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 굽어보며 올라 ‘달과 별의 향연’ 즐기며 원점회귀 환종주
월영산月迎山(529m)은 한자 그대로 달을 맞이하는 산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정월 대보름에 월영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며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때 월영산 쪽으로 달이 뜨면 풍년이 들며, 월영산 중턱에 구름이 머무르면 장마가 오래 가고, 성인봉 위로 달이 뜨면 가뭄이 든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금산편 산천조에 ‘금산에서 동쪽으로 20리에 월영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동지지>에는 ‘언령산’이라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달맞이 풍습은 오랫동안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용화마을 주민들은 월영산을 달을 향한다는 뜻으로 ‘월향산月向山’ 또는 ‘월앙산月仰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산자락 서쪽과 북쪽을 휘감고 흐르는 금강에 면하고 있는 월영산자락을 두고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이라며 천하명당이라 했다고도 전해진다.
월영산은 금강으로 가라앉는 백하지맥의 마침표다. 백두대간 삼도봉(1,177m)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져 민주지산(1,242m), 각호산(1,202m)으로 흘러가는 각호지맥이 천만산(960m)에서 또 둘로 나뉘는데, 이때 서쪽 백하산(633m)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백하지맥이다. 백하지맥은 백하산을 지나 칠봉산(520m)에서 금강에 가로막혀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후, 다시금 금강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짜내 월영산과 갈기산을 빚어냈다. 월영산은 양산면 가선리와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경계를 이루고, 갈기산은 영동군 양산면과 학산면 경계를 이룬다.
백하지맥의 단말마답게 월영산과 갈기산 모두 금강 쪽으로 경사가 매우 급한 암벽이 잘 발달돼 있다. 현지 사투리로는 ‘덜게기’라고 부르며 바위 낭떠러지라는 뜻이다. 특히, 갈기산이 더욱 골산骨山의 풍모가 당당해 가장 험준한 뜸북굴 암봉 일원에는 1997년 청주 케른산악회에서 암벽등반코스 2개(케른 A리지, 케른 B리지)를 개척하기도 했다.
1 갈기산 중턱에 위치한 헬기장.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가 갈기산 정상이다.

2 말갈기능선의 양쪽 사면은 그야말로 덜게기, 낭떠러지다. 산행 시 주의해야 하며, 우천 시에는 산행하지 않아야 한다.
등산 중 굽어보는 금강 조망 탁월해
산행에 나선 지난 8월 17일은 음력 7월 7일, 세시 명절의 하나인 칠석이었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바깥모리마을 등산로(소골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월영산과 갈기산 중 어느 산을 먼저 오를 것인지 정하지 못했다. 지역 전승으로는 월영산이나 성인봉 ‘위’로 떠오른 달의 위치로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하니 갈기산에서 바라보는 것이 맞을 것도 같고, 이름 그대로 달을 맞이하는 산인 월영산에서 보는 것도 맞는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월영산에서 달을 맞는 걸로 정했다. 선조가 ‘월영’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갈기산 방면 등산로로 진입하자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골산답게 길에서 흙을 찾아보기 어렵다.
30분쯤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30분쯤 더 오르면 정자 한 채가 나온다. 등산로 왼편으로 금강 일원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완전한 낭떠러지다. 그래서 이 코스를 ‘양산 덜게기 코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꾸준히 오르면 갈기산 정상(585m)이다.
갈기산 정상은 커다란 바위로, 로프를 잡고 오른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탁월하게 펼쳐져 있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 너머 북쪽으로는 천태산에서 대성산으로 흐르는 산줄기가 뻗어 있고, 아스라이 지평선 끝에 충남 최고봉 서대산의 풍채가 엿보인다. 반대로 눈을 돌리면 진행 방향인 능선이 깊게 감춰진 소골을 둘러싸고 있고, 능선 너머로 백하지맥이 선명하며, 멀리는 민주지산부터 백운산, 적상산과 덕유산 일원의 켜켜이 쌓인 산세가 한눈에 파노라마로 들어온다. 시계가 좋은 날에는 암마이산의 독특한 풍모까지 볼 수 있다.
정상을 질러가거나, 정상바위를 우회해 내려서면 모리삼거리나 지내리 갈기산관광농원 방면과 말갈기능선으로 갈라지는 안부 기점이다. 갈기산의 이름이 짐승의 갈기처럼 생겼다고 해 유래된 것을 증명하듯 날카로운 암릉이 굽이치며 확연한 안부를 형성한다. 말갈기능선의 리듬감을 즐기며 진행하다 보면 출렁다리에 이른다. 취재에 동행한 ‘Kor kim’ 김규대 대장은 “10년 전에 왔을 때는 이 다리가 없어 말갈기능선의 스릴감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갈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천태산 뒤로 만인산, 서대산, 대성산 등이 보이며, 천태산 오른쪽으로는 월이산과 마니산이 보인다.
거친 야생마 같은 말갈기 능선
말갈기능선은 금강을 끼고 걷는다는 점에서 청풍호를 따라 걷는 제비봉과 흡사하다. 다만 제비봉 능선이 부드럽고 한국적인 진경산수화 같다면, 말갈기능선은 거칠고 투박한 고흐의 작풍을 연상케 한다. 길들여진 순한 말이 아니라 야생마의 갈기다. 거리는 짧지만 평지 없이 오르내림이 계속되며 험한 암릉지대가 연속되기 때문이다.
말갈기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558m 봉이 솟아 있으며 여기서 이정표를 따라 차갑고개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등산로는 끊임없이 위아래로 굽이쳐 피로를 더한다. 555m봉에 오른 후 가파르게 내려서면 차갑고개다. 차갑고개는 월영산과 갈기산 사이의 소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연결되는 지점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재필골을 통해 지내저수지로 넘어가게 된다.
차갑고개부터 산세가 조금씩 변화한다. 갈기산이 우직한 골산으로 식생도 소나무가 우세한 반면, 차갑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육산으로 변모하며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가 무리지어 나타난다.
골육상쟁骨陸相爭하는 차갑고개를 지나 푹신한 낙엽을 밟아가며 월영산 방면 이정표를 따른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오르면 정상석이 서 있는 성인봉聖人峰에 닿는다. 하지만 정상석의 표기가 해괴하다. 지형도상 이곳의 고도는 545m인데 반해, 정상석에는 고도가 624m로 기입돼 있다. 실제 GPS상으로도 545m에 가깝게 측정됐다. 또한, 한자로는 峰이라 적혀 있지만, 옆에는 한글로 ‘산’이라고 적혀 있어 혼란스럽다. 게다가 누군가 ‘성인산’ 글자 중 ‘인’자를 파내버려 ‘성O산’ 이라고만 되어 있어 흉물스럽다.
성인봉의 미스터리를 뒤로한 채 능선을 잇는다. 성인봉부터 월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충청북도와 충청남도의 도경계다. 20분쯤 도경계를 따라 잠깐 고도를 내렸다 올리면 458m봉에 이른다. 458m봉은 기웃재를 거쳐 성주산(623.9m)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의 기점이기도 하다.
사위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이 느껴져 서둘러 월영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으나 확실한 편이다. 다만 간혹 만나는 바위를 우회하거나 오를 때마다 잠깐씩 길이 헷갈릴 수도 있으나 그럴 때마다 산악회 표지지가 길을 잡아 준다. 안자봉에 가까이 갈수록 길은 희미해지지만 능선을 만났을 때 왼쪽으로 틀면 쉽게 안부로 오를 수 있다.
안자봉(485m)은 월영산의 바로 옆 동쪽에 붙어 있는 봉우리로 상봉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바라본 갈기산의 풍광이 일품이다. 날카로우면서도 수려한 암릉의 자태가 서쪽으로 지는 노을빛을 받아 붉은 적토마의 갈기처럼 타오른다. 갈기산이 양산팔경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십분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다.
옛날 전란이 있을 때마다 산 주변 주민들이 피란처로 이용했던 호랑이굴, 뜸북굴 등 크고 작은 굴이 갈기산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당당한 골산의 자태로 미루어 짐작케 한다.
안자봉에서 안부를 거쳐 오르면 월영산이다. 그러나 월영산에는 삼각점만 있고 정상석이 없다. 삼각점 위에는 누군가 조약돌 하나하나 각기 한글로 ‘월’, ‘영’, ‘봉’ 이라고 새겨 올려둔 것만 있을 뿐이다. 현재 월영산은 호칭 정리가 안 된 상태다. 삼각점이 있는 월영산 정상보다 19.6m가 낮은 서봉에 월영산 정상석이 위치해 있을뿐더러 비석의 한자도 맞이할 영迎이 아닌 그림자 영影으로 잘못 쓰여 있다. ‘월영봉’에서 ‘월영산’에 이르기까지의 능선이 충북과 충남의 도경계를 이루는데다가, 정상석이 있는 서봉의 조망이 더 탁월해 행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기산 동쪽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호랑이굴과 뜸북굴 등의 굴과 암벽등반 루트들이 많이 있다.
월영산 정상에서 맞은 칠석의 달
생각보다 산세가 험해 산행이 더딘 탓에 서봉까지 미처 나아가지 못하고 일몰을 맞았다. 지평선을 붉게 불태우며 태양이 가라앉을수록 머리 위로 칠석의 반달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견우가 직녀를 그리듯 달을 그리며 찾아왔기 때문인지, 반달에 채 미치지 못한 달의 모습이 수고했다고 미소지어 주는 것 같아 푸근하다.
하산은 다시 월영산으로 돌아와 안자봉을 거쳐 북동릉 능선을 따르는 길을 택했다. 원점회귀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서봉을 지나 원골로 하산하는 길이 경사가 급하고, 길옆으로 절벽이 형성된 곳이 많아 야간산행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절벽이 험준한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양산에서 금산으로 진격할 때 월영산의 금강 쪽 절벽을 천혜의 방어요새로 삼아 이 일대에서 공방전을 벌였다는 민담이 전해 내려올 정도다. 이때 중봉 조헌 선생은 이곳 덜게기에서 왜군을 막자는 기허당 영구대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금산벌에서 왜군과 사투를 벌여 700의사 전원이 순국했다. 당시 장렬하게 순국한 장졸들의 무덤이 현재 금상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는 ‘칠백의총’이다.
북동릉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위험도는 없어 무난히 내려갈 수 있다. 샛길 없는 외길인데다 길도 확실해서 야간산행임에도 길 잃을 일이 없다. 꾸준히 내려가다 보면 양봉장이 나오며, 길 끝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양봉장과 민가 두 채를 지나면 도로에 닿으며, 오른편으로 틀면 바로 들머리인 주차장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달과 별의 향연이 짧지만 굵은 산행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준다.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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