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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과 부엌에서 책임감이 막중해지는 순간이 몇 번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고기를 구워야 할 때'다. 비싼 부위를 잘 못 굽기라도 하면, 사고다. 세 가지만 기억하자. 소금, 타이밍 그리고 여유다.
◇첫 번째, 하루 전에 소금 치기
식당보단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울 때 유념해야 하는 팁이다. 스테이크를 굽기 한 시간 전에 소금을 치자. 스테이크에 소금을 뿌린 후 약 3분 정도가 지나면 삼투압 작용(물이 저농도 용액에서 고농도로 이동하는 현상)으로 육즙이 스테이크에서 외부로 빠져나간다. 이때 고기를 구우면 고기를 익힐 때 써야 할 열에너지를 빠져나온 수분을 증발시키는데 낭비하게 된다. 고기를 굽는 팬의 온도는 떨어져 고기의 풍미를 높이는 마이야르 반응은 억제된다.
고기를 소금에 재운 뒤, 50분 이상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밖으로 빠져나온 육즙과 소금이 섞인 용액을 고기가 다시 흡수한다. 전부 흡수되고 난 후 구우면 소금간이 제대로 밴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울 수 있다. 소금에 재우는 시간은 길수록 좋다. 최소 시간이 50분이다. 요리과학자 켄지 로페즈 알트가 스테이크 6개를 10분 간격으로 소금을 뿌린 채 굽는 실험을 진행했고, 약 50분부터 다시 빠져나온 육즙이 흡수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룻밤 정도 소금에 재우는 게 가장 맛있다. 켄지 로페즈 알트는 "소금을 치고 밤새 둔 스테이크는 소금이 고기 속으로 침투하면서 고기 색이 짙어지고, 소금이 근육 조직을 느슨하게 해 굽고 나서도 오랜 시간 재우지 않은 스테이크보다 더 많은 수분 즉, 육즙을 머금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없을 때 차선책은 삼투압 작용이 나타나기 전에 소금을 뿌리자마자 고기를 굽는 것이다. 애매하게 3~30분 정도 스테이크에 소금을 재우는 게 가장 악수다.
◇두 번째, 고기 자주 뒤집기
고기를 구울 때 뒤집는 횟수는 맛이나 육즙의 양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주 뒤집든, 한 번만 뒤집듯 맛은 비슷하다. 고온에서 태우지만 않으면 된다. 다만, 고기를 자주 뒤집을수록 빨리 구울 수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햄버거 패티 등 종류와 상관없이 대부분 고기에 적용된다. '한 번만 뒤집고 두는 것보다, 자주 뒤집는 게 더 빨리 고기를 익힌다'는 사실은 식품 과학자 해럴드 맥기(Harold McGee)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하면서 제일 처음 알려졌다. 해럴드 맥기는 "컴퓨터 모델링으로 열전달 물리학을 학습하던 중 자주 뒤집을수록 열이 고기에 더 고르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실제로 조리해 봤고, 더 많이 뒤집을수록 열이 고기에 더 고르고 빠르게 전달돼 조리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고 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30초마다 뒤집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켄지 로페즈 알트가 이것도 실험했다. 스테이크를 ▲딱 한 번만 뒤집기 ▲매분 뒤집기 ▲30초마다 뒤집기 ▲15초마다 뒤집기, 네 가지 방법으로 중심 온도가 이상적인 미디엄레어 수준인 54도가 될 때까지 구웠다. 그 결과, 30초마다 뒤집은 스테이크가 네 개 중 가장 빨리 54도에 도달했다. 그다음은 15초마다, 1분마다, 단 한 번 뒤집은 스테이크 순으로 빨리 익었다. 30초마다 뒤집은 스테이크는 한 번 뒤집은 스테이크보다 약 2분 정도 더 빨리 익었다. 켄지 로페즈 알트는 "15초마다 뒤집은 스테이크는 팬과 접촉하고 있는 시간보다 공기에 노출된 시간이 너무 많아 30초마다 뒤집은 스테이크보다 더 오래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수학자도 확인했다. 미국 위스콘신대 수학과 장 뤽 티 폴트 교수팀은 열전달 매개변수를 고려해 햄버거 패티에 균일하게 열을 전달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계산했고, 한 번만 뒤집는 것보다 열 번 뒤집었을 때 요리 시간이 29% 더 빨라졌다.
한편, '고온에 고기 겉면을 지지는 시어링 작업을 하면 육즙이 더 잘 보존된다'는 말이 널리 퍼져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어링은 고기 표면의 방수 효과를 높이지 않는다.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스테이크를 구울 때 들리는 지글거리는 소리는 고기 안쪽 육즙이 빠져나오면서 뜨거운 팬에 닿아 수증기로 변하며 나는 소리로, 시어링으로 방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고 했다. 간혹 요리사가 고온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이유는 마이야르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 먹기 전 여유 부리기
스테이크 같은 덩어리 고기를 구운 후엔, 딱 10분만 그대로 두고 기다리자. 그간 마법처럼 육즙이 살아나,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만족감이 달라진다. 이렇게 기다리는걸 '레스팅'이라고 부르는데, 10분간 육즙이 고기 곳곳으로 균일하게 퍼진다. 기다리지 않고 자르면 육즙이 외부로 새어 나와 식감이 퍽퍽해진다. 고기를 구울 때 육즙은 비교적 온도가 낮은 중심부로 모인다. 레스팅 시간 동안 표면과 중심 온도 차가 감소하면서, 가운데 몰려있던 육즙이 표면으로 퍼진다. 동시에 가열로 수축했던 고기 조직이 느슨해지면서 육즙 이동이 원활해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스테이크 속 단백질 등이 육즙의 점도를 높인다. 이후엔 고기를 잘라도 육즙이 외부로 빠르게 유출되지 않는다.
레스팅 시간은 고기 두께와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소고기 스테이크는 5~7분 정도, 두꺼울 땐 10분 정도 레스팅 한다. 포일이나 기름종이로 감싸면 레스팅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소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 소시지 등 가공육도 레스팅 해서 먹으면 더 맛있다. 식은 고기가 싫다면, 레스팅 후 조리하면서 나온 기름을 한 번 더 데운 뒤 먹기 직전 고기 위에 부으면 된다.
한편, 고기를 자를 땐 근섬유와 수직 방향으로 잘라야 부드러운 식감을 구현할 수 있다. 고기는 긴 근섬유 여러 개가 평행하게 놓인 묶음으로 이뤄져 있는데, 고깃결대로 자르면 긴 근섬유를 통으로 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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