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하며 사찰 순례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
어느 스님의 <마음으로 하는 108산사>라는 책을 보고 나서였다. 불자는 아니지만 전국의 108개 산사를 찾아다니며 108배를 해보고 싶었다. 여행을 시작한 건 2008년. 한 친구와 절반을 같이 하고, 이후에는 드문드문 혼자서 이어갔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여행이 다시 생각난 건 최근이었다. 왠지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남은 곳은 충청과 전북지역의 33산사. 이번에도 홀로 차박을 하며 다녔다.
월악산 자락의 신륵사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청량한 산새 소리만 산중에 퍼졌다. 작은 절엔 대웅전 하나와 석탑이 전부였다. 신륵사는 흰 화선지 위에 점 하나 찍혀 있는 것처럼 여백이 넉넉했다. 적막감마저 도는 법당 안에서 이번 여행의 첫 108배를 시작했다. 몇 번이고 엎드렸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숫자의 끝마다 읊조리듯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절에서 처음으로 108배를 할 때 함께한 친구가 말했다. 절을 할 땐 소원을 비는 게 아니라고. ‘고맙습니다’하고 절하는 게 가장 좋다고. 그 뒤로 나는 산행이 끝나고 만나는 절에서 108배를 할 때도, 집에서 운동 삼아 할 때도 소원을 빌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넘은 월악산의 신록은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지는 해를 등지고 앉아 고요한 산사와 숲을 느꼈다. 참 좋다, 나는 몇 번이고 혼잣말을 했다.
제주 월정사에서 108배를 하는 필자.
소원 비는 대신 ‘고맙습니다’
이토록 찬란한 아침이라니. 창문을 열고 바람을 그대로 맞이했다. 각연사에선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며, 각인하듯 천천히 절을 했다. 적당히 어두운 법당. 창호지의 은은한 빛. 바람이 불 때마다 퍼지는 풍경소리. 온 세상이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5월이었다.
법주사 도량 끝에 있는 대웅보전은 웅장했다. 법당만큼 불상도 어마어마했다. 오랜만에 108배를 연이어 했더니 슬슬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과연 33산사에서 108배를 다 할 수 있을까? 습관적으로 ‘고맙습니다’라고 읊조리며 절을 하면서도 괴로웠다. 납작 엎드렸다가 일어서는 일. 이건 고행이구나. 머릿속이 온통 힘듦으로 가득했다. 마스크까지 쓰고 하려니 얼굴이 금세 땀으로 젖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절을 마치고 나면 과제 하나를 마친 것처럼 뿌듯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웅전이 있다는 각원사에서, 내친김에 아산의 봉곡사까지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8시, 차 안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밥상은 데운 즉석밥에 집에서 챙겨온 볶은 김치와 김이 전부였다.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핀 계절. 사방에선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끔 소쩍새도 구슬피 울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하기 좋은 밤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물만 마시고 봉곡사까지 걸어갔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즐비한 길. 아름다운 천년의 숲. 봉곡사 법당은 작은방에 들어온 것처럼 아담했다. 이른 아침에 하는 108배는 힘들어도 묘한 감동을 주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았다.
공주 마곡사에 주차를 하고 화장실에 가는데 웬 할아버지가 따라왔다. 내가 당당하게 여자 화장실로 향하자 할아버지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여자 화장실인데….” 차박 여행을 위해 머리를 짧게 깎았더니 종종 이런 오해를 받는다.
웅장하면서도 가지런한 마곡사. 대웅보전에선 비구니 스님이 사시예불 중이었다. 스님이 ‘석가모니불’을 읊는 동안 옆에서 보살님들도 따라했다. 그런데 음정박자가 맞지 않아 어수선했다. 그들 옆에서 조용히 108배를 마치고 법당 밖으로 나갔다.
부처님 오신 날 고창 문수사의 아침.
지금까지 83개의 산사에서 절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불교에 무지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잘 알아야 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절을 못 하는 것도 아니기에. 여행의 목적은 단순했고, 나는 목적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3일째가 되자 무엇보다 빨래가 급했다. 매일 여러 번의 절을 하느라 땀을 제법 흘렸다. 나에게 수덕사 템플스테이는 휴식, 빨래, 숙식 해결의 의미였다. 절에서 잔다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루짜리 템플스테이는 그저 잘 쉬고 가면 된다. 수행이니 비움이니 하는 건 요란한 말장난이다. 진정한 수행은 따로 시간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거다. 지금 잘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깨달은 것처럼 보여도, 삶 속에서 같이 뒹굴다 보면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고고해도 여행 한 달만 같이 해봐라. 그땐 그냥 인간 대 인간이다. 누구도 별거 없다. 내가 그간의 여행에서 깨달은 게 그거 하나다.
제주 관음사의 온화한 미소의 불상들.
진정한 수행은 우리의 삶
일락사에 도착하자 잠시 비가 그쳤다. 법당에 들어서면 우선 반배부터 했다. 절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도 반배를 했다. 108배를 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15분. 가끔 15분이 150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법당을 나오는데 스님 혼자서 마당의 풀을 뽑고 계셨다. 작은 절이니 아마도 주지스님이었을 거다. 나는 다시 법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시주를 했다. 작은 절 살림에 보태시라고.
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한 밤이었다. 고단했는지 아침 8시까지 잤다. 오서산 아래 정암사는 작은 절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절인데도, 정암사에서 하는 108배는 몹시 힘들었다. 조금은 기계적으로 절을 했다. 점점 108배를 하는 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금산 보석사에서 만난 고양이 보살.
‘사점Dead Point’은 산행에서뿐 아니라 108배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넘어선 건 무량사에서였다. 괴롭던 108배가 비로소 편안해졌다. 힘든 건 마찬가지였지만 괴롭지 않았다. 108배를 다 하고도 왠지 아쉬웠다. 33산사에서 108배 후 3,600배를 채우려면 36배가 더 필요한데, 그걸 무량사에서 채웠다. 이제야 고행이 여행이 되었다.
고란사는 어려운 숙제에 속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몇 번을 망설였다. 걷는 동안 빗물이 법복 아랫단을 흠뻑 적셨다. 등산화는 젖은 지 오래였다. 결국 비와 땀에 젖은 채 고란사에 도착했다. 불 꺼진 법당에서 홀로 108배를 했다. 비록 몸은 젖었지만 마음은 개운했다.
늦게 도착한 신원사에선 처음으로 불 밝힌 연등을 보았다. 연등이 이렇게 고왔구나. 흰 등과 색색의 등이 조화로웠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연등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 그랬다. 뜻밖의 신원사에서, 이방인이었던 나는 잠시나마 황홀했다.
한국 최초 비구니 교육도량이자 승가대학이 있는 동학사. 운 좋게 사시예불 시간에 도착했다.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며 108배를 했다. 나는 종교가 없다. 특별히 존경하거나 친하게 지내는 종교인도 없다. 그런데도 비구니 스님들에 대해선 막연한 동경이 있다. 비구니 사찰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혹시 전생에 히말라야에 살던 비구니였을까? 수행을 제대로 못 해서 현생에서도 히말라야를 찾아다니는 건 아닌지, 가끔 궁금하다.
제주 관음사 일주문에서 사천왕문 가는 길에 늘어선 불상.
논산 쌍계사는 아름다운 문살로 유명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웅전이 공사 중이었다. 하얀 천에 싸인 불상과 뭔가를 하고 있는 작업자들. 어디서 절을 할까 하다가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명부전으로 갔다. 명부전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모셔진 곳이다(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 앞에서 108배를 하기는 처음이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어디라도 절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시인 안도현은 완주 화암사를 잘 늙은 절이라 했다. 단청을 하지 않은 우화루는 기품 있어 보였고, 극락전의 빛바랜 단청엔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산사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독 절이 잘 되는 곳이 있는데, 화암사가 그랬다. 잘 늙은 절에서의 108배는 경건했다.
살면서 두 번의 3,000배를 했다. 지리산 화엄사와 성철 스님이 계셨던 가야산 백련암에서였다. 굳이 3,000배를 시도한 건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서 두 번 모두 싱겁게 끝났다. 가기 전에 연습을 너무 많이 한 탓이었다.
하루 만에 108배를 다섯 번 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서도 금산 보석사로 향했다. 오후 늦게 도착했지만 왠지 108배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사여행을 처음 시작할 땐 나름 순례였지만, 이젠 체력단련 목적이 컸다. 감당할 수 있다면 몇 번이든 괜찮았다.
법당 안에 들어서니 불상 옆에 고양이가 있었다. 처음이 아닌 듯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 보살. 카메라를 들이대도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절을 하는 동안엔 불상에서 내려가는 기특함까지. 그러더니 절이 끝날 즈음엔 법당을 나갔다. 여섯 번째 108배였지만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흔히 절을 많이 하면 무릎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확한 자세로 꾸준히 절을 해 온 사람들은 오히려 제 나이보다 관절 나이가 젊다.
부안 개암사의 아침.
잘 늙은 절 화암사에서 경건한 108배
적상산 아래 안국사.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이라 법당 안이 분주했다. 법당 보살님과 신도들이 모여서 과일을 쌓고 있었다. 덕분에 절을 하는 동안 몹시 산만했다. 분주한 건 완주 위봉사와 김제 귀신사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인지 이날 갔던 세 곳 모두 비구니 사찰이었다.
먼 길을 달려 기어코 부안 개암사까지 갔다. 6년 전이었다. 어느 주지 스님의 소개로 개암사 주지 스님을 만났다. 개암사에서 템플스테이 팀장을 구하는데 나를 소개한 것이다. 좋은 기회였지만 나는 여행이 더 간절했다. 개암사 주지 스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스님은 관련해서 아무 말씀도 없었다. 그리곤 내 손금을 보자 하시더니, 당신 손금과 같다며 웃으셨다.
공주 신원사에서 만난 불 밝힌 연등
숲의 느낌이 가득한 문수사는 일주문부터 걸어서 갔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 복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반듯하게 절했다. 그동안 ‘고맙습니다’라고 했다면 이날만큼은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대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러고 싶었다.
육지에서 마지막 절은 내장사였다. 완전히 불타 없어진 대웅전은 가건물이 대신했다. 내장사 대웅전은 2012년 화재로 소실되어 3년 만에 재건했지만, 지난 3월 수행 중이던 스님의 방화로 다시 사라졌다. 이날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선, 스님들이 봉축 대신 자갈 바닥에서 삼배를 하며 참회했다. 나는 극락전에서 108배를 했다. 반드시 대웅전일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 두 곳은 제주도로 정했다. 제주는 계획에 없었지만, 제주 고씨인 내가 제주에서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제주에 도착해서 바로 월정사부터 찾았다. 월정사는 제주 최초의 선원이자 4.3사건 피해 사찰이었다. 제주의 절은 느낌부터 달랐다. 황금빛이 도는 대웅전이 이국적이었다. 이제 절을 하는 게 그럭저럭 편해졌다. 비로소 가벼워진 듯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에서 사시예불을 드리는 비구니 스님.
관음사는 일주문부터 사천왕문까지, 양옆에 불상이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온화해서 바라보는 이도 편안했다. 한때 제주는 숙종의 억불정책으로 200년간 사찰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제주불교가 재건된 건 비구니 해월스님에 의해서였다. 대웅전 앞엔 풍성한 연등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하는 108배처럼 가만가만 절했다. 아무 말도 않고 그저 조용히. 마지막 절을 마치자 졸음이 몰려왔다. 이제 끝났구나.
‘108개 사찰 108배 여행’을 마치는 데 13년이 걸렸다. 친구와 같이 시작했던 여행을 홀로 끝내고, 1만 배가 넘는 절을 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마음 안의 숙제를 끝내서 홀가분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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