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등산

절벽 위에 텐트 칠 땐 ‘돌풍지수’ 확인하세요

by 白馬 2023. 4. 28.

[낭만야영] 담양 병풍산

 

투구봉에서 본 일몰. 푸른 하늘을 따사로운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던 태양이 서쪽 하늘로 지자, 3월 꽃샘추위가 몰아 닥쳤다.
 

파키스탄에서 두 달 동안 빙하 트레킹을 할 때 개인 포터가 있었다. 그는 늘 내 텐트를 안전하고 따분한 곳에 다른 텐트들과 함께 세웠다. 상업적인 트레킹은 처음이었다. 단독 행동을 할 수 없어 처음엔 그냥 포터가 지정해 주는 잠자리에서 잤다. 하지만 그 멋진 풍경 속에서 그저 그런 ‘텐풍(텐트를 쳐 놓은 풍경)’을 찍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어느 날 텐트 옮길 자리를 정하고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디든 원하는 곳에 쳐도 된다는 말에 직접 텐트를 옮겼다. 그날 이후 개인 포터에게 텐트는 직접 칠 테니 짐만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산해진미가 펼쳐진 뷔페에서 접시를 들고 뭘 먹을까 고민하듯 맘에 드는 곳을 골라 텐트를 쳤다. 가장 멋진 곳에 텐트를 치고 누워 맛 좋은 풍경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세 번 직접 옮기고 나니, 포터는 가장 먼저 도착해 내가 좋아할 만한, 가장 높고 가장 멋진 풍경이 펼쳐진 곳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내가 도착하면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었다. 장소가 아주 흡족했던 나는 두 엄지를 치켜들며 “퍼펙트!!”를 외쳤다. 항상 혼자 여행하느라 팁 문화를 몰라 잔돈을 챙기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는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해 주었다. 덕분에 매일같이 멋진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결국 트레킹을 마치고 그에게 적립해 둔 팁을 몰아서 주었다. 

2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장소에서 야영하다 보니, 그만큼 경험치도 쌓였다. 언제 어떤 조건의 장소에서 어떻게 피칭을 해야 하는지 감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백패킹 장소를 정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은 ‘야영지가 얼마나 멋진 곳인가?’다. 야영지가 협소해도 상관없다. 어떤 장소든 텐트를 피칭할 자신이 있다. 밤 하늘에 별이 잘 보이는 곳이면 좋다. 별이 없으면 나의 텐트가 산 속의 별처럼 빛날 수 있으면 된다. 아침에 텐트 문을 열었을 때 힐링되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절벽 끝 고즈넉한 자리에 텐트를 치고 문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펜트하우스 부럽지 않다.

 

추월산 가려다가 병풍산으로

 

구구절절 추억팔이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나에게는 야영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백패킹을 함께 다니는 멤버는 주로 오래 된 지인들이다. 가끔 지인의 초대로 초면인 사람들과도 다니지만 대부분 지인과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라 거리낄 게 없었다. 이번 백패킹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김정미, 김혜연과 함께 담양으로 떠났다. 목적지는 산에 대한 취향이 나와 비슷한 혜연이가 추월산으로 정했다. 그녀가 정한 곳이라면 묻고 따질 것이 없다. 해남 본가에 내려가 있던 정미가 먼 길을 달려 광주역에서 우리를 픽업했다. 광주에서 추월산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걸렸다.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낮은 산세 너머로 우뚝 솟은 암릉이 얼핏 보였다. 위성지도를 보니 병풍산이었다. 다음 백패킹 후보지로 담아놓았다. 추월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등산 준비를 했다. 멀리서 올려다 보니, 정상부에 암릉이 있었다. 

능선 위의 야영지. 동쪽으로 담양군과 함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 저 절벽 끝에서 자는 거야?” 

그 끝에서 멋진 경치를 바라 볼 생각을 하니 신바람 났다.

혜연이가 대답했다. 

“좀 이상해요. 내가 검색했을 때, 차가 중턱까지 갈 수 있었는데, 여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제서야 정미가 말했다. 

“혜연씨가 준 링크는 병풍산인 것 같은데?” 

톡방에 링크가 여러 개라 헷갈렸던 것이다. 그제서야 추월산에서 야영할 만한 곳을 검색했다. 담양호가 보이는 데크가 하나 있긴 했지만 뭔가 심심했다. 셋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떡하지? 어떡할래?’ 라는 표정이었다. 

“난… 야영지 전망이 좀 더 좋았으면 좋겠어. 근데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 하고, 시간도 많이 소비했고… 어떡하지?” 

이 말을 풀이하자면 ‘정미야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너뿐인데 괜찮겠니? 혜연아 네가 링크해 준 거 자세히 안 보고 이제 와서 되돌아 가자고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드론을 맘껏 날릴 수 있는 절벽 끝에 텐트를 치고 싶어’였다.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 보는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선뜻 병풍산으로 가자고 했다. “요후~!! 씐난다~”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더욱 오버하면서 소리쳤다.

20여 분 달려 링크에서 봤던 병풍산 입구에 도착했다. 위성지도를 보니 임도가 계속 이어졌다. 지체된 시간을 벌기 위해 계속 차로 이동했다. 한없이 올라가다 보니, 날로 먹는 기분이 들었다. 잘 닦인 시멘트 길이 끝나자 차단봉은 열려 있었지만, 일반차량 출입을 금지한다는 낡은 표지판이 보였다. 차를 세워두고 장비를 챙겼다. 임도가 지그재그로 꺾이는 중간에 샛길이 나왔다. 혜연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라 비틀어진 넝쿨을 넘어 샛길로 들어갔다. 정미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희미하게 이어졌던 샛길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나무에 제멋대로 엉겨 붙은 넝쿨들이 진로를 방해했다. 혜연이가 앞장서서 길을 골랐다. 

투구봉에서 시작되는 절벽은 정상까지 병풍처럼 펼쳐 있다. 드론을 날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절벽을 탐닉했다.

 

혜연이와 나는 개척산행을 좋아한다. 사서 고생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미는 다르다. 이런 고생길을 싫어하고, 무거운 배낭도 싫고, 텐트에서 자는 것도 무서워한다.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을 10번도 넘게 다녀왔으면서 왜 싫은지 물으면, 가이드 포터가 좋은 길로 인도해 주고, 짐도 다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정미와 갈 때마다 이런 알바(등산로가 아닌 길을 헤매는 일)를 하게 된다. 힘들다고 다시는 안 간다고 투덜대면서도 막상 가면 짜증 한 번 내지 않는다. 

“너랑 가면 재밌긴 해.” 

그녀의 시크한 대답이다.

 ‘고마워. 재미있다고 해줘서’(피식).

멋진 곳 눈앞이지만 친구들 옆이 좋아

겨우 임도에 올라섰다. 임도길은 편하지만 지루했다. 걷다 보니 큼직한 바위가 빼곡하게 쌓인 메마른 계곡이 보였다.

“우리 이쪽으로 가로질러 갈까?” 

“아, 왜애~~!!” 정미가 말꼬리를 늘이며 정색했다. 혜연이는 ‘언니들이 하자는 대로 할게요.’ 모드였지만, 무료한 임도길보다 계곡 가로지르기에 더 끌릴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네 짐 들어줄게 가자 응? 응?” 

나는 공수표를 날렸다. 정미는 내가 배낭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걸 알면서도 방향을 틀었다. 나는 약속을 지킬 것도 아니면서 말했다.

“무거운 짐 꺼내서 나 줘~.” 

정미가 못 말린다는 듯 내뱉었다. 

“됐그등! 이 가시네야!” 

항상 속아 주고 당해 주는 그녀에게 장난치는 게 재미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항공샷. 평화로운 평지 같지만 깎아지른 절벽 위다.

 

계곡 중간쯤 키보다 높은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에서는 스파이더맨 못지 않은 혜연이가 재빠르게 올라섰다. 겁 많은 정미가 쭈뼛쭈뼛 손을 뻗어 홀드를 찾아 더듬었다.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뒤에서 박수 치며 외쳤다. 

“파이팅 김정미! 브라~보! 멋지다 정미야!” 

요즘 핫한 드라마 속 송혜교의 대사를 진지하게 패러디했다. 정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연신 “Shut the mouth(입 닥쳐)!”를 외쳤다. 험난한 바위 계곡에서 쉴새 없이 웃음이 울려 퍼졌다. 

된비알을 한참 올라서고 난 뒤에 능선에 닿았다. 뒤돌아 보니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었다. 희뿌연 미세먼지에 잠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어찌 보니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투구봉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1m 남짓의 폭으로 길게 공간이 있었다. 

“우리 여기서 잘까?” 

풍경이 좋아서 말을 던져봤다. 정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선뜻 대답을 하니 뭔가 좀 아쉬웠다. 

‘정상이 더 멋있으면 어떡하지?’ 

 

김정미가 계곡의 바위 틈을 기어오르고 있다. 지루한 임도길이 따분하다면 계곡길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다.

 

둘은 쉬라고 한 후, 맨몸으로 병풍산 정상으로 향했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인 줄 알았는데, 그 너머에 또 오르막이 있었다. 정상부에는 나무가 울창했다. 풍경은 투구봉이 더 나을 것 같아 되돌아갔다. 내려가는 길에 바라본 투구봉이 더욱 좋아 보였다. 투구봉 끝 절벽 쪽으로 가자 큰 바위 아래로 텐트 한 동 칠 만한 공간이 나왔다. 하지만 중앙에 10㎝ 높이의 날선 바위 두 줄이 나란히 가로질러 있었다. 여기에 누우면 작두 위에서 자는 느낌일 것 같았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경치가 너무 좋았다. 날카로운 바위 사이에 돌을 가져다 메우고 양 옆으로 잡동사니를 깔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내려다 보던 혜연이는 바람 불면 위험하다며 올라오라고 했다. 하지만 바람과 돌풍 예보는 수치가 낮았다. 소나무와 가느다란 바위에 가이라인으로 피칭하면 문제 없을 것이리라. 더군다나 풍향이 반대라 절벽이 바람을 막아 줄 것으로 믿었다. 텐트를 치고 나머지 짐을 가지러 올라가자 혜연이는 다시 올라오길 바랐다. 내가 발을 헛디딜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정미도 혼자 자기 무섭다며 말을 보탰다. 정미와 백패킹을 가면 항상 무서워하는 그녀 바로 옆에 텐트를 쳤다. 이번에는 멋진 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머지 짐을 가지고 다시 내려갔다. 

 

서쪽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풍경이었다. 쉴새 없이 텐풍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짐을 꾸렸다. 배낭을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에 끼워놓고 가이라인을 푼 후 텐트를 통째로 들고 절벽 위로 올라갔다. 혼자라면 불편하고도 멋진 자리를 고수했겠지만, 함께 온 친구들이 우선이었다. 정미 텐트 옆에 피칭을 마치고, 배낭도 회수했다. 자리 옮기길 잘했다. 혜연이 늘 말하는 ‘골칫덩어리 꼰대언니’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났다. 어두운 밤에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기에도 안전했다. 무엇보다도 정미의 든든한 이웃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불빛에 뒤질세라 별들도 쉬지 않고 밤새 궤적을 그렸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드론을 날렸다. 나란히 놓인 텐트 세 동의 항공샷이 조화롭고 멋있었다. 혼자 세계여행을 할 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멋진 풍경 속에서 잤지만, 항상 외로웠다.

‘이 멋진 풍경을 친구들과 함께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때만큼은 그 친구들이 옆에 있었으니, 굉장히 행복했다. 

 

알아두면 좋은 날씨 어플 [windy]. 윈디는 무료 어플이다. 일출일몰 시간 확인은 기본에 우천시 시간대별 강수표시가 써본 날씨 어플 중 가장 정확하다. 바람과 돌풍 예보도 쪽집게 수준. 

 

백패킹 시 고려해야 할 사항

1 풍향을 확인할 것. 텐트는 바람의 저항을 덜 받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2 바람의 세기보다는 돌풍지수를 확인할 것. 바람은 끊임없이 분다. 

즉 예측하며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돌풍은 갑자기 세게 불어 닥치기 때문에 절벽 위에 텐트를 칠 경우 꼭 확인해야 한다.

1~10 :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음.

11~20 : 예민한 사람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착용 권장.

20~30 : 이러다 날아가는 거 아냐? 싶지만 펙다운 잘하고, 가이라인 피칭만 잘 해두면 날아가진 않음. 텐트에 따라 잘 때 텐트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벽이 누울 수 있다.

30~40 : 북설악 성인대에서 경험해 봤다. 결과 잠은 포기해야 했다! 저 멀리서 돌풍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텐트가 100만 톤의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벌벌 떨어야 함. 친구 텐트는 잠깐 자리 비운 사이 날아갔다. 절벽 바로 아래에서 발견했음. >..<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