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르포
백운대 아래 조망바위에서 나아갈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트레일러닝 콘셉트로 진행했지만, 취재 여건 상 실제 트레일러닝에 준하는 속도를 내진 못했다.
불수사도북의 마지막, 북한산 구간은 온갖 달콤한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을 지나며 체력이 전부 갉아 먹힌 상태에서 북한산에 발을 들이면 하산길로 이어지는 이정표들이 마치 ‘그쯤 했으면 됐다’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한 방울 남은 힘도 쥐어짜 탈탈 털어 넣는 판에 이 유혹까지 이겨내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불수사도북에 도전하는 이들은 “북한산에 들어서야 진짜 종주가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재에서 위문으로 가는 계곡길.
들머리 육모정고개는 한산
불수사도북 종주에 있어 앞선 불암산~수락산, 사패산~도봉산 구간은 어느 정도 루트가 고정돼 있는 반면, 북한산 구간은 다양한 단축 코스가 활용되고 있다. 자기 체력 수준에 맞게끔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이동에서 백운대만 찍고 되돌아가거나, 백운대 이후 북한산성분소 방면으로 하산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산꾼들 사이에 합의된 ‘정석’ 루트는 육모정고개에서 출발해 백운대를 찍은 후, 대동문, 보국문을 지나는 산성을 따라 문수봉에 이른 뒤 비봉능선을 따라 향로봉, 족두리봉을 거쳐 ‘북한산 대호아파트 뒤’ 기점까지다. 북한산의 등뼈를 똑바로 따르는 길이다.
북한산 구간은 특별히 트레일러너들과 함께 걸었다. 불수사도북 종주는 보통 걸어서 20시간 안팎으로 소요되지만 이들은 뛰고 걸으며 12시간 안팎으로 주파한다. 선수급 고수들은 일부 병목구간과 단축코스를 이용해 6시간 만에 불수사도북을 완주한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거친 암릉을 거침 없이 뛰어 넘는다. 트레일러닝의 재미다.
“어? ‘히맨’ 아니세요?”
이번 산행을 함께한 이는 김희남씨와 김주현씨. 둘은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에서 같이 트레일러닝을 했던 사이라고 했다. 특히 김희남씨는 트레일러닝 인플루언서로 유튜브 채널 ‘히맨_He-Man’을 운영하며 하이킹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어 산행 중에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가을장마가 지나간 금요일, 북한산우이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갔다. 빠른 완주를 위해 모두 짐은 최소화했다. 러닝 조끼에 식수와 간단한 에너지바가 끝. 김희남씨는 “겨울에는 생수통 딱 하나만 갖고 트레일러닝을 하기도 한다”며 “불수사도북의 경우 중간 접속구간에서 편의점에 들러 열량과 식수를 보충할 수 있어 더욱 짐을 가볍게 하고 임한다”고 설명했다.
용덕사, 영봉 이정표를 따라 육모정고개길로 접어 든다. 김주현씨는 “사람이 진짜 없어서 좋다”며 두리번거린다. 가을장마가 인기척을 모두 쓸고 간 듯 고요하다. 영봉으로 올라서는 이 길은 비교적 사람이 적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웅장하게 솟은 인수봉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험준한 의상능선을 배경으로 뛰고 있는 러너들.
너무 자주, 오래 쉬면 페이스 떨어져
숲길을 지난 후 본격적으로 능선에 올라서자 우뚝 솟은 인수봉이 한가득 눈에 담긴다. 힘찬 등반 신호 소리를 따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봉우리에 점점이 달라붙은 등반가들의 모습을 찾아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그리고 숨이 미처 꺼지기 전에 다시 하루재로 가는 내리막으로 몸을 던져 넣는다. 긴 거리를 주파할 때 너무 잦거나 긴 휴식은 페이스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하루재 삼거리로 내려선 후 바짝 오르막을 오른다. 백운대로 가는 등산객들이 앞과 뒤에 즐비하다. 코로나로 문이 굳게 잠긴 백운대피소(구 백운산장)를 지나 곧장 위문에 올라선다. 불수사도북의 마지막 정점, 백운대에 오르는 길이다.
대남문 계단을 내려선다.
“순수 훈련을 목적으로 할 땐 그냥 백운대는 지나치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왕래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를 기다리다보면 페이스가 흔들리거든요.”
백운대 등정길은 초보 티를 벗은 산꾼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는 바윗길이다. 하지만 불암산에서 온 종주자는 다리에 피로가 어마어마하게 누적돼 있어 더욱 어렵고 괴롭다.
거친 숨을 몇 번 토해 내고 백운대에 오른다. 평범한 산행이었다면 주변 풍광에 눈길을 돌리며 북한산 정상의 이름대로 하늘에 걸린 흰 구름을 음미하겠지만, 지금은 자꾸만 앞으로 가야 할 능선만이 눈에 밟힌다. 생각을 비우고 걸어야 하는데 남은 거리가 자꾸 머리에 맴돈다.
비봉능선에선 이따금 나오는 암릉 사이로 난 좁고 가파른 길을 주파해야 한다.
다시 위문으로 내려서 본격적으로 북한산의 등뼈에 올라탄다. 문수봉까지 산성주능선을 타고 가는 구간으로 약간의 오르내림만 있을 뿐 평이하다. 구간 대부분이 능선에서 약간 비껴난 숲길이라 햇빛도 막아 준다.
북한산의 깊은 품에 파묻혀 걷다가 이따금 고갯마루에 위풍당당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성문을 반갑게 맞이한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고갯바람에 식히며 열량을 보충한다. 김희남씨는 “열량을 정확히 계산해서 섭취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맛의 에너지바나 에너지젤을 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심장을 박동시키고 근육을 쥐어짜다보면 배가 고플 새도 없다.
저녁 해가 가라앉는 서울시를 향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문수봉까지 이어지는 길은 줄곧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길 반복해 다소 곤혹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세세하게 독도하기 어렵다면 완전히 방향이 다른 길로 갈 땐 이정표가 있고, 다시 합쳐지는 길이라면 이정표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란 점을 기억해 두면 좋다.
사모바위를 지나는 러너들. 김주현씨는 여기서 개인 일정으로 하산했다.
최종 목적지, 아무 표식 없는 점은 아쉬워
대남문과 문수봉을 스치듯 지나가면 비봉능선으로 이어지는 시원한 능선길. 지금껏 북한산성이 철통같이 수비하던 전망을 한껏 즐기며 걷는다. 여기서 체력의 한계가 왔거나, 야간산행을 할 우려가 있다면 기점마다 나 있는 구기 방면 하산길을 택해 내려서면 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야간산행이 금지돼 있다.
촬영을 위해 자주 멈춰선 탓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이젠 오직 속도전이다. 사모바위를 넘어 마지막 지점을 향해 정신없이 걸음을 내딛는다. 하산지점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은 가벼워지지 않고 도리어 피로감에 무거워질 뿐이다. 시선을 땅에 푹 내리 꽂고 점차 어스름 속에 명멸하기 시작한 도시를 어림잡아 되돌아간다.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까지 본래라면 가슴을 뛰게 하는 수려한 암봉들이자 멋진 전망대지만 지금은 문자 그대로 ‘넘어야 할 산’일 뿐이다.
마지막 도착지점인 북한산 대호아파트 기점. 화려한 가로등 조명만이 러너를 감싼다.
불수사도만큼 힘든 월화수목의 직장을 넘어왔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훨씬 지친 상태로 마지막 하산 지점인 대호아파트 기점에 있는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이곳엔 평범한 시멘트 계단에 우두커니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을 뿐이다. 나름 뭇 산꾼들과 러너들의 큰 도전이 마무리되는 상징적인 장소지만 따로 이를 기념하거나 알리는 표식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빠르게 달려온 탓에 일반적인 산행처럼 봉우리 하나하나가 기억에 담기진 못했지만, 넘은 봉우리들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새롭고 높은 봉우리를 이뤘다. 더 많은 땀을 쏟아 온다면 그 봉우리는 더 클 것이다. 이것이 산꾼들이 장거리산행에 빠지는 이유다.
종주 후 Tip
얼음찜질과 아미노산 섭취
트레일러닝은 철저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지만, 사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먼저 얼음찜질이다. 직후에 바로 해줄 필요는 없지만, 혹사당한 근육과 인대, 건을 얼음찜질해 주면 빠른 회복에 도움을 준다. 얼음찜질할 여력도 없다면 찬 물로 샤워만 해줘도 효과가 있다.
또한 종주 후에는 아미노바이탈 같은 아미노산 제품을 섭취하는 게 좋다. 이 제품들은 프로틴과는 다른 제품으로 빠르게 몸에 흡수되어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근육의 회복 과정을 돕는다.
김희남씨의 미세팁 하나 더.
러닝 조끼를 사용할 경우 작은 드라이색을 하나 챙기는 게 좋다. 땀으로 흠뻑 젖기 때문에 젖으면 안 되는 물품들은 드라이색에 넣어 보관하고, 러닝 후에는 드라이색에 있던 물건을 뺀 뒤 반대로 러닝 조끼를 드라이색에 넣어 귀가하면 비교적 쾌적하다.
북한산 836m
산행 거리 약 15km
산행 시간 약 7시간
산행 난이도 중상(산행거리 길고, 일부 암릉 구간)
산행 길잡이
불수사도북 북한산 구간의 정석 루트는 육모정고개에서 출발해 백운대를 찍은 후, 대동문, 보국문을 지나는 산성길을 따라 문수봉에 이른 뒤 비봉능선을 따라 향로봉, 족두리봉을 거쳐 ‘북한산 대호아파트 뒤’ 기점까지다. 접속구간까지 합하면 약 16km. 샛길이 많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의 기점들을 뚜렷하게 숙지하고 있다면 길을 찾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북한산 구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육모정고개로 오르지 않고 우이동에서 도선사 기점으로 오르는 것. 영봉을 지나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백운대에 오른 뒤 위문에서 비봉능선 방향이 아니라 효자동 북한산성분소 방면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체력이나 여건에 따라 단축 코스를 이용하는 건 전혀 흠이 아니므로 무리라고 판단되면 신속히 하산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좋다.
또한 위급할 정도로 식수가 부족하다면 등산로 주변 도처에 자리 잡은 절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수행 중인 스님에게 실례이므로 아예 이를 기반으로 산행 계획을 짜는 건 지양해야 한다.
맛집(지역번호 02)
불광동에 내려서서 지역 토박이에게 추천 받아 해남가정식백반(352-8382)을 찾아갔다. 소모된 열량이 많아 한껏 주린 배를 채워 줄 푸짐한 가짓수의 반찬은 물론, 정성스러운 맛도 일품인데 가성비까지 좋다.
★오늘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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