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로 만든 1㎞짜리 길에서, 삶의 쉼표를 찍어보세요
씨실과 날실을 엮어 옷감을 짜듯이 대나무를 엮은 다리,뱀부브리지. 스님들이 매일 아침 6km 이상 걸어서 마을로탁발을 하러 오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주변에무성하게 자라는 대나무를 이용해서 3개월간 만들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가 여행의 빗장을 풀면서 해외여행이 무척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코로나 19가 끝나지 않은 시점. 일상회복과 여행에 대한 욕구는 점점 느린 여행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는 피하고 독특하고 소규모로 하는 여행을 찾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역사문화를 느끼며 느긋하게 쉬어갈 수 있는 여행지하면 떠오르는 곳은 태국의 빠이Pai이다. 치앙마이에서 762개의 고개를 돌고 돌아야 도착할 수 있는 산속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서도 11km나 떨어진 팸복Pam Bok마을에는 농부들이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길이 있다. 자전거조차 지나갈 수 없는 길, 어느 누구도 절대 빨리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지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뱀부브리지의 끝에는 자그마한 절,팸복사원이 있다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빠이로 가는 길
태국 치앙마이ChianMai에서 북쪽으로 146km 떨어진 빠이는 태국 북부 매홍손주Mae Hong Son Province에 있는 작은 마을로, 미얀마 국경 근처에 있다. 한때는 미얀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샨족이 거주하는 조용한 산속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관광지라 하기에도 너무 작은 마을, 편리한 세상과는 동떨어진 마을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들고 이곳에서 여행의 쉼표를 찍으며 위로를 받는다.
빠이로 가는 방법은 치앙마이에서 미니밴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미니밴을 선택한다. 이 미니밴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맥을 넘어가는 1095번 도로를 타고 구불구불한 762개의 고개를 지나서야 빠이에 도착한다. 180도로 휘어진 도로도 수십 군데가 넘는다고 하니 작은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는 상상만으로도 어지럽다. 결국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왜 이런 곳에 터널을 뚫고 도로를 건설하지 않을까?’하는 의아심도 가졌지만 정부의 터널건설계획을 반대한 사람들이 바로 빠이 주민들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세상과 동떨어져 살고 싶은 빠이 주민들의 마음이 읽혀진다.
빠이는 크게 워킹스트리트가 있는 시내와 관광지가 있는 외곽으로 나누어진다. 시내에는 야시장, 식당, 여행사, 마사지숍, 오토바이 렌털숍 등이 있다. 빠이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어서 외곽 여행지는 대부분 오토바이를 렌털해 이동한다. 오토바이를 빌릴 수 없다면 여행사에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뱀부브리지는뜨거운 햇볕을 걷는 이들을 위해그늘막이 있는 쉼터도 있다.
빨리 걸을 수 없는 뱀부브리지를담소하며 걷는 연인들이 모습이너무나 사랑스럽다
느린 여행의 아이콘, 뱀부브리지
전에는 뱀부브리지Bamboo Bridge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았다고 하는데 비수기여서인지 무료로 입장했다. 처음 보는 다리 모양이 신비스럽고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길은 왜 이런 논 위에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왜 대나무일까? 씨실과 날실을 엮어 옷감을 짜듯이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다리이다. 대나무 다리 아래는 이미 추수가 끝난 논이 누런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다. 세상의 모든 여유로움은 이곳에 모두 모여 있구나. 예상 밖의 풍경에 조금 당혹스럽다.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마른 대나무가 만나서 생기는 소리가 정겹다. 일부러 빨리 걷다가 늦게 걷다가 경쾌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리듬감을 주어 본다. 움직일 때마다 살랑살랑 다리가 출렁거리는 느낌도 좋다. 사랑을 나누며 걷는 커플들의 정겨운 몸동작이 마른 대나무에 활기를 넣어준다. 카메라 줌을 당겨서 다정히 걷는 두 사람을 살짝 훔쳐 렌즈 안에 담는다. 풍광 속에 담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나의 마음 안에 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빠이에 온 이유가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아주 오랫동안 각인될 풍경이다. 눈을 감아도 아스라하게 펼쳐질 것이다. 마음 가득 넘칠 정도의 행복감을 주체하기 어렵다. 가끔씩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곳도 있고 부드럽게 곡선으로 흐르는 곳도 있다. 뜨거운 햇볕을 걸으며 불평할 이들을 위해 그늘막이 있는 쉼터도 있다. 그리고 아주 예쁜 화장실 입구엔 갈아 신을 슬리퍼까지 준비되어 있다. 뭐하나 불평할 것이 없다. 해가 지는 시간이라 바람은 더욱 시원하게 나를 감싼다. 뒤를 바라보니 내가 걸어온 길에 깊은 정이 들어서 발길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팸복사원입구. 후아이 카이키리Huai KaaiKiri는 팸복사원의 정식명칭이다.
그리 길지 않은 약 1km의 길 끝에는 자그마한 절, 팸복사원Phaem Bok Temple이 있다. 그곳이 막다른 길이다. 누구든지 이곳에 도착하도록 만들어 놓은 길. 내 삶의 여정과 같은 길. 내가 만날 막다른 길은 어디일까. 이곳처럼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일까?
낙엽을 모으고 있는 젊은 스님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미얀마부터 시작해 인도, 스리랑카, 몰디브 그리고 태국까지 거의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인가 스님들이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하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내게는 참선하는 모습보다 더 멋지게 다가온다.
절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 ‘누가 이 길을 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에서 떨쳐지질 않는다. 마을 한쪽에 위치한 다리는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논 한가운데 쉼터처럼 만들어 놓은 오두막에 있는 여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답례로 손을 흔든다. 자기 사진을 찍으라는 몸동작을 한다. 나는 오두막 밖으로 나와 달라고 손짓을 한다. 갈 수 있는 길이 없으니 그녀도 나도 최대한 가까이 다가선다. 망원이 필요한 순간이다. 무거워서 휴대하지 않았던 망원렌즈가 절실하다. 가능한 줌을 당겨 그녀를 정성을 다해서 담고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입구를 향해서 걷는다.
늦은 시간인데도 이따금씩 걷기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일몰이 가까운 시간, 더운 대지에선 걷기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모두 커플이다. 단 한 사람 홀로 걷는 여인을 만났을 땐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가웠다.
출발했던 뱀부브리지 입구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겨우 왕복 2km 거리인데?’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참으로 우문이다. 살아가는 데 기록이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은 우리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이 느린 여행은 아닐까?
숙소에 돌아와서 구글링을 했다. 아름다운 뱀부브리지의 정식명칭인 분코쿠소Boon Koh Ku So는 ‘자비의 다리The Merit of Bridge’라는 의미이다. 마을 안쪽에 있는 팸복사원의 스님들이 매일 아침 탁발을 위해 마을로 오기 위해서는 6km 이상 걸어야 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는 대나무를 이용해 3개월간 논 위를 지나가는 뱀부브리지를 만들었다. 뱀부브리지가 만들어진 이후부터는 스님들은 편안하게 마을로 탁발을 나온다. 심지어는 뱀부브리지에서도 탁발을 한다. 만들어진 이유를 찾고 보니 뱀부브리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마음에 각인된다.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 뱀부브리지의 멋진 모습보다 더 멋진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다.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서 더욱 멋진 길이다.
지상에서 불과 몇 미터 높이에 세워진 이 길이 내겐 참으로 유쾌한 산책길이다. 내가 갔던 시기는 이미 추수가 끝나서 옅은 황금색이지만 아마도 우기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싱그러운 초록의 향내와 함께 생명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초록의 시간이 흐른 후엔 황금들판이겠지. 여러 가지 모습의 뱀부브리지를 상상하니 살짝 흥분이 된다. “언제 다시 와야 할까?”
빠이의 또 다른 볼거리
태국 최북단에 위치한 빠이는 너무 작은 마을이라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빠이의 외곽지역에는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걸음을 멈추고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다.
다양한 색깔의 대지와 계곡에 형성된 녹색의 숲이 선명한 대조를보여주는 빠이 캐니언.
● 빠이 캐니언
빠이 캐니언Pai Canyon은 빠이 시내로부터 8km 떨어져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침식 작용을 거쳐 형성된 협곡으로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지질학적으로 흥미롭고 매우 멋진 조망을 제공한다. 그랜드캐니언만큼 광대한 스케일이나 압도적인 풍경은 아니지만 다양한 색깔의 대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녹색의 계곡은 매력적인 장소이다. 일출이나 일몰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더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주차장 끝에서 시멘트로 만들어진 단조로운 길을 따라 캐니언 전망대에 올라서면 참으로 놀랍게도 지그재그 형태로 된 흙길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흙길의 높이는 30~50m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길의 폭은 1m 내외. 좁은 곳은 폭 50cm 정도 되는 곳도 있다. 양쪽 옆으로는 깎아지른 벼랑이다. 조금만 발을 헛딛어도 그대로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아주 위험천만한 길이다. 빠이 캐니언을 방문할 때는 꼭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신는 것이 안전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오는 날도 피하는 것이 좋다.
오랜 세월 동안 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협곡의 안쪽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더욱 신비롭다. 협곡 위를 따라서 약 3.5km의 트레킹도 가능하다.
빠이의 포토존 중의 하나인 메모리얼 브리지. 지금은통행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관광용 기념물이다.
● 메모리얼 브리지
메모리얼 브리지의 정식명칭은 타 빠이 메모리얼 브리지Tha Pai Memorial Bridge. 빠이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포토존이 아주 예쁘게 꾸며져 있다. 1942년 일본이 매홍손 지역을 통해 미얀마를 침공하기 위해 건설했을 당시에는 목조다리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고 퇴각하면서 다리를 불태웠다. 이로 인해 생활의 불편을 겪게 된 주민들이 합심해서 다리를 복원했지만 1973년 대홍수로 다시 붕괴되었다.
1976년 치앙마이 주정부가 새로운 다리를 건설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 또 하나의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면서 1976년에 만들어진 다리를 타 빠이 메모리얼브리지로 명명하고 관광기념물로 남겨놓았다. 현재는 차량 통행은 되지 않는다.
빠이 시내 어디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하얀 불상. 빠이시내 조망명소이자 일몰명소이다.
● 하얀 불상, 빅부다
하얀 불상White Buddha 또는 빅부다Big Budda로 더 많이 알려진 앗 프라 탓 매옌Wat Phra That Mae Yen사원의 대불상에 오르면 빠이 시내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특별히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353계단, 주차장에서는 295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망부처님의 사리가 있는 불탑이다.
일출명소로 유명한 윤라이 전망대로 들어가는 입구. 운해와 함께올라오는 여명이 몽환적이다.
● 일출전망대, 윤라이
빠이의 대표적인 뷰포인트인 윤라이Yunrai, 雲來 전망대는 빠이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좋다. 이른 새벽의 윤라이는 구름, 안개, 나무들로 가득 차 있어서 몽환적이다. 전망대 아래쪽은 야생화가 가득하고, 전망대 중앙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그 아랫부분에는 노리개처럼 울긋불긋한 매듭 장식들이 한가득 달려 있다. 마치 사랑의 자물통처럼 걸어놓았다. 사연도 다양하다.
여행자들의 거리라 불리는 워킹스트리트에는 매일 저녁이면야시장이 열린다. 다양한 먹거리와 공연 등을 즐길 수 있다.
● 워킹스트리트
빠이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여행자의 거리라 불리며 매일 저녁이면 야시장이 열린다. 다양한 음식과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하고 빠이의 밤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거리 곳곳에서는 다양한 버스킹을 즐길 수 있다. 산속의 작은 마을 빠이의 낮과 밤은 완연하게 다르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도시도 아닌 산중 마을인데 이러한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빠이에 장기여행자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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