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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침내 봄, 광양 여행 플랫폼 선정 '봄꽃 여행지

by 白馬 2024. 3. 7.

광양, 꽃구경하시라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반도의 허리께는 아직이지만 아래 남도 땅엔 이미 봄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화사한 봄과 봄꽃의 향기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던 몇 년의 안타까움 탓에 더욱 반갑고 소중해지는 계절. 그 경이로운 모습을 먼저 맞으러 남도 땅 광양으로 떠난다. 눈부신 섬진강과 봄의 전령 매화가 꽃대궐을 이룬 곳. 그곳에서 계절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가슴 가득 채울 요량이다.


마치 한 몸처럼 너무나도 익숙한 수식이었지만 왜 여태껏 그걸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 싶다. ‘광양’이란 도시에 대한 왜곡된 지식-거대한 공장 굴뚝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삭막한 공업도시-과 늘상 ‘광양’ 하면 떠올리는 ‘광양제철소’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봄빛 설렘에 기대어 다시 생각해본 광양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반짝이는 윤슬로 눈이 부신 섬진강이 어깨 곁으로 흐르고, 넉넉한 품성의 산과 들마다 매화꽃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소박하고 순한 고장. 그게 광양의 참모습이었다.

봄의 시작을 여는 광양 매화마을


광양(光陽). 이름마저 따사로운 광양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과 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시작되는 곳을 보통 섬진강이라 하니 강의 이쪽저쪽에 있는 광양과 하동 또한 봄이 처음 찾아오는 고장인 셈이다. 봄소식은 꽃이 먼저 전해준다. 섬진강변 하동의 봄은 벚꽃, 광양의 봄은 매화다. 같은 봄이지만 섬진강의 동쪽 하동에 벚꽃이 만개하기 전, 서쪽 광양에서 매화가 먼저 꽃망울을 틔운다. 섬진강의 온화한 봄기운이 백운산 기슭을 따라 흐르면 다압면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산과 들이 온통 새하얀 매화 세상이 된다.


매화마을로 향하는 길은 설렘으로 한껏 들뜬 분위기다.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매화축제니 그럴 만도 하다. 상춘객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웃음꽃이다. 축제장으로 진입하는 약 4㎞의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하지만 누구 하나 못마땅한 내색은 없다. 인산인해. 해마다 3월에만 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매화마을에는 이미 축제 기간에만 방문객 120만 명을 넘겨 역대 최대 인파라는 설명이다. 은은하게 흐르는 매화 향기를 따라 가니 매화마을에 닿는다. 눈이 가닿은 백운산 기슭은 이미 새하얀 꽃대궐이 펼쳐져 있고 살짝 고개를 돌리면 윤슬로 반짝이는 섬진강이 곱게 흘러간다. 굽이굽이 강물을 따라 다가온 봄이, 그리고 꽃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위로부터)청매실농원의 항아리, 홍매화, 매화마을 산책로. 매화마을 곁으로 섬진강이 흐른다(가장 하단).

 


매화마을은 약 10만 평의 매화 군락지가 있는 섬진, 도사, 소학정 마을을 하나로 칭해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에 매화가 피기 시작한 것은 90여 년 전의 일. 지금의 ‘청매실농원’을 일군 ‘매화 박사’ 홍쌍리 명인의 시아버지인 율산 김오천 선생이 이곳에 매화나무를 심으면서다. 시아버지가 터를 잡은 농장에 며느리가 매화나무 10만 그루를 심고 가꿔 청매실농원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 세월만 해도 50여 년이다. 매화마을의 중심이 된 청매실농원에는 수십 년 수령의 매화나무가 가득하다. 굵은 줄기와 가지가 구불구불 굽고 휜 고목이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눈부시게 하얀 백매화와 붉은 빛깔의 홍매화, 그리고 흰 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가 피어난다. 강 건너 하동 쪽에서 바라보는 매화마을은 하얗게 피어난 매화로 마치 흰 눈이 내린 것 같은 풍경이다. 하늘거리는 꽃물결에 실려온 매화 향기는 하동 땅까지 은은하게 퍼져간다. 광양 매화마을이 전해주는 봄의 선물이다.

 


청매실농원은 매화마을 산책의 백미. 나란히 놓인 2500여 개의 전통 항아리가 빚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50년 전에 만들어진 항아리만을 수집해 실제 매실과 된장, 고추장 등 직접 만든 장을 저장한다고 한다. 농원 안에는 광양 매실과 청매실농원의 역사, 매실 명인 홍쌍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화문화관도 있다. 매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있다. 농사를 지어 수확한 농작물과 손수 캔 산나물들을 늘어놓은 촌로들의 소박한 장터가 그곳이다. 수수한 물건을 두고 벌이는 서툰 흥정과 사이사이 들려오는 투박한 웃음소리가 정겹다.

(위로부터)청매실농원의 항아리, 홍매화, 매화마을 산책로. 매화마을 곁으로 섬진강이 흐른다(가장 하단).

 

 

섬진강의 끝 망덕포구와 배알도, 그리고 시인 윤동주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곡성과 구례를 거쳐 하동과 광양 사이로 흐르고 광양만에서 남해 바다와 만난다. 장장 212.3㎞를 달려온 섬진강이 마침내 바다와 만나는 곳이 망덕포구다. 망덕포구는 광양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과거 섬진강을 거슬러 구례와 곡성 등지로 가는 길목이었던 망덕포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리적 특성으로 풍부한 어장이 형성됐고, 특히 차지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전어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전어를 활어회로 처음 개발한 곳도 이곳이다. 그래서 직접 전어를 잡아 회로 파는 횟집들이 여럿 있고 ‘원조’ 전어회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망덕포구, 세련된 모양의 다리가 눈에 띈다. 작은 포구와 작은 섬을 이어주는 해상보도교는 의외로 웅장하고, 전어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는 주탑과 난간의 조형미도 빼어나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모티브를 따 ‘별 헤는 다리’라 명명했다.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건너편의 배알도다. 배알도는 광양에서 유일한, 높이 25m, 면적 0.8ha의 아주 작은 섬이다. ‘당신이 아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 매력은 충분하다. 이름도 특이하다. 배알도는 『대동여지도』 등에 사도(蛇島)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뱀섬’으로 불려오다 섬 건너편 망덕산 정상에 있다는 천자를 배알하는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뱀섬이 배암섬이 되고, 다시 배암도, 배알도로 변했다는 설도 있지만 전자에 더 설득력이 실려 전해진다. ‘별 헤는 다리’를 건너면 섬 전체가 곧 하나의 정원이기도 한 배알도다.

 

별 헤는 다리와 광양 유일의 섬, 배알도

 

빨간 글씨로 ‘배알도’라 쓴 섬의 시그니처 조형물이 먼저 맞는다. 배알도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랜드마크이자 인증샷 명소다. 배알도 정상의 ‘해운정’에 오르면 멀리 하동의 금오산과 사천의 와룡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은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물멍’을 하기에도, 또 주변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바다 한가운데 작은 점처럼 홀로 떠 있던 배알도는 망덕포구와 수변공원을 두 개의 다리로 연결하면서 감성 가득한 섬 정원이자 낭만적 여행 플랫폼으로 근사하게 변신했다. 정겹고 포근한 섬은 한국관광공사의 안심관광지로 선정되고, 한 방송사의 여행 다큐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광양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 여행지가 되고 있다.

망덕포구에는 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별 헤는 다리’ 인근 정병욱 가옥이다. 1925년에 지어진 이 집은 전 서울대 국문학과 정병욱 교수의 옛 가옥으로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지켜낸 곳이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시 19편을 묶어 발간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 이에 필사본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에게 각각 1부씩 나눠주고 자신이 1부를 지닌 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시집을 받은 정병욱은 고향 망덕포구로 와 자신의 모친에게 이를 잘 간수해 달라고 맡겼고, 당시 양조장을 했던 부모님은 술항아리에 시집을 넣어 마루 밑에 숨겨 보관했다.

 


윤동주는 광복이 되던 해 2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끝내 목숨을 잃게 된다. 1948년 1월에 발간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정병욱에게 맡겨 생가에 보관했던 육필 원고를 통해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 ‘별 헤는 밤’과 ‘서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정병욱 선생의 노력 덕분이었다.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된 정병욱 가옥 안에는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와 시집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윤동주 시 정원도 조성되어 있다.

도선국사 천년의 숨결이 흐르는 옥룡사 동백나무숲


봄에 피는 동백, 춘백(春栢). 매화마을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옥룡사 동백나무숲에 가면 붉디붉은, 탐스러운 동백꽃을 볼 수 있다. 수령 100년 이상 된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니 꽃이 만개하는 시기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옥룡사 동백나무숲은 남부지방 사찰 숲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아름다운 경관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됐다. 8세기 초 통일신라 때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옥룡사는 선승이자 풍수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 머물다 입적한 절이다. 이 절에 머물며 제자를 양성했던 그는 백운산의 지맥인 백계산 남쪽에 있는 절의 땅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었다. 옥룡사는 1878년 화재로 전소돼 남아 있지 않지만 1997년부터 시작된 조사를 통해 건물 터와 비석 조각, 기와와 석관 등 유물을 발굴했고, 도선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관도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한순간 일제히 피어나는 매화와 달리 꽃망울이 대부분인 상태에서 활짝 핀 꽃송이도 있고, 어느새 땅에 떨어진 꽃송이도 있다. 옥룡사 절터로 오르는 길, 누군가 떨어진 동백꽃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활짝 핀 동백꽃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그렇게 떨어진 꽃조차도 예쁜 동백이다. 동백꽃은 모두 세 번을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 번, 툭 하고 떨어져 땅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사람의 가슴 속에서 절절하게 다시 한 번. 옥룡사 동백나무숲의 동백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3월말에서 4월초. 꽃이 가장 화려하게 필 것으로 보이는 3월25일과 26일, 동백축제도 펼쳐진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도 한동안은 동백꽃을 더 볼 수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모두 세 번을 핀다는 바로 그 동백이니 말이다.

 

(위)국내 최대 크기의 운암사 약사여래입상 (아래)동백꽃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옥룡사 절터가 나온다. 발굴된 축대와 이런저런 사찰의 흔적들, 발굴조사 내용을 소개하는 표지판을 보면서 천 년의 시간을 헤아려보는 것도 심오한 경험이다. 천천히 산책을 하거나 빈터 의자에 앉아 쉬어가도 좋다. 사라진 절이 아쉽다면 인근에 있는 사찰 운암사를 들러보면 된다. 아무 것도 없는 산길 한 편에 거대하게 서있는 불상을 보고 “저게 뭐지?”하며 놀랄 수도 있다. 높이가 40m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의 약사여래입상으로 알려진 황금불상이다. 중생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켜 준다는 바로 그 약사여래불이다. 사찰은 그리 크지 않지만 소박한 느낌의 도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동백나무숲길

 

 

광양의 맛


광양여행에서 놀라게 되는 건 광양을 대표하는 별미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 매실이나 망덕포구의 전어는 그 역사가 있으니 그렇다 치고, 하동의 별미로만 알았던 섬진강 재첩과 벚꽃 피는 시기에만 나온다는 벚굴을 광양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경칩을 전후해 채취하는 백운산고로쇠 수액과 보드랍고 폭신한 기정떡, 광양의 밀수감과 대봉감을 깎아 만든 곶감도 명불허전의 맛이다. 광양을 여행한다면 이제 광양의 대표적 음식 브랜드가 되다시피 한 광양 불고기만큼은 꼭 먹어보길 바란다. 언양 불고기, 서울 불고기와 더불어 전국 3대 불고기인 광양 불고기는 청동화로에 참숯을 피우고 얇게 저며 양념한 불고기를 석쇠에 구워내는데 예부터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으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마로’는 광양의 옛 지명. 광양읍 서천변에 있는 ‘광양불고기 특화거리’에 가면 전통 광양 불고기를 맛볼 수 있다.

 

(위)광양불고기 (아래)벚굴

 

 


알고가면 좋을 광양여행 Tip


승용차로 남도 여행을 계획하는 건 무모하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장거리 운전이 주는 피로도 만만치 않다. 전라남도로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KTX를 이용해보길 권한다. 기차를 타고 광주, 나주, 목포, 여수, 순천 등 KTX 역에 내리면 유명 관광지가 대개 1시간 거리에 있다. 현지에서 여행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려면 ‘쏘카’나 ‘그린카’ 같은 공유차량을 이용하면 된다. 승용차를 가지고 간 것처럼 편하고 가성비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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