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깨어났단 것은 마음이 만드는 인과관계를 통찰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상대가 그 말에 상처를 입는다면 나는 아직 시비분별을 인간관계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옳음을 얻더라도 더욱 중요한 ‘사람’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틀린 소릴 해가며 상대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상대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떠나가진 않게 해야 그와의 관계를 개선시킬 여지가 있지 않겠는가? 이처럼 깨어난 사람이라면 시비분별보다 더 귀한 가치를 항상 인식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시비분별보다 더 앞서는 것은 관계의 귀함이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가 더 앞선 가치를 가진 것이다. 부족하거나 옹졸한 대상이라도 그를 포용해야 하고 때에 따라선 내가 먼저 양보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언행까지도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존심을 거론하며 ‘내가 잘했는데 어째서 먼저 그럴 수가 있느냐’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 결국 자기 수준에서 더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즉 자신을 지킴으로써 자기의 범위와 한계가 정해지고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매사에 걸림이 없다. 이것은 바로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자유자재한 마음을 의미한다. 즉, 그의 마음 안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어 자신의 언행으로 모든 이가 더 행복하고 화기애애해지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이익이나 자존심을 도모하지 않는다. 반면 깨어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상처를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경지를 누리지 못한다.
깨어난 자는 타인이 만든 이야기나 생각, 감정의 내용물들이 모드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저 오고가는 것뿐인 일시적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직한 목적을 향해 모든 가능한 방편을 활용할 뿐, 자아를 지키거나 보호하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깨어난 자의 인간관계는 모든 이에 대해 두루 따뜻하고 자애스럽다. 물론 방편에 따라서는 간혹 엄하게 꾸짖거나 냉정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존재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한 일시적 언행에 대해 꾸짖는 것일 뿐이다. 물론 상대가 이를 알도록 자세한 헤아림도 곁들인다.
깨어난 자는 오히려 자기를 희생하여 모두를 품고 상생을 도모한다. 상대가 잘난 척을 하거나 자기만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폄훼하여도 그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의 언행에 상처 입을 에고(ego)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을 지향하며 먼저 마중물이 된다.
범인은 시비분별을 따지며 누가 잘못했는가를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깨어난 자는 스스로 잘못이 없음에도 먼저 굽힐 줄 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에고의 보호나 높임이 아니라 관계를 꽃피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어난 자의 인간관계는 아름다운 화원(花園)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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