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쪽으로 내려가다가 돌아본 풍경. 산 전체가 바위다. 그 뒤로 도심의 풍경이 펼쳐진다. 인왕제색도의 풍경이 언뜻 비친다.
인왕산은 봄의 산이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던 시절 인왕산은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던 그림에 불과 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의 실제 모델이지만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던 인왕산은 그 그림 보다 감동이 적었다. 일반인들이 맘 놓고 다니게 되면서 제일 먼저 인왕산을 즐겨 찾던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는 이른바 ‘산꾼’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인왕산의 매력이 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손에 손 잡고 다니는 산책 코스가 됐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왕산의 매력을 사진으로 알렸다. 그렇게 현재에 이른 인왕산이 새로운 데이트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 이른바 ‘썸’을 타는 남녀, 이제 막 새 살림을 꾸린 부부,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푸르른 젊음을 발산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인왕산은 봄의 산이다. 인왕산의 여러 등산 코스 가운데 독립문역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소개한다.
범바위에서 본 북서쪽 풍경. 안산, 백련산, 봉산, 앵봉산 줄기가 한 눈에 보인다.
●독립문역에서 범바위까지, 큰 숨을 함께 나누는 오르막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조금 가다보면 ‘선바위’, ‘인왕산 국사당’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길로 걷는다. 음식점과 카페 사이 골목으로 가면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다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걷는다. 인왕사 가는 길(선바위)라는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걷는다. 오르막이다. 인왕산 인왕사라고 적힌 일주문이 가파른 포장길 가운데 섰다. 일주문을 지나서 인왕사 안내판 앞에서 좌회전, 벽화가 그려진 계단으로 올라간다. 골목은 좁아진다. 인왕사 종각이 가게 옆에 있다. 계단을 올라서서 종각 지붕 뒤로 펼쳐지는 서울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깐 쉰다.
인왕사 일주문을 지나 국사당으로 가는 길 계단 옆 벽화.
돌아서서 산을 올려다보면 나무 뒤에 사람 형상을 한 거대한 바위가 보인다. 장삼을 입은 수도승 같다. 그런 바위가 바라보는 곳에 한옥집이 한 채 있다. 국사당이다. 조선시대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남산을 목멱산이고 부르기도 한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아무나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나라 차원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남산에 신궁을 지으며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선바위 뒷모습
국사당 앞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서 선바위 쪽으로 간다. 멀리서 보았던 것 보다 훨씬 크다. 선바위는 국사당과 함께 무속 신앙의 대상이다. 선바위는 서울시 민속자료다. 선바위 앞을 지나 쪽문으로 나가면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선바위 뒤에서 선바위를 바라본다. 장삼을 입은 승려의 모습이 더 또렷하다. 선바위가 바라보는 곳에 한양도성 성곽이 보인다.
선바위로 가는 길에 본 국사당. 국사당 뒤로 한양도성 성곽이 보인다.
선바위를 뒤로하고 소나무 아래를 지나 암반바위 위에 놓인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이 코스에서 첫 번째 전망 좋은 곳이다. 남산과 서울 도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는 서대문독립공원, 안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바위 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가면 길이 갈라진다. 데크길로 가지 말고 바위가 있는 쪽으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흔히 해골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다. 어떻게 보면 산 아래로 내려가는 토끼를 닮기도 했다.
흔히 해골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어찌 보면 산을 내려가는 토끼를 닮기도 했다. 그 바위를 뒤로하고 숲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숲길을 벗어나면 한양도성 성곽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한양도성 성곽 18.6km를 쌓는다.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이 북쪽, 서쪽, 남쪽, 동쪽의 축이었다. 그 축을 잇는 성곽 중 인왕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숲 밖에 조금 보인다.
암반바위 위에 놓인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서 본 풍경. 선바위 뒷모습과 한양도성 성곽, 남산과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보인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 성곽을 왼쪽에 두고 오르막을 오른다. 뒤를 돌아보면 구불구불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곽이 도심으로 빨려드는 것 같은 풍경이 보인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서는 길에도 시야는 계속 트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지니 그 풍경에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바람이 쉼 없이 분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팍팍한 다리도 쉬면서 바람을 맞이한다. 송골송골 맺힌 땀이 식는다. 이곳이 범바위다.
●범바위에서 정상까지, 밀어주고 끌어주는 바윗길
범바위는 쉼터다. 눈앞에 펼쳐진 전망에 쉬지 않을 수 없다. 아차산과 용마산 줄기가 서울 동쪽 끝에 우뚝 솟아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 앞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작은 언덕 같은 산 정상까지 차지한 풍경이 보인다. 낙산이다. 낙산 앞에는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의 숲이 길게 이어진다. 그 앞 도심에 있는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차산과 용마산 줄기부터 발 딛고 선 인왕산까지, 풍경은 그렇게 물밀 듯 밀려온다. 반대편으로는 안산과 백련산, 봉산과 앵봉산이 이어지는 서대문구, 은평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한양도성 성곽 뒤로 안산이 보인다. 안산 뒤로 펼쳐지는 풍경 끝은 인천이다.
범바위를 뒤로하고 정상 쪽으로 걷는다. 계단을 내려서서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능선길을 걷는다. 편한 길은 잠시다. 이제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고비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서서 암릉(바위산 길) 구간을 걷는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나무에 걸린 이름표에 한양도성 시민순성관 인왕팀이라는 이름과 함께 ‘인왕산 명품 소나무’라고 적혔다. 땅 위로 내민 줄기가 길게 뻗지 못하고 바로 가지를 양쪽으로 퍼뜨렸다. 구불거리며 자라는 가지 끝에 간신히 솔잎이 매달렸다. 바위 사이 작은 땅에 뿌리내린 어린 소나무 한 그루의 생명력이 강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
디디기 좋게 바위를 파서 계단을 만들었다.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오르면서도 옆에 펼쳐진 전망을 놓칠 수 없다. 뒤돌아보면 이곳까지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더 멀리 한강 건너 남쪽 관악산과 그 뒤의 풍경까지 펼쳐지니 통쾌하다.
다시 바윗길을 올라간다. 바위를 집고 올라선다. 옆에 설치된 밧줄을 잡아도 좋다. 바위를 오르내리는 길이 좁아 사람들이 많을 때는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사람들이 한쪽에서 기다려준다. 무슨 신호도 안내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정상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338.2m 인왕산 정상이다. 인왕산 정상 너른 마당을 이쪽저쪽 다니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인왕산 기차바위 능선 뒤로 북한산 능선이 펼쳐진다. 그 품에 평창동이 안겼다. 눈 뿌린 먹구름이 있던 서쪽 하늘에는 햇볕 기둥이 비춘다. 햇볕이 떨어지는 곳은 우연하게도 한강이었다. 한강이 반짝인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예전에는 성벽 앞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는데, 사라졌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아래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동쪽으로 흘러가는 눈구름 때문에 서울 도심 먼 데 풍경이 눈발에 희미해지다가 이내 사라진다. 여백이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간다.
정상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쪽으로 내려가다가 돌아본 풍경. 바위산이 만든 사선이 풍경을 잘랐다. 그 풍경에 여의도63빌딩이 보인다.
계단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의 풍경이 언뜻 비친다. 산 전체가 하나의 바위다.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까마귀 두 마리가 앉았다. 그 모습도 정겹다. 바위산 비탈면 뒤로 도심 풍경이 겹쳐진다. 도심 풍경에 바위산 비탈면이 사선을 그은 모습이다. 눈발이 또다시 흩날렸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도착할 때까지.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