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창문을 열면 마음이 들어오고. . . 마음을열면 행복이 들어옵니다.
  • 국내의 모든건강과 생활정보를 올려드립니다
생활

로즈메리·마늘·후추… 돈가스에 이런 풍미가?

by 白馬 2018. 1. 11.
서울 신촌 '눈탱이 감탱이'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음식을 맛보고 보드게임을 해보는 체험을 통해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사진은 연출 촬영했다. 빛이 전혀 없는 암흑 속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여자분이 제 어깨에 손을 올리세요. 남자 손님은 여자분 어깨에 손 올리고요. 준비되셨나요? 그럼 테이블로 안내하겠습니다." 기차놀이 하듯 직원 어깨에 손을 올리고 두꺼운 벨벳 커튼 뒤로 들어서자 완벽한 암흑이었다. 아무것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빛이 차단된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의외로 컸다. 공포에 가까웠다.

이곳은 서울 신촌 '눈탱이 감탱이'. 국내 몇 안 되는 암흑 카페·식당이다. 이곳 대표이자 저시력장애인인 성정규(41)씨는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껴보도록 마련한 공간"이라고 했다.

손님은 먼저 벽에 붙은 '주의사항'을 읽도록 안내받는다.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 카페이기 때문에 폐소공포증이 있는 분은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입장하면 환불 처리되지 않으니 입장 전 신중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성 대표는 "내성적인 분은 완전한 암흑 속에서 폐소공포증 내지는 공황장애를 겪는다"며 "실제로 2013년 오픈 이래 다섯 분이 이용 못했다"고 했다.

빛이 차단된 암흑 속 식사를 서양에서는 '다크 다이닝(dark dining)'이라 부른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벤트 형태로 처음 마련됐다. 시각이 배제된 상태에서 미각·후각·촉각·청각 등 나머지 감각이 증진돼 예전에 몰랐던 음식의 맛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벤트는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벤트 주최자들은 1999년 다크 다이닝 레스토랑 '당르누아?(Dans Le Noir·어둠 속에서)'를 열었다. '당르누아?'는 파리·런던·바르셀로나 등에 지점을 둔 국제적 체인으로 성장했다. 2013년 국내에서도 흥행한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남녀가 처음 만나 블라인드 데이트를 한 식당이 '당르누아?' 런던점이었다. 전 세계 대도시마다 다크 다이닝을 콘셉트로 한 식당·카페가 하나 정도씩은 생겨났다. 하지만 빛 차단, 직원 교육 등 진입 장벽이 높아 그 숫자가 크게 늘거나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어둠을 즐기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메리(레이첼 맥아담스)가 팀(도널 글리슨)과의 첫 데이트를 위해 런던에 있는 다크 다이닝 레스토랑 ‘당르누아?’에 들어서는 장면. / 영화 캡처
암흑 카페·식당 입장을 결심한 손님은 카운터에 휴대전화를 맡겨야 한다. 카메라, 라이터, 야광시계 등 빛이 나는 물건은 일절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조금의 빛은 있게 마련이고, 우리 눈이 어둠에 차츰 적응하면서 볼 수 있게 된다. 이곳은 모든 빛이 철저하게 차단된 공간. 안내한 직원은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눈이 적응하지 못한다"며 "어지러울 수 있으니 눈을 감는 편이 편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테이블 의자에 앉자 직원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테이블 오른쪽 끝에 직원 호출 벨이 붙어 있어요. 그 앞의 네모난 통에 냅킨이 담겨 있고, 그 앞 벽의 버튼을 누르면 시간 말해주는 시계가 매달려 있으니 확인하세요."

식사가 나오기 전 손님들은 선택한 해적 룰렛, 악어 룰렛, 오목, 젱가 등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다. 비교적 쉽다는 해적 룰렛을 선택했다. 해적 룰렛은 해적이 들어가 있는 둥그런 나무통에 칼을 돌아가며 찔러 넣다가 해적이 튀어나오면 걸리는 게임.

볼 수 없으니 차츰 상대방이 '페어 플레이' 하는지 의심되기 시작했고, "제대로 찔러 넣었느냐"며 손으로 나무통을 더듬으며 확인하게 됐다. "우리 카페를 이용한 사회복지사들이 '시각장애인들이 왜 의심이 많은지, 여러 번 말해줘도 왜 계속 확인하는지 이제야 이해된다'고들 하세요."

15분쯤 지나서 식사가 나왔다. 입장할 때 주문한 볶음밥과 돈가스였다. 시각이 사라지자 촉각·후각·청각 등 나머지 감각이 수퍼히어로처럼 예민해졌다. 돈가스 돼지고기를 양념한 로즈메리, 후추, 마늘 냄새는 접시가 테이블에 놓이기 한참 전부터 맡아졌다.

함께한 일행이 물 마실 때 "꼴깍꼴깍"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 놀랐다. 평소 의식 못 했던 부분들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거죠. 한 여성은 '남자친구가 킁킁거리는 습관이 있는 줄 몰랐다가 여기 와서야 알았다'고 했어요."

테이블에 놓인 쟁반을 더듬어 숟가락과 포크를 찾아 손에 쥐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먹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음 실감했다. 볶음밥은 그나마 먹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돈가스는 고기가 한입 크기로 미리 잘려 나오기는 했지만 고기·샐러드·소스·밥 등 크기와 모양과 종류가 모두 다르고 이에 따라 찍어 먹거나 떠먹는 등 먹는 방식도 다르게 해야 하기에 난감했다. 소스가 담긴 종지를 찾다가 손에 묻히기도 하고, 샐러드를 포크로 찍으려다 접시가 뒤집힐 뻔하기도 했다. 음식을 얼마나 먹고 얼마만큼 남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도 당혹스러웠다.

시각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절감했다. 늘 곁에 있는 이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암흑 레스토랑·카페

<국내> 눈탱이 감탱이: 평일 저녁·주말 눈탱이 다보세트(음료+주전부리+보드게임) 2만5000원,눈탱이 식보세트(음료+식사+보드게임) 3만원, 감탱이 주보세트(주류+안주+보드게임) 3만원.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길 26, (02)3144-3760, www.noongam.co.kr 블라인드 레스토랑: 골드코스 5만원, 실버코스 4만원, 평일코스 3만원. 서울 광진구 능동로 145, (070)7519-2182, www.blindrest.com

<해외> 당르누아?(Dans Le Noir?): 유럽 주요 도시에 지점을 둔 다크 다이닝 레스토랑.

www.danslenoir.com 오패크(Opaque): 뉴욕·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도시에 지점을 둔 다크 다이닝 레스토랑. www.darkdining.com

오늘의 날씨


* 오늘 하루도 즐겁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