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악회 수락산장 인수
모금 2주 만에 목표액 초과 달성… 변기태 회장 “휴식, 문화 공간 만들겠다”
수락산장 전경. 불법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은 모두 원상복구할 예정이다.
수락산장의 주인이 바뀐다. 한국산악회가 수락산장을 인수해 50년 넘게 이어진 산장의 역사를 이어간다. 수락산장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70년 당시 공화당산악회 고문을 맡았던 김영도(현 한국등산연구소 고문) 선생의 아이디어로 처음 지어져, 도봉산장과 더불어 수도권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민간 산장이다.
지난 50년간 수락산장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었다. 등산객들의 대피소와 군인들의 임시 내무반 역할을 거쳐 1995년에는 곽유진씨 부부에 의해 민간 산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곽씨 부부는 2000년 남양주시로부터 영업허가를 받았고, 2009년에는 남양주시로부터 수락산장을 샀다. 이후 이곳은 라면과 산나물, 파전을 팔고, 등산객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명소가 됐지만, 2012년 남편 한만희씨의 사망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갑자기 나타난 땅주인이 그간 밀린 임대료를 내놓으라고 1억8,500만 원의 소송을 제기한 것. 다행히 곽씨는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70세가 넘은 나이에 산장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픈 무릎으로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힘들었고 결국 그녀는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산장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수락산장을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산악회는 왜 수락산장을 인수하기로 결심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될까?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이동 한국산악회 CAC 산악문화센터에서 만난 변기태 회장.
수락산장 인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수락산장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수락산장은 1970년에 세워진 단단한 돌 건축물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근대 산악의 살아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는 수락산장이 방치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누군가는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적합한 단체가 바로 우리 한국산악회였고요. 회원들 모두 수락산장 인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 주셨고, 2022년부터 몇 번의 조율 끝에 한국산악회가 수락산장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모금을 통해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회원들의 뜻이었습니다. 한국산악회는 2004년에 모금을 통해 의정부에 한국산악회관을 지었어요.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나 처음 모금으로 진행하는 행사이죠. 지난 3월, 수락산장 매입을 결정하고 한국산악회 내부 이사회를 열었습니다. 거기서 수락산장 인수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됐죠. 모두가 입을 모아 한국산악회 회원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회원들 스스로 산장 보호라는 큰 뜻에 함께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의견이었죠. 그래서 모금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얼마였고, 몇 명이 모금에 참여했나요
▶ 목표액은 5,000만 원이었고, 서울 지부 회원들을 중심으로 170여 분이 모금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모금은 2주 동안 진행했는데, 목표액을 초과한 5,500만 원이 모금액으로 들어왔습니다.
물론 수락산장을 수리하려면 이보다 큰 비용이 들 겁니다. 하지만 모금 활동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회원들이 이렇게 좋은 취지로 진행하는 행사에 조그만 마음을 보태주시는 것이 가장 큰 의미였죠. 적게는 2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200만 원까지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초과 달성이라니, 대단합니다. 무엇이 회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을까요?
▶ 아무래도 산장을 지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수도권에 남아 있는 민간 산장은 도봉산장과 수락산장뿐인데, 도봉산장은 국립공원공단이 퇴거하라고 하는 실정이고, 수락산장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생긴 거죠.
산장은 문화적 가치, 대피소로의 가치도 있지만, 미래의 산악문화를 지키는 역할도 해요. 산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산사람들이 생기고, 산악문화가 이어지죠. 수락산장은 사람들이 산에 빠져들 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1970년대 수락산장 돌집의 원형 모습.
수락산장 유지·보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 원형의 모습을 최대한 살릴 겁니다. 초창기의 수락산장은 기본 돌집 형태였어요. 구조가 단단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보존되어 있죠. 지금은 돌집 옆으로 확장된 불법건축물이 몇몇 있어요. 돌집 원형만 남기고 모두 원상복구할 겁니다. 그리고 남양주시와 협의를 통해 그 위치에 데크와 그늘막을 설치해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예정입니다. 수락산장은 수락산 정상 아래 9부 능선에 위치해 있지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깔끔하게 보수한다면 찾는 이가 많아지고 수락산의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수락산장을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이신가요?
▶ 수락산장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한국산악회에는 12개 분과 위원회가 있어요. 분과별로 인원을 차출해 관리위원회를 꾸리고, 조를 나눠 일요일마다 돌아가며 수락산장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에요. 회원들이 관리 차 산장을 찾는 일요일에는 등산객들에게 커피를 나누어 주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설악산 권금산장이나 도봉산장에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러 산을 찾는 이들이 꽤 있었어요. 수락산장도 이런 커피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산은 휴식의 공간이자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등산학교 훈련지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수락산장 아래에 있는 금류폭포와 은류폭포에서 빙벽 훈련을 할 수도 있고, 다른 계절에는 수락산 정상 인근 바위에서 암벽훈련도 할 수 있어요. 등산학교 훈련지로 제격이죠. 야간산행, 산장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구상 중입니다. 사람들이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 생각해요. 산이 주는 추억은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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