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에 빠졌어요] 캐나다 로빈

진달래를 보며 산행했던 거제 대금산.
“거제도의 산들은 바다와 가까워요. 그래서 어느 곳에 올라도 넓은 바다와 조각달처럼 떠 있는 섬들을 볼 수 있죠. 한마디로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기분이에요. 이른 새벽 다도해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신 적 있나요? 육지의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굉장한 풍경이에요!”
거제에 살고 있는 로빈씨. 그녀는 ‘Hike Geoje’ 사이트의 운영자다. 그녀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한국산에 빠졌어요’ 인터뷰 대상자를 찾던 중, 나는 그녀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우연히 만난 사이트에는 거제도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여러 산행 정보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모두 영어였다. 나는 이 사이트의 운영자가 궁금했다. 그녀는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 한국산을 소개하고 있는 걸까?

로빈씨는 고흥의 팔영산을 가장 좋아한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한국
로빈씨는 캐나다에서 왔다. 그녀는 동부의 케이프 브레튼 섬 출신으로, 한국에 오기 전 이곳에서 학생들의 학업에 도움을 주는 학생 성공 코치로 일했고, 캐나다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 영어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국행을 선언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저는 모험을 하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죠.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마침 한국에서 2년 동안 영어강사로 일하던 친구가 한국을 추천해 줬어요. 그녀의 이야기 속 한국의 문화와 친절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처음 한국에 발을 디딘 2007년, 영어강사 일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정보도 많이 없었다. 그때 마침 일하게 된 아카데미의 관리자가 경남 마산의 한 일자리를 제안했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마산을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한국산을 만났다. 창원에 있는 무학산(761.4m)이었다.
“무학산은 경치도 좋았지만, 재밌는 것들이 많았어요. 아이스크림과 라면, 그리고 시원한 맥주를 파는 아저씨가 계셨죠. 산에서 먹는 간식은 정말 꿀맛이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죠. 무학산을 기점으로 서서히 한국산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녀의 첫 번째 한국 생활은 길지 않았다. 딱 1년이었다.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4년을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생활이 그리워졌다. 결국 그녀는 두 번째 한국행을 선언했다. 2012년, 그녀는 남편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로 한국에 오고서는 대구, 인천, 마산 등 여러 도시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2015년 처음 거제살이를 시작했는데, 거제도는 자연이 아름다웠어요. 남편의 일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년 동안 인천에 살기도 했지만, 우리는 다시 거제로 돌아왔어요. 그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차를 타고 더 멀리!
다시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산에 빠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집에서 가까운 산들만 골라 다녔는데, 2015년에 거제도로 이사 온 이후로는 그 범위가 달라졌다. 자가용을 샀기 때문이다. 그녀는 틈만 나면 산으로 갔다. 거제 11대 명산은 물론이고, 자잘한 봉우리까지 합치면 거제도에서만 50개가 넘는 곳에 올랐다. 작년에는 영남 알프스 9봉을 완봉했고, 그녀의 발자취가 남은 국립공원 수만 해도 17개에 달했다.
“차가 생기니 산에 가기 좋았어요. 한국은 동네 뒷산도 좋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멋진 산들이 많잖아요. 저는 최대한 많은 산에 가고 싶었어요.”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산과 관련된 추억도 하나둘 늘어갔다. 기억에 남는 산행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산에서 멧돼지를 4번이나 봤어요! 원래 멧돼지는 사람을 피한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한 번은 새끼 멧돼지가 있었죠. 새끼 멧돼지를 보호하려고 어미가 난폭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몹시 긴장됐어요. 다행히 슬그머니 피해 가더군요. 아직도 그때의 긴장감이 생생해요.
또 예전에 가라산(585m)에서 백패킹을 한 적이 했어요. 혼자서 캠핑은 처음이라 무서웠죠. 그렇게 긴장하며 밤을 보내고 텐트 문을 열었는데, 일출 직전이라 하늘이 뒤집혀 있었어요. 커피를 마시며 일출을 봤는데, 정말 비현실적이었어요. 하지만 가방이 무거워 그날 이후 목디스크에 걸렸어요.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죠. 그래도 좋았어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요즘도 가끔 백패킹 하는데 목디스크 이후 가벼운 장비들로 바꿨어요. 헬스클럽에서 근력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부상 덕분에 몸이 건강해야 산에도 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앞으로는 체력을 더 키워 산에 열심히 다니려고 해요.”

거제 작은국사봉에서 본 아름다운 일몰. 거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있었다고 한다.
Hike Geoje는 기록 그 이상의 의미
그동안 전국의 여러 산을 다녔던 로빈씨는 한국만의 독특한 산행 문화가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산에 다니며 특별히 흥미로웠던 것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등산 인증제도요! 한국에는 블랙야크 100대 명산뿐만 아니라, 국립공원이나 지자체별로 시행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어요. 저도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며 스탬프를 찍었는데, 재밌었어요. 도장이 모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요. 제 주변에도 인증을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가 산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데, 인증 제도가 사람들이 산을 타며 건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아 좋아 보여요.”
인터뷰를 끝내기 전 아껴뒀던 질문이 생각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왜 ‘Hike Geoje’를 통해 한국산을 소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처음엔 한국에서의 등산 추억들을 기록하려고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거제도를 모험하는 건 꽤 재밌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제 글을 보고 거제도 산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외국인이라 산행 정보를 찾을 수 없어 곤란했는데, 제 글이 큰 도움이 됐다더군요. 그건 산행과는 또 다른 행복이었어요. 앞으로도 제 사이트가 산을 찾는 누군가에게 큰 영감을 줬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더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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