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꼬치 편
서울 연희동 '야키토리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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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어서 얼굴에 버짐이 폈다. 자초한 일이었다. 어른이 되면 음악CD 1000장 정도는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을 굶고 밥값을 모아 CD를 사 모았다. 레드 제플린, 슬레이어, 메탈리카 같은 밴드의 계보를 외우며 무엇이 록음악이냐 따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닭꼬치 정도는 10개씩 사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CD 사느라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한 개에 150원 하던 닭염통 꼬치 한 줄 사 먹을 때마다 구국의 결단을 하듯 고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CD가 아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군살 붙는 것이 두려워 닭꼬치 사 먹는 것도 그만뒀다. 그래도 닭꼬치에 대한 오래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닭꼬치는 허기질 때 혹은 술김에 하나씩 사 먹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한 상, 혹은 코스로 먹는 시대가 됐다. 한국에서도 길거리 푸드트럭식 닭꼬치 외에도 야키토리, 그러니까 일본식 닭꼬치를 즐길 수 있는 집들이 몇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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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상수역 근처에 있는 '쿠시무라'는 오래전부터 닭꼬치로 손에 꼽히는 집이었다. 홍대 앞에서 영업하다 2012년 현재 상수동으로 이사한 이 집은 조금만 늦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쿠이신보'도 닭꼬치로 이름을 날리는 곳 중 하나다. 합정동을 시작으로 가로수길, 청담동 총 세 개 지점이 있다. 가장 나중에 생긴 청담점은 고급 스시집처럼 그날그날 재료 수급 사정에 따라 주방장이 메뉴를 결정해 손님에게 내는 닭꼬치 '오마카세'를 전문으로 한다. 디귿 자로 생긴 바 카운터에 앉아 요리사들이 아이돌 그룹의 군무(群舞)처럼 규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위스키에 토닉을 섞은 하이볼을 곁들인다. 다시 강북으로 올라가 가로등이 띄엄띄엄 서 있는 연희동 뒷골목의 '야키토리 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후 7시에서 9시, 그리고 9시에서 11시까지 시간제로 운영하며 예약만 받는 가게다. 작년 11월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이젠 예약마저 쉽지 않은 지경이 되었다. 남자가 요리를 하고 그의 아내가 서빙을 맡는 터라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없는 탓이라고 한다. 이 식당의 구조는 단순하다. 연극 무대처럼 조명은 요리사가 선 가운데 주방을 비춘다. 멧돼지 잡는 포수처럼 우직한 인상의 요리사는 손님들이 앉은 바 카운터 앞에서 숯불과 짚불을 피워 가며 닭꼬치를 굽는다. 토종닭을 그날그날 작업해서 쓰기에 운이 나쁘면 부위별로 먼저 재고가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뭘 시킬지 가늠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과감한 입도선매(立稻先賣) 전술을 펼쳐야 한다. 운 좋게 '야키토리 묵'에 자리 잡은 날 일단 '껍질'을 (거의) 외쳤다. 연기가 풀풀 풍기고 기름진 냄새가 봄날 편서풍처럼 솔솔 자리로 흘러들었다. 꼬불꼬불 똬리를 튼 닭 껍질을 입에 넣었다. 도톰한 닭 껍질이 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뒤로 말캉한 속살이 씹혔다. 이 식감을 내려면 굽는 시간, 불의 세기가 정확히 통제되어야 한다. 껍질만큼 어려운 부위가 '안심'이다. 속은 레어로 살리면서 겉만 살짝 익혀내는 게 관건. 조금만 덜 익히면 입안에서 살이 물컹거리고 조금만 더 구워버리면 말 그대로 퍽퍽한 식감만 남게 된다. 이 집은 짚불을 피워 꼬치를 구워낸다. 그 덕에 단순한 안심 살에 불향이 그윽이 배어 있다. 닭꼬치의 베스트셀러 격인 '다리살 대파'는 기름진 닭다리살과 달달한 대파의 하얀 부분이 만나 푸근한 맛을 낸다. 우엉과 감자, 돼지고기를 잔뜩 넣고 일본 된장을 풀어 끓인 '돈지루(돼지고기감자 된장국)'는 어찌나 건더기가 많은지 숟가락질을 할 때마다 밥을 푸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검은빛 살짝 돌게 구운 닭의 간, 살짝 물에 불려 구운 떡을 청해 입에 욱여넣는 것은 스릴러 영화의 마지막 반전처럼 필연적인 플롯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결말은 살집 두툼한 요리사가 작은 눈이 더 작아지게 웃으며 "잘 드셨어요?"라고 묻는 인사말이었다. 느릿느릿 충청도 사투리로 슬며시 올려놓는 그 한마디 말에 나도 아이처럼 웃어버렸다. 닭꼬치 한 개에 벌벌 떨던 그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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