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트 10인이 선정한 세계의 피서지. 최고만 모았다.
*트래비스트(Traviest)는 <트래비>의 여행 뉴스와 스토리를 발굴하는 콘텐츠 서포터즈입니다.
●Philippines Bohol Panglao Island
필리핀 보홀 팡라오섬
바닷속 세계, 온전히 내 숨이 가 닿는 데까지 여행해 본 사람은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잠수풀장을 벗어나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해양 레벨을 취득하고서 처음으로 선택한 곳이 필리핀 보홀 팡라오섬이다. 따뜻한 수온, 갖가지 바다생물, 화려한 산호와 물고기,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이르기까지 보홀 팡라오섬은 프리다이빙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나는 팀을 이뤄 팡라오섬을 기점으로 주변부 섬에 위치한 다이빙 포인트를 찾아다녔다. 바닷속 세계는 또 다른 우주였다. 릴라 앞바다에서 본 고래상어는 하얀 점박이가 박힌 등에 아가미가 펄럭거리는데 곁에 다가가기 두려울 만큼 경이로웠다. 성인 키 3배 정도의 길이에 두툼한 몸체는 위압감을 주었다. 맹그로브 숲은 사방으로 뻗친 뿌리를 드러내고 수많은 바다생물을 품었다. 가느다랗고 작은 물고기와 굽은 등껍질이 붙은 게, 물지렁이 등. 그곳에서 평온하고 부지런히 살고 있다. 히낙다난 동굴(Hinagdanan Cave)은 천장에 고드름이 달린 듯 뾰족한 종유석과 석순이 가득했다. 동굴 틈새로 예리하게 파고든 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다이빙 피드백을 했다. 잠수풀장의 훈련은 물장구라고 해야 할 만큼, 조류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해양 훈련(!)은 격이 달랐다. 광활한 바다가 주는 공간감과 깊이감은 평소 물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당황하게 했다. 아직 다이빙 실력도 부족한데 괜히 왔나 싶은 후회도 밀려왔다. 모든 건 경험이라는 팀원들의 격려에 마음을 다졌다.
다음날 다시 출격한 바다. 나팔링 리프(Napaling Reef)에서는 엄청난 숫자의 정어리 떼가 일제히 몰려다니면서 물속 폭풍을 일으켰다. 총천연색 산호는 형형색색 자태를 뽐냈다. 사우스 팜의 난파 비행기 포인트는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하면서도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파밀라칸섬의 돌고래 떼는 수면 위로 튀어 오르며 우리를 반겨 줬고, 발리카삭섬의 바다거북은 유유히 바다를 유영했다. 바다거북의 우아함을 따라 바닷속을 휘젓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 세계가 편안해졌다. 내 다이빙 실력을 탓할 이유도,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나 또한 바닷속 또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하고 그 모든 걸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은 나팔링 리프에서의 수심 트레이닝을 앞두고 아침부터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을 풀었다. 조류로 인해 컨트롤이 쉽지 않지만 각자 할 수 있는 수심까지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고요하게 수심을 타고 내려갔다. 고막으로 전해 오는 수압이 겁먹었던 것보다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리본이 달린 위치에 수심을 찍고 올라오니 팀원들이 축하의 물세례를 뿌려 줬다. 잠수풀장에서는 가 닿아 보지 못한 수심 PB(Personal Best)를 기록했다. 다시 만난 정어리 떼가 나를 둘러싸고 축하해 주는 듯했다. 물론 해파리 떼가 이따금 톡톡 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환상적인 바다 풍경을 보면서 지구의 3분의 2는 바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이곳 필리핀 보홀 팡라오섬에서 만난 다양한 해양생물들은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저마다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왠지 고마웠다. 복닥거리며 살던 내 일상은 말끔하게 잊혔다. 프리다이빙은 자신의 숨만큼 바다에 이르고 머물 수 있다. 우리 삶도 그렇다. 내 숨만큼 살아내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 삶의 방향이 혼란스러운 시점에 찾았던 필리핀 보홀 팡라오섬은 내 머릿속 열기를 식히고 새로운 생명과 활기를 선물해 준 곳이다. 피서란 그런 것 아니겠나.
▷권라희
건축, 예술, 프리다이빙. 그녀의 여행을 대표하는 3가지의 키워드다.
●Indonesia Lombok Gili Trawangan
인도네시아 롬복 길리 트라왕안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하고 있을 때다. 도시를 가득 메운 매연과 오토바이에 지쳐 갈 때쯤 ‘길리 트라왕안’으로 떠났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약 2시간, 그저 발리 근교 섬 정도로만 생각했다. 도착해 보니 발리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투명한 바다와 맑은 공기. 천국인가 싶었다.
이 섬에서는 환경 보호를 위해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발리와 공기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이곳은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수중 환경을 갖고 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인생 첫 서핑을 배워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수업 장소로 향하는데 눈앞에 새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바다로 나갔다. 첫 번째 파도에서 일어났지만 바로 넘어져 파도에 휩쓸렸다. 두려웠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결국 파도를 탔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에서 첫 파도를 타다니, 이 모든 것이 길리 트라왕안의 행운이라 생각했다.
서핑 후 근처 레스토랑에서 사테 한입에 시원한 맥주를 쭉 들이켜니 이곳이 지상낙원이었다. 내게 길리 트라왕안은 단연코 최고의 피서지다. 서핑, 사테 그리고 맥주. 피서에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이 어디 있을까. 여름이 오면 늘 생각나는 곳.
▷고지혜
자유롭게 여행하며 일하는 프리랜서 마케터
●Croatia Cavtat
크로아티아 차브타트
옹기종기 모인 채도 높은 감색 지붕, 반질반질 빛나는 성곽. 모든 곳이 지중해 바다만큼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그곳에서 버스로 3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 숨은 보석 같은 마을, 그 이름은 ‘차브타트’. 휴양 목적으로 방문하는 현지인들이 많다.
특히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좋은 얕고 잔잔한 해변가가 매력적이다. 연세 지긋한 노인분들도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쯤 되면 차브타트 앞바다는 남녀노소 모두의 수영장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해안가를 따라 마을 한 바퀴를 걸을 수 있는 초록빛 숲길은 동화책 속 그림같이 순수한 색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걷기만 해도 시력이 좋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중간중간 벤치에 많아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차브타트의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또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물멍도 아닌 구름멍이라고 해야 할까. 얼굴이 조금 타는 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송현서
여행과 캠핑을 너무 좋아하는 세계 여행자, 그리고 캠퍼
●Croatia Zagreb Plitvice National Park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여행했던 건 9월 중순이었다. 여름보단 가을에 가까워졌다고 여겼는데 한낮 기온이 23~24도, 예상외로 더웠다. 겹쳐 입을 겉옷은 숙소에 두고 반팔 차림으로 시내를 돌아다녔다. 다음날, 첫차를 타고 근교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일교차가 커서 아침은 조금 쌀쌀해 반팔 위에 바람막이를 걸치고 호텔을 나섰다. 2시간의 숙면을 하고 나니 어느새 국립공원 입구였다. 하차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자그레브가 아니라 이곳의 기온을 체크했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위치 기온 3도’ 휴대폰 화면 위로 알람이 보인다. 고작 바람막이의 두께로는 한기를 막기 역부족이었다. 자그레브보다 600m 이상 고도가 높고 산이 호수와 공원을 에워싸고 있어 평균 기온 자체가 도심보다 6~7도 낮았다. 관광객이 워낙 많이 오는 곳이라 오픈런을 하려고 첫차를 탄 건데, 붐비는 시간대에 왔으면 그나마 덜 춥진 않았을까, 뺨 위로 스치는 얼얼한 한기를 느끼고 있자니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공원에 들어가기도 전, 매표소 옆 카페에서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추위에 놀란 몸을 녹였다.
그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최고의 피서지로 꼽은 건 3도의 한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원은 상류부터 하류를 크게 도는 데 5시간이 넘게 걸릴 만큼 넓다. 상류로 갈 때 셔틀 한 번, 상류에서 하류로 건널 때 배 한 번을 탄 걸 빼면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점점 해가 밝아 갈수록 더워졌다. 등줄기로 땀 몇 방울이 주룩 흐르면 바람막이를 벗어젖혔다. 다행히 플리트비체는 이런 거추장스러운 더위를 본연의 풍경으로 싹 날려 주었다. 호수 위에 섞여 들어간 녹음이 자아낸 청록의 색감은 그저 파랗기만 한 색감보다 더 시원해 보였다. 청록의 장면을 떠올리면 바람이 나무 사이를 훑는 소리나 폭포가 내는 소리가 함께 떠오르는데, 이 청각의 기억이 시원함을 더해 주는 데 한몫한 건 아닐까. 중간중간 마주친 풍경에 매료되어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달아오른 체온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걷다가 숨이 찰 땐 통나무 벤치에 앉아 쉬어 가면 된다. 피할 피(避), 더위 서(暑). 그러니까 더위를 피하자는 소기의 목적을 가장 완벽히 채워 준 곳이 바로 이곳이다. 7시간을 내리 걸었던 트레킹의 현장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내겐 최고로 시원한 피서지였다.
▷김수환
‘페른베(Fernweh)’라는 필명을 삼아 여행에 대한 동경을 적어 가길 꿈꾼다.
●Korea cheongju
충청북도 청주 해호미
충북 청주에 자리하고 있는 독립서점 카페. 바다와 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다. 피서라는 것이 사실 거창할 필요가 없다. 잔잔한 음악과 통창으로 내리쬐는 햇볕,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고소한 커피향.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최고의 피서지라고 생각한다.
해호미에는 카페 주인장이 직접 읽어 보고 추천할 만한 책을 모아 둔 공간이 있다. 책장 옆쪽으로 풍경 엽서가 가득 채워져 있다. 몽글몽글 감성이 피어오르는 풍경이다. 카페 내부는 화이트와 우드톤으로 꾸며져 있다. 도로가 보이는 통창이 있어 푸르른 나무와 달리는 차,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달달한 ‘완밤팥 치즈케이크(완두콩, 밤, 팥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다. 시원한 레몬에이드와 조합이 좋다. 커피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더 없이 포근하고 완벽한 피서지.
▷임가원
한 가지의 단어로 수식하기엔 부족한, 취미 부자이자 여행자.
●Korea Pyeongchang
강원도 평창
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곳으로 옮김이라는 ‘피서’의 사전적 의미에 아주 정직하게 부합하는 곳. 바로 강원도 평창이다. 평균 해발고도 약 700m로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던 곳인 만큼 다른 지역 대비 평균 기온이 낮아 끈적한 장마철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평창에서의 피서를 즐기는 방법을 간략히 공유한다. 먼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면으로 가자. 이효석의 생가와 문학관에서 인문학 여행을 한 후 근처 메밀 전문 식당으로 가서 여름철 별미인 시원한 메밀 막국수 한 사발을 들이켜자. 메밀은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찐다(확실한 건 아니다). 멀지 않은 곳에 ‘효석달빛언덕’이 있다. 오르락내리락 언덕을 한 바퀴 돌면 메밀쯤은 쉽게 소화되는 코스다. 다음 목적지는 대관령이다. 대관령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몽실몽실 귀여운 양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처음에는 퀴퀴한 고향의 향기가 코를 찔러 숨쉬기가 힘들 수도 있다. 먹이 주기 체험을 하며 친해지다 보면 어느새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만 남게 될 거다. 마지막으로 모나 용평리조트로 가야 한다. 한여름에 스키를 타려는 건 아니고 그곳에 평창의 명산, 발왕산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 높이 해발 1,459.1m.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겐 케이블카가 있다. 정상까지는 편도 약 20분. 운행거리가 제법 길어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일부 구간은 급경사라 스릴도 있다. 발왕산 정상에는 스카이워크가 있다. 투명한 유리바닥 위에 서면 평창을 발아래 둘 수 있다. 등골이 오싹하니 절로 시원해지는 풍경이다.
▷유의민
본캐는 직장인, 부캐는 여행작가.
●Japan Toyama Murodo
일본 도야마현 무로도
6월이 다가오면 내게 주어진 며칠간의 휴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이는 더위를 튜브 삼아 바다로 뛰어든다. 누군가는 이 계절에만 주어진 해를 만끽하며 연둣빛으로 들어찬 들과 숲을 누빈다. 그러나 물 공포증을 가진 인간에게 더위를 피해 바다로 가는 일은 피서가 아닌 오싹한 극기훈련이다. 물 공포증만 가졌다면 좋으련만, 따가운 한여름의 볕까지 싫어하니 내게 여름은 혹한기보다 혹독하다. 그럴 때 나는 나의 천국으로 도망친다. 목적지는 한국에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일본이다.
뙤약볕은 싫다며 일본으로 도망치는 것이 어째 앞뒤가 맞지 않지만, 6월의 일본 여행객과는 사뭇 다르게 짐을 꾸린다. 기능성 반팔 티셔츠와 바람막이, 맨투맨과 긴 바지를 배낭에 넣고 운동화를 챙겨 신는다. 천국은 이름에 걸맞게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해발 2,450m, 일본 도야마현에 위치한 무로도. 향하는 길은 번거롭기 그지없지만 어디 천국을 누리는 길이 쉽기야 하겠는가. 비행기와 버스를 이용해 도야마현에 도착하면, 모노레일과 산악열차를 타고 약 2,000m까지 올라간다. 지금도 충분히 높지만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고 2,450m에서 하차하면 어디서도 보지 못한 설벽(Snow Wall)을 만날 수 있다. 무로도의 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쌓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개방되지 않는다. 잔뜩 쌓인 눈을 특별 제설 차량으로 밀어내고 만든 설벽의 높이는 20m, 개방(4월) 이후엔 점차 녹아내려 내가 주로 방문하는 6월엔 10m 남짓 남은 설벽을 볼 수 있다. 온도는 10도, 해는 따사롭고, 바람은 불지 않는다. 여름 회피형 인간의 피서지로 안성맞춤인 날씨이다.
2,450m의 노을은 특별하다. 보통 때라면 지평선을 향해 해가 점차 내려가지만, 무로도에선 바닥에 잔뜩 깔린 구름 이불로 해가 뛰어들어가는 모습이다. 노을이 다가올수록 공기에 진한 색이 입혀진다. 따뜻한 귤색으로 시작해 한 호흡 가득 베어 물고 나면 배가 뜨거워질 정도의 검붉은 색에서 보랏빛까지, 순식간에 지나간다. 무로도. 나만의 천국, 가깝고도 번거로운.
▷이소정
자주 여행하고, 가끔 글을 쓰는 배낭여행자.
●Japan Shizuoka Shiraito Falls
일본 시즈오카현 시라이토 폭포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고.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건만 불볕더위 앞에선 그저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시라이토 폭포는 그 뜨거웠던 여름, 내가 처음 만난 오아시스였다.
‘흰실 폭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암절벽에서 실같이 하얀 폭포수가 가득 쏟아진다. 무려 초당 1.5톤의 양이라고 한다. 정비된 길을 따라 하부 데크로 내려가면 폭포를 온몸으로 맞을 수 있다. 투명하고 맑은 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그 물방울이 이리저리 튀어 마른 피부에 수분을 준다. 체감 온도가 쑥 내려가고 금세 시원해진다. 물소리를 들으며 쨍한 햇빛 너머에 서자 더위는 더 이상 괴로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라이토 폭포 물줄기는 후지산 꼭대기의 눈이 녹은 것이라고 한다. 절경의 근원 후지산을 상부 전망대에서 바로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여름 시즈오카에 간다면 이곳에 꼭 들러 보길 추천한다. 도심을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기 좋고 맑은 날이면 물가의 무지개가 당신을 반길 것이다.
▷지예지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자 에디터. 모험과 여행을 즐기는 낭만주의자.
●Egypt Dahab
이집트 다합
이집트를 여행할 때다. 이집트는 여름이 아니어도 뜨겁다. 더위를 피하고자 도망친 곳은 수도 카이로에서 버스로 10시간 떨어진 다합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다합민국’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다. 그 이유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알 수 있었다. 장시간 이동의 피로도 잊을 만큼 선선한 바람이 나를 환영해 줬다. 걷다 보니 바로 바다가 나왔는데 이곳의 바다는 3가지로 나뉜 푸른색의 집합이었다. 한국의 바다색과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바람과 바다, 이것만으로도 피서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최고’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는, 다합에는 여유가 감돌기 때문이다. 휴식을 선물하는 마을. 이름도 잘 읽지 못하는 해변가의 아무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수영을 하고, 바다가 추워지거나 수영에 지치면 선베드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다. 그러고 다시 더워지면 수영을 한다. 반복한다. 이 반복적인 일상이 일주일, 2주가 흘러도 크게 지겹지가 않다. 수영 실력만 늘어갈 뿐이다. 다합이 괜히 ‘장기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잠수하며 빨리 숨 쉬고 싶다, 시원하다 혹은 덥다 등 단순한 생각만 하게 된다. 다합은 더위를 피하기에도, 깊은 생각에서 잠시 도피하기에도 좋은 피서지다.
▷천준현
호기심을 찾아 여행하는 여행자. 불확실한 여행의 재미를 아는 여행자
●Greece Santorini
그리스 산토리니
산토리니는 그리스 최고의 휴양지다. 다른 지중해 휴양지 섬에 비해 시원하고 여름에 속하는 5~10월까지는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로 여행하기 좋다. 에게해 키클라데스 제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토리니는 화산이 만들어 낸 용암 절벽 위에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 옹기종기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눈부시게 청명하고 맑은 하늘 아래 파란 지붕을 머리에 얹은 교회와 하얀 집들은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자연의 재앙 앞에 쉽게 무너지지도, 섭리를 거스르지도 않은 채, 자연과의 조화를 이뤄 내며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낸 끝에 현재의 경이로운 모습을 만들어 냈다.
산토리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여행자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산토리니의 전경에 흠뻑 빠져 버린다. 끊임없이 눌러 대는 카메라 셔터를 타고 프레임에 담긴 산토리니의 모습은 아마추어인 나를 작가로 만들어 주는 작품이 되어 나타난다. 산토리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풍경에 대한 감동과 경외감으로 복잡한 우리 일상을 완벽하게 지워 내기 때문은 아닐까.
산토리니는 피라(Fira) 마을, 피로스테파니(Firostefani), 이메로비글리(Imerovigli), 이아(Oia) 마을 등 주요 4개의 마을이 절벽 위 해안선을 따라 순서대로 이어져 있다. 산토리니 마을 여행은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다 위 절벽에 뿌려져 있는 새하얀 마을을 따라 걷고 또 걸어 보는 것, 그것이 산토리니 여행의 묘미기 때문이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파란 교회 돔과 산토리니 전통 건축양식으로 빚어낸 새하얀 건축물들은 여행자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흰 골목들을 헤매며 걷는 것이 이곳을 여행하는 목적이 된다.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빠른 호흡으로 산토리니를 돌아본다. 산토리니 여행은 피라 마을에서 시작된다. 산토리니의 중심인 피라 마을은 각종 편의시설과 호텔, 다양한 나이트라이프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피라 골목을 걷다 보면 칼데라 전망이 펼쳐진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는 피로스테파니를 거쳐 산토리니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메로비글리 마을까지 이어진다. 절벽에 늘어선 멋진 카페들과 호텔은 우리가 흔히 상상 속에 그려 보았던 산토리니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절벽에 위치한 대부분의 호텔들은 환상적인 오션뷰와 인피니티 풀을 갖추고 있어 머무는 동안 언제라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에게해를 감상할 수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기 시작하면, 여행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산토리니의 하이라이트이자 대표적인 전경을 볼 수 있는 이아 마을이다.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인 이아 마을의 이아 성채는 생애 꼽을 만큼 멋지고 낭만적인 석양의 풍경을 선보인다. 에게해 물결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 필터를 끼워 놓은 듯 절벽 위 하얀 집들이 붉게 물들어 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심장이 터질 듯한 감동과 그간의 복잡한 상념들이 모두 하늘 위에 흐트러져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산토리니는 여행자들의 가슴 깊은 곳에 영원히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쉼표가 필요할 때,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춰야 할 때 찾아가야 할 최고의 안식처 아닐까. 힐링의 아리아가 울리는 산토리니. 그곳이 그립다.
▷이희진
혼행예찬을 부르짖는 자칭 ‘혼행전문가’. 나홀로 세계도시 300여 개를 탐험한 직장인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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