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소리길

해인사의 장경판전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이 도서관의 서가처럼 촘촘히 꽂혀 있다.
겨울의 사찰은 참으로 고요하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꽃이 없어도 신록이 없어도 마른 잎새들과 바람의 속삭임이 겨울만큼 청명하게 들리는 계절은 없으리라. 종교와는 관계없이 우리나라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으니 나 홀로 사유하기엔 사찰만큼 좋은 곳도 없다. 그래서인가 이번 겨울엔 통도사, 도솔암, 미황사, 보림사 등 많은 사찰을 다녀왔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가야산 해인사를 여행지로 정하고 가야산 산행코스를 찾다가 마음 속 깊숙이 들어선 글귀가 있다. ‘생명의 소리를 듣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숲길’이라고 설명된 ‘가야산 소리길’이다. 어떤 길을 걷고 싶어 했는지 마치 알고 있는 듯이 찾아와주었다.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한 길은 해인사 입구까지 약 7.2km, 넉넉하게 잡아도 2시간 반이면 족하다. 계곡과 소나무 숲을 걸으며 계곡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통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이다. 소리길의 ‘소리蘇利’는, 즉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뜻이니 그 의미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소리길 굽이마다 가야산의 비경이 숨어 있다. 가야산 19경 중 16경이 가야산 소리길에 있다.
소리길 탐방지원센터부터 해인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천년 노송의 소나무 숲 곁으론 홍류동계곡이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연출한다. 가야산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홍류동계곡은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계곡물을 물들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계곡물을 물들이는 홍류동계곡의 겨울 모습.
겨울 홍류동계곡은 춘천 의암호처럼 꽁꽁 얼어 있다. 단풍 대신에 빙하가 기다렸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도 봄을 기다리는지 흐르는 물길에게는 길을 내 준다. 간간이 햇살이 드리운 산길이지만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어서 생각보다는 춥지 않다.
영산교부터 길상암까지 이어지는 홍류동 옛길은 계곡을 따라서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복원했다. 낙화암을 비롯해 길상암, 물레방아 등 소리길 중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은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탐방로이다.
두꺼운 얼음 속을 흘러나오는 물줄기 소리, 산산이 부서지는 얼음의 춤사위를 즐기며 걷다 보니 길게 늘어진 폭포수가 커다란 빙벽을 선물해 준다. 가야산 최고의 비경인 낙화담落花潭이다. 웅장한 바위벼랑을 타고 쏟아지는 장쾌한 물줄기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키고 얼어붙었다. 봄이 되어 녹아내린 장엄한 폭포수가 마치 한 떨기 꽃처럼 흰 물거품을 만들며 짙푸른 못에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낙화담의 비경에서 쉽게 자리를 뜨기가 어렵다.
‘하심下心’이라고 쓴 나무를 지나가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새기며 고개를 숙인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송진 채취 흔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일제강점기에서 1960년대까지 송진은 의약품, 화약약품 등의 원료로 이용되었고, 속껍질은 어려운 시절 끼니를 이어주던 구황식품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고 울창한 숲을 이루어낸 소나무들이 기특하다.

시원스럽게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가야산의 봉우리들.
겨울 계곡은 소리없이 분주하다
제월담, 분옥폭포, 자필암 등을 지나니 통일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둔해 수도하던 농산정籠山亭이다. 이 정자는 최 선생이 은거 생활할 때 글을 읽었던 공간이라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가야산 학사대에서 신발과 갓을 벗어 놓고 가야산 신선이 되기 위해 입산했다고 한다. 주변 암반에는 누가 쓴 글씨인지 알지 못하는 석각이 가득하다.
최치원이 쓴 ‘제가야산 독서당’을 천천히 읖조리며 잠시 홍류동계곡에 취한다.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봉우리 울리니, /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 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작은 생태공원이 곁에 있다. 목어와 목탁의 유래를 인용한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가 귀엽다. 이곳은 소리연못, 소리길 소생태계이다. 작은 연못 가운데는 데크를 만들고 어린 나무가 살도록 배려해 주었다. 연못으로 가는 징검다리엔 거북이, 연꽃 등이 조각되어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등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작은 생물들을 위한 공간이자, 서식지 간 연결을 돕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홍류문, 칠성대를 차례로 지나니 이젠 계곡길도 거의 끝나고 소리길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가야산이 시원스럽게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이제부터는 시골길, 농로길이다. 청량사와 소리길이 나누어지는 소리마을이다. 마을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소리길을 걸어도 좋다. 마을길로 들어서니 홍류동계곡은 평범한 가야천으로 변하고 얼음의 흔적조차 사라졌다. 대장경테마파크에 도착해 가야산 소리길이 끝이 난다.
가야산 소리길을 탐방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홍류동계곡이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는 가을의 절정기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름다운 풍광은 즐길 수 있지만 조용히 이 길을 걸으며 소리蘇利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나를 찾고 싶다면 봄이 오는 길목에 가야산 소리길을 걷는 것이 옳다.

봉황문까지 가는 길은 엄청나게 큰 노송들이 가득하다.
1,200년을 해인사와 함께한 고사목
가야산 소리길은 해인사로 오르는 홍류동계곡길을 따라 걷고 해인사에서 끝이 나니 많은 사람들이 해인사 소리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리길을 조성할 때에 해인사, 국립공원공단, 합천군이 힘을 모았다고 한다.
가야산 소리길 도착지에서 만나게 되는 해인사는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인 서기 802년 지금의 대적광전 자리에 창건했다.
해인사는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불교의 삼보사찰 중의 하나. 삼보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말로서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여 통도사를 불보사찰佛寶寺刹,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해인사를 법보사찰法寶寺刹,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 한다. 팔만대장경이 가야산 해인사에 있는 이유는 오대산, 소백산과 함께 삼재三災(화재·수재·풍재)를 피할 수 있는 깊은 산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인사로 오르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봉황문까지 가는 길은 엄청나게 큰 노송들이 가득하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고사목이 있다. 해인사가 창건될 때 심어져서 1,200여 년의 세월을 해인사와 함께하다가 1945년 고사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있다. 해인사를 오갔던 많은 이들의 간절한 사연들을 모두 알고 있을 것 같다.
해탈문을 지나니 다른 사찰에선 보지 못했던 해인도가 있다. 미로 찾기를 하듯 선이 그려져 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께서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도안 중심에서 시작해서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원리이다. 해인도를 돌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 같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으로 들어서는 문.
대적광전을 지나 장경판전으로 오른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이다. 도서관의 서가처럼 5개 층으로 구분된 판가에 촘촘히 대장경판이 꽂혀 있다. 예전에는 팔만대장경을 들어가서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존을 위해 빗살 사이로 볼 수밖에 없다. 장경판전 바닥은 땅을 깊이 파서 숯,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를 뿌려서 습도를 스스로 조절하고 해충의 피해도 줄인다고 한다. 빗살 창의 방향이 통풍을 조절해 준다. 목재의 수분 관리 기능이 완벽한 건물이 장경판전이다. 대장경판을 오래도록 보존하려는 과학적인 지혜가 엿보인다.
안에서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빗살 사이로 보기에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세계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음에 위안이 된다.
해인사 큰 마당을 지나 우측 계단 쪽에 있는 북 카페. 절 안에 카페? 참으로 이상했지만 들어서니 이해가 갔다. 공간도 널찍해서 편하고 책의 종류도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다. 차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특히 경내를 보면서 쉬어갈 수 있다. 해인사의 그윽함이 이곳에서 숙성되는 느낌이다.
팔만대장경도 찬찬히 들여다보고 경내도 세심하게 보았지만 조금은 긴장했었나보다. 이곳에 들어오니 모든 긴장감이 와르르 무너진다. 따스한 햇살이 마음으로 전해진다. 장경판전으로 들어서는 문과 똑같이 만든 창이 참 정겹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한 가야산 소리길.
진성여왕의 자취 서린 원당암
이른 아침식사를 한 식당에서 알려준 작은 팁으로 해인사 원당암을 알게 되었다. 가야산 소리길을 걷고 해인사를 둘러 보았음에도 그냥 가기 못내 서운해 들렀는데 그곳엔 정말 많은 보물이 담겨 있다.
원당암은 해인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만들어졌고, 신라시대 진성여왕이 이곳에서 숨을 거둔 암자이다. 진성여왕은 자신의 숙부이자 연인인 각간 위홍이 죽자 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으로 추봉하고 해인사를 원당 삼아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飛鳳山에 위치해서 봉서사鳳棲寺라 불렀고, 진성여왕 때부터 본격적인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여 원당암이라 불렀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는 공주의 난치병이 낫게 되자 부처님의 은혜라는 순응과 이정 두 대사의 발원으로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당시 왕은 서라벌을 떠나 원당암에서 불사를 독려하면서 국정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 원당암을 ‘수도 서라벌의 북쪽에 위치한 궁궐’이라는 의미에서 북궁北宮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입구의 다층석탑과 석등도 예사롭지 않다. 통일신라 말기 유물인 다층석탑은 점판으로 만들어졌다. 하대석은 화강암으로 3층을 쌓고 상단은 점판암으로 10층의 지붕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가야산 제일의 전망대인 운봉교로 오르는 길엔 혜암스님께서 머무르셨던 미소굴과 혜암스님의 말씀, ‘공부하다 죽어라’가 죽비 모양의 조형물로 서 있다. 혜암스님은 50년을 한 끼로 정진하시고 평생을 눕지 않고 수행하셨다.
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이라는 운봉교에 오르니 산 속에 자리한 원당암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세속의 모든 시끄러움이 이곳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가야산 소리길을 걷고 천년사찰인 해인사와 원당암까지 둘러보니 하루가 부족하다. 번뇌를 씻고 깊은 사색에 빠지기에 더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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