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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독자가 알려주는 명산 울업산] 청평호를 그러안은 산세…낮지만 짧고 굵은 반나절 산행지

by 白馬 2024. 2. 15.
 

신선촌 입구~울업산~청심빌리지 4.3km+신선봉둘레길 1.6km

 

 

제2전망대를 지나 능선에서 바라본 북한강.

 
 

“저도 처음 등산해 보려고 하는데 산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

코로나 이후 MZ세대 사이에서 등산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야외활동을 그다지 해본 적 없는 사람도 운동 삼아 등산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시작한 사람이 많았던 만큼 한번 해보자마자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너무 힘들고 재미없는 산행을 했다거나, 멋모르고 큰 산에 덥석 도전했다가 조난에 가까운 위기를 겪으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등산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첫 산행지의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너무 길거나 어려운 코스는 당연히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쉬우면 시시하다. 성취감을 위해선 어느 정도 땀방울을 흘려야 하는 코스가 좋다. 그리고 산행이 주는 여러 기쁨들을 두루 느낄 수 있으면 좋다. 깊고 빽빽한 잣나무 숲, 시원하고 장쾌한 조망 등이 있다.

서울 근교인 경기도 가평 울업산 신선봉(381m)은 이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산이다. 대표적인 들날머리에 버스정류장이 들어서 있고, 주차도 용이하다. 울업산을 제보해 준 월간산 독자 신선자씨가 이렇게 정리했다.

“등산 초보자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산입니다. 짧은 시간에도 웬만한 높은 산처럼 멋진 뷰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가장 좋은 건 이른 봄에 연둣빛 새싹이 야금야금 움틀 때지만 사계절 모두 계절감 가득한 청평호 조망이 아름다워요. 

 

주의할 건 높이만 보면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게 정상을 내어주지는 않는 산이란 점입니다. 오르막이 가파르고 능선도 꽤 쉽지 않아요. 까칠한 매력까지 겸비한 거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점도 좋습니다.”

 

들머리부터 정상까지 급경사의 연속이다.

 

초입부터 달리는 멧돼지에 화들짝

잠실역 롯데월드 정류장에서 7001번 버스를 탄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설악톨게이트를 빠져나간다. 울업마을 정류장에 내리자 바로 편의점이 있어 어렵지 않게 행동식과 식수도 보충했다. 아웃도어 마니아 윤용만씨, 김하리씨와 합류했다.

도로를 따라 신선촌이라고 적힌 거대한 비석 앞에 섰다. 비석 바로 옆엔 신선봉까지 400m 남았다는 커다란 이정표가 붙어 있다. 물론 한참 잘못된 숫자다. 1km는 더 가야 한다. 

 

가평문화원에 따르면 선촌리는 신선이 놀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울업산 주봉이 신선봉인 것도 같은 설화에 기인한다. 신선들이 내려와 정상에서 장기를 뒀단다.

 

울업산 유래도 흥미롭다. 서울 북한산과 울업산이 백두산을 출발해 조선의 도읍지를 찾다가 북한산이 먼저 한양을 발견해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울업산 신선봉이 울며 돌아서서 가다가 현재의 자리를 살펴보니 이곳도 도읍이 될 만한 곳이라 눌러 앉았다.

 

마을길을 벗어나 산으로 접어들면 바로 울창한 잣나무숲을 만날 수 있다.

 
 

“산행 후기를 봤는데 정말 빨리 끝날 것 같은데요? 반나절도 안 걸릴 것 같아요.”

비석 앞에서 마지막으로 지도를 보며 점검한다. 도상거리만 봐선 젊은 패기로 조금 밀어붙이면 한 시간에도 끝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낮아도 산은 산. 게다가 겨울산이다. 또 해발고도 200~300m 등고선이 섬뜩할 만큼 바짝 붙어 있는 모양새인 것도 심상치 않았다.

비석 옆으로 난 마을길로 들어선 뒤 처음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그대로 직진했으면 막힌 길이다. 건물 사이로 난 길은 고즈넉하다. 가끔씩 집을 지키는 강아지 몇 마리가 짖다가 그만둔다. 또 바로 만나는 갈림길 오른쪽을 보면 신선봉 방면 1.17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는 정상 남쪽으로 돌아서 가는 길이다. 동서로 뻗은 산세를 오롯이 느끼고자 이 길을 택하지 않고 그대로 길을 따라 오른다.

“어? 길이 없는데요?”

길 끝 마지막 건물에 이르자 길이 사라진다. 지도는 물론 미리 머릿속에 넣어뒀던 산행 후기와도 사뭇 다른 모습이다. 주변 건물들은 신축된 지 얼마 안 된 티가 폴폴 났다. 줄지어선 건물 끝에 들어선 차폐막 사이로 우회로가 있나 고개를 빠끔 내밀어보는데 이쪽도 길은 아닌 듯했다. 다시 돌아와 마지막 건물 옆 소나무 밑을 보니 눈 위로 희미하게 옛 발자국이 보인다. 이를 따르니 농막이 나오고 그 뒤 나무 사이로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쪽이 맞는 길이다.

“조금 무서운데요. 이정표에 여기서부터 신선봉 정상까지 500m 남았다고 돼 있잖아요. 그런데 지도를 보면 해발고도를 230m를 올려야 되고요. 그렇다면 대체 각도가….”

 

급경사 오르막은 힘들지만 계단과 안전로프가 설치돼 있어 위험하진 않다.

 

일단 걱정은 접어두고 잣나무 숲을 즐기기로 한다. 늘씬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이 빼어나다. 나무 사이에 뚜렷하지 않은 길을 따르자 철봉과 밧줄이 길게 이어지는 계단이 즉각 나타난다.

“이게 엄청 힘들고 어렵다 까지는 아닌데 뭔가 체력이 쭉쭉 깎이는 느낌이네요.”

김하리씨는 금방 진이 빠졌다. 계단 한 단 한 단의 높이가 높은 탓이다. 그는 원래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자주 하는데도 이렇게 묵고 까다로운 산길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순간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밑 10m 사면을 커다란 멧돼지가 횡으로 질주한다. 혹시 우리 쪽으로 올까 바짝 긴장한 채 쳐다보는데 다행히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산에서 멧돼지 처음 봤어요! 큰 산에서만 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주변에 도로도 많고 마을도 많은 곳에서 볼 줄은 몰랐어요. 작지만 깊은 산인가 봐요.”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바라본 가평대교. 고꾸라지면 닿을 것 같은 고도감이 든다.

 

명품소나무와 기암절벽, 북한강의 조화

멧돼지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어서 급경사를 오르느라 심장이 연신 쿵쾅거린 탓이다. 곳곳에 남은 얼음과 잔설도 까다롭다. 나무에 붙은 위치 표시 번호가 하나씩 올라가는 걸 위로로 삼는다.

한참을 모두 말을 잃고 끙끙거리자 점차 조망이 트인다. 두터운 나뭇가지 사이로 가평대교의 모습도 얼핏 보인다. 정상을 목전에 두자 경사가 급격히 가라앉으며 시야가 뻥 뚫린다. 쓰러지면 그대로 북한강과 가평대교 위에 고꾸라질 것 같은 고도감이 아득하다. 조금만 더 미세먼지가 적었더라면 호명산부터 가평의 온갖 명산들이 그려낸 산그리메도 완벽했을 터다.

이 광경을 접하니 사전조사 겸 가평의 한 산꾼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2000년대 중후반가평군은 한 주에 하나씩 오르란 뜻에서 ‘가평청정명산 52선’을 발표했었다고 한다. 여기에 울업산은 없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다시 가평 53명산이 정립됐는데 이때 울업산이 ‘신선봉’이란 이름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53명산을 보면 화악산을 포함해 1,000m 내외의 명성 높은 산이 즐비한데 어떻게 고작 381m의 낮은 산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있는데 직접 올라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그의 전언이 비로소 이해됐다.

 

제2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강.

 

“여기 장기판도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큰 판을 산 위에 올렸을까요?”

신선이 머물며 장기를 뒀었다는 설화에 충실하게 장기판이 있었다. 누군가 가져다둔 장기 말은 비바람을 오래 맞은 탓인지 잉크가 다 빠졌고, 왕을 포함해 몇 개는 사라져 있다. 사뭇 진지한 대국을 이어가다가 결국 알까기 대전으로 휴식을 끝내고 마저 능선을 잇는다.

능선은 꾸준하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며 출렁거려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가끔씩 만나는 기암절벽 위에 솟은 명품소나무와 조망 터 하나하나가 환상적인 사진 포인트다. 배경은 늘 같은 북한강이지만 프레임이 조금씩 달라지자 느낌도 달라진다.

700m 정도 진행하니 제2전망대가 나온다. 데크에 올라서자 휘돌아나가는 북한강과 가평대교가 장애물 없이 한눈에 확 들어온다. 듬성듬성 얼어붙은 북한강이 평화롭다.

“이게 막상 걸으면 어렵진 않은데 경사가 빠듯한 오르막내리막이 계속되니깐 마음은 꺾이는데 몸은 괜찮네요. 독자분이 쉽지만 쉽지 않은 산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어요.”

 

정상에는 신선이 내려와 장기를 뒀다는 설화에 맞춰 장기판이 설치돼 있다.

 

능선이 끝나자 내리막이 쭉쭉 이어진다. 강물이 살포시 가까워질 무렵 강쪽으로 돌출된 제1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서서 강을 바라보려고 하는데 반대편 산기슭에 시선을 확 뺏긴다. 마치 성처럼 거대한 장벽 안에 궁궐 같은 건물들이 산기슭보다 바로 앞 강변에 연달아 들어서 있다. 호기심이 동해 서둘러 지도 앱을 켜고 찾아보니 이 일대가 통일교 성지라고 한다. 그 엄청난 규모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곳도 도읍이 될 만한 곳이라 여겨 눌러 앉았다는 울업산 유래가 생각났다.

마저 뉴스를 찾아보니 가평군청에 따르면 이곳에 2027년까지 산악 익스트림 관광지가 추가로 조성된다고 한다. 2026년부터 등산로 정비, 산악체험시설, 전망대, 로프웨이, 짚와이어 등 600억 원짜리 시설이 만들어진다. 천연의 신선봉을 즐기고 싶다면 지금,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완전히 강변으로 내려서자 2021년에 조성된 신선봉 둘레길이 나온다. 1.6km 정도로 짧으며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다시 제1전망대로 연결된다. 버스 시간을 맞출 겸 잠시 돌아본다. 험악한 바위를 따라 쭉 데크가 이어진다. 북한강이 코앞이다.

산행을 마치고 난 뒤에도 태양은 중천이다. 꽤 힘도 쏟았고 예쁜 조망도 즐겼는데 아직 날이 한참 남아 있으니 하루를 남들보다 더 길게 이득을 보고 사는 느낌이다. 밀도 높게 등산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산행지다. 

 

1.6km의 신선봉둘레길은 북한강을 따라 데크로 조성돼 있다.


 

산행길잡이

작은 산이며 등산로도 분명하다. 헷갈리는 건 신선촌 입구 방면 들머리 정도다. 마을길 가장 끝까지 올라 마지막 집을 정면으로 봤을 때 왼쪽 소나무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르면 농막 뒤로 이정표가 보인다. 

자차를 이용한다면 주차가 용이한 청심빌리지 주차장에서 원점회귀 산행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양쪽 어디를 들날머리로 잡아도 이상하지 않다. 산행 후 바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라면 정류장과 등산로가 가까운 청심빌리지를, 식사까지 하려면 식당이 몇 있는 신선촌 입구를 각각 날머리로 잡으면 된다.

 

 

교통

잠실역 롯데월드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7001번 버스가 알파이자 오메가다. 신선촌 입구 방면에는 울업마을 정류장, 청심빌리지 방면에는 청심빌리지 정류장에서 각각 상하차할 수 있다. 다만 배차간격이 평균 1시간으로 매우 길어 시간표를 숙지해 두면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최신 기준으로 잠실에서 06:55, 07:45, 08:55, 10:00, 11:00, 11:55, 13:10, 14:15, 15:05, 16:20, 17:15, 18:15, 19:10, 20:25, 21:25, 22:20, 23:20, 00:45, 01:15에 출발한다. 

반대로 잠실로 돌아오는 버스는 시종점인 효정매그놀리아국제병원에서 05:30, 06:20, 07:30, 08:40, 09:35, 10:30, 11:50, 12:50, 13:40, 15:00, 15:50, 16:50, 17:50, 19:00, 20:00, 21:00, 21:55, 23:20, 23:55에 출발하며 청심빌리지 정류장에서는 약 5~10분 뒤에 탈 수 있다.

 

맛집

날머리로 잡은 청심빌리지 방면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지만 들머리인 선촌리 일대에 식당이 몇 곳 있다. 설악풍천장어직판장(031-584-7673)은 실한 장어구이(시가, 상차림비 4,000원)로 조금씩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는 식당이다. 

신천교차로까지 나오면 선택지가 조금 더 많아진다. 설악막국수 춘천닭갈비 본점(0507-1303-9231)에선 감칠맛 나는 숯불닭갈비를 먹기 편하게 직접 구워 준다. 닭갈비 1만4,000원, 물/비빔막국수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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