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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경북구곡 | 성주·김천 무흘구곡] 한강 정구 선생 학문적 성찰 이룬 물굽이

by 白馬 2018. 7. 15.

성주 출신 대학자 정구가 가야산 기슭 대가천에 조성한 구곡

무흘구곡(武屹九曲)은 경북 성주 가야산 북쪽을 흐르는 대가천에 조성된 구곡이다. 수도산에서 발원해 가야산 북쪽을 빙 둘러 안고 흐르는 대가천에 무흘구곡을 처음 설정하고 경영한 이는 성주 출신으로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대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수도지맥’의 수도산에서 시작해 가야산을 휘감고 흘러온 대가천(大加川) 맑은 물줄기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이르러 양쪽에 너른 들판을 빚고 시내의 폭을 넓히면서 잔잔히 흐른다. 그 물길은 양정교 근처에 이르러 바위 언덕을 만나 잠시 멈추는데, 여기가 바로 무흘구곡의 제1곡인 봉비암(鳳飛岩)이다.

무흘구곡의 제1곡 봉비암 위에 조성된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이다.
무흘구곡의 제1곡 봉비암 위에 조성된 회연서원은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이다.
봉황 날갯짓 하는 바위 위의 회연서원

‘봉황이 비상하는 모습’인 봉비암 위에 있는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은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이다. 한강은 41세 때 이곳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짓고 침실을 불괴침(不愧寢), 창문을 매창(梅窓), 헌(軒)을 옥설헌(玉雪軒)이라 했다. 또 100그루의 매화와 대나무를 정원에 심고는 백매원(百梅園)이라 불렀다.

회연서원으로 들어서면 나그네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서원 입구와 뜰 앞에 가득한 매화나무들이다. 수백 그루의 매화나무들이 서원 둘레에 있는데, 한강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0그루의 매화나무는 세월이 흐르며 거의 고사했고, 지금은 세 그루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제2곡인 한강대(寒岡臺)는 회연서원에서 대가천 물길을 따라 약 1.5km 거슬러 오른 물가에 솟은 20~30m 높이의 암벽이다. 강둑에서 바위로 접근하려면 강변의 무성한 갈대숲을 헤치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따라서 한강대 암봉 정상에 직접 오르려면 회연서원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져 있는 청주 정씨 집성촌인 수성리 갓말에서 뒷길로 5~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한강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청주 정씨 집성촌인 갓말에는 한강의 종손이 살고 있는 한강종택(寒岡宗宅, 문화재자료 제614호)이 남아 있다.

한강대 정상 바위에는 ‘한강대(寒岡臺)’라 새겨진 석각이 눈길을 끈다. 힘찬 필체를 감상하고 강 쪽으로 몇 발자국 더 내려가면 평평한 바위에 한강이 지은 〈우음(偶吟)〉이란 절구 한 수가 보인다.

“솔숲 사이 집에서 잠자리 들고(夜宿松間屋) / 물가의 누각에서 새벽잠 깨네(晨興水上軒) / 앞뒤에 우렁차다 솔과 물소리(濤聲前後壯) / 이따금 고요 속에 들려오누나(時向靜中聞)”

시를 읊은 다음, 바위 정상에서 대가천 냇물을 내려다보면 굽이도는 물줄기 너머로 성주의 아름다운 산천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제3곡 무학정(舞鶴亭)은 한강대에서 대가천을 따라 12.5km를 거슬러 올라야 한다. 성주호를 왼쪽에 끼고 달리다 보면 잔잔한 호수가 끝나고 다시 강줄기가 이어지는 물가에 솟은 바위가 눈에 띈다. 선암(船巖), 주암(舟巖)이라고도 하는 ‘배바위’인데, 바위 꼭대기에 앉은 정자가 주변의 자연 풍광과 잘 어울린다.

무학정에서 대여섯 물굽이를 돌면서 4km 정도 오르면 냇가 건너에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선바위’라 불리는 제4곡 입암(立巖)이다. 한강 정구는 이 굽이를 최치원의 흔적이 남은 가야산 홍류동보다 빼어나다고 자부했다. 한강이 당시 보고 느꼈던 그 풍광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해, 이곳을 지나는 여행객들은 반드시 이곳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고 간다.

1 한강대 정상 바위에 새겨진 석각. 강인한 느낌이 드는 필체다. 2 무흘구곡의 제1곡인 봉비암 원경. 3 무흘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제9곡 용추(龍湫). 바위 협곡을 울리는 우렁찬 폭포수 소리에 정신이 잠시 아득해진다.
1 한강대 정상 바위에 새겨진 석각. 강인한 느낌이 드는 필체다. 2 무흘구곡의 제1곡인 봉비암 원경. 3 무흘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제9곡 용추(龍湫). 바위 협곡을 울리는 우렁찬 폭포수 소리에 정신이 잠시 아득해진다.
입암을 뒤로하고 계속 대가천을 거슬러 오른다. 냇가의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며 30번국도를 따라 3.8km 달리면 성주군의 가천면과 김천시의 증산면의 경계에 걸린 은적1교에 이른다. 다리 주변에는 깎아지른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맑은 옥류는 그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간다. 제5곡 사인암(捨印巖)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흘구곡의 사인암은 은적1교 상류 10m 지점 왼쪽의 암벽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이보다 상류 250m 지점의 오른쪽 바위가 진짜 사인암임이 최근 밝혀졌다. 1990년대 초반 국도 확포장 공사 과정에서 사인암의 바위가 훼손됐고, ‘사인암(捨印巖)’이라고 새겨진 석각마저 분실되면서 은적1교 바로 상류에 솟은 바위가 사인암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사인암을 뒤로하면 김천시 증산고을이다. 수도산에서 북류한 수도계곡은 증산고을을 적시며 옥동천이라는 이름으로 백천교 부근에 이르러 대가천 본류에 합류하는데, 이 굽이가 바로 제6곡 옥류동(玉流洞)이다. 바윗덩이와 어우러진 계류는 맑고 옥빛 소(沼)도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너럭바위와 조화를 이룬 정자 풍광이 아름답다.

옥류동을 벗어나면 길은 수도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수도암(修道庵) 가는 길이다. 해발 960m에 터를 잡은 수도암은 도선국사가 발견하고 7일 동안 춤을 췄을 정도로 터가 좋아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암자다.

수도계곡은 해발고도가 높고 아름다운 풍치에 계류도 맑아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경사가 약간 급해질 무렵, 갈림길에서 길가 오른쪽에 있는 ‘만월당 굿당’이라 적힌 팻말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로 70~80m 정도 개울을 향해 내려가면 냇가에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보인다.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 바위 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풍경이 제법 괜찮다. 그 옆에는 ‘무흘구곡 7곡 만월담’이라 적힌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최근 밝혀진 진짜 제7곡 만월담(滿月潭)은 이 굽이에서 상류로 450m 올라간 지점이다.

최근 새로 밝혀진 진짜 만월담은 큼직한 너럭바위가 집채만 한 바윗덩이부터 호박돌에 주먹돌까지 다양한 크기의 바윗돌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다. 길 쪽으로 평평한 터를 조성하느라 축대를 쌓으면서 경관이 많이 훼손되긴 했어도 물굽이만 본다면 옛 흔적이 그런대로 남아 있는 편이다.

만월담에서 150m 정도 오르면 무흘정사가 있던 너른 터에 닿는다. 한강 정구가 학문을 닦고 연구한 무흘정사(武屹精舍)가 있던 ‘한강 무흘강도지(寒岡 武屹講道址)’다. 한강은 62세 때 무흘구곡 중 만월담과 와룡암 사이의 평평한 곳에 무흘정사를 짓고 저술 활동에 몰두하는 한편, 제자를 길러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때 한강이 노래한 절구 한 수가 귀에 쟁쟁하다.

“산봉우리 지는 달 시냇물에 어리는데 / 나 홀로 앉았을 제 밤기운 싸늘하구나 / 여보게 벗님네들 찾아올 생각 마소 / 구름 짙고 쌓인 눈에 오솔길 묻혔거니”

‘무흘강도지’를 뒤로하고 상류로 오르면 계곡의 풍치는 점점 좋아진다. 계곡 바닥은 온통 새하얀 너럭바위의 연속이며, 개울 건너에는 병풍 같은 암벽이 높게 솟아 있다. 그러다 문득 밝은 기운이 두루 퍼지면서 여러 개의 와폭이 연이어 반긴다. 제8곡 와룡암(臥龍巖)이다. 수도산에서 북류하는 수도계곡 맑디맑은 계류는 이 굽이에서 완만하게 누운 바위 위로 흘러내린다. 길 쪽에 붙은 너른 반석에 ‘와룡암(臥龍巖)’이라 쓴 글씨는 용의 모습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무흘구곡의 제4곡인 입암. 맑은 냇물은 입암 아랫도리를 적시고 부드럽게 굽이돌면서 흘러간다.
무흘구곡의 제4곡인 입암. 맑은 냇물은 입암 아랫도리를 적시고 부드럽게 굽이돌면서 흘러간다.
우렁찬 폭포소리는 승천하는
용의 울부짖음인가

와룡암에서 2km 정도 시원한 물줄기를 따르면 문득 계곡을 울리는 우렁찬 물소리에 저절로 눈길이 길 아래 협곡 쪽으로 끌린다. 거기에 용추폭포가 숨어 있다. 수도산에서 발원해 흐르던 계류는 이 지점에 이르러 문득 17m의 낭떠러지를 만나 뚝 떨어지는데,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치며 안개와 무지개를 만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폭포수는 수량 많은 수도산의 모든 물을 끌어 모아 발원한 물길이 처음으로 빚어낸 수도산의 명품이다.

무흘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제9곡 용추(龍湫)는 도학의 절정이다. 그런데 한강 정구는 마지막 굽이에서 폭포를 노래하는 게 아니고, ‘샘물의 근원’을 노래한다. ‘학자의 정신이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리라. 한강은 이 용추에서 도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학문적 성찰을 이루고, 무흘구곡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아홉 굽이라 고개를 돌리고서 한탄한다 / 이내 마음 산천을 좋아한 게 아니거니 / 샘물 근원 이곳에 형언 못 할 묘리 있어 / 여기 이걸 놓아 두고 다른 세계 찾을쏘냐”

[그래픽] 성주·김천 무흘구곡 개념도
여행 길잡이

무흘구곡의 아홉 굽이는 제1곡 봉비암(鳳飛岩), 제2곡 한강대(寒岡臺), 제3곡 무학정(舞鶴亭), 제4곡 입암(立巖), 제5곡 사인암(捨印巖), 제6곡 옥류동(玉流洞), 제7곡 만월담(滿月潭), 제8곡 와룡암(臥龍巖), 제9곡 용추(龍湫)다. 경북 성주군의 수륜·금수면부터 김천시의 증산면까지 총 35.7km에 걸쳐 있다. 제1곡부터 제6곡까지는 차량을 이용하는 게 좋고, 제7곡 만월담부터 제9곡 용추까지는 걷는 것도 괜찮다. 더위를 식히기에 좋은 곳은 제4곡 입암, 제8곡 와룡암, 제9곡 용추 주변이다.

교통(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 → 33번국도 → 대가면 → 양정삼거리(좌회전) → 회연서원(봉비암)

숙식(지역번호 054)

수도계곡 입구에 최원경민박(437-0380), 홍재균민박(437-0350), 평촌리에 신난이민박(437-0017), 김춘보민박(437-0359) 등 민박집이 많다. 평촌식당(437-0018)은 흑염소, 할매식당(437-0017)은 순두부, 수도산식당(437-0009)은 산채보리밥을 차린다.

[경북구곡 | 봉화 춘양구곡] ‘오지 춘양’에 퍼지는 유림儒林의 향기

조선 후기 학자 이한응이 운곡천에 조성한 구곡동천

춘양구곡의 제1곡인 어은 전경. 바위와 어우러진 물길의 조화가 아름다운 산골 풍경이다.
춘양구곡의 제1곡인 어은 전경. 바위와 어우러진 물길의 조화가 아름다운 산골 풍경이다.
경북 내륙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봉화는 영남의 대표적인 오지이고, 봉화의 북쪽에 위치한 춘양은 더욱 더 깊다. 백두대간 태백산 줄기에서 발원해 이렇듯 깊고 깊은 춘양을 적시고 흐르는 운곡천(雲谷川) 물줄기에는 조선 후기의 학자인 경암(敬菴) 이한응(李漢庸, 1778~1864)이 경영한 춘양구곡(春陽九曲)이 있다.

백두대간과 운곡천을 끼고 있는 춘양은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게다가 덕이 높은 학자들이 은거하며 끼친 문풍(文風)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아름다운 산수가 있고, 거기에 은거하며 도학에 몰두하는 유학자들이 있었으니 이 둘의 만남은 운명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경암 이한응은 이곳에 구곡을 경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춘양 들판을 적시고 흘러온 운곡천이 법전면 척곡리의 감의산(540m)을 만나 휘어 도는 물굽이가 바로 제1곡 어은(漁隱)이다. 물고기가 숨을 정도로 깊은 물가라는 뜻을 지닌 어은동은 감의산 북쪽 골짜기에 있는 산마을 이름인데, 마을 사람들은 어은골 작은 계류가 운곡천에 합류하는 굽이 전체를 통틀어 어은동이라 부른다.

어은동 일대는 산줄기를 휘돌아 흐르는 운곡천 물줄기가 암벽에 부딪치면서 그 아래 깊은 소(沼)를 이룬다. 휘돌아가는 강물이 빚은 여울과 소, 그리고 암벽이 어우러진 풍경도 아름답지만, 적막강산 그 자체인 듯한 느낌이 마음에 와닿는 굽이다.

어은동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제2곡인 사미정(四未亭, 경북문화재자료 제276호)에 닿는다. 사미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1658〜1737)이 말년에 지은 정자다.

1 풍대 맞은편의 조래마을에 있는 옥계정. 김명흠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2 춘양구곡의 제6곡인 쌍호.
1 풍대 맞은편의 조래마을에 있는 옥계정. 김명흠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2 춘양구곡의 제6곡인 쌍호.
군자의 도를 이루려고 은거하던 사미정

옥천은 당쟁에 휘말려 여러 번 유배당했으나, 높은 도학과 절의로 명망이 높았던 학자답게 유배 중에도 학문에만 열중했다. 정자의 현판 ‘사미정(四未亭)’과 내현판(內懸板)인 ‘마암(磨巖)’이란 글씨는 정조 때 탕평책을 추진한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친필이다.

운곡천 물줄기가 굽이도는 지점의 마암(磨巖)이라는 바위 언덕에 날아갈 듯 세워져 있는 이 정자로 인해 사람들은 이 부근을 따로 ‘사미정계곡’이라 부른다. 정자 마루에서 운곡천을 바라본다. 상류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정자가 있는 바위 아랫도리를 적시고 하류로 흘러간다. 강 건너 울창한 송림과 주변의 바윗덩이들도 한 폭의 풍경화다. 춘양구곡 아홉 굽이 중 제1곡인 어은동과 쌍벽을 이루는 경관이다.

사미정을 뒤로하고 북쪽 고개를 넘어서면 문득 시야가 트이면서 널찍한 들판이 나오고, 운곡천 냇가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집채만 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춘양구곡의 제3곡인 풍대(風臺)다. 이 바위 위에는 풍대(風臺) 홍석범(洪錫範)이 학문에 몰두하며 제자를 가르치던 어풍정(御風亭)이 있었다.

풍대 앞의 조래마을 들판에 있는 옥계정(玉溪亭)과 옥계종택(玉溪宗宅)이 눈길을 끈다. 옥계정은 옥계(玉溪) 김명흠(金命欽, 1696〜1773)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졸천정사(拙川精舍)라고도 한다. 김명흠은 제2곡인 사미정을 경영한 조덕린 문하에서 학문을 배운 제자다. 조덕린이 유배됐을 때 스승 가족의 생계를 도왔고, 스승이 유배 중 세상을 뜬 뒤에도 자식들을 극진히 돌봤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정을 새기며 제3곡 풍대를 벗어나 운곡천을 거슬러 오른다. 물줄기 양쪽이 모두 들판이라 시야가 시원하다. 풍대에서 800m 정도 상류 지점에 이르러 다시 산그림자 드리워지더니 바위 벼랑이 눈앞에 나타난다. 물줄기가 바위 벼랑을 치고 흐르며 빚어놓은 너른 소가 형성되어 있다. 제4곡 연지(硯池)다. 위쪽에는 농사용 물을 확보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보(洑)를 설치해 놓아 늘 물이 가득 차 있다. 유학자에게 물을 보는 ‘관수(觀水)’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이한응에게 이곳은 자연의 이치를 직접 목격하고 배우며 깨닫고 즐기는 공간이었다.

연지에서 운곡천 물길을 1k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운곡천이 큰 바위 벼랑을 만나 휘도는 지점에 이른다. 냇가 오른쪽에 우뚝 솟은 바위 벼랑이 제5곡 창애(滄厓)다. 냇가 맞은편에는 창애정(滄厓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7호)이 다소곳이 나그네에게 손짓한다. 정자를 경영한 창애(滄厓) 이중광(李重光, 1709〜1778)은 관직에 임명되었는데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 은거하며 제자를 가르친 인물이다.

1 사미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차분한 산수화다.  2 풍대 바위에 새겨진 석각.
1 사미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차분한 산수화다. 2 풍대 바위에 새겨진 석각.
두 개의 호수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운곡천 물길 주변으로는 민가들이 눈에 많이 띄니 서서히 춘양면 소재지가 가까워짐을 알 수 있다. 운곡천에 걸린 장동교에서 오른쪽으로 둑길을 따르면   150m 상류에 나지막한 언덕이 눈망울에 맺힌다. 홀로 있다 해서 독산(獨山), 독봉(獨峰), 고봉(孤峰) 등으로 불리는 바위 언덕이다. 봉화에서 삼척 가는 길가에 있어 삼척봉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이 홀로 외롭게 서있는 언덕 아래의 물줄기가 바로 제6곡인 쌍호(雙湖)다.

쌍호라면 호수 같은 소가 두 개 나란히 보여야 할 듯한데, 운곡천 물굽이를 자세히 들여다봐도 호수 같은 소를 찾을 수 없다. 산책하던 주민은 “옛날에는 이곳에 물길이 두 개 있었다”고 들려 준다. 예전에는 독산 양쪽으로 운곡천 물굽이가 빙 둘러 있었으나 이제는 지형이 바뀌어 동쪽의 물길은 들판으로 바뀌어 영동선 철도가 지나는 것이다.

쌍호를 벗어나 널따란 춘양 들판으로 들어서기 직전, 춘양면 소재지와 본소로마을을 잇는 소로교에 닿는다. 본소로(本小魯)는 옛 부족국가 시대에 소로국(小魯國)이 존재했기 때문에 유래한 지명이다.

이 소로교 상류를 보면 흘러오던 운곡천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히며 제법 너른 소를 만드는데 이게 바로 제7곡인 서담(書潭)이다.

“칠곡이라 서담은 시냇물이 여울로 흘러드는 곳 / 우뚝한 절벽 물속에 비쳐 더욱 별나 보이네 / 선을 살피던 당시의 즐거움 도리어 안타깝구나 / 경관이 공연히 맑아 탈속적 느낌만이 서늘하네”

이 시에서 ‘선을 살핀다’는 의미의 관선(觀善)은 ‘선비는 서로가 본받아서 좋은 점을 배운다’는 의미다. 그 즐거움을 주던 서당이 사라지고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 두 개의 삼층석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람화사 옛터. 춘양구곡의 제9곡인 도연서원이 있던 자리다. 2 춘양구곡의 제8곡인 한수정은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1 두 개의 삼층석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람화사 옛터. 춘양구곡의 제9곡인 도연서원이 있던 자리다. 2 춘양구곡의 제8곡인 한수정은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찬물 같이 맑은 정신으로 학문에 정진

서담을 뒤로하면 이제 춘양들판이다. 백두대간 깊은 산악지대에 이토록 너른 들판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한데, 여기 춘양들판 한복판 운곡천 물가 쪽으로 고풍스런 정자가 눈길을 끈다. 바로 제8곡 한수정(寒水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7호)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충재(沖齋) 권벌(權, 1478~1548)이 세운 거연헌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허물어지자 손자인 권래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한수정은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의미.

안동 출신인 충재 권벌은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살이를 하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자 낙향해 이곳에 와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경학(經學)에 몰두했던 인물이다. 이후 복직했으나 이번에는 을사사화로 다시 파직된 뒤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깊은 오지인 봉화에 유학의 분위기가 융성한 것은 권벌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게 후인들의 평가다.

한수정에서 운곡천 물길을 1k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운곡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춘양중학교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춘양구곡의 극처인 제9곡 도연서원(道淵書院)이 있던 자리다. 도연서원은 한강 정구, 미수 허목, 번암 채제공을 모시던 서원이었으나 1858년 훼철돼 흔적도 남지 않았다. 현재 이곳에는 봉화서동리삼층석탑(보물 제52호)이라 불리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라고찰인 람화사(覽華寺) 터가 있던 이 자리에 바로 도연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춘양구곡의 극처요, 원두인 이곳은 도가 솟아나는 연못이란 의미인 ‘도연’(道淵)이다. 여기서 솟아난 도(道)는 운곡천으로 흘러 춘양들판을 적시며 아홉 굽이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듯 도연은 춘양을 비롯한 봉화 지역의 유생들이 학문을 발전시키는 큰 역할을 했으니 춘양구곡의 원두요, 극처로 삼기에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픽] 봉화 춘양구곡 개념도
여행 길잡이

봉화 춘양구곡(春陽九曲)은 봉화군 법전면 어은동부터 춘양면 서동리 춘양중학교 앞까지의 운곡천 물줄기를 따라 이루어져 있다. 제1곡 어은(漁隱), 제2곡 사미정(四未亭), 제3곡 풍대(風臺), 제4곡 연지(硯池), 제5곡 창애(滄厓), 제6곡 쌍호(雙湖), 제7곡 서담(書潭), 제8곡 한수정(寒水亭), 제9곡 도연서원(道淵書院)이다. 물길의 총 거리는 7.8km다. 전 구간 도보답사와 차량 이용 모두 가능하다.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는 가장 하류인 제1곡 어은동과 제2곡 사미정 주변이 가장 좋다.

교통(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영주IC로 → 28번국도 → 영주 → 36번국도 → 봉화 → 법전면 → 법전(옥천)삼거리(우회전) → 35번국도 → 운곡교 → 사미정로 → 어은동

숙식(지역번호 054)

춘양면의 만산고택(672-3206)과 봉화 권진사댁으로 불리는 성암고택(672-6118)은 고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가옥이다.

[경북구곡 | 성주 포천구곡]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라네”

제주목사 출신 문신, 고향 땅 성주 옥계에 조성한 걷기 길

2단을 이뤄 하나의 폭포로 흘러내리는 만귀폭포.
2단을 이뤄 하나의 폭포로 흘러내리는 만귀폭포.
경북 성주의 포천구곡(布川九曲)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2)가 설정하고 경영한 구곡 원림이다. 제주목사로 있을 때 조세와 부역을 경감하는 등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면서 선정(善政)을 베풀고 학문을 장려했던 그는 여러 벼슬을 두루 지낸 뒤 고향인 성주로 돌아와 가야산 북쪽의 옥계에 포천구곡을 경영했다.

“가야산 정상에는 선령이 살고 있으니 / 산은 절로 깊고 물은 절로 맑다네 / 산 밖의 유람객 여기 찾아온 적 없는데 / 달 밝은 밤 생학(笙鶴) 소리만 들리네”

포천구곡은 가야산(伽倻山, 1,430m)에서 첫 물방울이 시작하는 계류에 설정한 구곡인데 어찌 가야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구곡을 빚은 근원인 가야산 정상에는 당연히 선령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원조는 깊고 깊어 유람객도 찾지 않는 이곳을 ‘신선이 학을 타고 부는 피리 소리’인 생학(笙鶴) 소리만 들리는 신선의 땅이라 노래했다.

제1곡 법림교 자리엔 아전촌교 있어

포천구곡의 제7곡인 석탑동. 진짜 석탑이 아니라 석탑처럼 생긴 바위 층층 벼랑을 일컫는다.
포천구곡의 제7곡인 석탑동. 진짜 석탑이 아니라 석탑처럼 생긴 바위 층층 벼랑을 일컫는다.
이렇게 신령스런 땅으로 다가가는 과정으로 조성된 포천구곡의 제1곡은 법림교(法林橋)다. 성주군 가천면 소재지의 창천삼거리에서 903번 지방도를 타고 포천계곡 방면으로 3.3km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아전촌’ 마을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 길로 내려가면 포천계곡에 걸린 아전촌교 앞에 이르는데, 여기가 포천구곡의 첫 번째 굽이다.

가야산 정상에서 발원해 아전촌마을을 지나온 계류와 가야산 서쪽 능선의 두리봉에서 발원한 계류가 이 지점에서 합류한다. 이곳은 여러 개의 아기자기한 폭포가 연달아 흘러 경치도 괜찮고 물도 맑아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제1곡에서 포천계곡 물길을 왼쪽에 끼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약 400m 거슬러 오르면 물길이 부드럽게 굽이도는 지점에 다다른다. 제2곡인 조연(槽淵)이다. 통바위를 굽이굽이 돌아가며 흘러가는 옥빛 계류는 중간 중간에 아기자기한 소(沼)에서 잠깐씩 쉬었다 간다. 이원조는 이 부근의 바위가 패인 것이 마치 구유[槽]와 같아 조연이라 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조연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산길을 넓히고 포장할 때 계곡의 바윗덩이들이 훼손되면서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인 듯하다. 옛날 포천계곡으로 이어진 산길은 마치 한 가닥의 실처럼 가늘게 이어지는 오솔길이었다. 산도 휘돌아 가고, 물도 휘돌아 가니 신령스런 비취빛이 과연 몇 겹이었을까.

제2곡을 뒤로하고 맑은 계류를 따라 600m 정도 오른 뒤 만나는 갈림길에서 ‘포천관광농원’으로 가는 왼쪽 길로 80m 내려서면 포천교가 나온다. 다리에서 하류를 바라보면 계곡 바닥 전체가 새하얀 반석으로 깔려 있는 경관이 눈에 든다. 계류가 와폭으로 흐르는 경사진 반석이 끝나는 지점에는 옥빛의 맑은 소가 다소곳이 반긴다. 제3곡인 구로동(九老洞)이다. 새하얗게 빛나는 너른 반석의 옛 모습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굽이다. 탁족하기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시원한 물소리 바람소리로 잠시 더위를 식히고 물길을 700~8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제4곡인 포천(布川)에 닿는다. ‘바위에 심청색 무늬가 있어 마치 베를 널어 놓은 듯하다’는 곳이다. 상류서부터 제법 너른 반석 위를 흐르는 계류가 작은 와폭 몇 개를 지나는데, 마지막 작은 폭포 아래에는 제법 너른 소가 형성돼 있다. 물빛은 선녀가 목욕이라도 했을 만큼 정갈한 옥빛이다.

“기다란 반석 한 자락이 씻은 듯 깨끗한데 / 신선 사는 대와 집이 푸른 못을 굽어보네”

포천구곡의 제8곡인 반선대는 소나무 그늘에서 주변 풍광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포천구곡의 제8곡인 반선대는 소나무 그늘에서 주변 풍광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아마도 이원조는 위쪽 너럭바위에 앉아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이후로 계곡 풍광은 점점 더 좋아진다. 통바위 협곡을 연상케 하는 물가에서는 더위를 식히는 피서객들의 여유로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포천구곡에서 더위를 식히기에는 이 부근이 제일인 듯하다. 이렇게 750m 정도 오르면 물길이 왼쪽으로 살짝 굽이도는 지점에 이른다. 제5곡 당폭(堂瀑)이다. 이원조는 이곳에 너럭바위와 폭포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계곡 주변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폭포라고 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원래 이곳에는 폭포도 있고, 그 아래에는 제법 너른 소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홍수가 나면서 모래와 자갈이 소를 메워 버렸지요. 나중에 또 홍수가 나면 모래와 자갈이 떠내려가면서 예전 모습을 되찾게 될 겁니다.”

늙수그레한 환경지킴이 주민은 이 계곡은 큰 홍수가 들 때마다 지형이 가끔 바뀐다고 귀띔한다. 그렇지만 다시 큰물이 들어 자갈과 모래가 떠내려가면 맑은 소를 다시 볼 수 있다 해도, 도로를 넓힐 때 묻혀버린 수십 보가 되는 너럭바위는 어찌 다시 볼 수 있을까.

1 만산일폭루 작은 정자 창문 너머로 보는 풍경은 조물주가 그려놓은 한 폭의 산수화다. 2 맑은 물살이 반석 위로 쉼 없이 흘러내리는 사연. 포천구곡의 제6곡이다.
1 만산일폭루 작은 정자 창문 너머로 보는 풍경은 조물주가 그려놓은 한 폭의 산수화다. 2 맑은 물살이 반석 위로 쉼 없이 흘러내리는 사연. 포천구곡의 제6곡이다.
폭포와 못이 연이어 펼쳐져

부드러운 물굽이를 몇 번 돌아가면서 사부랭마을 입구를 지나면 물굽이가 급하게 휘도는 지점의 언덕 갈림길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연주대’ 이정표를 따라 왼쪽 길로 내려가면 계류에 걸린 작은 다리가 나온다. 이 굽이가 바로 제6곡인 사연(沙淵)이다. 다리 상류서부터 층층의 폭포들이 우렁찬 소리로 흐르는데, 그 아래에는 역시 맑은 소가 형성돼 있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반석으로 이루어진 계곡 풍광은 제법 괜찮다.

제6곡에서 한 굽이를 돌아 오르면 다시 하늘이 넓게 트인다. 계곡 너머로는 마치 톱날 같은 가야산 능선이 걸려 있다. 이원조가 포천구곡을 경영할 당시 이곳에는 주막이 몇 집 있었을 정도니 예전에도 제법 규모가 있는 산골이었던가보다. 현재는 맑은 물가 곳곳에는 펜션과 깨끗한 농가들이 들어서 있다.

제7곡 석탑동(石塔洞)으로 가려면 신계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 마을길로 200m 더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눈앞에 석탑처럼 생긴 층층 바위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맑은 소가 형성돼 있다. 석탑동이라 했지만 진짜 석탑이 아니다. 물가에 붙어 있는 바위들이 마치 석탑처럼 쌓여 있어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이다.

석탑동을 뒤로하면 계단식 논 너머로 민가들이 군데군데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가야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이 마을 언덕을 크게 휘돌아가면서 흘러간다. 이원조는 “신평촌 옆에 언덕이 우뚝 솟아 계곡에 접하고 있는데, 그 위에는 큰 나무들이 많다. 해마다 고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연회를 베풀고 술을 마신다. 물이 달고 땅이 비옥하니, 은자가 깃들어 살기에 마땅한 곳이다”고 했다. 즉 제8곡 반선대(般旋臺)는 제법 넓은 언덕이다.

1 이원조가 만년에 은거했던 만귀정(晩歸亭). ‘늙어서 돌아온다’는 소박한 뜻을 지니고 있다. 2 포천구곡의 제3곡인 구로동. 맑은 시냇물이 반석 위로 흘러간다.
1 이원조가 만년에 은거했던 만귀정(晩歸亭). ‘늙어서 돌아온다’는 소박한 뜻을 지니고 있다. 2 포천구곡의 제3곡인 구로동. 맑은 시냇물이 반석 위로 흘러간다.
이 널따란 언덕에서 마을사람들이 농한기에 모여 연회 베풀기 좋은 곳은, 신계교에서 도로를 따라 900~950m 정도 올라간 지점인 만귀정 갈림길 바로 앞의 솔밭 언덕이다. 현재 이곳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 그루와 묘가 한 기 있는데, 조망이 좋다. 위로는 가야산 정상에서 뻗어 내리는 가야산 칠불봉 암봉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산 아래로 고개 돌리면 성주와 김천 쪽으로 펼쳐진 첩첩 산그리메가 아련하다.

반선대 앞 갈림길에서 만귀정 이정표를 따라 350m 정도 들어가면 이원조가 만년에 은거했던 만귀정(晩歸亭, 경북문화재자료 제462호)이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아래쪽에서는 우렁찬 폭포수 소리가 들려온다. 포천구곡의 극처인 제9곡 홍개동((洪開洞)이다.

이원조가 머물던 만귀정 앞의 바위 협곡에는 만귀폭포가 2~3m 높이로 2단을 이뤄 흘러내린다. 협곡에 울려 퍼지는 폭포수 소리에 귀가 멍해질 것만 같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일만 개의 산에서 내려온 물이 하나의 폭포로 흐르는 광경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의 만산일폭루(萬山一瀑樓)다. 정자의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조물주가 그려놓은 한 폭의 산수화다. 폭포소리 우렁찬 깊은 계곡 어디선가 이원조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듯하다.

“구곡이라 홍개동 한 동천 넓게 열리니 / 백 년 동안 조물주가 이 산천을 숨겨 왔네 / 새로 정자를 지어 내 안신처를 얻었으니 / 이곳은 인간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라네”

[그래픽] 성주 포천 구곡 개념도
여행 길잡이

경북 성주 포천구곡(布川九曲)은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포천 물줄기에 조성된 구곡이다. 포천구곡의 아홉 굽이는 제1곡 법림교(法林橋), 제2곡 조연(槽淵), 제3곡 구로동(九老洞), 제4곡 포천(布川), 제5곡 당폭(堂瀑), 제6곡 사연(沙淵), 제7곡 석탑동(石塔洞), 제8곡 반선대(般旋臺), 제9곡 홍개동(洪開洞)이다. 물길로 따르는 총 거리는 약 5.4km다. 전 구간 도로가 가까이 붙어 있다. 도보로 답사도 가능하다. 각 굽이마다 더위를 식힐 공간이 있는데, 제4곡 포천과 제5곡 당폭 사이가 가장 좋다. 제9곡은 물놀이 금지 구역이다.

교통(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 → 33번국도 → 대가면 → 가천 삼거리(우회전) → 59번국도 → 창천삼거리(좌회전) → 포천계곡(법전리)

숙식(지역번호 054)

포천계곡 일대에는 숙식할 곳이 많다. 법전리에 삼거리펜션(932-0851), 쉴만한물가(931-7900) 등이 있다. 포천계곡 하류의 화죽리에도 포천파크(010-8272-8094), 소나무풍경(931-579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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