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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벚꽃 산행] 우두산, 밤새 괴한 같은 칼바람… 능선에서 화엄의 세계를 만나다

by 白馬 2021. 3. 13.

흰 소의 해에 가장 어울리는 산행지, 1박2일 원점회귀 야영산행 8km

 

마장재 부근 억새 지대에서 본 우두산. 가운데 불끈 솟은 암봉이 의상봉이다. 우두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전망터다.

 

내색하지 않았으나 두려웠다. 밖에서 괴한들이 텐트를 에워싸고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야수의 포효 같은 굉음이 텐트를 두드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무슨 악감정 있어 이런 장난을 치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다. 폴대가 취약한 거실형 텐트(쉘터)와 엄청난 바람이 만든 착각임을 알고 있었으나, 이상한 상상을 자아낼 만한 굉음이었다. 새벽 3시, 기어코 바람은 등산스틱으로 세운 기둥을 무너뜨리고 압도적인 소리로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기둥을 다시 세우며 흉포한 밤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다.   

 

하늘에서 본 마장재 능선과 너머의 죽전저수지. 산 그림자가 가야면 일대에 깊게 드리웠다.

 

 

고속도로 나오자마자 산세에 반해

가조IC를 빠져나오자, 장거리 운전에 졸린 눈이 뜨였다. 볕이 잘 드는 너른 들판 뒤로 카리스마 넘치는 바위 산줄기가 뻗어 있었다. 바위 능선의 변주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이토록 잘 생긴 산일 줄은 몰랐던 것. 푸근한 벌판 뒤로 불끈 솟은 능선엔 강함과 부드러움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산의 밤과 낮을 여유 있게 음미하려 1박2일 야영산행을 택했다. 우두산의 야영 명소로 손꼽히는 해발 850m 마장재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정상과 의상봉을 거쳐 고견사로 내려서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발 빠른 산꾼들은 비계산과 장군봉까지 종주하는 이들이 많지만,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이라 산행 가능한 코스를 택했다. 

 

우두산의 명물인 Y자형 구름다리.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개방과 통제가 반복되고 있다.

 

명분으로 따지면 3월(음력 1~2월) 산행지로 우두산만 한 산이 없다.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 산세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은 우두산은 새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산행지로 제격이다.

산 입구가 지나치게 깔끔하다. 지하부터 지상까지 층층이 나뉘어 있는 주차장부터 깔끔하게 지은 관리사무소까지. 거창군 관계자임을 알리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이들이 삼엄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다. 행여 산행이 금지되었나 싶어 물어보니, 체온 체크와 명부 작성만 하면 산행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항노화 힐링랜드에서 Y자형 구름다리로 이어진 데크길. 긴 계단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좋은 글귀가 적혀 있다.

 

물과 먹을거리 같은 공용 짐을 꺼내 나눠 담는다. 익숙한 손길로 배낭을 싸는 청춘남녀는 연세산악회 재학생인 최동혁·최수연씨다. 최신 휴양림 같은 여러 시설이 눈에 띈다. 거창군에서 큰 예산을 투입해 완성한 ‘항노화 힐링랜드’다. 자연휴양림과 숲치유센터를 결합한 시설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데크길을 따라 마장재 쪽으로 든다. 해발 500m에서 주능선 850m까지 고도를 높이는 길, 벌떡 선 산세와 달리 산길은 완만하다. 계단이 늘어나자 눈앞에 다가서는 우두산 최고 명물, Y자형 구름다리다. 구름다리 3개를 연결한 알파벳 Y 모양의 출렁다리로 우두산을 대번에 전국적인 명소로 끌어올렸다. 

 

우두산 정상으로 이어진 바윗길을 오르는 연세산악회원들. 험한 곳은 고정로프와 계단이 있어 어렵지 않다.

 

‘항노화 힐링랜드’라는 이름처럼 건강을 강조하기 위해 구름다리로 이어진 계단에는 각종 명언과 좋은 말이 적혀 있다. ‘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열정만 한 스펙 없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등등 한 번쯤 들어본 좋은 글귀를 읽으며 계단을 오르도록 해놓았다.

기념사진을 부르는 구름다리다. 바위산 지능선을 연결한 붉은 난간의 구름다리는 그 모습 자체로 경이로워 누구든 사진을 찍게 만든다. 길이 40m, 24m, 45m의 구름다리 3개를 연결한 것으로 성인 750명이 동시에 걸어도 끄떡없도록 만들었다. 바위산의 화려한 산세와 독특한 출렁다리의 모습이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내어준다. 멀리 가조면 들판이 손바닥만 하게 드러나고, 코로나가 가라앉으면 색다른 경치를 즐기려는 이들로 다시 인기를 끌 것 같다.

계곡을 따라 난 산길을 꾸역꾸역 오르자, 이윽고 소나무와 억새가 성성한 주능선이다. 경치가 터진 곳이 많아 참고 올랐던 열매가 더욱 달콤하다. 텐트를 칠 만한 터가 몇 곳 있으나 대부분 바람길이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 급하게 텐트를 치고 포장해 온 음식을 먹는다. 취사는 금지되어 있어 화기 없는 야영만 가능하다. 

 

푸근한 숲길과 바윗길이 번갈아 나와 산행은 지루할 새가 없다.

 

열반의 경지에 이른 황금비율 경치

거칠고 시끄러웠던 밤과 달리 평화로운 아침이다.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던 오랑캐 같은 강풍이 물러가고, 적막 가득한 새 날이다. 비계산 너머로 한없이 따스한 해가 솟아오르고, 간밤의 융단폭격에서 살아남은 주민욱 사진기자의 산발된 머리카락에서 그 흔적이 조금 묻어난다. ‘괜찮다’고 어루만지는 햇살의 연하고 무른 손길에 몸과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지간한 국립공원은 명함도 못 내밀 수려한 암릉 줄기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놀이공원에 입장한 듯, 행복한 능선종주의 시작. 능선을 오르내릴 때마다 섭섭잖게 펼쳐지는 새로운 파노라마에 걸음걸음이 즐겁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놀라운 바위 거인들이 늘어나고 저마다 한 세상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은밀히 힘을 과시한다. 

 

우두산은 최근에 계단을 설치하여 산행의 위험도를 줄였다. 마장재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은 산행의 백미로 꼽아도 손색없다.

 

거친 산세에 비해 산길은 의외로 잘 정비되어 있다. 지나치게 위험한 곳은 세운 지 얼마 안 된 데크계단이 차분히 뻗어 있고, 바윗길도 시간이 지체될 뿐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곳은 없다. 다만 걸음이 조심스런 산길이 많고, 넋 놓고 구경할 만한 전망바위가 잦아 시간이 한없이 늘어난다. 이름값으로 보면 유명한 척도에 비해 과소평가 받은 산임을 실감한다.

반나절이 넘도록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아 거리두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고도를 높일수록 가야산이 옛 왕국의 현신처럼 웅장한 산세로 솟구쳐 오르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평범한 산세의 줄기는 볼 수 없었다. 사소한 능선의 흘러내림 하나하나가 수작秀作이었다. 기묘한 바위 곁에는 늘 도인 같은 소나무가 궁합을 맞추고 있었고, 앙상한 철쭉가지도 흠이 되지 못했다. 봄이 오면 얼마나 화려할지 실로 짐작하기 어려웠다. 



우두산 정상에 오른 최수연·최동혁씨(가운데).

 

국립공원이었으면 저마다 이름 있을 법한 기암이 모두 무명이었다.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평범한 것처럼 위장한 겸손이 풍경 곳곳에 배어 있었다. 아름다움의 척도에 비해 과포장된 관광지가 얼마나 많았던가. 기대 없이 오른 산에서 맞는 풍경의 쾌락에 자주 멈춰 곱씹으며 음미한다.

산에서 내려다본 가조 벌판도 시선을 잡아끈다. 날카로운 산세의 능선으로 겹겹이 둘러싸였으나 홀로 아늑한 벌판을 이루고 있어, 풍수에 관심이 없는 이도 인정할 만한 명당이다. 정상 직전에 만난 너른 터에서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산을 오른다.지나온 암릉줄기에 비해 정상은 의외로 소박하다. 정상 표지석은 듬직하나 정상다운 맛은 1,046m의 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맞은편의 암봉이 오히려 더 걸작이다. 그래서 산행의 정상으로 의상봉을 꼽는 이가 많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암의 연속이지만 대부분 무명 바위이다. 멀리 가조 분지가 드러난다.

 

 

의상대사가 수련했다는 거대한 암봉 의상봉으로 향한다. 산행이 어려울 것 같은 거친 바위 사이로 절묘하게 길이 나있거나 우회한다. 의상봉은 실크로드 리지가 인기 있어 바위꾼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자존심 센 도도한 통바위를 오르는 방법은 계단이다. 고도감 있는 계단으로 수직 상승하면, 폭발하는 호흡과 함께 의상대사가 이름으로 남은 정상 풍경에 이르게 된다. 열반의 경지라 할 만한 탁월한 풍경, 지금껏 지나온 풍경도 좋았으나 이곳이 황금비율임을 깨닫게 된다. 멀리 덕유산 줄기가 전설처럼 아득히 범상찮은 실루엣으로 흘러간다. 우두산의 다른 이름은 별유산인데 빼어난 풍광이 유별나게 아름답다 하여 붙은 이름임을 눈으로 실감한다. 

긴 계단을 올라서면 통바위 꼭대기인 의상봉 정상에 닿는다. 등산객들이 산행의 정상으로 여길 정도로 경치가 탁월하다.

 

 

올라 온 계단을 다시 내려가 의상봉을 우회해서 고견사로 내려선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마음을 천년고찰 고견사古見寺가 가라앉힌다. 신라 문무왕 7년(667)에 의상과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며, 원효대사가 이곳에 온 뒤 전생에 왔던 곳임을 깨달았다 하여 절 이름이 유래한다. 속인의 눈에도 어렴풋이 그 깊이가 와 닿는다. 거대한 나한처럼 늘어선 전나무와 1,000년을 버틴 은행나무가 벚꽃 피고 지는 얕은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음을 알려준다.

고도를 올리기는 힘들어도 내리는 건 금방이다. 가물어 물이 졸졸 흐르는 견암폭포를 지나자 소나무향이 물씬하다. 언젠가 본 듯한 숲이다. 어제 본 숲이 전생인양 아득하다. 


 

우두산 1,046m
경남 거창군 가조면·합천군 가야면


산행 거리 8km
산행 시간 5시간 30분
산행 난이도 중(거리 짧으나 암릉 구간 많아 시간 넉넉히 잡아야)


산행길잡이

비계산 혹은 가야산과 연계 산행을 하는 장거리코스가 있으나, 5월 14일까지 산불방지 입산통제 기간이라 우두산 산행만 가능하다. 원점회귀 기점인 항노화 힐링랜드(055-940-7930)는 자연휴양림과 숲치유시설을 결합한 형태이며 2월 기준 코로나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현재는 별도 비용이 없으나 올해 상반기 중 입장료 1,000원과 주차료 1일 5,000원을 받을 예정이다. 

힐링랜드에서 고견사 방면이 아닌, 우측 데크길을 따라야 Y자 구름다리를 거쳐 마장재에 닿는다. Y자형 구름다리는 찾는 이가 많아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개방여부를 정하므로, 미리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구름다리 출입이 통제되더라도 산행은 가능하다. 

마장재는 너른 억새밭 가운데의 공터(헬기장)이며, 주능선을 처음 만나는 갈림길에서 200m 비계산 방면으로 가면 닿는다. 화기 사용은 금지되어 있으며 소나무가 몇 그루 있는 중간 길목도 좋은 야영지다. 


마장재에서 정상을 거쳐 의상봉까지 바윗길이 심심찮게 나온다. 계단이 있거나 어렵지 않은 바윗길이라 체력만 있다면 산행은 까다롭지 않다. 다만 오르내림이 있고, 바윗길이라 주의를 하게 되므로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의상봉은 계단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우회해서 고견사로 내려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전반적인 산세와 가고자 하는 코스만 기억하고 있다면 이정표가 많아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교통

거창군 가조면에서 힐링랜드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셔틀버스 정류장(가조면 수월리 448). 거창터미널에서 가조행 버스가 하루 3회(08:00~16:00) 운행한다. 가조면에서 택시 혹은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힐링랜드에 닿는다. 셔틀버스 문의 항산화 힐링랜드 055-940-7930.

숙식(지역번호 055)

가조면사무소 소재지에 먹을거리가 많다. 뜨끈한 국물은 한우 가마솥 곰탕(1만1,000원)으로 알려진 수목가든(941-0083)이 별미다. 쌍쌍식육식당(943-2428)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고기집으로 유명하다. 한우 생등심 160g 2만5,000원, 갈비살 160g 2만7,000원, 생삼겹 180g 1만 원. 이밖에도 엄마손추어탕(943-7199), 짬뽕전문 동해식당(942-0020) 등이 있다. 

항노화 힐링랜드는 올해 상반기 중 숙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산림휴양관과 숲속의 집이 있으며 방 크기에 따라 7만 원에서 14만 원을 받는다. 홈페이지 wellnesstour.c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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