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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임금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완도의 전복 상차림

by 白馬 2017. 11. 1.

[전복요리 '일억조식당']

옛날엔 권력층·부자만 먹던 전복… 월매는 춘향·몽룡 첫날밤에 먹여
인조, 수라상 전복에 독 들었다고 며느리 강빈을 의심해 賜死하기도
해녀들 한숨 토하며 캔 귀한 음식… 양식 덕분에 지금은 누구나 즐겨

       
예로부터 전복은 귀한 식재료였다. '춘향전'에서 월매가 이도령을 맞이할 때 첫날밤 차려준 음식에 전복이 포함되어 있으며, '상주 모심기노래'에도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친구 집으로 놀러 가니'라는 가사가 있을 정도로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았다. '친히 복어(鰒魚·전복)를 베어서 올리니 세종이 맛보게 되었으므로 임금(문종)이 기뻐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전복은 몸을 보하는 최상의 음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전복이 대접받은 이유는 맛이나 영양적인 측면과 함께, 보관성이 좋았고 여러 요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전복은 활전복이나 생전복으로 주로 요리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생전복과 함께 건전복이나 염전복을 활용했다. 가공 방식도 통째로 말린 원(圓)전복, 말리는 도중 두들겨 편 추복(槌鰒), 살을 길게 저며 말린 세인복(細引鰒) 등으로 다양했다. 전복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요리에는 잣을 넣어 살짝 익힌 전복회, 양념한 간장에 전복을 조린 전복초, 전복포, 전복찜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삼남지방과 제주에서 생산된 전복은 먼저 나라에 진상되었다. 이 전복은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진상품, 왕실의 자체 수요,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 등으로 사용했다. 나라에 바치고 남는 전복은 사사로운 거래도 가능했다. 영조 때 시인 석북(石北) 신광수가 충남 강경장의 풍물을 노래한 '감호춘범(鑑湖春泛)'을 보면 '가죽옷 입고 전복을 파는 제주 사투리(皮衣賣鰒濟州言)'라는 구절이 나온다. 제주 어민들이 강경장에까지 와서 전복을 팔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민이 전복을 먹는 일은 아주 드물었고 대개는 권력층이나 부자의 전유물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가정에서 전복을 통으로 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가족 중 누군가 원기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한두 개 구해 잘게 썰어서 죽으로 끓여서 먹곤 했다. 그럴 때도 전복을 사기 위해서는 살림살이를 관장하던 주부의 과감하고도 통 큰 결단이 필요했다. 그만큼 전복은 비싼 식재료였다.

[하응백의 해산물식당 紀行] 임금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완도의 전복 상차림
 
이런 전복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이한응(李漢膺)이 바로 그런 경우다. 영조 때 통제사 이한응은 '봉진(封進)한 전복의 맛이 상했다'는 이유로 잡혀서 국문을 받았다. 이보다 더 딱한 사람이 바로 인조의 며느리였던 강빈이다. 소현세자가 급서(急逝)하고 난 뒤-지금까지도 아버지 인조가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인조는 자신이 먹던 전복구이에 독이 들어 있었다며 강빈을 의심했다. 강빈의 나인들을 문초했으나 끝내 자복을 받지 못한 인조는 강빈을 후원 별당에 유폐했다가 마침내 사사(賜死)했다. 당대의 기록인 실록에서조차 '어선(御膳·임금의 수라상)에 독을 넣는 것은 형세상 할 수 없는 일'임을 밝히고 있으나 권력욕에 눈먼 인조는 막무가내였다.

무엇보다 전복 때문에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전복을 직접 채취하던 잠녀(潛女)였다. 앞서 언급한 석북은 금부도사로 죄인을 호송하기 위해 제주로 갔다가 기상 악화로 한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그때의 견문을 '탐라록'이란 연작시로 남겼다. 그 시 중에 '잠녀가'에서 깊고 푸른 바다에 잠방이 하나 입고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고 솟구쳐 올라 긴 숨비 소리를 토해내는데, '그 소리 참으로 슬프디슬프게 아득히 수궁(水宮)으로 메아리쳐 가는구나'('석북시집', 신석초 번역)라고 제주 해녀들의 물질을 묘사했다.

사연 많은 전복을 맛보기 위해 전남 완도로 간다. 완도항에 들어서니 온통 전복요리 음식점이다. 전복순두부, 전복뚝배기, 전복미역국 등 음식점마다 전복을 간판으로 내세운다. 전복 빵도 있다. 인근 보길도, 노화도, 청산도 등에서 양식한 전복이 이곳으로 모여 전국으로 배송되고 그 양이 전국 생산량의 약 80%를 담당한다고 하니 가히 완도는 한국 전복의 메카다.

수소문해서 찾아간 음식점은 일억조식당(대표: 장진·류옥자). 코스 요리를 주문하니 몇 차례에 걸쳐 수레로 음식을 끌고 온다. 한 상 가득한 음식 중에 낙지호롱이나 가리비 따위는 차라리 장식. 진짜는 온통 전복인 야채볶음, 버터구이, 회, 찜, 미역국, 죽이다. 싱싱한 전복이라 회는 오돌오돌 씹히고, 익힌 전복은 부드럽다. 특히 전복야채볶음이 일품이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가성비가 훌륭한 음식점.

석북은 잠녀의 모진 바다 노역을 보고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농락하여 구복(口腹)을 채울까 보냐(何人性命 累吾口腹)'라고 했지만, 전복 양식 기술의 발달은 석북의 탄식을 허언(虛言)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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