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쪽 해안의 희귀 이중화산
오름은 그 자체로 완벽한 굼부리(화산 분화구)다. 생긴 모양에 따라 여러 형태로 분류되는데 굼부리 모양이 둥근 ‘원형 오름’과 화구벽 한쪽이 터진 ‘말굽형 오름’, 굼부리의 흔적이 거의 없이 원뿔 모양을 한 ‘원추형 오름’과 여러 형태가 뒤섞인 ‘복합형 오름’이 있다. 이 중 말굽형이 174개로 가장 많고, 원추형이 102개로 두 번째며, 원형은 53개, 복합형은 39개다.
희귀한 이중화산체
제주도 서쪽 한경면 바닷가에 있는 당산봉은 차귀도를 마주하고 솟은 복합형 오름이다. 서부권에서 조망이 빼어나기로 손꼽히는 곳으로, 굼부리 안에 또 분화가 발생한 이중화산체로 제주에서도 매우 드문 형태다. 제주도 동쪽의 말산뫼와 남서쪽의 송악산도 같은 형태의 오름이다.
당산봉은 겉보기엔 바닷가에 솟은 고만고만한 바위산 정도의 느낌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 보면 그 거대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바다를 뚫고 솟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오름으로, 해발고도는 148m에 불과하나 오름 자체의 높이도 거의 같다. 옛날에 이곳에 ‘차귀당’이라는 당이 있어서 당산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당오름’과 같은 의미다.
‘섬풍경펜션’과 들머리의 계단. 뒤로 멀리 수월봉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남동쪽과 바다에 접한 서쪽은 절벽지대를 이루고, 북쪽은 말굽형 굼부리가 열리며 용수리의 농경지가 굼부리 안까지 이어진 모양새다. 굼부리 안에는 무덤이 잔뜩 들어선 알오름이 솟아 있다. 하늘에서 보면 전체가 거대한 말발굽 하나가 선명하게 찍힌 모양새다.
앞바다엔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 떠 있고, 남쪽엔 유명한 수월봉이, 강총각과 고처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절부암節婦岩으로 유명한 용수리 포구가 북쪽으로 가깝다. 오름 남동쪽으론 제주를 대표하는 널따란 곡창지대인 고산평야가 장관이다.
전망대서 뒤돌아본 풍광. 봉수대 터 뒤로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완벽한 말발굽형 굼부리
들머리는 두 곳이다. 북쪽 절부암이 있는 용수포구에서 제주올레 12코스를 따라 오르거나 남쪽 자구내포구 부근의 섬풍경펜션 뒤로 들어서도 된다. 제주올레 트레킹을 위한 게 아니라면 접근이 편하고 식당과 자구내포구, 수월봉 등 편의시설과 볼거리가 몰려 있는 남쪽 들머리가 좋다.
섬풍경펜션 뒤로 제주올레 표지기와 함께 탐방로가 보인다. 보리수나무가 늘어선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능선 안부에 닿는다. 여기서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으로 철조망이 둘러쳐진 건물이 있는 곳은 조선 시대의 ‘당산봉수대’ 터고, 그 옆 서쪽 능선을 따라 제주올레 12코스가 지난다.
북쪽으로 곧장 향하는 길은 무덤이 많은 알오름과 굼부리 안 농경지로 이어진다. 당산봉 탐방을 위해서는 오른쪽 능선을 따른다. 살짝 가파른 느낌의 탐방로지만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숨이 찰 즈음이면 중간의 전망대에 닿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광활한 고산평야 풍광이 압권이다.
능선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굼부리 안의 밭이 나온다.
당산봉 서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 걷기 좋은 곳이다.
온갖 톤의 녹색으로 뒤덮인 농경지 사이사이로 검붉은 화산토를 드러낸 땅이 뒤섞인 제주만의 아름다운 들녘이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고산평야를 품은 대정읍은 제주 최대의 곡창지대로, 북쪽의 한경면과 남쪽으로 산방산을 품은 안덕면까지 이어지며 드넓은 농토를 이룬다.
전망대에서 평탄한 능선을 따르면 곧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한 정상에 닿는다. 정상 또한 전망대에 버금가는 멋진 조망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알록달록한 지붕을 맞대고 옹기종기 모인 고산리 집들이 눈길을 끌고, 멀리 한라산까지 치고 오르는 제주의 짙은 숲지대가 가슴을 뻥 뚫어주는 듯하다.
하늘에서 본 차귀도. 자구내포구에서 차귀도 관광선이 오간다.
이후 능선을 따라 내려선 굼부리의 농경지에서 왼쪽으로 가야 한다. 굼부리 안쪽, 알오름과 당산봉 외륜산 사이에서 거대한 비석이 선 무덤지대를 만나는데, 알오름을 왼쪽에 낀 채 ‘제주도 세계지질공원’ 이정표를 따르면 제주올레 12코스가 지나는 해안을 만난다. 여기서 바다에 접한 당산봉의 서쪽 능선을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면 된다.
올레 12코스와 겹치는 서쪽 능선길은 제주 올레 전 구간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발밑으로 푸른 제주 바다가 넘실대고, 그 너머로 손에 잡힐 듯한 차귀도의 멋진 풍광이 내내 펼쳐진다.
몇 개의 섬으로 된 차귀도가 하도 예뻐서 자꾸만 걸음이 느려지는 곳이다. 이 능선은 해거름에 찾으면 최고다. 곳곳에 벤치가 놓였는데, 유명한 차귀도 일몰을 감상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어서다.
자구내포구에서 본 차귀도 일몰. 날마다 마법이 펼쳐진다.
물 위에 뜬 달, 수월봉
당산봉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수월봉은 한 세트처럼 둘러보게 되는 곳이다. 수월봉水月峰이라는 이름과 관련해서는 ‘물 위에 뜬 달’과 같고 ‘석양에 물든 반달’과 같은 모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시대엔 ‘고산高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제주인들은 예로부터 ‘노꼬물오름(또는 노꼬루)’이라고 했다. 바닷가의 절벽 틈에서 ‘노꼬물’이라는 샘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벼랑에서 물이 떨어져 내린다고 ‘물리오름’이라고도 불렀다.
수월봉 지질트레일 중에 만나는 해안 절경.
수월봉 절벽에서 떨어지는 노꼬물. 수월봉 바위 틈에서 흐르는 물을 노꼬물이라 부른다.
당오름에서 남쪽으로 1km쯤 떨어진 수월봉은 해발고도가 78m에 불과하나 광활한 고산평야의 끝, 바닷가에 바투 서 있어서 높이에 비해 두드러진다.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수월봉 정상은 일몰 명소여서 해넘이를 보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수월봉의 또 다른 매력은 해안 풍광이다. 화산탄과 화산재가 뒤섞이며 쌓인 아름다운 지층이 해안을 따라 길게 노출된 이 길은 ‘수월봉 지질공원 지오트레일’ 코스로, 2011년부터 매년 트레일 행사가 펼쳐진다. 중간에 만나는 일제의 갱도진지도 눈길을 끈다.
수월봉 정상의 육각정자인 수월정. 일몰명소다.
교통
동광육거리에서 고산1리를 오가는 771-1, 771-2번 버스를 이용해 ‘차귀포구’ 정류장에 내린다. 여기서 수월봉으로 가는 엉알길이 바로 연결되고, 당산봉 들머리인 섬풍경펜션까지는 500m쯤 걸어야 한다.
주변 볼거리
자구내포구 일몰 성산일출봉이 제주 최고의 해돋이 명소라면 이곳 당산봉 일대는 누구라도 인정하는 제주의 해넘이 명당이다. 맑은 날, 일몰 즈음이면 수월봉이나 자구내포구는 카메라를 든 이들로 북적인다. 특히 자구내포구에서는 앞바다의 차귀도 사이로 지는 해를 볼 수 있어서 이 풍광을 보고 찍으려는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다만 해안가라서 강한 바람이 불 때가 많으니 바람막이용 재킷 정도는 챙기는 게 좋다.
맛집 (지역번호 064)
자구내포구에 식당이 많다. 대물식당(773-5858)은 갈치와 우럭, 고등어 등 각종 생선조림과 구이가 맛있고, 제철 생선을 듬뿍 썰어 넣어 만드는 물회도 잘한다. 건너의 만덕식당(772-3356)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맛집이다.
대물식당 한치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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