과 전설이 많은 건 오래전부터 주변에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것이고, 그건 또 지리산이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다는 증거, 그 일대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예요.” 

 

의신에서 대성골로 가는 중. 나무들 밑동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신준식씨(전 사람과 산 사진기자)가 말했다. 

“뭐? 지리산이 좋았다고? 날씨가 좋았나보지!”

다 맞는 말! 나는 통화를 하면서 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화를 끊자 저녁이 됐다. 저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면 지리산에 관해 떠드느라 굉장히 시끄러울 것 같았다. 그들은 앉아서 일주일 내내 수다를 떨 텐데, 그 틈에 섞여 눈을 반짝거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세석대피소에서 삼신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남부능선은 인기 있는 코스가 아니다. 여러 사람에게 남부능선에 간다고 했더니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다. 

“와, 거기 험한데!” 

그만큼 이 코스는 여러 사람에게 낯설 것이다. ‘지리산에 이런 데가 있었네!’라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라운 사진이 필요했다. ‘낯선 곳’이라고 주장했는데 책에 담긴 이미지가 그렇지 않다면 머쓱할 터, 여기저기 연락해 함께 갈 사진작가를 수배했다. 곧 엄효용 작가가 붙들렸다! 그는 작년에 ‘초록의 쉼표’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장에 걸린 나무 사진들이 독특했다. 초점이 맞지 않고 흔들린 모양이었는데 사진이 아니라 수채화 같았다. 어떻게 찍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나무 수백 그루를 촬영한 다음 중첩했다고 답했다. 지리산 여러 곳을 중첩시키면 어떤 모양이 나올까? 구상나무 수백 그루를 겹치면 어떤 나무가 탄생할까? 흥미로웠다. 그에게 지리산에 가자고 했다. 엄 작가는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산행 경험이 전무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대성골은 널찍하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가득하다. 수량도 풍부했다.

 
 

산행 당일, 경남 하동의 의신마을에 도착해 산에 지고 올라갈 짐을 정리했다. 엄효용 작가의 가방에서 중형 필름카메라 ‘핫셀블라드’가 나왔다. 무게가 2kg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커다란 삼각대도 나왔다. 무게가 1kg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걱정됐다. 그를 말려야 했다. 

“이거 다 가져가실 건가요? 힘들 텐데.”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아뇨! 가져가야 해요.” 

대단한 의지에 나는 기가 꺾였다. 나는 물러서면서 말했다. “그러시죠.”

 

산불 난 대성골

우리는 산행에 나섰다. 내 배낭에 엄 작가의 카메라 삼각대를 달았다. 지리산역사관에 차를 두고 내려와 ‘벽소령 산장’ 앞을 지났다. 곧 세석대피소로 가는 등산로가 좁다랗게 나타났다. 길은 완만했다. 우리는 “좋다!”를 연발하면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 안 가 밑동이 검게 그을린 나무들이 등장했다. 알아보니 지난해 3월 이곳에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은 발생한 지 약 하루 만에 비가 내리면서 완전 진화됐다. 진화 과정에서 60대 진화대원 1명이 숨지기도 했다. 당시 축구장 170개에 달하는 면적이 불탔다고 알려졌는데, 울창한 숲 상태만 봐선 당시 화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자연의 복원력이 대단한 걸까? 여러 매체에선 화재 면적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인위적인 간섭이 적은 자연숲이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소나무림이 적고 활엽수의 밀도가 높아 숲 내부에는 바람이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성골에서 세석대피소로 가는 오름길. 남부능선 전 구간 중 난이도가 가장 세다고 해도 된다.

 

한 시간쯤 걸으니 불에 탄 마을이 나왔다. 산사면에 있는 집들은 다 타서 무너졌고 계곡 쪽 가옥 한 채만 멀쩡했다. 지리산 대성동휴게소, 일명 ‘대성주막’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임현종씨 혼자 거주 중이었다(그는 4대째 여기서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집 근처에 후박나무 수백 그루를 심어 유명한 지리산 산림왕 고 임봉출씨다). 그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집 버리고 내려가면 살 데가 없으니 버텼죠. 새벽에 바람이 우리집 반대 방향으로 부는 바람에 살았어요.” 

지리산이 그를 도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지나자 길이 좁아지면서 동시에 경사가 급해졌다. 엄효용 작가는 경사로를 보면서 말했다. “고바위, 고바위!” 

그는 여기서 200m쯤 가다가 쉬었다가, 또 200m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내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는 목에 걸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능선에 올라 사진 촬영 중인 엄효용 사진작가. 멀리 보이는 능선에서 움푹 들어간 부분에 세석대피소가 있다.

 

“저기서 어떤 것이 작가님의 시선을 끌었길래 카메라를 열심히 들이대는 거죠?” 

엄 작가가 대답했다. 

“글쎄요. 그냥 좀 쉬려고 찍는 척 했어요.”

우리는 계곡을 두 번 정도 건넌 뒤 급경사 산사면에 붙었다. 엄효용 작가가 굉장히 힘들어했다. 나는 그의 배낭에서 중형 필름카메라를 건네받아 내 배낭에 넣었다. 카메라가 무거웠다. 하지만 엄 작가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엄 작가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 해발 고도가 900m 정도 됩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의 해발 고도가 1,400m 정도 되니까, 앞으로 500m 정도만 고도를 더 올리면 됩니다!” 

엄 작가의 굳은 표정은 도무지 풀릴 기색이 없었다.

계곡을 벗어나 약 2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남부능선에 닿았다. 엄 작가는 그제야 “좋다!”고 말하면서 바위 위에 벌렁 누웠다. 우리는 숨을 고른 뒤 왼쪽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걸었다. 완만한 경사의 우거진 숲 터널을 통과했다. 이름 모를 새가 재잘댔다.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인간의 기분을 정화시키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꾸며놓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20명 정도의 등산객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저녁을 먹었다. 엄 작가는 “좋다!”면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거렸다. 밤 9시쯤 우리는 대피소에 들어가 누웠다.

 

지리산 폐쇄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촛대봉에 올라 일출을 보려던 계획은 취소했다. 세석대피소에서 삼신봉까지 약 7km. 산행 초보인 엄효용 작가의 산행 속도를 고려했을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엄 작가는 다리를 절뚝였다.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그에게 제안했다. 

“여기서 거림으로 먼저 내려가도 되고요, 아니면 우리와 함께 남부능선을 타고 가다가 삼신봉에 오른 다음, 청학동으로 내려가도 됩니다.” 

 

남부능선 갈림길 부근에서 바라본 세석대피소. 구상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다.

 

엄 작가는 남부능선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의 배낭에 있던 중형 필름카메라와 삼각대가 다시 내 배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출발했다. 새들이 조잘댔다. 촛대봉 쪽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산책하는 노루처럼 걸었다. 나는 지리산에 사는 오소리가 됐다가 노루가 됐다가 하는 식으로 코를 킁킁 대면서 걸었다. 숲 향이 지독하게 좋았다. 덕분에 졸립거나 피곤하다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중에 사무실에서 고 최화수씨가 1990년에 낸 책 <지리산 365일>을 들춰봤다. 여기서 무시무시한 대목을 발견했다. ‘지리산 폐쇄설’이다. 국립공원에서 취사 및 야영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1990년 11월)되기 전 최화수씨에게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독자들은 그에게 지리산을 5년간 폐쇄시킨다는 소문의 진상에 대해 물었다. 당시 지리산엔 탐방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넘쳤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쓰레기 수거 비용으로 한 해 4,500만 원이 들었다. 지금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정부에서 국립공원 취사·야영 금지법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지리산은 옛날 서울 난지도처럼 쓰레기산이 됐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세석평전이 텐트들로 뒤덮인 1990년대 풍경보다 구상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지금 모습이 100배 더 낫다. 나 말고 여러 인간을 비롯해 여기 사는 노루나 오소리도 후자를 더 반길 것이다.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 숲 터널이 장관이다.

 

우리는 엄효용 작가의 걸음에 맞춰 시속 1km 속도로 천천히 능선을 탔다. 그러니 힘들다는 느낌이 덜했다. 엄 작가는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잘 따라왔다. 이따금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그는 필름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댔다. 그의 입에선 “좋다!”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라고 물으면 그는 무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부능선 너머로 첩첩하게 쌓인 산들을 보면서 감동에 젖은 눈치였다.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길이 좁았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정맥이나 기맥의 등산로와 비슷했다. 조망 터지는 곳은 거의 없었고, 삼신봉은 우리를 약올리듯 좀체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오전 10시쯤 삼신봉 정상에 섰다. 햇빛이 따가웠다. 머리와 목이 이글대면서 불타든 말든 나는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 주능선을 훑었다. 엄효용 작가도 필름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번갈아가면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엄 작가가 양수열 기자에게 설악산과 지리산의 차이점에 관해 물었다. 양수열 기자가 대답했다. 

 

숲에서 본 금낭화. 이것 말고도 능선에는 여러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었다.

 

“설악산은 좀 난폭한 면이 있죠.” 

확실히 그랬다. 삼신봉에서 보이는 지리산 주능선을 보고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려한 광경을 바라보는 사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틀 전까지 서울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다급하고 불편하고 어지럽고 졸렸던 기억들이 싹 달아났다. 정신이 말똥말똥 깬 기분, 내가 신이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산 밑에서 우글대는 인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거 참,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아둥바둥하지 마슈.” 혹은 “바보들아, 싸우지 좀 마. 다 부질없는 짓이야”라고.

 

남부능선 종주 중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산행 초보인 엄 작가를 혼자 밑으로 내려 보내는 게 신경 쓰였던 양수열 기자가 그와 함께 청학동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엄 작가는 “혼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서 한사코 양수열 기자를 말렸지만 양 기자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둘은 한참 동안 옥신각신 다퉜다. 

나는 혼자 쌍계사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여기부터 쌍계사까지 약 9km 거리. 옆으로 치솟은 내삼신봉이 ‘만만치 않을 텐데’라면서 도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복싱선수가 링 위에 올라서서 양 주먹을 쾅쾅 부딪듯 배낭끈을 꽉 잡았다. 그리곤 아둥바둥 오르막을 기어올랐다. 

 

내삼신봉. 삼신봉에서 쌍계사로 가려면 내삼신봉과 이어진 능선을 타야 한다. 꽤 긴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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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똥은 누구의 것인가?

남부능선 종주 중 등산로 위에 누군가가 싸 놓은 똥을 여러 번 발견했다. 사람의 것과 비슷하게 생겨 우리는 이것의 주인이 반달가슴곰이 아닐까 의심했다. 산에서 내려와 청학동탐방지원센터 직원에게 물었더니 바로 답했다.

“이것은 오소리의 똥입니다. 지리산에 오소리가 아주 많이 살고 있어요. 이 친구들은 꼭 사람 다니는 등산로에 이렇게 일을 처리합니다. 등산로가 그들의 화장실인가 봅니다. 지리산 남부능선에 반달가슴곰은 없어요. 남부능선에서 반달가슴곰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지난 몇 년간 없었습니다. 곰이 이쪽에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힘들었지만 덕분에 더 좋았어요”

남부능선 종주 함께한 엄효용 작가

엄효용 작가는 최근 수백 그루의 나무 사진을 찍은 다음 중첩시킨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흐릿한 나무 사진이 마치 붓으로 그려낸 듯한데, 이 사진을 처음 본 사람들은 수채화로 착각하기도 한다. 나무와 자연이 그의 작업 주 소재이지만 정작 그는 산을 타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번 지리산 산행이 생에 첫 산행이라고 해도 된다.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산을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 타본 적이 없어요. 많이 힘들었죠. 무모했습니다. 하지만 무척 좋았어요. 고도를 높일수록 나무 종류가 달라지더군요. 이론적으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죠. 이번에 직접 눈으로 확인한 셈인데, 무척 신기했어요.”

나무 말고도 그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구름 사진도 찍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순간, 그때 느낀 놀라움과 신비로운 감정을 포착해 표현하는 것이 그의 작업 주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번 산행이 특별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산행은 매우 힘들었어요. 짜증나고 화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그 순간들 덕분에 바위에 걸터앉아 쉬거나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무척 좋았어요.”

 

“여기서 저처럼 입은 사람들은 제 도반이에요” 

 

친철한 청학동 훈장 서흥석씨

쌍계사로 내려왔다가 청학동으로 하산한 일행을 만나러 회남재를 넘었다. 청학동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 주인들 여럿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옛날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자연산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흥석(청학동청소년수련원 이사장) 사장은 그들을 가리켜 ‘도반’이라고 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이 근처에서 저랑 비슷한 복장을 한 분들은 저와 어린 시절부터 같이 공부했던 도반입니다. 저는 원래 청학동 도인천에서 도를 닦다가 서당에서 훈장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서당을 잠깐 쉬고 식당 일을 돕고 있습니다.”

 

악양들판 전망대 회남재

화개에서 청학동까지 일반도로로 56km 거리다. 지름길이 있다. 악양면을 통해 회남재를 넘으면 된다. 회남재 정상에 서면 너른 악양들판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길잡이

지리산 남부능선은 흔히 세석대피소에서 삼신봉까지 이어진 능선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이 코스를 두고 ‘국립공원에서 버린 땅’이라고 표현한다. 지리산 주능선과 달리 길이 좁다랗고 오르내림이 잦을 뿐 아니라 바위 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이 구간을 지나면서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딱 두 곳뿐이다. 종주 내내 지루할 수 있다. 중간에 식수를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지리산에서 가장 거친 코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거림, 청학동, 쌍계사, 백무동, 의신 등 들머리를 어디로 잡든지 간에 남부능선을 타기 전 1박2일 일정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다. 세석대피소에서 꼭 하루 묵거나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의신마을을 들머리로 잡고 쌍계사를 날머리로 정했다. 원점회귀 방식이라 하산 후 타고 온 승용차 회수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의신마을 지리산 역사관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다. 주차장에서 아래쪽으로 200여 m 내려가 왼쪽 벽소령산장 방향으로 올라가면 세석대피소로 가는 탐방로가 나온다. 계곡 길은 완만하다. 하지만 계곡을 두 번 건넌 다음 능선으로 붙는 코스는 경사가 세 통과하기가 만만치 않다. 남부능선 위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한벗샘’이 중간에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샘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석대피소에서 물을 충분히 보충하고 산행에 나서야 한다. 삼신봉에서 쌍계사까지 가는 길 역시 남부능선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보통 걸음으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다. 철저한 체력 점검 후 도전하는 것이 좋다.  

 

교통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화개버스터미널(055-883-2793)가는 버스가 하루 8회 출발한다. 가격 3만 2,100원.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의신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2회(10:40, 12:10) 출발한다.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하루 8회 출발한다. 

 

맛집

지리산 청학동 자연산장(삼성궁1분자연산장, 0507-1407-4137)의 된장정식이 맛있다. 된장찌개를 비롯해 반찬이 무려 20가지가 나온다. 이 집에서 빚은 막걸리 맛도 특별하다. 청학동 훈장으로 일했던 서흥석씨가 운영하고 있다.

 

 

청학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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