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가이드] 제주 다랑쉬오름 & 비자림
- 오름의 여왕이 품은 아프리카 밀림 같은 비자림 거목·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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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제주도를 가본 사람은 뭔가 우리나라 땅 같지 않아서 자꾸만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길가의 야자수 같은 이국적 식물들 때문인가도 싶지만, 야자수가 없는 곳에서도 그 느낌은 여실하다. 눈에 특별히 걸리는 것이 없어서일까. 그러나 사방이 휑한 평야지대는 한반도 내륙에도 많다. 그 내륙의 평야지대와도 또한 다른 무언가가 있다. 산악지대는 분명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한 평야도 아닌 모양으로 펼쳐진 땅-. 한라산 중복의 횡단도로를 거슬러 오르면 비로소 무릎을 치게 된다. 여기저기 올록볼록 솟아 있는 희한한 야산더미들이 실은 그 뭔가 다른 분위기의 근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 ▲ 용눈이오름의 산릉과 그 뒤에 솟은 다랑쉬오름. 두 오름의 조화가 멋지다. 왼쪽 아래의 네모난 돌담은 무덤의 경계로서 산담이라 하며, 그 안에 무덤이 보인다.
- 서로간 맥이 이어져 있지 않고 평원의 여기저기에 내키는 대로 솟아 오른 그 기이한 산봉들을 일러 제주도 사람들은 오름이라고 부른다. 물론 ‘오르다’란 동사에서 파생한 말이다.
한반도 내륙의 산들은 물이 흐르며 깎이어 뼈대로서 ‘남은’ 것들이지만,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도의 오름들은 말 그대로 솟은 것이다. 30만 년 전 뜨거운 용암 기운이 지각 아래를 맴돌다 한라산을 부풀려 올렸으며, 뒤이어 남은 기운은 한라산 기슭 중산간지대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기생화산, 즉 오름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한라산이 가지고 있는 기생화산의 숫자는 360여 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있는 활화산인 에트나산(Etna)이 그간 세계 최다로 전해져왔으나 260개로 한라산이 100개쯤 더 많다. 이들 오름 중에도 여왕격으로 첫손 꼽히는 것이 다랑쉬오름이다.
완벽한 환형 이룬 360개 오름들의 여왕
오름들은 한라산 동북부,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일원에 밀집해 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우주의 비밀을 담은 포석(布石)이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 제멋대로 늘어선 것 같으면서도 무질서와는 거리가 먼 조화로움이 오름들의 어깨춤에서는 느껴진다. 그 가운데 주인공으로 아름답게 솟은 다랑쉬오름은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한자로 월랑봉(月郞峰)이라 표기돼 있다. 다랑쉬란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다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 ▲ 용눈이오름에 올라바라본 옆의 또다른 오름들.
- 오름은 동그란 분화구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환형(環形), 한쪽이 터진 말발굽형, 그리고 육지부의 산처럼 불룩하게 솟은 원추형의 세 가지로 대개 분류한다. 다랑쉬오름은 그중 완벽한 형태인 환형 오름이다.
<오름나그네>란 책자에 보면 ‘대부분의 오름이 비대칭적 경사를 가진 데 비해 다랑쉬오름은 동심원(同心圓)적 등고선으로 가지런히 빨려진 원추체로 흔치 않은 형태이며, 균제미에 있어서는 구좌읍 일대에서 단연 여왕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묘사했다.
유채꽃이 어울린 풍경인 유채3경 중 하나인 둔지봉(屯地峰) 옆을 지나 제주도의 손꼽히는 명소 중 하나인 비자림 입구쪽으로 가다가 우성목장 입구에서 반대편, 콘크리트포장 좁은 농로로 들어가면 다랑쉬오름 기슭에 다다른다.
지형도를 보면, 거의 동그란 원을 그린 다랑쉬오름의 밑변 고도는 200m, 정점의 높이는 382m이므로 비고(比高)는 182m다. 한편 분화구의 저점 표고는 269m이니 분화구의 깊이는 113m로 한라산 백록담과 거의 같다. 겉으로 보기에 밋밋한 봉분 같은 산봉 가운데에 그렇게 깊이 움푹 꺼진 분화구가 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산릉에 올라보면 사실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 다랑쉬오름의 분화구. 누군가 돌담을 두르고 경작했던 흔적이 보인다.
- 다랑쉬오름으로 오르는 길은 북사면과 동사면 양쪽으로 나 있다. 이중 동쪽 아끈다랑쉬오름과의 사이에서 시작되는 동사면 길이 한결 오르기 쉽다. 여름에는 가시덩굴이 길을 덮기도 하므로 장갑은 필수다.
다랑쉬오름 능선 위에 서면 우선 화구 둘레를 에워싼 바퀴 같은 형상의 동그란 능선이 인상적이다. 이를 화구륜(火口輪)이라 하는데, 이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본다. 안개가 끼면 또한 그런대로 신비한 멋이 있다.
분화구 능선이 이룬 타원의 지름은 350m. 줄지어 내린 골짜기도, 산릉도 없이 중앙부를 향해 단 하나의 둥근 산비탈로 쏟아져내린다. 때문에 큰 외침에는 명확한 메아리로 반응한다.
사방으로 막힌 그릇 형국이지만 큰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바닥이 화산재 같은 것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물이 차 있다고 해서 물찻오름이라 부르는 오름처럼 다랑쉬오름도 언젠가 흙이 차서 틈새가 메워지면 호수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화구 바닥으로 내려가노라면, 주위가 말미잘처럼 조여들 것 같은 느낌이 짙다. 분화구 바닥 중앙에는 끝이 닳은 삼각형 형상의 돌담이 빙 둘러져 있다. 여기 분화구 바닥이 그나마 수분이 고이는 곳이어서 경작했던 흔적이다.
- 오름 탐승은 하루에 하나만 하기는 좀 싱거우므로 2~3개를 대개 순례한다. 다랑쉬오름에 연계해 찾을 만한 또다른 오름은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에서 16번 국도로 나서자마자 좌회전, 1.5km 간 지점의, ‘남제주군 성산읍’이라 쓰인 초록색의 큰 간판이 선 노변에 주차한 뒤 북쪽 샛길로 접어들면 된다.
용눈이오름은 한쪽이 터진 오름이기도 하고 분화구 속에 또다른 분화구가 있는 이중화산이기도 하다. 생성과정이 그렇게 변화무쌍해서인지, 용눈이오름이 보이는 선은 기묘하고도 아름답다.
자연이 그려낸 오름의 선에 인간이 그린 숲의 선이 어울려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경작지의 경계선 삼아 길게 조성한 방풍림의 진초록 선들이 연두빛 오름들과 초원의 여기저기를 굵고 힘찬 터치로 종횡무진 달리는 풍경이 용눈이오름의 능선에서 조망된다. 이 오름의 초원에 자리 펴고 앉아 쉬는 멋을 즐기다 내려온다.
대부분의 오름은 한라산 국립공원 구역 밖이어서 오름산행은 연중 언제나 가능하다. 오름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도로지도를 꼭 지참해야 한다. 한편 오름에서는 뜨거운 햇볕이나 바람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차양이 넓은 모자와 간단한 요깃거리는 필수다.
오름 나들이 참조 사이트 및 문의전화 : 오름오르미들(www.orumi.net), 오를오름회(www.ormorm.com), 제주사진연구회(회장 홍성주 011-691-0405), 오름 사진작가 고길홍(016-691-5727).
- 먹거리
모슬포항 항구식당(064-794-2254)은 휴일 평일 할 것 없이 점심 때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할 정도로 인기 있는 물회와 매운탕 전문 식당이다.
제주 비자림(榧子林)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림은 단일 수종으로 이루어진 숲으로는 세계 최대라는 곳이다. 1993년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됐다. 수령이 300~800년 된 비자나무 약 2,500여 그루가 45ha에 걸쳐 자생하고 있는 천연수림이다. 나무 크기는 높이 7∼14m, 지름 50∼110cm에 이른다. 이중 제주도 최고령목으로서 810년 되었다는, 둘레 6m, 높이 14m의 거목도 있다. 마을 제사에 쓰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란 것이 이 숲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와 함께 나도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들이 자생하며 독특한 환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자귀나무, 머귀나무, 후박나무 등 다른 종류의 나무들도 함께 자라고 있다.
비자림 입구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50m쯤 걸어 들어가면 왼쪽에 ‘榧子林’이라고 한자로 새겨놓은 표지석이 서 있다. 그 앞을 지나 포장도로의 끝에 가면 들어가는 길 표시가 돼 있다. 반드시 이 순서에 따라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이 순서대로들 구경한다.
- ▲ 300~800년 된 비자나무 노거수 2,500여 그루가 우거진 제주 비자림.
- 직진해 들어가면 비로소 깊은 숲지대가 시작된다. ‘2158’ 등 숫자가 쓰인 팻말이 걸린 아름드리 비자나무들과 여러 수목이 우거졌고, 굵은 나무줄기를 따라서는 덩굴식물들이 칭칭 휘감고 있다. 그 분위기가 다분히 원시적이어서 우중충하게 비라도 쏟아지고 탐방객도 없으면 공포감이 들 정도다.
숲길을 따라 300m쯤 주욱 걸어 들어가면 ‘제주도 최고령목 가는 길’이라고 적어둔 나무패찰이 보인다. 이 패찰이 가리키는 대로 100m쯤 가면 둥근 쇠울을 두르고 선 제주도 최고령 나무가 눈에 든다. 굵기도 굵기려니와 여러 부분으로 나뉘듯 하며 아름드리 가지들을 얹고 있는 품은 다분히 위압적이다. 최고령목을 보고 걸음을 되돌려 아까의 탐방로로 나서서 줄곧 숲길을 따라 돌면 원점인 주차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전체를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주목과의 상록침엽교목인 비자나무는 주목과 마찬가지로 암수 딴 그루이고, 1년에 겨우 1.5cm 가량 자라며, 수령이 15년에서 20년이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비자나무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쓰이던 것으로, 음식이나 제삿상에 오르기도 했다. 비자를 이용해 기름을 짜기도 했는데, 기관지천식이나 장에 좋다고 알려졌다. 나무는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
접근로 비자림으로 가려면 제주시에서 해안을 따라 연결된 12번 일주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향한다. 조천과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 구좌읍 조금 못 미친 평대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1112번 지방도를 타고 5km쯤 가면 왼쪽에 비자림 진입로가 나온다. 입구에 표지판이 서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야영장은 비자림 입구 직전의 자그마한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300m 간 뒤, 오른쪽의 샛길로 우회전해 500m 쯤 더 들어가야 나온다. 비자림 관리사무소 전화 064-783-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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