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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그해 가을 세석의 구절초는 그 사람을 잊을 만큼 예뻤다

by 白馬 2023. 11. 11.

검은별’의 지리산 이야기      세석고원의 추억

 

 

뭉텅뭉텅 피어있는 촛대봉의 구절초

 

족저근막염이란다. 아니, 다른 곳에선 발목터널증후군이라고 했다. 통증의학과에서 처방해 준 소염진통제를 2주간 먹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한방병원에서 맞은 침도 소용없었다. 치료비에 비해 경과는 좋지 않았다. 

각 병원에서 알려준 병명은 각각 달랐지만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무리하지 말라”는 주의는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이달에 예정된 지리산 산행은 쉬어가기로 한다. 하여 이 글은 다소 지루할 수도, 혹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재미를 줄 수도 있다.

 

지리산이 맺어준 인연

나이가 들면 아치가 무너진다는 게 통증의학과 담당의의 설명이었다. 후천성 평발이라고 했다. 무릎이 아픈 건 25년 전부터였다. 그때는 치료받아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아니, 질병에 대한 무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될 때까지 병원에 안 왔지?” 

건강 다큐를 볼 때마다 의아했다. 그런데 그게 꼭 TV 속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다 작은 병을 크게 키울 때가 있다. 어쨌든 일단 쉬면서 유튜브에서 배운 스트레칭과 족욕도 하고, 실내화와 운동화는 쿠션이 좋은 걸로 잽싸게 바꾼다.

 

10월에 만날 수 있는 거림골 단풍.

 

가끔 지리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날의 사진을 꺼내 볼 때가 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날씬했고, 예뻤고, 건강했다. 나름 잘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아프고 체중이 늘 때마다 20대의 내가, 50대의 나를 울리곤 한다. 그 시절 나는 제대로 된 밥벌이가 없었다. 서울의 반지하에서 자취를 했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겨우겨우 버텼다. 돈이 모이면 지리산에 갔고, 한 번 가면 이 대피소 저 대피소를 오가며 며칠씩 묵곤 했다. 일단 하산했다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오른 적도 있다. 차비가 아까워서 온 김에 ‘뽕’을 뽑고 싶었다.

 

처음으로 남자를 사귈 수 있던 것도 지리산 덕분이었다. 그해 겨울, 대원사 코스에서 한 남자를 스쳐 보냈다. 나는 내려갔고 그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덕산장여관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거림을 통해 다시 세석(1,570m)으로 향했다. 새하얀 눈꽃이 두툼하게 쌓인 촛대봉(1,703m)에서 나는 전날 스친 그 사람을 보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그저 ‘저 사람 어제 보고 또 보네’라고 속으로 웃으며 봉우리를 내려섰었다.

그 사람을 다시 본 건 6개월이 지난 여름 임걸령에서였다. 우리는 그렇게 지리산에서 세 번 만났다. 매번 코스가 달라 인사만 하고 헤어졌지만,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아는 사람을 통해 서로에게 연락이 닿았다. 다소 민망한 스물일곱,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거림골 옆엔 비법정 탐방로로 묶인 도장골과 음양수골이 있다.

 

조선시대의 세석과 지금의 세석

혼자였던 내가 둘이 되어 처음 간 곳이 지리산 세석이었다. 지금처럼 가을이어서 세석 일대엔 구절초가 만개해 있었다. 별들이 까만 하늘을 무수히 수놓았던 1998년 9월, 나는 지금도 그 사람보다 눈물이 날 만큼 어여뻤던 그때의 세석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헤어졌지만 지리산은 26년째 내 곁에 있으니까. 어쨌든 그와 헤어진 후론 인연이란 말을 믿지 않기로 했고, 설령 그런 게 있다 해도 그 기간이 길거나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지리산 대피소 중에서 정규 등산로가 가장 많은 곳은 세석이다. 산청 거림골이 제일 가깝고, 함양 백무동 한신계곡은 막판 1km가 마의 구간으로 꼽힌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하동 대성골은 딱히 장점이 없다. 얼마 전엔 세석 직원들이 대피를 준비할 만큼 큰 산불이 나기도 했었다. 다행히 비가 내려 최악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지리산신이 도왔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청학동이나 쌍계사에서 시작하는 남부능선 코스는 혼자 오르지 않는 게 좋다. 길기도 하지만 인적도 드물다.

 

거림골에는 북해도교를 비롯해 몇 개의 다리가 있다.

 

세석은 늦봄 철쭉과 초가을 구절초로 유명한데, 철쭉과 관련된 전설은 재미 삼아 알아둬도 좋다. 멀고도 먼 옛날 ‘남녘의 개마고원’으로 불리는 세석엔 ‘호야’라는 남자와 ‘연진’이라는 여자가 살았다. 둘은 금실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지만 자식이 없는 게 늘 마음에 한이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곰이 “음양수 물을 마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고, 연진은 단숨에 샘터로 달려가 신비의 물을 마셨다. 

 

하지만 산신령은 천기누설의 죄를 물어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허락 없이 음양수를 탐한 연진에겐 평생 잔돌고원에서 철쭉을 가꾸라는 벌을 내린다. 연진의 손끝에서 나온 피 때문에 세석의 철쭉이 붉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곳의 꽃은 분홍색에 가깝다.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가공되지만 직접 다녀와 쓴 기록은 그 출발선부터 다르다. 물론 기록이란 것도 가끔은 부풀려지거나 왜곡되지만 말이다. 하여 스마트폰과 이정표가 없던 수백 년 전 기록엔 아주 약간의 허점이 있을 수도 있다.

 

세석에서 남부능선으로 하산하며 바라본 풍경.

 

촛대봉에서 맞이하는 세석의 일출

김종직(1431~1492)은 550여 년 전인 1472년 음력 8월, 추석 즈음에 세석을 지났다. 그는 세석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습한 평원沮洳原은 산등성이에 있었고, 평평하고 광활한 땅이 5~6리쯤 펼쳐져 있었다. 숲이 무성히 우거지고 샘물이 주위에 흘러 농사를 지으며 살 만하였다. 물가의 초막 두어 칸을 살펴보니, 울타리를 둘러쳤고 흙으로 만든 구들이 있었다. 이 집은 바로 내상에서 매를 잡는 초막이었다.” 

그가 쓴 <유두류록>에는 세석 일대에 설치된 매 잡는 도구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적혀 있다. 매를 나라에 바치기 위한 목적 이외에도 단순히 놀잇감으로 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난 20여 년간 지리산에서 매를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산행 중에 더 많이 만난 건 언제나 까마귀였다. 매는 보기 귀해졌지만 세석에는 여전히 물이 많다. 35분 거리에 연진이 마셨다는 음양수가 있고, 촛대봉 너머엔 청학연못으로 불리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거림골, 한신계곡, 대성골, 비법정인 도장골까지 세석으로 이어진 등산로 대부분은 넉넉한 수량을 품었다.

 

세석에서 하룻밤 잤다면 촛대봉이나 일출봉에서 해맞이를 하는 게 좋다.

 

증축 중인 노고단대피소가 어떠한 모습으로 재건될지 모르겠지만 세석대피소는 지리산에 있는 8개 대피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또 세석대피소는 일출을 보기에도 좋다. 모두가 천왕봉 일출을 고대하며 힘들게 새벽길을 오를 때, 세석대피소에서는 20분만 걸으면 촛대봉에서 여유 있게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촛대봉 일출이 매번 성공을 보장하진 않지만 이곳 일출이 별로라면 천왕봉 일출도 별로인 건 똑같다. 나는 아직도 2000년 겨울에 보았던 촛대봉 일출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고갯마루에 걸려 있던 산자락들이 숨겨둔 새벽 풍경을 원 없이 펼쳐 놓았던 그날 아침. 

“너무 예쁘지 않니?” 

옆에 선 동갑내기에게 물었었다. 

“도봉산에서 보는 거랑 똑같네, 뭐.” 

그 애는 무뚝뚝하게 쑥 내뱉었다. 

“맞아, 도봉산에서 보는 거랑 똑같다, 진짜.” 

나는 그저 실없이 웃었었다. 

“해가 어디서 뜨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바라보는 쪽에서.”

“어, 정말 춥다.” 

“천왕봉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참자.” 

 

 

농담 같은 말들이 잦아들 때쯤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다. 시뻘건 덩어리가 지리산의 첫 아침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세석에서 남부능선으로 하산하려면 샘터 옆을 지나야 한다. 

“전에 남자친구랑 왔을 때 여기서 물마시던 기억난다. 그땐 그 산행이 제일 재밌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동갑내기 일행이 묻는다. 

“왜?” 

“만약 그때가 제일 재밌었으면 그 다음부턴 재미없어야 되니까.” 

“너는 남자친구보다 지리산을 더 좋아했구나?” 

가슴이 뜨끔했었다. 그 산행 마지막 후기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했던 건, 지리산…”이라고.

올가을에도 여전히 세석은 구절초로 가득할 것이다. 25년 전 내가 처음으로 사귀어 본 남자와 처음으로 입맞춤했던 그 가을 산, 그때 밤하늘을 흐르던 별은 여전하겠지만 산기슭 곳곳에 뭉텅뭉텅 피었던 구절초는 죽고 없을 터. 아니, 구절초가 진 자리에 다시 또 꽃이 피었으니 시간은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지리산에 묻어둔 추억은 무슨 꽃으로 피어날는지. 

 

 

산행길잡이

세석을 오르는 대표적인 등산로는 산청 거림골(6km), 함양 백무동 한신계곡(6.5km), 하동 대성골(9.1km)과 남부능선 코스인데 남부능선은 들머리에 따라 거리가 또 달라진다. 청학동에서 출발하면 10km, 쌍계사에서 출발하면 16.6km이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해야 하는 거림골은 여느 코스

에 비해 난이도는 낮지만 북해도교를 지나면서부터 잠시 경사가 급해지다 잦아진다. 등산로가 대피소 샘터 바로 곁을 지나는 것도 거림 코스의 장점이다. 보통 3시간쯤 걸리지만 배낭 무게나 평소 체력에 따라 가감된다. 거림골 좌우로 길이 더 있지만 정규 등산로는 아니다. 반달곰이 포화 상태인 데다 최근 염소 축사 급습 사건도 있었으므로 안전을 위해서라도 샛길 통행은 안 하는 게 좋다.

 

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는 원지행 버스를 타고, 부산이나 진주에서는 산청군 시천면(덕산)까지 온 다음 거림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덕산발 거림행은 하루 5회뿐이므로 시간을 줄이려면 택시를 타는 게 좋다. 요금은 2만2,000원 남짓. 동서울터미널과 백무동을 오가는 버스는 하루 8회 있다. 특히 서울에서 내려오는 심야버스(23:59)가 있어 새벽 일찍 산행하기에 수월하다. 문의 055-963-3745.

 

맛집(지역번호 055)

거림 기점인 덕산에는 식당과 제과점, 하나로마트와 편의점 등 먹거리를 구할 곳이 많다. 지난번 소개한 것처럼 소문난돼지국밥(974-1616)은 깔끔한 국물 맛과 깍두기로 유명하다. 도로변 촌국수(972-9624)는 콩국수 7,000원, 일반 국수 6,000원이다. 덕산기사식당(973-7463)은 8,000원으로 부담 없는 집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거림에는 솔바구산장(972-1173), 지리산 거림가든(972-1187) 등 닭요리 맛집이 많아 하산 후 든든히 먹고 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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