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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설악 등반 사고 분석] “규제 풀되 안전은 개인이 책임지도록 해야”

by 白馬 2022. 12. 15.

올해 설악산 암벽등반으로 6명 사망…‘개인 과실’이 대부분

 

6월 19일 설악산 까치골 50대 50m 추락.

9월 3일 울산바위 문리대길 50대 추락.

9월 17일 장군봉 삼형제길 40대 선등 중 추락.

9월 24일 토왕성폭포 인근서 60대 실족 30m 추락.

10월 15일 천당리지 50대 100m 추락.

10월 16일 공룡능선 나한봉 인근 60대 추락.’

등반가들이 설악산 장군봉에 2019년 10월 개보수한 ‘히말라야 방랑자’ 루트를 등반하고 있다. 국립공원 내에서 새로운 등반 루트 개척은 금지돼 있지만, 기존에 있던 루트를 개보수하는 것은 허락되고 있다.

 

올해 설악산에선 유달리 암벽등반 사망사고가 많았다. 6월 19일부터 10월 16일까지 단 5개월 동안 총 6건의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일 국립공원 지역에서 단시간에, 지속적으로 사고가 이어졌다.

국립공원공단에서 발간한 <2022년 국립공원 기본통계>에 따르면 전체 22개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는 2017년 3건, 2018년 2건, 2019년 7건, 2020·2021년은 각각 6건이다. 그러니 올해 설악산국립공원은 전체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연간 추락 사망사고와 맞먹는 수치를 기록한 셈이다.

왜 올해 유독 사망사고가 많았을까? 전문가들은 한국 암벽등반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국립공원공단이 만든 암벽등반 제도가 등반가들에게 이해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런 제도 하에서 축적된 암벽등반 문화 자체의 문제다.

 

9월 17일 설악산 장군봉에 강원도 119 소방대원이 출동해 추락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개인의 부주의나 등반 미숙이 1차 원인

먼저 사고 면면을 살펴보자. 사망자들의 나이는 40~60대로 전부 중년이다. 등반 경력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라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6건의 사고 중 절반인 3건이 비법정탐방로에서 발생했다. 설악산 까치골, 토왕성폭포 인근, 천당리지가 이에 해당한다. 또 삼형제길의 경우에는 일몰 이후 발생한 사고다.

 

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강원도소방본부,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재난안전과 직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모든 사고의 1차적인 원인은 개인의 부주의나 등반 미숙이라고 전해진다. 즉 낙석이나 등반 중 볼트 뽑힘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난안전과 A 직원은 “올해 발생한 사고들은 국립공원공단의 관리소홀로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순간적인 부주의나 등반 능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등반하다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사망사고 중 한 건을 예로 들게요. 이 사고는 일행을 이끌던 분이 추락하신 건이었어요. 제가 출동해서 사고를 수습하면서 같이 온 일행들에게 하강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분들이 하강 포인트를 모르더라고요. 그러니깐 아예 등반 루트조차도 숙지하지 않은 상태로 그저 대장만 믿고 따라온 거였어요.”

또한 비법정탐방로 구간에서 추락한 사고에서는 동행자가 도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고 당시에는 현장에 있었지만 이후 불법 산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도망간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장군봉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야간에 신고가 접수돼 구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과한 규제가 등반 경험 쌓을 기회 뺏어

등반가들 스스로도 암벽등반 중 발생한 사고는 오롯이 등반가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명희 등반가는 “다른 나라도 암벽등반 중 사고가 나면 오롯이 등반가 스스로 책임을 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상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많다. 먼저 이명희 등반가는 “최근 몇 년 사이 대폭 늘어난 공단의 규제가 등반가들이 스스로 경험 쌓을 기회를 앗아갔다”고 지적했다.

“제가 어릴 적 등반을 시작할 때는 야간등반이나 야영이 불가능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둘 다 엄격히 통제되고 있죠. 또 날씨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아예 입산 통제를 걸어버려요. 그러다보니 등반가들이 경험치를 쌓을 수 없는 현실이에요. 등반이란 건 같은 루트라도 상황에 따라서 그 내용이 매우 달라지거든요. 가령 이번에 일몰 후 등반 중 발생한 사망사고도 기존에 야간 등반의 경험이 풍부하게 있었다면 당황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겠죠.”

오영훈 본지 기획위원도 공단의 규제를 “행정편의주의적인 결정이 모인 것”이라며 “도전적인 등반의 기회를 양성화하고 허가해 주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법정탐방로나 야간산행처럼 어려운 과제를 만들고 이에 도전하는 것은 등산의 관점에서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공단이 이런 등반가들의 모험 욕구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그냥 개인의 일탈로 낙인을 찍어버리고 말았어요. 모두를 불법자, 문제아로 만들어 해결한 거죠.

특히 규제의 이유가 자연 보호인 경우 공단이 주장하는 것과 일반 등산인이 체감하는 것 사이에 괴리감이 큽니다. 이 괴리감을 좁히지 않고 불법이라 규정하니 사람들이 계속 등반에 나서는 거죠.”

덧붙여 암벽등반 예약제와 공단의 루트 관리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설악산에서 암벽등반을 하려면 사전에 예약해야 하며, 20~50명 선으로 정원이 정해져 있다. 

 

설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최 모씨는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루트 관리나 보수도 하지 않고, 개척자나 개척한 산악회에서 관리하라고 한다”며 “자비를 들여 보수하면 공단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사진으로만 공사 후 결과를 확인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립공원공단은 “허가를 내주는 건 루트가 아니라 루트가 존재하는 지역이 비법정탐방로이므로 이에 대한 출입을 허가하는 것”이라며 “암벽등반 루트 보수공사는 개척자가 공단에 사전 통보 후 자체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이유는 공단은 자연적인 재난위험요인만 관리하고 인공시설물은 산악인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 직원이 현장에 참석하기 어려울 때만 사진으로 결과를 받는다. 또 시급히 보수해야 하는 구간이 있으면 공단에서 직접 공사한다”고 해명했다. 

반면 이에 대해 일부 등반가들은 “공단에서 루트 관리 책임을 맡을 경우 통제와 폐쇄가 필연적이기에 현행대로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10월 15일 구조헬기가 비법정구간인 천당리지에서 추락해 사망한 등산객을 수습하고 있다.

 

소영웅주의, 등정주의로 병든 암벽 문화

한편 국내 암벽등반 문화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진단도 있었다. 등반가 이명희씨는 “등반 편의를 위해 바위를 훼손하는 치핑, 닥터링 등 등반 윤리와 관련된 행위는 물론 일단 기본적인 쓰레기 되가져가기조차 지키지 않는 등반가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하나 짚자면 너무 많은 수의 등반가가 한 팀을 이루는 경우예요. 4명 이하로 팀을 꾸리는 게 가장 최선인데 우리나라는 보통 6~7명, 많게는 8명까지 한 팀을 이뤄 올라가요. 이러면 팀을 이끄는 선등자가 후등자 전원의 등반을 모두 챙겨볼 수 없어 등반 시스템 상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6~7명이 한 확보지점에 매달려 있을 순 없거든요.”

 

오 위원은 이러한 문화가 생긴 배경으로 한국 특유의 소영웅주의와 체험주의를 짚었다. 즉 정상적인 등반은 도전 과제를 인식하고, 이를 헤쳐 나가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과정인데 무조건 올라가고 보겠다는 정상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오 위원은 “이럼으로써 기존 전통등반 루트에 볼트가 덧대어지고 안전 교육이나 배려, 책임 등 윤리가 뒷전이 된다. 위험을 스스로 자각해야 하는데 대개 소수의 ‘고수’ 리더에게 의존하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게 남들이 안 가본 곳을 가봤다는 소영웅주의가 인터넷 상에 난무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국립공원공단도 유튜브와 SNS에 올라오는 비법정탐방로 등반 후기가 미숙련 등반가의 불법산행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설악산국립공원 B계장은 “비법정탐방로를 등반한 후 이것을 무용담처럼 꾸며 게시하는 경우가 근래 부쩍 늘었다”며 “작성자에게 삭제를 부탁하지만 워낙 많아 전부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측에 해당 게시물을 강제로 삭제하라고 명할 법적 근거도 없어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주기적으로 제작하는 루트 맵이 없다는 것도 사고 위험성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유명 아웃도어 기업이 산악단체, 개척자, 등반가들을 모아 유명 봉우리나 암벽의 루트 맵을 한 번에 정리하는 작업을 종종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정보가 최신화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통의 오해나 본인들의 등반 편의를 위해 볼트 위치가 바뀌거나 루트가 변경되곤 해서 오인하고 등반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더러 생기고 있다.

오영훈 위원은 “대한산악연맹, 한국산악회, 한국대학산악연맹 등 기존 전국 규모 산악단체가 이런 문제를 잘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행정 능력도 부실해 대국민 등반윤리 계도라든지 당장 필요한 일에 대해 손 놓고 있는 상태란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유튜브·SNS 후기가 불법 부추겨

정리하자면 등반가들의 일관적인 주장은 “국립공원공단의 규제와 암벽등반 문화가 함께 선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 위원은 “먼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자연공원법에서 ‘안전을 위해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삭제 또는 변경해 등반가가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이러면 공단도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과도하다고 생각하면서 남발해 온 행정을 멈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암벽등반 사고기사 대부분은 부정적인 댓글로 점철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 헬기 비용을 요구조자에게 청구하라는 말이 많다. 실제로 일부 산악선진국에선 등산 보험제도가 활성화돼 있어 헬기 비용을 보험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자연공원법에 변화가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도입될 제도다. 오 위원은 “책임 있는 탐방 문화를 위해 공단과 산악단체 모두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봤다.

 

“국립공원 홍보자료를 보면 대부분 명승지, 경관을 자랑하고 호객하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안전에 둔감해지게 만들고 있는 셈이죠. 이건 무책임한 탐방 행태를 유발합니다. 탐방이란 철저한 등산이며, 산의 위험성을 인지시키고 그에 맞게 준비하도록 계도할 필요가 있어요.

탐방객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해요. 지금 ‘국립공원을 간다’는 개념은 어떤 길이든, 어떤 수를 쓰든지 무조건 그 공원의 정상을 찍는다는 주의입니다. 이젠 그 공원이 품고 있는 자연을 직접 겪는 작은 등산, 둘레길, 야영 등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어요.” 

 

 

해외에선 암벽등반 보험이 보편화돼 있다. 사진 BMC.

 

스위스 구조 헬리콥터 단체REGA의 헬리콥터. 별도의 보험을 들지 않았거나, REGA를 후원하지 않는다면 출동 비용을 요구조자가 지불해야 한다. 사진 R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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