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 겨울 백두대간 걷다] 백복령~보현사 연속 종주
동계 백두대간의 눈보라를 뚫고 나온 김영미 대장(왼쪽)과 김송희씨의 얼굴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눈이 엄청 온대. 백두대간 구간 종주 같이 갈래?”
2023년 1월, 아시아 여성 최초로 남극점까지 1,185km(도상 직선거리 1,130km)의 거리를 혼자서 도달한 영미 언니의 연락을 받았다. 언니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어느 여름 한강 둔치에서 달리기를 하던 우리 부부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언니가 알아봤다. 정확히는 부부가 아니라 내 남편 재민을 알아봤다. 대학산악부 시절에 언니를 네팔 등 여러 곳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언니가 남극 원정을 준비할 때 같은 동네다 보니 식량 포장을 도와주면서 인연을 더해갈 수 있게 됐다.
현재 남편은 장보고 과학기지 안전요원으로 남극에 있다. 남극에서 남편이 돌아오면 함께 알래스카 데날리(6,168m) 원정 등반을 갈 계획이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산악인 남편과 ‘잼쏭부부’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언니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어 5일간의 동계 백두대간 구간 종주 동행을 제안한 것이다. 트레킹이 아닌 설산 등반은 처음이라 어떻게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지 막막했다. 데날리 등반 준비의 첫걸음으로 너무 좋은 제안이었다. 등반을 위해 거금을 들여 사둔 나의 첫 삼중화가 몇 달째 신발장에 새것 그대로 장식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신발에게 미안했다. 새 신발에게 첫눈을 밟게 해줄 좋은 기회다.
“갈게요!”
5일이나 되는 동계 종주엔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눈과 추위라는 위험 요소도 있어 쉽지 않다. 이번에 언니가 제안한 일정은 지리산 종주처럼 대피소에서 자는 산행이 아닌, 모든 야영 장비를 넣은 배낭을 메고 아침저녁으로 텐트를 치고 걷고, 매일 이동하는 방식이다. 남극의 추위를 뚫고 50일의 여정을 혼자 해낸 영미 언니 같은 베테랑 산악인이야 익숙할지 몰라도 나 같은 초보에게는 상상도 못 할 스케일이다. 그렇지만 내겐 더 상상도 못 할 만큼 거대한 데날리가 기다리고 있다. 때문에 더더욱 도전해 보고 싶은 훈련이기도 했다. 분명 고난이 예상되긴 했지만 또 얼마나 즐거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씨부터 코스까지 정말 최고의 훈련기회가 내게 왔다.
닭목령에 도착한 김송희씨. 살포시 잘 앉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배낭 무게를 못 이겨 주저앉아버린 터라 웃음을 터뜨렸다.
5일의 종주를 위한 5켤레의 장갑
우리가 계획한 구간은 강원도의 백복령~삽당령~닭목령~대관령까지 약 45km에 달하는 백두대간이다. 이 구간은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고지대여서 온도가 낮고 눈이 많아 겨울 산행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코스다. 언니가 출발지와 코스, 5일치의 운행 계획을 줬고, 나는 장비 리스트에서부터 식량 계획, 구간 거리 파악 등 상세 계획을 세웠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걸어갈 구간을 파악했다. 혹시 모를 탈출을 위해 고개를 넘는 버스 시간, 봉우리 이름과 고도표, 지도까지 준비하니 이미 다녀온 듯 익숙했다.
그렇게 5일간의 동계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종주 준비는 크게 운행 계획, 장비, 식량 3가지로 나눴다. 운행과 장비 부분은 영미 언니가 담당했고, 나는 식량을 담당했다. 식량은 미리 집에서 테스트하며 맛을 평가하는 과정까지 진행했다. 그리고 각자 개인 의류 및 장비를 준비했는데 처음인 나를 위해 언니가 직접 장비를 체크해 줬다. 내가 가진 재킷이 방수 기능이 없어 언니가 가볍고 좋은 걸 챙겨줬다. 처음이니 준비부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야영 장비부터 6일간의 식량(예비식량 1일 추가)까지 챙겨야 할 짐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70L 배낭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필요한 것들만 최소한으로 추리고 골랐다.
2일차에 삽당령으로 가는 길. 이번 백두대간 중 유일하게 만났던 팀이 찍어준 사진. 소복소복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하얗게 나무에 붙어 그림 같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놀랐던 건 챙겨야 할 장갑의 개수였다. 운행용 장갑, 젖었을 때 갈아 낄 여분 장갑, 방수 오버 미튼 장갑, 우모 장갑, 텐트 정리 시에 쓸 막 장갑까지 이렇게 총 5켤레나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걸 과연 다 쓸까? 무거운데 줄여서 가져갈까?’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섯 켤레 모두 매일 잘 썼다.
눈이 많이 올 때는 장갑이 몇 시간만 지나도 젖게 되어 두세 켤레를 갈아 꼈다. 영하 20℃로 기온이 낮아지자 스틱에 들러붙은 눈이 금세 얼어붙었다. 강풍이 부는 날은 우모 장갑을 껴서 손을 따뜻하게 보호했다. 동계 장거리 산행의 기본은 손과 발을 젖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다. 언니는 히말라야 원정에서 정상에 갈 때 늘 새 장갑과 새 양말을 신는다고 했다. 손과 발은 우리 몸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지만, 심장에서는 가장 멀리 있다. 게다가 배낭의 무게로 혈액 순환이 잘 안 되어 더욱 동상에 노출되기 쉽다고 한다.
4일차, 닭목령에서 고루포기산을 향하다가 따스한 일출을 맞았다. 그동안 매일 눈이 와서 이날이 운행 중 첫 일출이다.
운행 5일차 선자령 근처에서 보현사로 향하는 길. 마지막 일출을 보며 걷고 있는 김송희씨.
드디어 새 신발이 첫눈을 밟다
“언니, 내일 아침은 몇 시에 출발하나요?”
“해 뜨기 전에 가야지.”
겨울은 해가 짧기 때문에 일몰(약 17:30) 한 시간 전 텐트 치기 좋은 장소가 나오면 거기에서 운행 종료하는 걸 기본으로 했다. 해 뜨기 전에 출발해도 하루 평균 운행은 8~9시간밖에 할 수 없다. 둘뿐이고 눈이 많이 내릴 땐 종일 러셀을 해야 해서 솔직히 하루에 얼마를 걸을 수 있을지 예측 불가였다.
루트에 대해 사전 공부를 많이 했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산행 일주일 전부터 매일 날씨를 체크 했다. 5일의 종주 일정 중 1~3일차 3일간 계속 눈이 내린단다.
백복령 출발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하얀 세상에 고립을 경고하는 눈 세상의 시작에 불과했다. 첫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삽당령을 넘어 3일차 닭목령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60cm가 훌쩍 넘는 눈이 내려 대설 경보 안내문자가 연속해서 울렸다. 최근 몇 년간 큰 눈이 내리지 않았는데 내가 눈雪 복이 참 많나보다. 새로 산 삼중화 또한 너무 따뜻했고, 편해서 물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둔탁한 신발인데도 아이젠 없이 눈길 걷기에 무척 편했다.
해가 뜨기 전 마지막 운행을 위해 텐트 밖으로 나오고 있는 김영미 대장.
닭목령 근처 설원의 텐트 속에서 3일차 밤을 보냈다.
눈이 많이 쌓여서일까? 삽당령~닭목령 구간에 있는 들미재 구간의 소나무 길은 특히 예술이었다. 밤사이 얼마나 눈이 많이 내렸는지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몇 번이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생가지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이 날은 우리보다 앞서간 한 팀 말고는 한 번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여기가 우리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마치 캐나다 로키산맥의 거대한 침엽수림을 걷고 있는 듯한 황홀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국립공원 구간이 아니라서 등산객이 많지 않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새 길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쳐 나가며 걸어야 했다. 하지만 무거운 배낭이 짓누르는 어깨의 고통, 며칠간 축적된 근육통,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이었다. 눈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하늘도, 나무도 온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다. 근데 이 하얀색이 하나도 질리지 않는다.
언니는 배낭을 멘 채 눈 위로 뒹굴었다. 멋지고 큰 아름드리나무가 많았다. 언니는 숲의 정령과 같은 나무가 가득한 고지대의 이 숲길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여름엔 이 숲이 어떤 풍광일지 궁금해졌다.
‘데날리에 다녀와 여름이 되면, 이번엔 내가 먼저 언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해야지!’
1 보현사를 향해 선자령 풍차길을 걷기 시작한 김송희씨.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쳐 나가고 있는 김영미 대장(둘째날 오후).
원래의 계획은 닭목령에서 고루포기산을 넘어 능경봉을 지나 대관령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닭목령의 아침은 영하 20℃로 기온이 고꾸라졌다. 바람도 거칠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눈이 내리던 날이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여러 이유로 고루포기산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닭목령에서 강릉을 거쳐 대관령으로 점프했다. 백두대간 길을 이어서 걷는 데에 나름의 큰 의미를 두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에 기회가 될 때 꼭 다시 이어서 걷고 싶다.
4일차 대관령에서 선자령을 향해 걸었다. 너무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본다. 하얀 설원이 더욱 눈부시다. 어제까지 내린 눈이 침엽수 위에 가득 얹혀 있는데 몇몇 나무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졌다. 대관령부터 선자령까지는 인기코스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르게 등산객이 많은 구간이라서 길도 잘 다져져 있고 이정표도 잘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구간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대관령 휴게소를 출발해서 10분 정도 올랐을까? 나무 없는 언덕에 올라서니 정신을 놓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일반 등산객은 그곳에서 대부분 발길을 돌려 다시 내려갔다.
폭설로 인해 텐트가 반쯤 눈속에 묻혀있다(3일차 아침).
“언니 남극에서 매일 이런 바람 맞으면서 썰매 끌었던 거예요?”
언니는 그저 웃었다. 다행히 숲으로 들어오니 바람도 잦아들고 햇볕은 따스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과 행동식을 먹으며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여유로운 휴식을 가졌다. 내일이 마지막이라 그런지 배낭도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기는데 끝나려니 조금 아쉽다.
“겨울 산에선 장갑을 벗지 마라.”
이번 산행에서 언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데날리는 북극점에서 3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만큼 극한의 날씨다. 겨울 백두대간보다 훨씬 춥다는 것이다. 그러니 맨손으로 물건을 만지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장갑을 낀 채 아이젠도 차고, 배낭도 싸고 모든 걸 능숙하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이 훈련을 준비할 때부터 강조해 온 사안이다.
운행 4일차 대관령을 걷는 두 사람을 햇빛이 비추고 있다.
처음 마주한 동계 백두대간의 설경이 펼쳐지다 보니 이런 풍경을 또 언제 보겠나 싶어서 틈틈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남겼다. 장갑을 끼고 있으니 휴대폰의 버튼 누르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선자령 풍차 길을 지날 때는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어 아쉽게도 사진을 거의 찍을 수 없었다.
바람을 맞으며 정신없이 걷다가 잠깐 뒤를 돌아보았는데 일출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장면은 꼭 남기고 싶은 마음에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영미 언니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들미재의 커다란 소나무 길을 걷고 있는 김영미 대장.
1,000m 고도의 하얀 능선에서
“장갑 벗지 마!”
첫날부터 누누이 강조해 온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영하 25℃의 강풍이 부는 최악의 순간에 한 장의 사진을 찍겠다고 장갑을 벗어버린 것이다. 데날리에서 이렇게 10초라도 맨손이 노출되면 동상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 언니의 반응은 당연했다. 만약 데날리였다면 내 손가락을 평생 쓰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데날리에선 무의식적으로 장갑을 벗는 불상사는 절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5일 동안 5켤레의 장갑과 함께 경험한 동계 종주는 겨울산 초보인 나에게 모든 면에서 선물 같은 여정이었다. 흐리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영하 25℃가 넘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함께 매일 매일 처음 경험하는 다른 매력의 겨울 산들을 경험했다.
마지막 날 선자령 풍차길에서 러셀하고 있는 김송희씨.
동계 종주를 계획하는 준비 과정부터 설산 운행과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배워갈 때마다 아마도 겨울 산을 하나도 모르면서 덜컥 알래스카의 거대한 산에 가고 싶다며 신발부터 산 내가 언니는 얼마나 걱정됐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않은가? 이번 동계 훈련을 계기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꾸준히 체력을 길러서 데날리를 씩씩하게 걷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분명 데날리를 오르고 있을 때도 백두대간 눈길을 걷기 시작한 순간처럼 낯설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아직 가슴 설레고 두근거린다. 1,000m 고도의 백두대간 하얀 능선을 걸으며 멀리 알래스카 데날리와의 첫 만남을 꿈꾼다.
★오늘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