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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삼척 통리협곡

by 白馬 2008. 5. 28.

오십천이 깎아 만든 '한반도 그랜드캐년'
2억~1억6천만 년 전 쥐라기 대보운동(지각변동)의 산물

 

강원도 삼척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도시인 태백으로 향하다 보면 커다란 고개 하나를 넘게 된다. 바로 백두대간의 허리자락에 해당되는 곳으로, 서울에서 영주를 거쳐 강릉까지 이어지는 영동선 철도가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통리재(720m)다.

험하기 이를 데 없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의 모습이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이곳 사람들은 강원도 사투리로 ‘때베이재’라 부르기도 한다. 가파른 때베이재를 힘겹게 오르다보면 약 7부 능선쯤에 왼편으로 휴게소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정동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멀리 도계읍 전경이 바라다보이고, 그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앞쪽으로 멀리 붉은 절벽을 이루는 깊은 계곡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계곡 끝자락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수, 그 앞쪽으로 열린 계곡을 따라 짙푸른 신록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붉은 벽과 그 붉은 벽이 토해내는 눈부신 햇살이 어울려 내는 모습은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하여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 통리재에서 바라본 통리협곡. 통리협곡은 규모만 작을 따름이지 그 생김새나 형성과정, 지질학적 특성이 미국 그랜드캐년과 비슷하여 한국판 그랜드캐년이라 불린다.



이곳은 한반도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숨은 비경, 바로 통리협곡이다. 통리협곡은 태백시 통리역에서 발걸음으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 통리역 앞 삼거리에서 너와마을로 잘 알려진 신리가 위치한 원덕 방향(427번 지방도)으로 약 500m 정도 가다보면 왼편으로 ‘미인폭포·혜성사’라고 적힌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비탈길을 약 300m 정도 걸어 내려가면 혜성사라는 작은 암자가 산허리에 한 뼘밖에 되지 않을 듯한 땅을 차지하고 아담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이 암자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약 50m 가량을 더 내려가면 시원스런 폭포 하나가 나타난다.

옛날 절세의 미인이 자신이 찾던 완벽한 신랑감을 기다리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늙어버린, 폭포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뛰어내려 죽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미인폭포이다. 힘찬 물줄기를 이루며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고 있자면 한여름의 무더위는 까맣게 잊을 듯하다.

폭포에서 좌우를 둘러보면 거대한 병풍 같은 느낌을 주는 수직절벽의 붉은 암벽이 가로막고 있어 하늘 아래 깊은 협곡에 들어서 있음을 곧 느낄 수 있다. 깎아지른 붉은 암벽에는 마치 책을 층층이 쌓아 놓은 듯한 줄무늬들이 촘촘히 그려져 있는데, 그 높이가 어림잡아도 200m를 훨씬 넘을 것 같다. 어떻게 해서 이런 깊은 협곡이 생겨날 수 있었는지 그 궁금함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강물의 침식작용이 빚어낸 협곡이라고 하면 언뜻 총 연장 450km에 달하는 미국의 그랜드캐년(Grand Canyon)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규모는 그랜드캐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이곳 통리협곡 또한 그 생성과정이나 지질학적 특성이 그랜드캐년과 비슷해 지질학자들은 통리협곡을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삼척시와 태백시 경계인 백병산(1,289m)을 발원지로 하여 오십 번을 굽이쳐 흐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십천(五十川) 물줄기가 오랜 세월 1만여 평의 고원지대를 지나가며 약 10km의 깊은 골을 파놓은 것이다. 그 가운데 시야에 들어오는 협곡의 길이는 약 2km에 달하지만, 가장 깊은 곳은 270m에 이를 만큼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

통리협곡이 위치한 이곳은 지역주민 외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찾는 이가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통리협곡보다는 미인폭포로 더 잘 알려져 있어 그나마 찾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여름철 관광객들이 전부일 뿐이다. 한편 통리협곡은 행정구역 상 강원도 삼척시에 속하지만, 태백시 통리(현재는 통동)에 더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백시에 속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중생대 백악기의 거대한 호수에 쌓인 퇴적층

▲ 오십천 상류에 발달한 미인폭포. 이곳에서 맑은 상태를 유지하던 오십천의 물길은 탄광지대인 도계를 지나면서 검은 색으로 변한다.

한여름철 시원한 물줄기를 이루며 30여m를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폭포 바로 아래와 그 물줄기가 흘러가는 계곡바닥을 보면 절벽에서 떨어져나온, 사람 크기보다 더 큰 승용차만한 바위덩어리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바위덩어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자갈, 모래, 시멘트를 함께 버무린 콘크리트 덩어리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암(礫岩)이다.

역암은 해안이나 강가에 퇴적되어 형성된 암석으로, 이 지역이 과거 바다나 호수 또는 강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그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것을 협곡을 이루는 양쪽 암벽면에서 찾을 수 있는데,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가운데 붉은 색조를 띠며 깎아지른 수직절벽은 마치 시루떡을 층층겹겹 포개놓은 것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퇴적암에서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양으로, 과거 이곳 일대가 바다 또는 호수를 이루고 있을 당시 퇴적된 지층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생대 쥐라기에 큰 지각변동을 겪은 이후 잠잠하던 한반도는 백악기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커다란 격변을 겪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화산활동과 함께 지각끼리 충돌로 인해 금이 가면서 일부 지각은 내려앉고 일부 지각은 올라가는 등 많은 지각변화가 있었다.

원래 이곳 통리가 위치한 태백과 삼척 일대는 우리나라의 고생대 하부층인 조선계(朝鮮系)와 상부층인 평안계(平安系)를 대표하는 지층으로, 석회석과 무연탄의 산출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고생대 지층 가운데 약한 틈을 뚫고 거대한 화산폭발이 일어난 후, 대규모의 지각이 함몰해 커다란 분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후 낮은 분지로 하천수들이 몰려들어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이곳 통리협곡 일대가 호수였을 백악기 당시, 호수바닥에는 오랜 세월을 두고 다양한 퇴적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암석 입자가 굵은 자갈(역암)이, 때로는 보다 작은 모래(사암)가, 때로는 이보다 더 고운 진흙(이암) 등이 수백 겹으로 차곡차곡 쌓여 퇴적층을 이루었다. 이후 퇴적층은 지반의 융기로 인하여 지표부로 올라오게 됐으며, 바람, 하천, 빗물 등에 의해 오랜 세월 침식을 받아 퇴적층의 단면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부안의 채석강, 부산의 태종대, 진안의 마이산 일대 역암층, 그리고 공룡 발자국으로 유명한 해남의 우항리와 고성의 덕명리 등에서 볼 수 있는 퇴적층들은 모두 이곳 통리협곡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으로 고생대 석탄지대로 둘러싸여 있는 통리협곡은 중생대 백악기 말 당시 수백~수천만 번 강물의 흐름이 변화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이들 지층 하나하나에는 약 1억 년 전 이곳의 환경, 기후, 강의 흐름과 위치, 세기와 형태 등의 지형적 특성이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 약 300여m 높이에 수직절벽을 이루는 협곡은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모양새로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용일 교수(퇴적학)는 “통리협곡의 지층은 퇴적물 입자로 보아 대부분 경사가 다소 급한 호수 가장자리의 선상지성 삼각주나 범람원에서 주로 강의 유로변경과 대규모 홍수가 일어났을 당시 범람원에서의 침전 등에 의해 퇴적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며 당시의 퇴적환경을 설명한다.

그리고 “당시의 기후조건은 우기와 건기가 구별되는 반(半)건조기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퇴적층 위를 덮고 있는 화산쇄설층으로 보아 이곳 일대가 호수 인근의 선상지를 이루고 있을 당시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폭발적인 화산활동에 의해 쇄설물이 유입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에 협곡 형성한 오십천 물길

먼저 협곡의 형성에 관여한 가장 결정적인 인자는 물이다. 이곳 또한 다른 산간 계곡과 마찬가지로 중생대 백악기 당시 퇴적된 지층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하천에 의한 침식으로 고스란히 깎여 나가 협곡 양쪽의 암벽에 퇴적층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협곡 암벽이 그랜드캐년과 마찬가지로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은 퇴적층이 공기 중에 노출된 채 퇴적되어 산화됐기 때문이다.

이곳 통리협곡의 퇴적층이 국내 다른 퇴적층과는 달리 약 300m에 가까운 높이로 깊게 파여 장대한 협곡을 이루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암석의 차별침식을 들 수 있다. 주변 고생대 지층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시에 고생대 지층의 기반암 위에 놓여 있는 백악기 퇴적층인 이곳 통리 일대는 주변의 단단한 지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약해 침식과 풍화를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주변의 다른 지층에 비하여 무르고 약하기 때문에 보다 빨리 깎여나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신생대 제3기 약 2천3백만 년 전에 이르러 동해 해저지각의 확장으로 태백산맥이 형성되면서 활발하게 전개된 단층작용과 습곡작용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협곡을 가르며 흐르고 있는 오십천은 당시 단층선 위에 발달한 하천이다. 오십천은 초기 이 단층선 위를 흐르며 점차 하천의 형태를 갖추면서 침식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동해와 거의 비슷한 고도를 유지하고 있던 지표가 태백산맥의 형성으로 급격히 융기하게 됐다. 이 때문에 단층선을 따라 발달해 동해로 흘러들던 오십천의 물길이 급격히 빨라졌고, 하방침식력이 강해져 강바닥을 더욱 깊이 파헤치며 상류쪽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도 오십천의 물길은 계속적으로 상류쪽을 향해 두부(頭部) 침식을 더해가고 있으며, 그 침식의 전단부가 바로 미인폭포다.

그러나 얼마나 오랜 시간 침식을 받았는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전남대 지구환경과학과 전승수 교수(퇴적학)에 따르면 “적어도 이 지역이 융기를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약 2천만 년 전 이후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한반도의 백악기 퇴적층 위에는 약 1~2km 두께의 화산쇄설층이 덮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화산층들은 신생대 이후 대부분 침식을 받아 거의 깎여나갔기 때문에 통리협곡 정상부의 퇴적층이 직접적인 침식작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약 2백만~1백만 년 전, 즉 신생대 제4기에 들어서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접 받지 못해 아쉬움만 가득

▲ 통리협곡을 가르며 흘러내려간 오십천 물줄기는 멀리 보이는 도계를 거쳐 동해로 빠져나간다. 오십천은 현재도 침식력을 더하며 하천 상류부로 깊은 계곡을 연장해가고 있다.

약 1억 년에 가까운 지질시대를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을 이룬 통리협곡 일대는 찾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아직까지 자연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때 묻지 않은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곳 통리협곡 일대의 자연사적 가치에 특별한 의미가 있음에도 조그만 주차장만 덩그마니 있을 뿐 이곳을 알리는 안내판이나 인공시설물 하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이곳은 안전 시설물 설치가 시급한 상태다. 지난 2002년 여름 이곳을 찾았을 때 폭포로 직접 내려가는 계단 하나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는 어렵게나마 발걸음을 내딛어 살펴볼 수 있었지만, 2003년 다시 찾았을 때는 사면붕괴로 곡이 더욱 깊이 패여 나가 아예 폭포 아래로 내려갈 수조차 없었다. 관광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적어도 계단과 밧줄 정도라도 설치하여 할 것이다.

아울러 이곳 통리협곡 일대가 갖는 지사학적 가치를 널리 알려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관광화 방안을 마련하고, 삼척시 환선굴과 인근 태백시의 고생대 화석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구문소와 연계한 자연학습 프로그램을 개발, 운용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볼만하다.



플러스 이야기 상자

 

사라질 운명에 처한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철도시스템


예로부터 험준한 산지는 교통의 장애가 되어왔다. 특히 지형적 제약이 컸던 철도교통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기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장애를 극복했다. 급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특수시설로, 차량 견인고리에 강철제 밧줄을 걸어 직접 끌어올리는 인클라인(incline) 방식, 선로를 갈 지(之)자 형으로 부설하여 열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여 오르는 스위치백(switch back) 방식, 그리고 뱀이 똬리를 틀 듯 선로를 나선형으로 우회시켜 뚫은 루프(loop)식 터널 등을 들 수 있다.

산지가 국토의 70%인 우리나라에도 전국 곳곳에 여러 특수 철도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선로를 Z자형으로 설치하여 지그재그 방식으로 열차가 톱질하듯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높은 산지를 올라가는 방식, 즉 스위치백 시스템을 설치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에서 영주를 거쳐 강릉으로 이어지는 영동선 가운데 태백과 삼척 사이의 흥전역(349m)과 나한정역(315m) 사이의 1.5km 구간이 그곳이다. 낮 시간에 이곳을 통과하는 경우 기차가 앞뒤로 오가기를 반복해 이곳을 처음 통과하는 승객들은 당황하기도 한다. 태백시 통리역(680m)과 삼척시 도계역(245m) 사이는 해발고도차가 435m나 되는 급경사이기에 기차가 한 번에 고개를 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한정역과 흥전역 사이의 구간을 기차가 진행방향을 앞뒤로 바꿔가며 오르는 것이다.

지난 1936년 영동선이 개통된 이래 반세기 이상 지역 주민과 관광객, 그리고 무연탄을 실어 날랐던 영동선 가운데 이곳 스위치백 구간도 얼마 안 있으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태백시의 동백산역에서 도계역까지 국내에서 가장 긴 16.3km의 루프식 터널을 뚫는 새로운 철로가 부설 중이기 때문이다.

철도청과 삼척시에서는 새로운 철로의 이설작업이 완성된 이후에도 숱한 세월 이곳을 오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때가 묻어 있는 이 스위치백 구간을 분리, 해체하지 않고 학생들의 역사 학습장과 관광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왜 오십천인가

 

오십천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 북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통리 미인폭포를 거쳐 태백에서 삼척으로 가는 국도 38번과 나란히 달리며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59.5km의 물줄기를 말한다. 첩첩산중을 흐르는 강원도의 모든 하천들이 다 그러하듯 이 오십천 또한 깊은 산중을 굽이쳐 돌아 흐르는 대표적인 감입곡류 하천이다. 사람들은 흔히 물길이 50번을 굽이돌아 흐르기 때문에, 또는 물가에 50개 마을이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자식 지명의 글자만 보고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오십천의 어원적 풀이는 새내다. 새내는 사이의 내, 즉 간천(間川)을 의미한다. 충청도 충주땅과 경상도 문경땅을 연결하는 문경새재(조령) 또한 두 지역 사이의 고개라는 뜻에서 일컫게 된 것으로 오십천의 새내와 같은 이치로 볼 수 있다. 이곳 강원도 지방에서는 새와 시의 발음구분이 확실치 않다. 골 사이의 내란 뜻의 싯내가 신내, 쉰내로 되었다가 쉰내의 쉰을 오십(五十)으로 보고 오십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한국땅이름학회 배우리 명예회장의 주장이다.

오십천은 통리를 기준으로 왼편의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매봉산~덕항산~지극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과, 오른편의 우포산~육백산~응봉산~사금산~백병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사이를 깊게 가르며 흘러가는 하천이라 한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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