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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동네 뒷산 가는 데 고어텍스, 이유 있었네

白馬 2024. 4. 4. 06:09

 

취미에 높은 가치 두는 ‘하비슈머’ 소비 반영”

 

 

이재용 패딩으로 알려진 아크테릭스 ‘파이어비 파카’ 다운재킷. 사진 아크테릭스
 

아웃도어 패션에 대한 시선은 최근 10년 사이 급변했다. 과거에는 외국에서 고가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아시아인은 모두 한국인이라며 이런 자화상을 창피하다고 여기곤 했다. 이런 시선 탓에 등산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경향은 조금 줄어들었다가 현재 다시 ‘고프코어’란 이름으로 젊은 층에서도 널리 소비되는 패션이 된 상태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아크테릭스의 파이어비 AR 다운재킷을 입자 ‘이재용 패딩’이란 이름으로 품절난을 겪기도 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논쟁이 일고 있다. 고가의 고기능성 아웃도어 용품을 구매하는 것은 한국 등산 실정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한국 산을 오르는 데 그렇게 비싼 등산장비가 필요치 않다는 것. 특히 운동화나 크록스, 심지어 슬리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며 이런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물론 산전수전 다 겪은 산꾼이라면 그저 웃어넘길 논쟁이다. 왜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상적인 날씨와 잘 준비된 체력, 난이도가 낮은 산행코스라면 비싼 장비가 아니더라도 어떤 산도 충분히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악천후, 부족한 체력, 길고 험한 코스에선 고기능성 제품이 제 성능을 톡톡히 해낸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흥미로운 의견도 있다. 바로 이런 고가의 고기능성 등산복을 입고, 그 성능을 체감하기 어려운 낮은 산을 간다고 해도 가령 명품 옷이나 가방, 귀금속을 소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미에 돈을 쓰는 것일 뿐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취미 생활에 높은 가치를 두고 많은 돈을 들이는 최근의 소비 경향을 반영한 의견이다. 시장에선 이미 취미 생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하비슈머(취미hobby와 소비자consumer를 합한 신조어)’를 잡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청바지에 일상복을 입고 북한산을 오르는 외국인들. 서울도심등산관광센터에서 일괄 대여 받아 모두 등산화를 신고 있다. 

 
 

남 눈치 볼수록 비싼 것 산다

학계에선 이처럼 고가의 등산장비를 소비하려는 경향을 여러 측면으로 분석하고 있다. 먼저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진대건 석사의 ‘소비자의 체면민감성과 아웃도어웨어 구매행동 연구’에선 고가의 기능성 소재나 화려한 제품의 아웃도어웨어를 구매하는 것을 자기 과시적 소비 경향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는 20~50대 33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이들의 과시소비성향과 구매행동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체면에 민감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유명브랜드를 선호하고 유행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며, 실제로 구매빈도와 평균지출비용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체면민감성의 다양한 층위 중 창피의식성, 즉 타인으로부터 창피함이나 부끄러움 등에 민감한 소비자일수록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 지위, 명예, 신분을 인정받으려고 유명브랜드의, 유행하는 제품을, 큰 비용을 감수하고 구매했다.

산꾼들은 국내 아웃도어 기업들이 화려한 연예인들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지 말고 그 돈으로 기능성이나 디자인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지만 거듭 거금을 들여 톱스타를 전속 모델로 삼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분석에 입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성능 등산화’란 마케팅보다는 ‘아이돌 A 등산화’, ‘트로트가수 B 패딩’이 더 직관적이고, 잘 팔리고 있을 수도 있다.

 

적정한 과시소비는 만족감 높이기도

반면 과시소비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립대 이유진 연구교수의 ‘등산 참여자의 행복을 위한 과시적 여가소비의 역할: 여가만족의 조절효과’에 따르면 적정한 수준의 과시소비는 여가만족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낸다고 한다.

이 연구는 등산대회에 참가한 관록 있는 산꾼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의 과시소비 성향과 여가만족도, 행복감에 대해 각각 설문한 뒤 서로 어떤 관계를 갖는지 분석했다.

결론은 명료했다. 적정한 수준의 과시소비는 여가만족을 가장 이상적으로 증가시켰고, 과도한 수준의 과시소비는 만족감이 오르긴 하지만 적정수준의 과시소비를 했을 때 증가한 만큼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적당히 돈을 쓰면 만족감이 높고, 많이 돈을 써도 만족스럽지만 적당히 쓸 때만큼은 못미쳤다. 심지어 낮은 여가만족 수준을 가진 집단에서는 과시소비가 증가할수록 행복도가 감소했다.

서울대학교 김유겸 교수의 ‘등산객의 과시적 여가소비가 여가만족을 향상시키는가?’란 논문의 결론도 참고할 만하다. 여기선 과시소비에 따른 등산객들의 여가만족을 비교했는데 그 결과 과시소비 수준이 낮은 등산객들이 과시소비 수준이 높은 등산객들보다 더 만족감이 높았다. 

 

과시적 여가소비와 행복의 관계에서 여가만족의 조절효과 그래프. 낮은 여가만족 수준을 가진 집단에서는 과시소비가 증가할수록 행복도가 감소했다.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장비로 여길 수도

한 연구자는 결론부에서 ‘여가활동에서조차 타인의 부러운 시선과 성공과시라는 공허한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다만 여러 논의를 종합해 순화하자면 ‘한국인 특유의 타인에게 비춰지는 사회적 지위나 계층에 민감한 성향을 자제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좋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구체적으로는 한 번 큰 맘 먹고 좋은 것 한 두 개 정도 사고, 나머지는 적당히 타협한 제품을 쓰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들은 모두 설문을 통해 경향성을 밝혀낸 것일 뿐이므로 일반화해선 안 될 것이다. 고가의 기능성 등산복을 구매한 이들이 모두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필요하지 않은데 과시하려고 소비하는 것도 아니며, 만족감이 낮은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뿐이다. 

특히 악천후나 힘든 산행에서 고기능성 장비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경험을 가진 이들은 이런 장비들을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장비로 여긴다. 어떠한 소비 방식을 선택하든 그건 오롯이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이며,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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