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인도식 밀크티 '차이'의 추억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 인도식 밀크티 '차이'의 추억](http://life.chosun.com/site/data/img_dir/2017/12/28/2017122801604_0.jpg)
창밖을 내다보면 설산(雪山)이었고 그 밑은 절벽이었다. 절벽 아래로는 추락한 차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군대 제대하고 떠난 인도 여행의 목적지는 티베트 고원의 라다크였다.
라다크로 가는 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속도로'라는 타이틀이 붙은 타글랑라(Taglang La·5328m)였다. 7월에서 9월 사이에만 열리는 그 길은 비포장이 대부분이었고 그 석 달 사이에 12대 정도의 차량이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속도로는 라다크에서 히말라야 누브라밸리로 가는 카르둥라(Khardung La·5703m)이다.
라다크까지는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구름 없는 하늘처럼 맑은 눈을 가지고 있던 티베트계 운전기사는 한숨도 자지 않고 기어를 넣으며 차를 몰았다. 그러다 말없이 차를 멈춰 세웠다. 그는 24시간 내내 그러했듯 달라이 라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티 미니츠(30 minutes)."
그곳에는 나무판자로 지은 집 한 채가 있었다. 흙먼지에 뒤덮인 코카콜라 간판이 붙어 있던 그 집은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발전기로 돌리는 냉장고에는 델리보다 몇 배가 비싼 콜라와 생수가 있었고 한쪽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김을 내며 끓었다. 토굴같이 어두운 그 집 안에 들어가 나는 짧게 말했다.
"원 짜이(차이)."
이가 다 빠지고 황무지같이 거친 피부를 한 노파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뼈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천천히 주전자를 들어 흙으로 빚은 작은 잔에 차이를 부었다. 인도식 밀크티인 차이(chai)는 카르다몸, 정향, 생강, 팔각, 후추, 박하잎 같은 향신료를 넣고 홍차를 끓인 뒤 설탕을 붓고 우유를 섞어 달이듯 졸여 만든다.
1823년 영국 브루스 소령이 중국에서만 자란다고 생각했던 야생 차나무를 인도 아삼 밀림에서 발견한 이래, 차 문화는 영국의 식민지 전역에 퍼졌다. 이를 지탱하기 위해 영국은 중국에서 차 재배·가공법을 훔쳤고 다르질링과 아삼, 저 아래 스리랑카까지 차 재배 지역을 넓혔다. 현재 인도는 세계 1위 홍차 생산국이며 온 국민이 아침저녁으로 홍차와 차이를 마신다. 1300년 전 왕오천축국전을 썼던 승려 혜초가 넘었던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에서도 차이를 마시게 된 것이다.
독수리처럼 눈빛이 형형한 노파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그 차이를 마셨다. 다시 눈이 감겼다. 마살라(masala)라고 부르는 인도 향신료 믹스의 맛이 어김없이 풍겨 왔다. 한 달 동안 인도를 여행하며 지겹게 먹었던 그 맛이었다.
홍차와 우유, 설탕에 물든 그 마살라 향은 주술(呪術)처럼 몸속에 파고들었다. 향은 거칠었지만 향기로웠고 단맛은 사탕을 문 것처럼 감미로웠다. 끓이고 끓여 걸쭉한 죽처럼 되어버린 차이 한 잔에 녹슨 칼처럼 찌든 몸이 풀어졌다.
차이에 들어간 홍차는 싸구려였다. 인도에서 나는 홍차 중 고급품은 모두 수출된다. 노점에서 차이를 파는 '차이왈라'가 쓰는 홍차는 꽃을 닮은 향기가 다 날아간 것들이다. 대신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를 지르고 살이 마른 거리의 아낙처럼 강하고 거친, 그러나 절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버틴 것들이 남아서 맛의 골조(骨組)를 이룬다. 거기에 일교차가 30도를 넘는 고원의 풍화작용과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에 화상을 입고 마는 태양의 자외선,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의 좁은 도로를 돌고 돌아 짐을 나르는 트럭의 매연이 서로 뒤엉켜 만화경 같은 차이의 향을 만든다.
저 옛날 승려처럼 구태여 멀고 높은 길을 가는 여행자들은 차이 한 잔에 힘을 얻는다. 한 번 쓰고 던져버리는 진흙 잔을 비울 때쯤엔 다시 몸을 움직여 길을 떠나게 된다. 신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 황량한 고원은 노승처럼 고고(孤高)하고 차가운 지옥처럼 엄정(嚴正)했다. 그 속으로 나는 다시 낙하하듯 빨려 들어갔다.
바위에 앉아 딱딱한 빵을 씹으며 쉬던 운전기사는 또다시 웃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옆에 앉아 나는 저 멀리 신기루처럼 솟아 있는 투명한 설산을 바라봤다. 차이의 향기가 몸속에서 춤추듯 맴돌았고 차는 멈추지 않았으며 운전기사는 한 번도 잠들지 않았다.
▲헬카페 스피리터스: 카페라테로 유명세를 얻은 헬카페의 서울 이촌동 분점이다. 밤에는 칵테일바로 변하는 이 집에서는 '헬짜이'란 이름으로 차이를 판다. 매일 새로 산 꽃을 바라보며 짙은 색의 나무로 짠 바와 테이블, 의자에 앉아 높은 성(城)의 주인이 마셨을 것 같은 고귀한 향을 뿜어내는 차이를 마시면 지옥도 천국도 없는 이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 070-7611-4687
★오늘의 날씨★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면마취 중에 속마음 말하는 이유 (0) | 2018.01.03 |
---|---|
[오늘의 운세] 1월 2일 화요일 (음력 11월 16일 甲午) (0) | 2018.01.02 |
비싼 옷은 무조건 드라이? 겨울 의류 소재별 세탁 및 관리 노하우 (0) | 2018.01.02 |
[오늘의 운세] 12월 30일 토요일(음력 11월 13일 辛卯) (0) | 2017.12.30 |
강정이 젊어졌어요! (0) | 2017.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